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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멍해서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더군요. 하는 일이 대중문화 관련된 일인지라, 이 기본적으로 펀(fun)한 일의 성격이 지금 상황에서는 한 구석으로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잠시 시끄럽던 TV를 끄고 산책을 하고, 거리를 걷다가 문득 그 분이 우리에게 열어주셨던 광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장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봉쇄되고 차단된 광장이 아니라 누구나 그 위에서 놀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광장. 그 위에서 우리들은 정말 신나게 놀았더랬습니다.
87년 시청앞 광장 앞에 섰던 세대로서 2002년 시청앞을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들의 놀이터가 된 광장은 그 자체로 소통의 감동을 주는 것이었죠. 그리고 우리는 그 광장을 온전히 우리들의 놀이터로 있게 해줄 대통령을 원했고, 거기에 딱 맞는 그 분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고압적으로 폼잡고 앉아 있기 보다는 조금은 힘을 빼고 낮은 자세로 서민들과 한바탕 웃어제끼는 그 분은 광장 체질이었습니다. 다른 의견이 생기면 억누르거나 무시하거나 입을 막아버리는 과거의 권력자들과는 달리, 스스로 다가와 "우리 토론하자"고 말하는 광장의 대통령이었습니다.
내어준 광장 위로 시민들의 아름다운 촛불들이 저마다의 생각처럼 하나씩 둘씩 피어나고 이야기되고 소통되고 전파되는 그 광경들은 그러나 이제는 옛 이야기처럼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광장은 다시 봉쇄됐고 가신 그 길 위에 꽃 한 송이 놓으려 가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막아버리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광장 위로 빼곡한 버스들의 벽은 그 분이 열어 두었던 그 공간 위에 마구 그어놓은 생채기처럼 볼썽사납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디 광장이 시청앞 뿐이겠습니까. 매체들은 또한 우리네 광장입니다. 그 분이 광장을 열어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또 TV라는, 또... 수많은 매체들의 광장들을 얻었고, 그 위에서 맘껏 놀았습니다. 심지어 그 분의 수염을 잡아 끌어도 그 분은 허허 웃으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가신 지금 우리는 이 매체들의 광장 역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광장을 내어주신 분이자, 그 광장의 한 가운데 있던 분이 점차 밀려나 벼랑 앞에 서게 되는 그 기분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건 한 때 광장에서 놀았던 우리들 모두가 이제 광장 밖으로 밀려났을 때 느끼게 되는 그런 감정 같은 건 아닐까요.
그런데 그 잃었다 생각했던 광장이 사라져 버렸다 생각했던 광장이 그 분의 가시는 그 길 위로 다시 세워지고 있습니다. 추모의 발길들이 닿는 그 모든 곳이 광장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알게되었죠. 그 분이 내어준 광장이란 물리적인 그런 공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사람과 사람 간을 연결해주는 그 인간적인 관계와 소통의 그물망이었습니다. 그 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은 사라져도 여전히 그 소탈했던 미소는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그 광장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분처럼 말이죠.
87년 시청앞 광장 앞에 섰던 세대로서 2002년 시청앞을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들의 놀이터가 된 광장은 그 자체로 소통의 감동을 주는 것이었죠. 그리고 우리는 그 광장을 온전히 우리들의 놀이터로 있게 해줄 대통령을 원했고, 거기에 딱 맞는 그 분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고압적으로 폼잡고 앉아 있기 보다는 조금은 힘을 빼고 낮은 자세로 서민들과 한바탕 웃어제끼는 그 분은 광장 체질이었습니다. 다른 의견이 생기면 억누르거나 무시하거나 입을 막아버리는 과거의 권력자들과는 달리, 스스로 다가와 "우리 토론하자"고 말하는 광장의 대통령이었습니다.
내어준 광장 위로 시민들의 아름다운 촛불들이 저마다의 생각처럼 하나씩 둘씩 피어나고 이야기되고 소통되고 전파되는 그 광경들은 그러나 이제는 옛 이야기처럼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광장은 다시 봉쇄됐고 가신 그 길 위에 꽃 한 송이 놓으려 가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막아버리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광장 위로 빼곡한 버스들의 벽은 그 분이 열어 두었던 그 공간 위에 마구 그어놓은 생채기처럼 볼썽사납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디 광장이 시청앞 뿐이겠습니까. 매체들은 또한 우리네 광장입니다. 그 분이 광장을 열어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또 TV라는, 또... 수많은 매체들의 광장들을 얻었고, 그 위에서 맘껏 놀았습니다. 심지어 그 분의 수염을 잡아 끌어도 그 분은 허허 웃으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가신 지금 우리는 이 매체들의 광장 역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광장을 내어주신 분이자, 그 광장의 한 가운데 있던 분이 점차 밀려나 벼랑 앞에 서게 되는 그 기분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건 한 때 광장에서 놀았던 우리들 모두가 이제 광장 밖으로 밀려났을 때 느끼게 되는 그런 감정 같은 건 아닐까요.
그런데 그 잃었다 생각했던 광장이 사라져 버렸다 생각했던 광장이 그 분의 가시는 그 길 위로 다시 세워지고 있습니다. 추모의 발길들이 닿는 그 모든 곳이 광장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알게되었죠. 그 분이 내어준 광장이란 물리적인 그런 공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사람과 사람 간을 연결해주는 그 인간적인 관계와 소통의 그물망이었습니다. 그 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은 사라져도 여전히 그 소탈했던 미소는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그 광장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분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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