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능이 '무한도전'이 된 까닭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는 음악을 소재로 하지만 음악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도전'이다. 가수들은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자신의 음악스타일을 넘어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복불복식으로 회전판을 돌려 걸리는 곡이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댄스곡이거나, 심지어 트로트라고 해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YB가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을 부르고, 김범수가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며 장혜진이 카라의 '미스터'를 부른다. 이 스타일 차이의 간극이 멀면 멀수록 그 도전의 강도는 강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걸 넘어서는 무대로 승화시키면 그 감동도 깊어진다.

가수들은 1주일 내내 주어진 곡을 갖고 여러 스타일로 편곡을 하고 자기 곡으로 소화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심지어 퍼포먼스까지 곁들인다. 경연의 무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5분 남짓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노력과 땀의 결과인 셈이다. 한 회 분의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일주일 내내 매달린다고 해서 출연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나는 가수다'가 주는 감동의 또 다른 실체다.

우리는 이 감동을 일찍이 '무한도전'을 통해 경험한 적이 있다. 봅슬레이를 하기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연습에 몰두하고, '댄스 스포츠' 경연을 위해 몸치에도 불구하고 스텝 연습을 멈추지 않으며, '프로레슬링' 경기를 위해 엄청난 심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한다. 현재 도전하고 있는 '조정' 경기는 연습한대로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종목이라는 점에서 멤버들의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분량이 노력한 만큼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노력의 강도가 있기 때문에 방송의 밀도가 높아지고, 감동이 커질 뿐이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지금껏 당연한 것처럼 여긴 '무한도전'의 숨겨진 땀이다. 누가 더 출연료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 노력하는 장면이 모두 방영되지는 않기 때문에 누가 그 노력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묵묵히 뿌려온 그 땀의 가치.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김규리의 온통 멍든 다리에서 그 노력의 흔적을 발견하고, '키스 앤 크라이'의 김병만이 무대를 끝내고 서 있을 수조차 없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뭉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오디션 같은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진정성은 예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그저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아니라면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미 진짜 꽃을 본 대중들이 조화를 보며 감흥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지금의 예능에서 노력에 흘린 땀만큼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 없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홍수 속에서 모든 예능들이 마치 '무한도전'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는 하와이로 날아가 단 한 명이 남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누군가는 지금껏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피겨 스케이트를 타며 수백 번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TV에서나 봐왔던 놀라운 기술을 선보인다. 또 몸치에 박치인 누군가는 피나는 연습으로 그것을 극복하며 춤을 추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지금껏 한계로 여겨온 노래와 무대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바야흐로 '무한도전' 예능의 시대다.


미친 존재감의 시대, 미친 존재감의 개그맨, 정형돈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보고 있나... 소녀시대.' 조인성이 군 제대하는 자리에서 "걸 그룹보다 '무한도전'이 좋았다"는 말에 이런 자막 하나가 붙었다. 소녀시대 팬들이라면 자못 도발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 자막은, 그러나 '무한도전'을 통해 맥락을 이해하는 분들이라면 귀엽고 심지어 유쾌하게까지 느꼈을 것이다. 어떻게 무례하게까지 보이는 이런 말이 웃음으로 전화될 수 있었을까. 거기에 '미존개오(미친 존재감 개화동 오렌지족)'로 불리는 정형돈이 있다.

조인성을 조정 특집에 영입하기 위해 벌어진 테스트에도 여지없이 정형돈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은 '어색함을 이겨내라'는 테스트. 어색함을 캐릭터로 갖고 있는 정형돈의 전화번호를 얻는 것이 조인성의 미션이 되는 이 테스트는 애초에 정형돈이라는 캐릭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조인성이라면 연예인들마저도 서로 전화번호를 알려고 난리를 치는 상황이 아닌가. 거꾸로 정형돈이 조인성에게 "정말 내 전화번호를 원하면..."이라고 단서를 달면서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상황은 그 자체로 웃음을 준다.

