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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는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과장되게 넘어지거나 쓰러져 반칙을 유도하려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은 때론 진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엑스맨 탄생-울버린'의 주먹을 뚫고 나오는 칼날이나, 아무리 해도 죽지 않는 그래서 심지어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버린 '터미네이터'의 로봇들을 보다보면 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피드와 장쾌한 액션에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는 허무감에 빠질 때가 많죠.

그런 면에서 볼 때, '거북이 달린다'는 이 할리우드 액션이 갖는 약점을 정곡으로 찌르는 우리식 토속 액션영화로 보입니다. '거북이 달린다'에는 '스타트랙 - 더 비기닝'같은 우주적 공간도 없고,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 같은 어마어마한 전쟁도 없습니다. 당연히 화려한 CG같은 것도 있을 리 없고 엄청난 능력이나 힘을 가진 주인공도 없습니다. 그저 소싸움 대회 정도에도 들썩거리는 충청도 한 마을과 그 마을에서 말 그대로 찌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골형사 조필성(김윤석)이 동네로 들어온 탈주범과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거북이처럼 별볼일 없을 것 같은 영화가 저 토끼들 같은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이 주지 못하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건 왜일까요. 그것은 지독하게도 토속적인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역시 토속적인 이야기가 갖는 리얼함 때문일 것입니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주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마누라의 빵구난 팬티 하나가 짠하게 가슴에 남아 죽도록 싸우는 우리네 액션 스타 조필성 같은 캐릭터가 주는 공감일 것입니다.

우주적 공간이 아닌 충청도라는 공간은 이 영화의 토속적인 맛을 우려내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충청도가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특유의 지역 정서는 형사물이라는 조금은 긴박한 상황과 대비되면서 충분한 웃음을 끌어냅니다. 그리고 이 웃음은 주인공들이 억지로 끌어낸 것이 아니라 지역 정서 자체가 주는 웃음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진지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느린 듯 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정서는 이 영화의 액션 속에서도 대사 속에서도 묻어나면서 보는 이를 웃기면서도 찡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충청도가 주는 중심에서 밀려난 듯한 외곽의 정서는 이 독특한 형사물에 서민적인 정서를 결합시킵니다. 혼자서 여럿을 때려잡은 탈주범을 두고 반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놈을 우리가 어떻게 잡냐?"고 말할 때, 우리는 빵 터지면서도 그 리얼함에 서민적 동지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거북이를 닮아잇는 충청도 정서와 충청도식 사투리와 그걸 모두 체화한 듯 비틀대며 찌질하게 살아가면서 그래도 가족 앞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려하는 조필성은 서민적 정서의 표징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조필성이라는 거북이 정서에 우리가 공감하는 순간, 별 것 아닌 것 같은 액션과 추격전이 주는 쾌감은 극대화됩니다. 마치 '추격자'에서 헛다리만 짚는 형사들을 대신해 연쇄살인범을 쫓는 김윤석을 관객이 애타게 응원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이 한편으로는 불쌍하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얼굴이 되어 있는 거북이 조필성이 잘난 척하는 권력있는 도시의 형사들을 앞질러 그 지긋지긋한 탈주범을 잡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분명 할리우드 액션이 갖는 과장됨은 그 자체가 대중들을 사로잡는 힘일 것입니다. 하지만 '거북이 달린다'에는 그런 할리우드 액션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이 할리우드 액션과는 정반대 같은 충청도식(?) 액션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이 영화가 정말 우리 얘기를 우리 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참을 웃고, 마지막에 가서는 찡한 이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며 어딘지 찜찜하거나 허무한 느낌을 주었던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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