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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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라

D.H.Jung 2011. 7. 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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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이런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주인공들은 TV 속에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종족이었고 주인공으로 살아갈 운명을 부여받은 인물들이었다. TV 바깥에서 그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는 그 주인공들을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추종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틱한 세계는 바로 거기 있었지만 그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의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 시대는 많이도 바뀌었다. 어제까지 나와 그다지 다른 생활을 했을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이 이제는 스타가 되는 시대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이제 TV 저편과 이편 사이에 그다지 큰 이물감이 없어진 작금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 곳은 연예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주인공인 무대다. 그들은 당당하게 저마다 각자 자신이 가진 개성과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경쟁하며 그 과정을 통해 스타가 된다. 백청강이라는 연변 총각이 그 이국땅의 멀고 먼 거리를 돌아 ‘위대한 탄생’이라는 무대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누가 알 수 있었을까. 허각이라는 환풍기 수리공이 그 힘겨운 삶 속에서도 노래하며 살아갈 때, 그가 지금의 ‘슈퍼스타’가 될지 누가 알았을까. 5살 때 부모에게 버려져 거리에서 껌을 팔며 살아가다,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음악에 빠져들어 검정고시로 중학교까지 나오고 결국 음악 고등학교에 진학해 성악을 배운 후, ‘코리아 갓 탤런트’라는 무대에 올라 저 영국의 폴 포츠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울려버린 최성봉씨 같은 스타는 또 어떻고. 지금 우리 눈앞에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스타들이 등장하고 있다. 변방에 놓여졌던 이들의 삶을 중심으로 옮겨 놓은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리얼 스토리의 시대, 달라진 주인공들
이 시대 문화의 핵심적인 키워드 두 개를 꼽으라면 ‘리얼리티’와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리얼리티’란 물론 완전한 현실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그 진정성이 느껴지는 상황이나 소재를 말한다. 억지로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실의 한 부분을 대중들은 더 신뢰한다. ‘1박2일’ 같은 리얼 예능이 종종 다큐멘터리와 혼동되는 것은 바로 이 진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제작진은 리얼 예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짜여진 대본에 의해 만들어진 웃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기다림에 의해 발견된 웃음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제 아무리 ‘리얼리티’가 있는 영상이라고 해도 거기에 아무런 맥락이 없다면 대중들에게 감흥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중요해지는 게 ‘스토리’다. 흔히들 ‘스토리’라면 대본을 떠올리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는 ‘리얼리티’와 만나서 자연스럽게 발견된 ‘리얼 스토리’를 말한다. 가짜가 아닌 진짜 이야기. 이른바 각본 없는 드라마는 이 시대 문화의 키워드가 되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바로 이 리얼 스토리, 즉 각본 없는 드라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을 열광시킨다. 무대에 오르는 경쟁자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백청강의 스토리, 밑바닥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정상을 향해 달리는 허각의 스토리. 그들이 대중들을 매료시키고 결국 그 꿈을 이루게 해준 것은 바로 그들이 가진 스토리의 힘이다. 노래 실력이나 스타성이라면 다른 후보들이 우승을 했을지 모르지만 이 무대는 대중들이 직접 투표해 그들의 스타를 뽑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스토리의 위력은 발휘된다. 그 스토리에는 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능력은 떨어져도 그래도 공감하고 함께 가고픈 스토리를 가진 자에 대한 지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상화된 매체로 인해, 더 이상 특별한 사람만이 특별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깨진 데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주인공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자이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라
리얼 스토리의 시대를 잘 읽어보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지가 드러난다.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고 추종하는 삶이나, 외부에 의해 주어진 삶을 그저 수용하기만 하는 삶, 그 속에서 자기는 결국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패배감은 자기만의 성공 스토리를 결코 그려낼 수 없다. 또한 주어진 삶을 불행하다며 한탄하거나 좌절한다고 해서 그 스토리는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즉 자기 삶의 스토리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는 온전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토리의 시각으로 보면 현재의 어려운 삶은 극복한 후에 남겨질 영광스런 통과의례로 바라볼 수 있다. 즉 스토리는 현재 상황을 결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꿈이나 목표를 버리지 않고 꿋꿋이 버텨낸다면 이 흐름의 끝에 해피엔딩이 기다릴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삶을 타인들과 공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고 감동적인 스토리라고 해도 그것이 전해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허각과 백청강이 용기를 내서 무대에 오른 것처럼 우리들도 어느 시점에서는 자신만의 무대에 올라야 한다.

흔히들 허각과 백청강 같은 인물들의 스토리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기적이라는 표현은 우연적인 사건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스토리가 대중들과 깊은 마음으로 공감하는 그 순간.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이제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 역시 바로 이 기적의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적의 스토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쓸 스토리의 전범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빈 원고지 하나씩을 갖고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원고지 위에 저마다 스토리를 써나간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스토리를 따라가지만 누군가는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이 시대가 주목하는 스토리는 후자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하고 노래하기 보다는 이제 스스로의 노래를 찾아 자신만의 원고지에 써보는 건 어떨까. 스토리의 시대는 당신만의 스토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