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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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의 조국, 강마에를 닮았다

D.H.Jung 2009. 6. 1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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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이 이토록 눈에 띈 적이 있을까. '시티홀'의 조국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차승원은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까지 보이는 능력있고 잘생기고 부자인 판타지남들의 출연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에서부터 시작해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로 이어졌다. '시티홀'의 조국은 겉으로만 보면 이 계보를 잇는 판타지남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준표에서 태봉씨로 또 조국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조국이 가진 판타지가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준표가 주는 판타지는 말 그대로 물질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가늠이 안되는 부가 그 판타지의 실체가 된다. 하지만 태봉씨로 넘어오면서 그 판타지는 부와 함께 인간미를 포함시킨다. 태봉씨는 한 여성을 숨어서 사랑하는 한 남자이면서 동시에 줄이 아닌 능력에 따라 사원들을 등용할 줄 아는 판타지 속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태봉씨가 30대 구준표라 불렸듯) 어떤 한 부류의 캐릭터라 여겨지는 것은 드라마가 이들에게 부여한 신적인 힘 때문이다. 이들은 드라마 속에서 거의 신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조국은 다르다. 그는 능력있고, 잘 생기고, 돈도 있지만 뭐든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존재는 아니다. 항상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 서 있고, 심지어 자기 여자를 위해 뭔가를 해주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처해 있다. 현장에서는 특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 여자 앞에서는 코믹스러울 정도로 엉뚱한 면모를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엔 까칠해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다정다감하다. 이 즈음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다.

이 능력있는 남성들은 모두 처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자리에 서게 된다. 강마에는 시향의 지휘자로 서는 것이고 조국은 인주시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서는 것. 하지만 이 둘은 모두 거기서 서민들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중의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이제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 강마에처럼 조국도 이러한 낮은 자들의 지킴이로서 갖는 판타지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두 드라마는 현실과의 맥락을 갖게 된다. 판타지가 현실과의 맥락 없이 등장할 때 그저 마취적이고 도취적인 자극으로 함몰될 수 있는 반면, 현실의 반작용으로서 등장하는 판타지는 그 자체로 현실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강마에는 꿈꾸지 않는 현실을 꿈꾸게 만드는 존재이며, 조국은 이미 실종되고 포기된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다시금 꿈꾸게 만드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 드라마에 등장하는 멜로 역시 그저 멜로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사랑 그 이면에 어떤 희망이나 꿈같은 것을 등장시킨다. 강마에와 조국이 내포한 판타지가 단지 여성들의 판타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판타지가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강마에를 닮은 조국이라는 판타지가 서민들을 위한 정치가 부재한 현실에 작은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은 남녀의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