식사시간에 "자꾸만 몸이 부는 것 같다"며 먹지 않는 조인성에게 여지없이 정형돈은 '조언'을 해댄다. 보기에도 호리호리한 조인성에게 "화면에 살찐 모습이 나오는 건 부담스럽다"고 하는 뚱뚱한 정형돈의 멘트는 조인성마저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뚱뚱하고 못난 자신의 몸을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을 지적질 하는 모습이 큰 웃음을 주는 것. 그것도 대상이 조인성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 정형돈의 자신의 '무존재감' 캐릭터를 역이용한 '지적질(?)' 개그는 이미 지드래곤을 향해 던져진 적이 있다. 몇 차례 '무한도전'에 출연하기도 했던 누가 뭐래도 가요계의 패션 리더 지드래곤에게 정형돈이 던지는 "지드래곤 보고 있나? 이게 패션이다."라는 도발적인 반전개그는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것은 최근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짝을 이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 나갔던 정재형에게도 이어졌다. 정형돈의 개그를 그대로 이용해 "유희열은 나부랭이, 김동률은 조무래기, 자신은 신"이라고 표현한 정재형은 후에 유희열 팬 페이지에 "유희열 보고 있나..."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른바 '보고 있나'식 개그가 자못 도발적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는 이유는 이른바 존재감 넘치는 잘난 이들의 세상의 그늘에 가려져 존재감 없는 이들의 억눌린 감정을 유머를 통해 풀어내기 때문이다. 정형돈이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는 '무한도전'에서 이미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무존재감'을 캐릭터로 갖고 있는 개그맨이기 때문이다. 즉 '무존재감'을 캐릭터로 만들어 오히려 웃음을 주는 역발상을 보여주던 정형돈은 이제 그 '무존재감'을 거꾸로 무기 삼아 존재감 있는 이들을 도발하는 것으로 한 차원 더 나간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이 변화된 시대의 요구인지도 모른다. 주연이 중심에 서고 조연들은 그 그늘에 가려지던 과거에서 이제는 조연들도 각각의 미친 존재감으로 주연 이상의 주목을 끄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정형돈의 조금은 과장된 자신감은 웃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준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감의 소유자들 앞에 당당하게(어찌 보면 무모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모습이 웃음 이상의 공감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정형돈은 이 미친 존재감의 시대가 요구하는 역발상의 개그맨이다.


시청률로는 볼 수 없는 '청춘합창단'의 감동

'남자의 자격': 사진출처(KBS)

이건 오디션이 아니다. 누군가를 심사하고 뽑는 자리라기보다는 그 분들의 삶을 듣고 느끼는 자리다. 그래서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단원을 뽑는 자리에서 한 쪽에 앉아있는 심사위원들은 이 온몸으로 오는 묵직한 삶의 이야기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들이 어찌 감히 심사를 할 수 있으랴. 조금 음정이 불안하고 박자가 틀린다고 해도 날 것으로 다가오는 이 감동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작년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 합창대회에서 듣게 된 실버합창단의 노래에 모두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 노래가 조금 힘에 벅차고 간혹 틀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맞추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한 어르신들의 마음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겨워도 그 무언가가 그토록 노래하게 한 어르신들의 그 마음을 고스란히 떨리는 목소리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합창단'의 첫 번째 오디션은 바로 그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33년간 교직생활을 하고 명퇴하여 이제는 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다는 김우연(60) 어르신은 그 당찬 모습이 부르는 '비목'이란 노래와 그대로 어우러졌다. 일본에서 온 사카이 신지(53)씨는 일본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진 분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그 마음이 어색한 한국어의 낱말 하나하나를 정성껏 발음해 부르는 '내가 만일'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단어에 신경써 주셔서 부르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는 박완규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84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부끄럽고 귀여우신 노강진 할머니는 42살부터 줄곧 합창을 해올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먹어서 소리가 잘 안나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이 부른 아일랜드 민요 종달새는 바로 자신의 분신이었다. 힘겹지만 또박또박 음정과 박자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며 노래하는 어르신은 마치 종달새처럼 아름답게 비춰졌다. 노강진 할머니는 음악이 얼마나 즐겁고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작년에 먼저 갔습니다" 하고 담담히 말하며 자녀들에게도 자신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홍기표(79) 할아버지가 부르는 '고향생각'은 가사 하나하나가 어른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그래서일까. 그 분의 뒷모습에서 아마도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자신의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한편 결혼하는 딸이 혼자 지낼 엄마를 걱정할까봐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지원했다는 박원지(67) 할머니가 부르는 '무인도'도 마찬가지. 그 노래 속에는 홀로 무인도처럼 외로워도 굳건히 우뚝 서 있는 강한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1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잊기 위해 '만남'이라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는 정재선(54)씨의 무반주 노래는 아무런 기교가 없어 그 진심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로 시작해서 "사랑해. 사랑해. 너를 사랑해."로 끝나는 그 곡은 아들을 향해 부르는 엄마의 노래였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꽉 깨무는 뮤지컬 배우 임혜영의 모습은 아마도 모든 시청자들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침체된 분위기를 일소해버린 요들 할머니 유혜정(62) 어르신은 또 어떻고. "저를 떨어뜨리면 굉장히 손해일 거예요. 제가 합창단의 기쁨조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소녀 같은 청춘이 깃들어 있었다.

