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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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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이기 때문일까.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에는 유독 리뷰가 그다지 많이 올라와 있지 않다. 꽤 재미있는 영화인데도 리뷰가 없는 것은 이 영화의 제목도 제목이지만 메시지 자체도 영화속 고순(고현정)이 '딱 아는 만큼만 말해요'라고 한 말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뭐라 써보려고 해도 그 제목과 메시지가 딱 걸린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데 이것은 이 영화의 제목이 가진 직설적인 의미에만 목매인 결과다. 이 영화를 통해 제목이 전하는 뉘앙스는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사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 노화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듯, "무언가 다 아는 상태로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투"다. 삶이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때, 그 삶에 뛰어드는 것은 모든 것을 안 상태에서가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이며, 삶의 즐거움이란 그 과정에서 차츰 알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또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관인 것 같다. 사실 난 홍상수 감독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추측만 할뿐이지만 바로 이 추측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어쩌면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쓰기'는 사실 어찌보면 진짜 리뷰의 본령인지도 모른다. 다 아는 것을 영화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글을 쓴다는 건 때론 정리되지 않은 어떤 것을 글의 힘을 통해(글은 저절로 정리시키는 힘이 있다)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글은(혹은 영화는, 혹은 예술은) 어떤 정해진 결과가 아니라 그저 걸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그 '과정'에 충실한 영화처럼 보인다. 카메라에도 어떤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카메라는 참으로 무심하고 무신경하다. 그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가 생각난 듯 한 지점으로(그것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줌인 하거나, 어느 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만나기로 한 누군가가 나타난 듯이 주인공이 등장하면 휙 돌아본다. 때로는 지지고 볶는 사람들의 지독한 말도 안되는 의미부여와 논리싸움을 보다가는 지겹다는 듯 무심한 자연풍경 속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연적으로 포착된 듯한 파티가 벌어지는 풀장을 헤엄치는 개구리 장면이나, 마당 평상에서 무언가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인물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카메라가 갑자기 땅바닥을 열심히 기어가는 애벌레를 비추는 장면은 이상한 일이지만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마도 추측해보건대 그 심각한 상황 속에서, 전혀 상관없이 저 할일 하고 있는 듯한 개구리나 애벌레의 맹렬한 동작이 주는 대비가 현실의 긴장감을 허허롭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뭐 그리 심각하시나.'하고 그 장면들은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재미있는 건 이 홍상수 감독이 즐겨하는 로드무비 형식 속에 들어있는 이 영화에서는 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어져 발생할 것이라 생각하는 다음 사건의 인과관계가 자주 배반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이 제주도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를 감독이 아니라 철학자 같다고 비아냥거린 한 학생은, 구경남의 선배인 노화가 앞에서는(그도 역시 구경남과 비슷한 예술관을 늘어놓지만), 천재라고 극찬한다. 한 사람 속에 있는 일관된 관점이라는 것이 얼마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적 인과관계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또 영화를 일관된 하나의 메시지를 도출하는 통일된 이야기로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는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그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영화란 그저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로 이 과정에 편승하기만 하면 이 영화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뒤통수를 툭툭 치기도 하고, 엉뚱한 우연이 주는 낯선 즐거움을 발견하게도 해준다.

흔히들 영화하면 떠올리는 것들을 뒤집는 이러한 홍상수 감독의 기질은 캐스팅에서도 그대로 발휘된다.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하정우, 정유미, 공형진, 유준상 같은 스타급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한 이 영화 속에서, 그들은 마치 조연이나 엑스트라처럼 서 있다. 심지어 이들 배우들이 전작을 통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는 말끔히 지워져 있다. 이 상투적인 선입견이 사라진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 배우들 자신의 그간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준다.

혹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도대체 이 영화의 스토리는 뭐야?"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누가 주인공이냐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상업영화 속의 캐스팅 법칙의 의미에서) 스토리 역시 그닥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자연적으로 드러나는 돌발적인 인물들의 모습과 과정이 주는 뉘앙스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고백하건데 이 글은 앞에서도 밝혔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쓰는 리뷰다. 그래서일까.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은 이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 이 영화가 어떤 것인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론 이 안다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보는 사람마다 그 견해는 다 다를 수 있고 그것은 다 틀린 것일 수 있지만, 또 그래서 다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한 편을 가지고 저 마다의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쓰는 리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