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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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어느 아주 사적인 영상추모제를 다녀와서

D.H.Jung 2009. 4. 29.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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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저 세상으로 간지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채 1년이 안됐을 겁니다만, 정확하게 몇 달이 지났는지 알 수 없는 건 아직도 그 친구가 그렇게 갑자기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친구의 누님은 친구의 생일을 맞아 영상추모제를 한다고 저희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영상추모제. 참 낯선 이름입니다. 사실 추모제라는 거창한 이름은 보통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장소는 명동성당 꼬스트홀. 저녁 7시에 친구들과 함께 그 홀에 들어서니 몇 백 명은 앉아도 좋을 자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가족들 여섯 명과 우리 친구들 네 명을 합쳐 달랑 10명이 그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 영상추모제라는 것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죠. 아마도 빔 프로젝트를 노트북에 연결해 영상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은 조악해서 노트북과 빔 프로젝트가 잘 연결이 되지 않아 한 이십 분 넘게 시간이 지연되었습니다.

그 때 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저런 거 연결하는 건 그 녀석이 딱인데." 그랬습니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그 친구는 컴퓨터 공학 전공이었고 우리는 모두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문제가 있거나 할 때면 늘 그 친구를 찾곤 했었죠. 그 기다리는 이십 분이 왠지 이 추모제의 한 부분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말은 안했지만 모두 그 빈자리를 더욱 느끼고 있었죠.

노트북이 연결되고 예상했던 대로 그 친구의 생전 동영상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 돌잡이 하는 동영상이었는데, 그 안에서 그 친구는 여전히 웃고 얘기하고 있더군요. 동영상이 갑자기 뚝 끊어지듯 꺼지고는 이어지는 영상은 무덤가에 오열하고 계신 어머님의 사진이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마지막 병원에 있을 때 찍혀진 사진(그 친구는 백혈병이 재발했답니다)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속이 뭉클하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사진들은 마지막으로 떠났을 것이라 여겨지는 그 친구 가족의 여행사진이었습니다. 거기서 친구는 아장아장 걷는 아들을 대견스레 바라보고 있었죠.

한 백여 장이 넘는 사진이 계속 이어져 나왔는데, 그것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장엄한 미사곡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와중에 시간의 역순으로 사진이 한 장씩 보여졌고 그 사진 속에서 친구는 점점 젊어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의 푸르렀던 청춘의 얼굴이 있었고, 그 때 아마도 사귀었던 여자친구들도 있었고, 물론 우리 친구들의 모습도 그 인생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 있었죠. 우리는 조금 숙연해졌습니다. 한 인생을 한 순간에 목도한 듯한 느낌이었고, 그걸 통해 뭔가 신비스런 우리네 삶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흑백사진 속에서,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속에서, 눈을 감아버린 사진 속에서 여전히 그 시간들은 붙박혀 있었습니다.

점점 마지막으로 가면서 친구는 아기가 되어갔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기의 모습에서 지금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 아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아들은 영락없이 그 친구가 어렸을 적의 그 얼굴 그대로였습니다. 문득 시간은 한 사람 안에서는 무자비하게 앞으로만 흘러가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그렇게 무한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조촐한 추모영상제가 끝나고 명동성당을 빠져나오는 길. 제가 보았던 어떤 대단한 영화보다도 이 행사가 보여준 것들만큼 제게 많은 것을 얘기해준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되돌려 본다는 것은 그 표현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죠.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 시간들을 추억하며 때론 눈물짓고 때론 아쉬워하고 때론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여러 흔적들 속에 여전히 살아있었죠.

영상 홍수의 시대에 영상은 그저 흔한 하나의 기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기록이 가진 아련함 같은 것은 언젠가 들춰보면 거기 늘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죠. 친구는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이제 없지만, 수많은 그 친구의 흔적들 속에서 저는 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메신저 창에는 그의 이름이 떠있고, 핸드폰에는 그의 전화번호가 남아있고, 함께 찍었던 사진 속에는 그가 웃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