'청춘합창단'은 여러 모로 점점 더 자극으로 치닫는 현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오디션이지만 심사가 아닌 공감이 더 빛나고, 경쟁보다는 협력의 의미가 더 크며, 무엇보다 노래에 있어 기교가 아닌 그 삶의 진심이 묻어나는 진정성이 살아있는 이 아이템은 현재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과도 대체 불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젊은이들의 오디션도 보여주지 못한 뜨거운 열정과 감동을 '청춘합창단'은 삶의 더깨가 그대로 드러나는 어르신들의 주름과 환한 웃음과 눈물로 그대로 보여주었다. 여러모로 일요일 저녁 시청률 경쟁 속에 묻히기에 이 깊은 감동은 너무나 아깝다.


'키앤크', 기술보다 과정으로 승부하다

'키스앤크라이'(사진출처:SBS)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는 여러 모로 불리함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김연아가 하나의 신화가 됨으로써 높여놓은 대중들의 눈 때문이다. 피겨 스케이팅 하면 이제 트리플 점프를 떠올리고,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빙상 위를 물 찬 제비처럼 미끄러지는 장면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김연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일 뿐, 이제 갓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지난한 기술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포츠라는 소재는 진짜 스포츠 중계만큼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포착해내는 방식으로서의 스포츠 중계가 정착되어 있는 것은 그 형식이 가진 힘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키스 앤 크라이'는 분명 스포츠 중계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흥미진진함을 갖춘 프로그램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 힘을 만드는 것일까.

그 차별점은 바로 과정에 있다. 스포츠 중계는 그 단판 승부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 승부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점프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힘겨운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 앤 크라이'는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서 달인 김병만은 평발의 한계를 딛고 극한의 노력을 통해 거의 준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선보였다. 만일 그 과정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의 런지나 점프 동작 하나하나를 우리는 감동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박준금의 나이를 잊은 스케이팅, 승부근성을 보여주는 손담비와 크리스탈의 팽팽한 대결, 몸치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지석과 아이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피겨 스케이팅으로 새로운 도전을 선보이며 개그맨 뺨치는 예능감을 보여주는 유쾌한 이규혁, 타고난 끼와 재능을 가진 유노윤호, 엄마의 도전이 돋보이는 이아현 그리고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진지희. 사실 우리가 '키스 앤 크라이'의 빙상 경연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이러한 각자가 가진 사연과 어우러진 피겨 도전 과정의 스토리다. 기술? 물론 이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한 과제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노력의 과정과 그로 인해 얼마만큼 변화되었는가가 더 관건이다.

즉 이 경쟁은 겉보기에는 상대평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절대평가에 가깝다. 타고난 재능으로 이미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선 김병만 같은 도전자의 승부와, 몸치에 가까운 서지석의 승부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나 장미평가단들, 그리고 시청자들까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지희처럼 기술이 부족해 심사위원으로부터 최하점을 받은 팀도 장미평가단에 의해 7위가 될 수도 있는 게 '키스 앤 크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실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실 그 누가 김병만이 3개월만에 이런 프로에 가까운 스케이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노력하는 손담비의 놀랄만한 기술에 대한 도전과, 타고난 선을 가진 크리스탈의 재능을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있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지점들이 '키스 앤 크라이'가 스포츠 중계 그 이상이 되는 이유다. 그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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