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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김씨표류기', 김씨가 김씨에게 손내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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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서 김서방은 수없이 많은 불특정 다수를 말한다. '김씨표류기'의 김씨는 그런 의미다. 그 김씨는 밤섬에 표류하게 된 남자 김씨(정재영)이기도 하고, 자신의 방 속에 스스로를 고립한 채 표류하고 있는 여자 김씨(정려원)이기도 하며, 그 밖에 도시라는 정글의 바다 위에 각자 저마다의 섬을 갖고 표류해 살아가는 우리네 현대인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표류라는 말 또한 의미를 달리한다. 흔히 생각하듯 여기서의 표류는 바다 한 가운데 고립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도심 한 가운데서도 표류할 수 있고, 집 한 칸에서도 표류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함유하는 의미로서의 표류란 '문명화된 공간으로부터의 이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자 김씨나 여자 김씨 모두 도시로부터 이탈된, 정확히 말하자면 밀려난 존재들이다.

구구절절, 그들이 왜 도시로부터 밀려났는가를 설명하는 건 재미없는 일이다. 영화에서는 남자 김씨가 밤섬에 표류하게 되는 동기로서 자살시도가 들어있기 때문에 굳이 카드빚이나 변심한 애인 같은 상투적인 이유를 붙여놓고 있지만, 사실 이런 이유는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다 이해되는 일이다. 여자 김씨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물론 이마의 상처가 그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만) 그저 그 상황 자체가 이해되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고립된 표류하는 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손을 내미는가(커뮤니케이션) 하는 문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미디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소통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 고립은 시작된다.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관계들은 종종 소통에 실패하고 만다. 섬에 표류된 남자 김씨는 핸드폰에 남은 배터리로 구조를 요청하지만 그것은 장난전화가 되거나, "그러십니까 손님"하는 규정화된 안내 멘트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핸드폰이 꺼져버리자, 세계와 연결된 고리가 끊겨버리는 이 상황은 도시적 삶이 가진 소통의 가벼움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남자 김씨는 미디어가 사라진 공간 속에 표류된다.

한편 여자 김씨는 미디어에만 둘러 싸여 자신을 익명화한 채 살아간다. 인터넷과 미니홈피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온통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지만(심지어 미디어 속에 들어가 있다), 그 누구와도 진짜 소통을 이루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그녀에게 불쑥 들어온 외계생명체(남자 김씨) 역시 망원 카메라를 매개한 것이다. 실제적인 소통은 아마도 그녀에게는 상처 그 자체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매일 밤 잠들기전 기억을 지우듯 비디오 클리너를 돌려본다.

영화는 각자의 섬 사이에 놓여진 이들 사이의 거리가 점차 좁혀져가는 과정에 천착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고립된 두 사람이 소통의 매개로 활용하는 미디어의 방식이다. 그것은 병 속의 편지나 땅 위에 커다랗게 써놓는 글씨 같은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미디어들이다. 버튼 하나면 메시지가 지구 반대쪽까지 날아가는 시대에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구미디어들의 소통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어쩌면 이 불가능해 보이는 소통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진짜 소통인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한다.

표류기가 이 땅의 도시인들의 삶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소통은 기적처럼 보이고 대단할 것 없는 행위 조차 모험으로 여겨지게 된다. 무인도 시리즈가 갖는 고전적인 코미디의 웃음 코드 속에 푹 빠지다가도 어떤 뭉클한 감동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도시 모험이 희구하는 목표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을 가로막는 것들이 도시적 삶이라고 상정할 때, 도시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밤섬이라는 공간은 통조림 통 속에 담겨진 흙처럼 절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 밤섬이라는 공간 속에서 가지게 되는 작은 희망이 결코 작지만은 않은 것이란 점을 그려낸다. 여자 김씨의 방안을 가득 메우던 통조림 통의 절망감이 그 통 속에 자라는 옥수수처럼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남자 김씨가 도시로 둘러싸인 고립된 밤섬을 희망으로 바꾸는 그 모습과 정확히 쌍을 이룬다.

'김씨표류기'는 무수한 미디어에 둘러싸여 오히려 소통 부재가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어떤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얘기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보여주었던 이해준 감독 특유의 유머는 이처럼 포복절도의 웃음의 언저리에 늘 생각할 여지를 남겨놓는다. 정재영은 충분히 엉뚱하고 진지하게 우리를 웃겨주었고, 정려원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자리가 얼얼하게 우리를 감동시켜 주었다. 헐리우드 대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김씨표류기'라는 존재는 어쩌면 통조림 통 속에서 피어나던 옥수수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 영화가 내미는 손의 울림이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