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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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결못남'이 부러울까

D.H.Jung 2009. 6. 3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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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못하는 남자'는 제목의 '못하는'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남자에 대한 동정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조재희(지진희)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적인 통념상 나이 마흔이면 결혼해서 아이가 있어야 정상적이라고들 말하죠.

그런데 이 외부세계와는 단절되어 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조재희를 보다보면 문득 문득 그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먼저 그는 조직의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그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인물이 아니죠. 어쩌면 조직이 그를 견뎌내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운영하는 사무실에서 그는 동료이자 친구인 윤기란(양정아)에게 모든 조직의 스트레스를 넘겨 놓은 채 자기 일에 빠져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사실 윤기란은 그의 완벽한 내조자입니다. 그의 까탈스런 성격을 다 이해하고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다 알고 있어 항상 그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줍니다. 사실 윤기란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방식이 옆에서 바라보고 챙겨주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모든 걸 챙겨주는 동료가 있고, 그 동료에 의해 스트레스가 없는 사무실을 갖고 있는 그는 부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의 집은 말 그대로 그의 성역이죠. 그 안에서 그는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만끽합니다. 그것이 지지리 궁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그것은 자기에게만 충실할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결혼생활을 해본 분들이라면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혼자서 고깃집에 앉아 고기를 음미하며 먹는 것이나, 혼자 자신이 발견한 뷰 포인트에 앉아서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감상에 젖는 것이나, 휴일에 온전히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은, 결혼이나 부부 같은 통상적인 사회적 시선을 제거하고 보면 오히려 너무나 부러운 일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혼자이면서 그 혼자임을 즐기지 못하는 장문정(엄정화)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그녀는 퇴근시간에 함께 저녁먹을 사람을 고민하는 입장이고, 주말이면 갑작스런 직장의 호출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줄만큼 혼자인 주말이 걱정스런 입장이죠. 그런 그녀에게 저 혼자임을 즐기는 이 남자는 괴물이면서도 부러운 대상일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입장은 사실 사회적인 통념에 가까운 것이죠.

그렇다고 '결못남'이 독신의 즐거움을 결론으로 내리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하지만 결혼을 권하고 관계를 권하는 이 사회 속에서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혼자인 일상이 부럽게 다가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은 이 드라마를 여타의 결혼적령기를 지난 남녀의 멜로물과 다르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이 드라마는 독신을 벗어나는 남녀의 멜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독신이 주는 자유로움을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는 그 독신에서의 탈출을 해피엔딩으로 다루겠지만, 그 과정에서 목도하게되는 조재희의 독신생활이 주는 판타지 역시 이 드라마를 보게 하는 한 축의 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결못남'을 보며 그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조직생활 혹은 가정생활 속에서 관계의 피곤을 느끼는 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현대인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