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앤크', 기술보다 과정으로 승부하다

'키스앤크라이'(사진출처:SBS)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는 여러 모로 불리함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김연아가 하나의 신화가 됨으로써 높여놓은 대중들의 눈 때문이다. 피겨 스케이팅 하면 이제 트리플 점프를 떠올리고,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빙상 위를 물 찬 제비처럼 미끄러지는 장면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김연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일 뿐, 이제 갓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지난한 기술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포츠라는 소재는 진짜 스포츠 중계만큼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포착해내는 방식으로서의 스포츠 중계가 정착되어 있는 것은 그 형식이 가진 힘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키스 앤 크라이'는 분명 스포츠 중계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흥미진진함을 갖춘 프로그램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 힘을 만드는 것일까.

그 차별점은 바로 과정에 있다. 스포츠 중계는 그 단판 승부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 승부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점프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힘겨운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 앤 크라이'는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서 달인 김병만은 평발의 한계를 딛고 극한의 노력을 통해 거의 준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선보였다. 만일 그 과정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의 런지나 점프 동작 하나하나를 우리는 감동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박준금의 나이를 잊은 스케이팅, 승부근성을 보여주는 손담비와 크리스탈의 팽팽한 대결, 몸치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지석과 아이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피겨 스케이팅으로 새로운 도전을 선보이며 개그맨 뺨치는 예능감을 보여주는 유쾌한 이규혁, 타고난 끼와 재능을 가진 유노윤호, 엄마의 도전이 돋보이는 이아현 그리고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진지희. 사실 우리가 '키스 앤 크라이'의 빙상 경연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이러한 각자가 가진 사연과 어우러진 피겨 도전 과정의 스토리다. 기술? 물론 이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한 과제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노력의 과정과 그로 인해 얼마만큼 변화되었는가가 더 관건이다.

즉 이 경쟁은 겉보기에는 상대평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절대평가에 가깝다. 타고난 재능으로 이미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선 김병만 같은 도전자의 승부와, 몸치에 가까운 서지석의 승부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나 장미평가단들, 그리고 시청자들까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지희처럼 기술이 부족해 심사위원으로부터 최하점을 받은 팀도 장미평가단에 의해 7위가 될 수도 있는 게 '키스 앤 크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실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실 그 누가 김병만이 3개월만에 이런 프로에 가까운 스케이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노력하는 손담비의 놀랄만한 기술에 대한 도전과, 타고난 선을 가진 크리스탈의 재능을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있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지점들이 '키스 앤 크라이'가 스포츠 중계 그 이상이 되는 이유다. 그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승승장구'가 승승장구하는 이유

'승승장구'(사진출처:KBS)

'승승장구'는 '강심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쟁구도를 갖고 있다. 초반 '강심장'은 강했다. 강호동과 이승기가 MC로 자리하고 있었고, 집단 토크쇼 형식으로 게스트들도 아이돌에서부터 중견 연예인들까지 다양했으며, 다루는 소재도 토크에서부터 개인기, 퍼포먼스까지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했다.

여기에 비해 '승승장구'는 소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MC들도 그다지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아니었고, 1인 토크쇼로서의 게스트 역시 늘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토크쇼의 형식도 그렇게 화려한 것은 없었다. 어찌 보면 버라이어티한 '승승장구'와는 정반대로 가기로 작정한 듯한 차분함이 이 토크쇼에는 있었다.

그래서 '승승장구'의 시청률 역시 소소할 수밖에 없었다. 평균적인 시청률이 10% 내외. 한때 20%를 넘기기도 했던 '강심장'과는 비교과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강심장'의 시청률이 점차 빠지기 시작했고, 반면 '승승장구'는 큰 폭의 시청률 상승은 없었지만 그래도 늘 어느 정도 수준의 시청률을 유지하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 진폭이 큰 '강심장'의 시청률에 비해 '승승장구'의 시청률이 높진 않아도 고른 이유는 고정 시청층들을 겨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승승장구'의 말 그대로의 승승장구가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먼저 '승승장구'에는 '강심장'에는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첫 번째는 방청객이다. 물론 '강심장'도 방청객이 있지만, '승승장구'처럼 프로그램 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승승장구'는 오프닝을 방청객 중 한 명이 열고, 중간중간에 게스트의 웃기고 울리는 이야기에 방청객의 반응이 리액션으로 따라붙는다.

