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부대', 김성주도 말문 막히게 만든 해병대수색대의 완주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잘못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승부를 내는 경기, 중계를 많이 했기 때문에 1등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중계를 많이 했고 이기는 승부만 했었는데, 군인들의 삶은, 군인들의 승부는 끝까지 하는 게 있네요."

 

채널A <강철부대>에서 탈락 팀이 결정되는 데스매치에서 해병대수색대가 끝까지 미션을 완수하고 깃발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난 후 김성주는 그렇게 말했다. 그간 미션 대결에서 그 흥미진진한 승패 과정을 보며 환호하던 스튜디오의 출연자들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그 모습에 모두가 말문이 막혀버렸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IBS(구명보트) 침투 작전 미션에서 패배한 해병대수색대, SDT(군사경찰특임대), 특전사팀에게 주어진 데스매치 미션은 보기에도 위압감을 주는 250kg의 타이어를 계속 뒤집어 300미터 거리에 있는 최종지점까지 먼저 도착하는 것이었다. 스튜디오에 가져온 타이어는 출연자들 6명이 함께 힘을 써도 들어올리기가 버거운 무게였다. 그걸 뒤집어가며 300미터를 간다는 건, 타이어 반경이 1미터라면 무려 300번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상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이 미션을 그러나 세 팀은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체력으로 어느 정도 전진해나갈 수 있었지만, 중간 지점에 채 도착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미 체력은 고갈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는 정신력과의 싸움이었다. 혼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타이어는 네 사람이 모두 힘을 동시에 써야 넘길 수 있었고, 그것은 팀 미션다운 협동을 요구했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미션처럼 보였지만, 마치 마라톤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힘겨워도 앞으로 조금씩 나가는 미션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선두에서 치고 나가는 특전사팀이 먼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 깃발을 흔들었고, 탈락 팀을 결정짓는 해병대수색대와 SDT의 대결에서 초반에는 밀리던 SDT가 이를 뒤집는 역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미션이 만든 드라마는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힘이 빠져 체력만으로는 더 이상 타이어를 들 수조차 없는 상황. SDT가 2등으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해병대수색대는 탈락이 확정됐다. 그 정도면 포기해도 될 법했지만, 이들의 미션 도전은 승패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모든 팀이 그렇지만 자신의 부대 마크를 붙이고 나선 대결이기 때문에 지더라도 포기하는 모습은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끝내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한 해병대수색대는 서로를 토닥이며 "잘했다",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 놓았다. 함께 미션 대결을 펼친 특전사팀과 SDT팀도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탈락하게 된 해병대수색대 팀은 그 결과에 대해 해병대 선후배들에게 미안해했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진 것일뿐 해병대는 강한 부대라고 강변했다.

 

<강철부대>가 데스매치를 통해 보여준 건, 김성주가 얘기했듯 이 프로그램이 여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중계와도 다른 면이 있다는 점이다. 승패와 당락 같은 결과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고 그 모습이 얼마나 명예로웠는가 하는 점이었다. 바로 이 지점은 <강철부대>라는 군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갖는 덕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채널A)

'나빌레라', 칠순의 알츠하이머 박인환도 꿈을 꾸는데

 

"날이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나 화창한데, 내가 왜, 도대체 왜, 엄마 아버지 나 어떡해요." 칠순의 어르신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짠하다. 그건 순간 이 어르신의 70년 인생이 가진 무게가, 저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목소리를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버티지 못할 정도로 힘겨울 때 우리는 모두 저도 모르게 어린아이가 되어 부모님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덕출(박인환)처럼.

 

칠순의 나이에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덕출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주책'이다. 나이 들어 '춤바람' 났다는 소문까지 들려온다. 발레연습실에서 채록(송강)이 그 아름다운 동작으로 새처럼 가볍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덕출은 순간 자신을 초라하게 느낀다. 늙고 볼품없는 자신이 꿈이라며 하고 있는 발레가 실로 '주책'은 아닐까 싶어진다. 덕출이 발레라는 꿈을 꾸는 일은 그래서 청춘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일이다.

 

게다가 덕출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그건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꿈을 향해 나가는 그에게는 더욱 더 큰 좌절감을 주는 판결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지워내고 살았던 삶이 그의 한 평생이었고, 이제야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알츠하이머라니. 그건 꿈이 아닌 자신이 지워지는 병이 아닌가. 이보다 큰 절망이 있을까.

