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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킹콩을 들다', 가장들의 몸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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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순간입니다. 마지막 1분여. 이배영 선수가 끝내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바를 놓지 않은 것도 그 짧은 순간이었고, 장미란 선수가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무게를 오로지 자기자신의 기록을 깨기 위해 들어버린 것도 그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역도는 바로 이 1분여의 시간에 폭발적인 집중을 하게 만드는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1분여의 드라마를 보고는 쉬 잊혀져버리는 비인기종목이기도 하죠.

역도를 소재로 한 '킹콩을 들다'는 120분짜리 영화입니다. 1분여의 강렬하게 기억되었다가 허무하게 잊혀져버리는 각본없는 드라마는 어떻게 120분 간의 영화 속으로 담기게 되었을까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우리가 본 그 1분을 위해 선수들은 몇 년에 걸친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며 훈련을 하죠. 그러니 어찌보면 그걸 담아내기에는 12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을 지경입니다. 단 두 시간으로 무게와의 사투를 벌이는 그들(그것도 여성의 몸으로)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킹콩을 들다'는 이 짧은 시간 속에 역도라는 스포츠가 가진 매력과 힘겨움은 물론이고, 그 위에 역도라는 스포츠를 은유해 보여주는 삶의 문제까지 보여줍니다. 사실 이런 코드들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비인기종목 스포츠와 여성(그것도 아줌마들)이 어떻게 하나로 엮어지는 지를 우리는 목도한 적이 있습니다. '킹콩을 들다'는 소외계층과 역도라는 비인기종목 스포츠, 그리고 여성을 모두 각각의 바벨로 바에 끼워넣고 한바탕 들어올리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시골의 순박한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그 웃음은 눈물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난한 소녀들이 처한 상황, 그 한창 자기 몸매에 신경을 쓸 나이에 펑퍼짐하게 몸을 망가뜨리는(?) 역도라는 스포츠를 그것도 기꺼이 해나가는 상황은 그 평범하지 않은 모습에 우선 웃음이 터지지만, 계속 찬찬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어떤 깊은 슬픔을 읽어내게 됩니다.

더욱 마음을 저리게 하는 것은 역도라는 스포츠의 성격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역도부 코치로 나오는 이지봉(이범수)이 말하듯, 역도는 너무나 정직한 스포츠죠. 누구와 경쟁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공처럼 어디로 튈 지 종을 잡을 수 없는 그런 경기도 아닙니다. 그저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리면 되는 경기죠. 쉽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단순함이 갖고 있는 우직함을 말하는 것이죠. 역도는 그래서인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이들이 몸으로 먹고 사는 노동의 그 정직함과 우직함을 닮았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소녀들이 그렇게 몸 하나를 가지고 바벨 앞에 마주하는 모습은 그래서 자못 슬프면서도 비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훈련 때문에 검게 타고 벗겨진 피부와, 일자로 되어버린 허리라인과 점점 펑퍼짐해진 엉덩이는 이 소녀들의 처절한 사투를 말해줍니다. 소녀들이 그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을 포기했기 때문이죠. 이것은 코치인 이지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결국 역도라는 무게에 몸이 망가져버렸죠.

하지만 바로 이 망가진 몸에서 거꾸로 아름다움이 그려집니다. 우리가 장미란 선수를 보면서 정말 아름다운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몸이 말해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역도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한 집안을 온전히 어깨 위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가장들이 가진 그 몸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저 사회생활 속에서의 힘겨움을 잘 말하지 않죠. 그래도 아주 가끔 소주를 한 잔 한다거나 했을 때, 그 짧은 순간 진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그 1분여의 진심이 때론 수십 년의 세월을 얘기해주기도 하죠. '킹콩을 들다'는 역도라는 스포츠를 통해, 그 짧은 순간의 환희와 낙담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환기시켜주는,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 얼마나 슬픈 흔적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