무대와 방청객 사이의 간격도 굉장히 좁아서 마치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것은 '승승장구'만의 '사랑방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김정태의 몰래 온 손님으로 지성이 나온다고 하자, 방청객 중 한 사람이 "미쳤어. 얘는."하고 얘기한 것을 바로 이수근이 듣고 들려줄 정도로 그 간격은 좁고 그 리액션의 상호반응도 대단히 민감하다. 그만큼 관객과 함께 움직이는 인상을 주는 이 토크쇼는 마지막 장면에 모두 무대에 올라 찍는 사진처럼 화기애애하다.

또 한 가지 '승승장구'에만 있는 것이 이른바 '몰래 온 손님'으로 엮어지는 '절친'들의 이야기다. 이 부분은 현재 토크쇼들의 전쟁 속에서 '승승장구'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차별점이다. 게스트 혼자 나와서 자신의 삶 전체를 얘기하는 1인 토크쇼도 있고, 집단으로 나와서 하나씩 이야기를 하는 토크쇼도 있으며, 카테고리별로 나와서 자신의 개성을 뽐내는 토크쇼도 있지만, 절친이 나와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토크쇼는 별로 없다.

안내상이 28년 지기 우현과의 우정을 이야기 하고, 김대희와 김준호가 콤비를 얘기할 때 고춧가루처럼 박성호까 끼어 재미를 주며, 얼굴 없는 가수 김범수가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준 보컬 트레이터 박선주와 음악으로 서로를 들려주고, 김정태의 따뜻한 면모를 지성이 얘기할 때 '승승장구'는 그 훈훈함을 더한다.

물론 '승승장구'는 그 토크쇼의 형식상 대단히 높은 시청률을 가져오는 프로그램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승승장구'는 평일 밤 시간대에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토크쇼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승승장구'의 승승장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TOP밴드’, 경합보다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유

'톱밴드'(사진출처:KBS)

이 소름끼치는 실력의 소유자들은 프로일까, 아마추어일까. 적어도 ‘TOP밴드’라는 오디션에서는 이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또 중요해서도 안된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광필EP의 말대로 우리사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방송을 포함한 가요계가 밴드를 프로로 대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프로라면 밴드 활동을 통해 적어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이들을 의미한다. 이 놀라운 실력자들은 과연 그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을까. 아니 평가는 둘째 치고 일단 음악활동에만 전념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 있을까.

사실 게이트 플라워즈나 액시즈, 브로큰 발렌타인, TOXIC 같은 밴드는 전문가들도 놀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음반제작자들이 왜 저런 천재들의 음반을 내지 않고 있었는지” 의아 하다는 김종진의 조금은 격앙된 말이나, “감히 평가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그룹 딜라이트 DK의 발언, “한국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남궁연의 상찬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브로큰 발렌타인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밴드 페스티벌인 ‘아시안 비트’에서 대상과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한 바 있고, 게이트 플라워즈는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록 부문 2관왕을 했던 실력파다.

하지만 이들이 그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 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대폭 넓히고 그로 인해 생계문제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인 김경민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면서 밴드를 하고 있고 이들의 작업실은 여전히 리더의 집인 게 현실이다. 이 밴드의 변성환, 변지환 형제의 어머니가 하는 말은 그래서 아프다. “제가 정신적으로 가장 깊게 갈등을 했던 게 아시안 비트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난 다음이에요. 우승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음악으로 살아가는 길이 열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상 타온 걸로 끝나고 그 다음 길이 안보이니까. 그 때 정말 음악을 하게 한 것이 잘못인가...” 이것이 바로 작금의 밴드들의 현실이다.