 

하지만 덕출은 기승주(김태훈)가 데리고 간 김흥식 발레단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휠체어를 탄 무용수의 아름다운 발레를 보면서, 발레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 서툰 동작이지만 정성껏 배운 대로 자기 느낌을 담아 발레를 선보인 덕출은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건강한 몸이 아니어도 발레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발레가 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기승주가 덕출에게 말하는 '자기만의 발레'라는 표현은, 이 드라마가 단지 발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젊건 나이 들었건, 건강하건 병이 들었건, 누구나 어떤 꿈을 꾸는데 있어서 '자기만의 발레'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덕출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칠순의 알츠하이머 어르신도 '자기만의 발레'를 할 수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나빌레라>에서 덕출이 하는 말 한 마디, 동작 하나가 감동적인 건, 툭 던져져 나온 말 한 마디와 눈앞에서 보이는 어설픈 동작 하나에도 이 어르신의 칠순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이 '자기만의 발레'는 덕출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 박인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칠순의 이 연기자가 발레복을 입고 발레를 배우는 역할에 도전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나. 이제는 가족드라마의 평범한 아버지 역할로 자리하고 있는 노배우의 발레 연기라는 새로운 도전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무용수들 앞에서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발레 동작들을 하나하나 선보이는 이 노배우의 연기는 덕출이라는 인물의 도전을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전해준다. 굉장히 고난도의 점핑이나 회전 같은 게 전혀 없는, 작은 손 동작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발레를 표현할 수 있다니. 박인환의 연기에서는 그의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덕출이 발레 동작 하나에 자신의 삶을 담아내듯.(사진:tvN)

윤여정과 박인환, 우리 시대의 새로운 어르신상

 

미국배우조합상(SAG),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다음은 아카데미일까.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에 쏠린 국내외의 관심이 뜨겁다. 물론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그간 쌓아온 연기공력과 필모들이 모여 지금의 결과에 이른 것이지만, <미나리>가 순자라는 인물을 통해 끄집어낸 외신에서도 이른바 K할머니(halmoni)라 불리는 그 캐릭터의 힘을 빼고 이 놀라운 결과를 말하긴 어려울 게다.

 

순자는 <미나리>에서 어린 손주인 데이빗(앨런 킴)이 영화 속에서 말하듯,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다. 물론 이 할머니는 자식을 위해 그 먼 이역만리를 찾아가며 멸치에 고춧가루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언어도 환경도 낯선 데다 트레일러에서 살아가는 딸 가족의 모습에 눈물을 보이거나 한탄을 쏟아놓는 그런 할머니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삶이 "재밌다"고 말해주며 호호 웃는다.

 

굉장히 희생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할머니도 아니다. 순자는 자식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모습보다 데이빗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고, 한국의 전통적인 맛을 고집하기보다 데이빗과 함께 그들의 탄산음료의 맛에 빠져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이 작품의 리 아이작 정 감독이 순자라는 인물의 해석을 윤여정에게 맡기면서 나오게 된 독특한 할머니상이 아닐 수 없다.

 

이 K할머니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식만큼 자신을 챙기는 인물이다. 미나리가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까지 정화시키는 효능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순자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이역만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족들에게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 지혜를 알려주는 존재다. 이처럼 <미나리>의 순자라는 K할머니에 대한 찬사는 최근 들어 시대가 바라는 어르신상의 새로운 모습들이 투영된 결과다.

 

그런데 최근 K할머니에 비견되는 K할아버지의 등장이 눈에 띈다. 바로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덕출(박인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명대사인 이 할아버지 역시 기존 어르신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칠순의 나이에도 어려서 꿈꿨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포기했던 발레에 다시 도전하고, 무엇보다 채록(송강)이라는 날개가 꺾인 청춘 발레리노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준다.

 

특히 덕출이 젊은 꼰대에게 던지는 일침은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나 어른 아냐. 그깟 나이가 뭐 대수라고. 전요. 요즘 애들한테 해줄 말이 없어요. 미안해서요. 열심히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이 세상이 안 그래. 당신 같은 사람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으니까. 응원은 못해줄망정 밟지는 말아야지. 부끄러운 줄 알아요." 그는 사과할 줄 아는 어르신이다.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불통'의 대명사처럼 이미지화되어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어르신상을 덕출은 보여준다.

