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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이제 버라이어티에서 리얼이란 수식어를 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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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버라이어티라는 단어 앞에는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에서 표방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용어는 마치 하나의 장르가 된 것처럼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에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리얼'이다. 따라서 이 '리얼'이란 수식어는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의 강박으로 자리했다. 토크쇼 앞에도 '리얼'이 붙었고, 하다못해 인터뷰 하나를 하더라도 강박적으로 우리는 '리얼'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해왔던 쇼(이 쇼에는 뉴스마저도 포함된다)의 인위적인 부분들에 대한 대중들의 외면 때문이다. 그 인위적인 부분에 출연자들의 홍보성 논란이 덧붙여지면 대중들은 심지어 불쾌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저네들의 홍보를 봐야만 하는 상황은, '공짜로 보는 TV'라는 착각에 금을 긋는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TV에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인식. 쇼들이 전면적으로 리얼을 수식어로 붙인 것에는 이 손상된 대중들과의 신뢰감(?)을 어떻게든 연결해보려는 안간힘일 수 있다.

이렇게 되다보니 현재 쇼는 리얼 아닌 것이 없게 되었다. 버라이어티는 무조건 리얼이고, 토크쇼 역시 리얼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무리수도 등장한다. 막말과 비방은 이제는 토크쇼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정도가 되었고, 버라이어티쇼는 가장 솔직할 수밖에 없는 몸개그를 중심에 세우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리얼리얼 하다보니 소재도 자꾸만 겹쳐지게 된다. 리얼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게임, 여행, 먹거리 같은 것들은 이제 거의 대부분의 버라이어티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소재가 되었다.

사실 이렇게 리얼을 강조하는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는 지금 시대의 정서와 조우하는 부분이 있고, 실제로도 상당히 재미있다. 리얼리티쇼가 현 TV의 한 추세로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나친 리얼에 대한 강박이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현장에서 PD들을 만나다 보면 리얼에 대한 강박의 강도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이 고민하는 것은 그것이 리얼이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이 재미있냐 없냐는 문제에 더 가깝다. 즉 그것이 리얼이 아니고 상황극이나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재미있는 부분이라면 당연히 수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한도전'의 김태호PD가 10asia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밝힌 바이다. 그 인터뷰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오히려 김태호PD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수식어가 가진 속박에서 벗어나 외연을 넓혀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벌써 수년 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틀 안에서 살아오며 무수한 도전을 해온 그로서는 이제 틀 밖의 것으로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고픈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드는 이들이 현재 체감하는 공통된 욕망으로도 볼 수 있다. 리얼리티는 이제 내세울 어떤 것이 아니라 그저 기본이 되는 어떤 것이 된 지 오래며, 따라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부분에 오히려 치중해야 변별력이 생긴다. '1박2일'은 초창기 '리얼 야생 생고생 버라이어티'라는 식으로 수많은 수식어를 붙였던 적이 있다. 아마도 당시에는 그저 '여행 버라이어티'라고 하는 것이 어딘지 자신만의 개성을 말해주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1박2일'은 여행 버라이어티의 대명사가 되었다. 굳이 앞에 많은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버라이어티에 리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버라이어티라면 무조건 리얼만 있는 것처럼 보이고, 또 그래야 하는 강박마저 있다. 버라이어티란 말 그대로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는 쇼 프로그램 형식이다. 물론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작금의 버라이어티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리얼이 보편화되어버린 상황에서 이 수식어는 오히려 버라이어티의 다양성을 묶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다양성이 권리로서 인정되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