따라서 준 프로에 가까운(어쩌면 프로의 실력을 넘어서는) 이들을 참여시킨 ‘TOP밴드’의 선택은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목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인재들을 좀 더 대중들 앞에 알리는 것에 있다면, 획일적인 기획사 중심의 음악들로 점철되어 그간 생계를 걱정하며 생업과 음악을 병행해온 이들에게 무대를 내주는 것은 어쩌면 밴드 서바이벌을 내세운 ‘TOP밴드’가 진정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TOP밴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서 있는 독특한 지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물론 형식적으로 최후의 ‘TOP밴드’를 향한 경합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그간 가려져 있던 숨은 고수들을 방송을 통해 재발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합이라는 대결구도를 통해 시청률을 끄집어내는 오디션 형식에서는 불리한 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경쟁 이외에도 오디션 형식의 또 다른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TOP밴드’의 특징 중 두드러지는 점으로, 세세하게 참가한 이들의 면면을 따라가는 다큐적인(?) 카메라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토리성을 잘 말해준다. 이것은 예능 PD가 아니라 교양 PD가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TOP밴드’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누가 밴드 음악에 순위를 매길 수 있으랴. 다만 저마다의 사연들을 갖고 그 사연들로 저마다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밴드들의 풍성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경쟁보다는 그 각각의 밴드들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 독특한 지점을 점하고 있는 ‘TOP밴드’가 끝이 났을 때, 우리는 어쩌면 그 최후의 밴드만이 아니라, 이 과정을 지나오며 발견한 수많은 밴드들을 기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예전 곤지암에 사는 화가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작업실로 쓰시는 집이었는데 넓은 마당과 집 구석구석 
선생님의 손때가 묻은 작품들이 투박하게 놓여져 있었죠.
TV가 없어서 우리는 서로 얼굴보고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죠.
선생님이 집 뒤켠에서 따온 호박을 듬성듬성 자르고
햄 하나를 통째로 꺼내서 역시 대충 썰어 넣고는
볶아서 안주로 내놓으셨습니다.
글쎄요... 맛으로 치면 식당처럼 맛깔나진 않았지만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여긴 농약도 없어. 그냥 먹어도 되지."
그 말 한 마디에 왠지 더 맛이 나더군요.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노래도 듣고
그러다 녹차도 마셨습니다.
차와 술은 함께 하면 안된다고들 했지만
그 때는 녹차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도 했죠.

그렇게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곤지암 소머리 국밥집에서 해장을 하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곤 했죠.
사실 뭐 특별한 게 있었던 것도 아닌데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저는 늘 그 집을 떠올립니다.
선생님...

아마 시간이 지나고 내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일 것입니다.
그 집은 아주 아름다운 집으로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언제든 가고 싶은 곳. 힘들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곳.
뭔가 늘 얻어갔던 곳. 마음 하나 편하게 놓고 사색에 잠길 수도 있었던 곳.

블로그를 하면서, 나는 늘 이 곳이 내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습니다.
촌스럽게도 '홈페이지' 세대였던 나는 그 홈페이지도 집으로 생각했죠.
그래서 가끔씩 누군가 허락도 받지 않고 저벅저벅 들어와 침을 뱉거나
심지어 용변(?)을 보고 가면 정말 화가 났습니다.
이 곳, 사적인 공간이 아니었던가요?
요즘은 꼭 그런 것 같지 않더군요.
이제 블로그가 마치 공적인 공간이나 되는 것처럼
당연스럽게 마구 글을 달기도 하니까요.

어떤 한 블로거가 자기 집에서 장사를 한 모양입니다.
뭐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죠.
세상의 많은 것들이 처음부터 상업화되진 않았을 겁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자본이 찾아오고,
그 때부터 그 사람 많은 곳은 사람살기 어려운 곳이 되버리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인 듯 합니다.

덕지 덕지 상품들의 흔적이 묻어난 곳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금 그 때 그 아름다운 집이 떠오릅니다.
선생님도 떠오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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