 

<미나리>의 순자와 <나빌레라>의 덕출은 우리 시대가 바라는 새로운 어르신상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살아온 삶의 지혜가 가득하지만, 그걸 후대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려하며 한 발 물러서 응원하고 지지하는 어르신상. 이런 어르신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아니 나아가 우리 시대 젊은 세대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어떤 위기들을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들이 아닐까.(사진:영화'미나리')

더 악랄하게.. '빈센조'·'모범택시' 다크히어로 전성시대

 

어떻게 하면 더 악랄하게 응징할 수 있을까. 최근 장르물 서사는 '선한 히어로'보다 '악랄한 히어로'의 전성시대다. 이들 다크히어로들은 인면수심의 악당들을 법이 아닌 그들의 방식으로 처단하고 응징한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의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가 그렇고,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의 무지개운수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그렇다. 도대체 무엇이 악당 잡는 악당들, 다크히어로 전성시대를 열었을까.

 

<빈센조>의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바벨그룹과 대적하는 방식은 마피아의 방식 그대로다. 그는 변호사이긴 하지만 법을 정의구현의 방법으로 쓰지도 않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홍유찬(유재명) 변호사가 힘없는 약자들을 위해 싸우다 살해되고, 그의 딸 홍차영(전여빈)이 그 뒤를 이어 바벨그룹과 싸워나가지만, 차츰 홍차영도 또 약자들(금가프라자 사람들이 그렇다)도 빈센조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납치하고, 협박하고, 고문하고 늘 갖고 다니는 지포라이터로 싹 다 불 질러 버린다. 급기야 어머니가 살해당하자 빈센조는 이성을 잃은 채 저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우리나라에서 결코 벌어지기 어려운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이고, 작품 역시 이것이 하나의 허구라는 걸 드러내는 과장된 블랙코미디로 그려간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 다크히어로의 강력한 응징에 열광한다. 그것이 비현실적인 것은 맞지만, 실제 현실이 '마피아 보다 더한' 저들만의 공고한 네트워크로 이뤄져, 법이 정의를 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관피아, 검피아 같은 비아냥 가득한 신조어들이 나오는 그 지점을 이 드라마는 정확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가 더해진 다크히어로를 탄생시킨다.

 

새로 시작한 <모범택시> 역시 이 <빈센조>의 구성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범'이라는 제목에 담긴 지칭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사실 이 드라마 속 모범택시를 운행하는 무지개운수는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조직이다. 김도기는 바로 그 사적복수를 실행하는 인물이고, 장성철 무지개운수 대표는 이 조직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김도기가 하는 처단의 방식 역시 빈센조가 하는 방식과 같다. 첫 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했던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을 폭행, 구금하며 강제노동을 일삼은 젓갈공장 사람들을 김도기는 그들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써서 응징한다. 생선이 담긴 대야에 머리를 쑤셔 넣어 물고문을 하고, 흠씬 두드려 맞은 후 커다란 통에 담겨져 어디론가 보내진다. 이런 악당들이 가는 곳은 무지개운수와 연결된 낙원신용정보 대모(차지연)가 운용하는 사설 감옥이다.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가상의 설정을 가져오고 악당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그들을 악랄하게 처단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두 드라마 모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있다. 그것은 다소 자극적인 처단방식과 블랙코미디가 섞여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 때문이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가진 자들은 바로 그 부와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러 더 큰 돈을 벌어가지만, 법은 이들 앞에 무력하다. 심지어 그 부정한 돈 아래 무릎 꿇는 모습까지 보인다. <빈센조>의 범법자들을 비호하는 법무법인 우상이 그렇고, <모범택시>에서 돈을 받고 도주한 피해자를 잡아다 다시 그 지옥 같은 공장에 돌려보내는 경찰이 그렇다.

 

선은 과연 악을 이길 수 있을까. 이 과장된 블랙코미디가 섞인 다크히어로에 대한 열광 이면에는 이런 의구심이 유령처럼 피어난다. 너무나 촘촘해지고 강력해진 데다 디테일해진 악을 이길 수 있는 건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방식뿐일지도 모른다는 참담한 현실 인식이 이들 열광에서 꿈틀대는 욕망의 실체다. 마피아를 때려잡는 마피아 변호사와 악당을 때려잡는 '모범' 택시기사가 등장한 이유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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