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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고현정과 최민수, '모래시계'에서 사극악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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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귀가시계라고 불렸던 '모래시계'는 고현정과 최민수에게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고현정의 순수하고 가녀린 이미지와 최민수의 강인하면서도 남성적인 이미지는 이 작품을 통해 빛을 발했죠. '모래시계'가 1995년도에 방영되었으니 벌써 14년이나 흘렀군요.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 공교롭게도 이 두 배우는 나란히 사극에서 악역을 맡았습니다.

'태왕사신기'에서 화천회 대장로로 분한 최민수는 실로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쇠를 긁는듯한 낮은 목소리에 음침한 눈빛과 구부정한 몸 동작이 주는 섬칫한 느낌은 이 사극을 끌어가는 힘을 만들어주었죠. 그리고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미실이라는 희대의 여걸이자 팜므파탈로서의 악역을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최민수가 보여주었던 연기의 세계는 양극점을 오가는 것이었죠. '모래시계'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결혼이야기'나 '사랑이 뭐길래'에서 보여주는 살짝 망가지는 털털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것이지만, 최민수는 이 양극점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 '홀리데이'에서의 살벌한 악역을 보여주었던 최민수는 이제 딱히 주연이 아니라도 주목받을 수 있는 연기자의 면모를 갖추었고, '태왕사신기'에서 그 폭발력을 입증했습니다.

반면 고현정은 여성 연기자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이미지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려웠죠. 하지만 그녀는 차츰 차츰 자신의 겉껍질을 벗어던짐으로써 연기자로서의 새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변의 여인'에서 보여준 막말과 쌍욕은 견고했던 그녀의 신비주의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고, '여우야 뭐하니'에서는 솔직한 성담론을 통해 순수하기만한 이미지에서 어떤 털털한 면모를 부가시켰습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이라는 악역을 소화해낼 수 있게 된 것은 이 오랜 기간동안 해왔던 그녀의 (스타에서 연기자로의)연착륙이 이제는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사극 연기는 특히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왠만한 연기자들도 그 독특한 사극 어법에 들어가면 당황할 때가 많다고 하죠. 게다가 악역이라면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모래시계'에서 젊음의 화려했던 한 시절을 보낸 고현정과 최민수가 이제 사극 속 악역으로 빛을 발하는 모습에서 성숙되어가는 연기자의 한 전형을 보게 되는 것은 저뿐일까요. '모래시계'는 그만큼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고 이들은 쉬지 않고 자신들의 연기 스펙트럼을 여기까지 넓혀놓은 것이죠.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고현정과 최민수.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연기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말도 안되는 억측에 휘말려 고생하셨던 최민수씨도 어서 복귀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