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가 아닌 개봉 첫 날, 첫 회에서 영화를 보는 맛은 남다릅니다. 요즘처럼 주말이 아닌 주중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많아지다보니 그 첫 회는 대부분 아줌마들과 함께 보게 됩니다. '내 사랑 내 곁에'도 그랬죠. 극장 안에는 이미 준비된(?) 아줌마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득 메운 극장 안에 두 서넛 대는 남자들 중 한 명이 저라는 사실이 쑥쓰러울 정도였습니다.
과연 명불허전일까. 김명민의 연기는 빙의에 가까운 경지를 보여줄까. 얼마나 절절한 눈물의 드라마들이 펼쳐질까. 불빛이 꺼지기 전까지 갖은 기대감들이 솟아 올랐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직업적인 어떤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영화가 지나치게 신파로 흘러, 눈물을 짜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런 것들은 모두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담담했고, 이야기는 과장하려 하지 않았으며, 연기자들은 실제 그 주인공이 되어 있었습니다. 백종우(김명민)와 이지수(하지원)의 만남과 사랑의 시작은 담백했고, 루게릭병이라는 실존의 무게를 지닌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최루성 멜로의 틀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멜로와 휴먼드라마를 구분하는 기준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눈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자 혹은 남자의 눈물이 그 남녀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 인간의 처해진 실존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를 보는 것이죠. 이지수의 눈물은 여자의 눈물이면서도, 한 인간의 눈물이었습니다.
같은 병실에 지내는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 중 가장 반가운 인물은 임하룡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인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씻기고 입히고 화장까지 해주며 지내는 그는, 특유의 농담을 쏟아냅니다. "내 마누라 저기 누워있잖아. 섹시하게. 4년 동안." 죽음을 가까이에 둔 자들에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런 농담들은 먼저 즉발적으로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 끝에 먹먹한 가슴을 남깁니다. 얼마나 죽음과 익숙해지면 저런 농담까지 나올 수 있는 걸까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습관처럼 '총맞은 것처럼~'을 부르는 서진희(손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리플 악셀을 하다가 전신마비가 된 피겨선수로 잔뜩 비뚤어진 그녀는 옆 자리의 종우와 한바탕 설전을 벌입니다. "너 일루 와!"하는 말싸움은 움직일 수조차 없는 이들의 상황과 대비되며 한바탕 웃음과 깊은 슬픔을 교차시킵니다.
식물인간 남편을 9년 간이나 지켜온 주옥연(남능미)이 깨어나지 않는 남편(최종률)의 뺨을 후려치며 우는 장면에서는 그 거친 손길 끝에 줄줄이 달려진 그녀의 깊은 슬픔과 남편에 대한 애정을 거꾸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내내 진정성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혹시 누가 볼까 눈가가 아플 정도로 눈물을 훔쳐내며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푸근해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그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 푸석푸석해지는 건조한 초가을, 이 기분좋은 촉촉함은 아마 저만의 기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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