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복수극을 넘어서는 ‘개늑시’의 힘

MBC 수목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루고 있는 것은, 기억이란 부서지기 쉬운 장치에 기대 살아가는 가녀린 인간이 겪는 운명에 대한 것이다. 만일 ‘기억’이란 부분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그저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홍콩 액션 영화의 답습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단순한 복수극과 액션에만 있지 않다.

드라마가 주시하고 있는 것은 주먹을 날리고, 칼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액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취하는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갈등이다.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이 도대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끝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 인물들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자가당착 같은 것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진짜 재미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청방이란 조직 속에 언더커버로 잠입해 있다가 기억상실이 되어버린 이수현(이준기)이다.

드라마는 이수현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감으로써 그가 겪을 심적 고통을 예지하게 만든다. 기억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K로 한 행동들은 후에 다시 돌아올 기억 속에서는 악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먼저 친아버지처럼 자신을 길러준 강중호(이기영)의 죽음 앞에 무심했다는 것, 그로 인해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던 강민기(정경호)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이 사랑했던 서지우(남상미) 앞에 설 수 없다는 것들이 부메랑처럼 자신을 공격할 것이다. 무엇보다 원수 밑에서 충복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길러주고 돌봐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 자기 자신을 이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수현이란 인물이 기억이란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야누스적인 변신을 하는 과정 속에서 주변인물들 역시 모두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수현이 적인지 아군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빠지는 것이다. 강민기는 그와의 극한 대결 구도 속에서 그 상황을 가장 치열하게 드러낼 캐릭터다. 국정원 요원들의 상황은 대체로 강민기의 심적 갈등 상황을 고스란히 따라가게 된다.

이수현과 강민기 사이에 끼어 있는 서지우란 캐릭터는 이 상황을 더 복잡한 미궁 속에 빠뜨린다. 서지우는 마치 자기의 친아버지인 마오(최재성)와의 기억을 지워버리듯 살아왔지만 절대로 지워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즉 서지우 역시 이수현이 겪는 기억상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 있는 것. 그녀는 있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기억상실 속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민기나 이수현 둘 다 서지우의 친아버지인 마오와 섞일 수 없는 원수 사이라는 점은, 그녀로 인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게 되는 이수현과 강민기의 갈등 상황을 예견케 한다.

이처럼 복잡한 인물의 갈등관계 속에서 액션을 끄집어내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드라마에서는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액션 스릴러의 한 장을 열고 있다. 미드 ‘24’에서 잭 바우어가 세상에서 가장 길게 보낸 하루 동안 끝없이 반복되는 갈등과 선택의 상황을 보여줘 액션 스릴러의 강한 중독성의 세계 속으로 이끌었듯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빠진 인물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24’는 오리무중의 상황 속에 빠진 잭 바우어에 직접 시청자들이 감정이입되어 똑같은 갈등 상황을 경험하는 짜릿함을 주는 반면,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수현이 처한 그 상황 자체를 관조적으로 이해하면서 후에 벌어질 파고를 예상하는 재미를 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복잡한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피하고, 상황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드라마의 구조는 좀더 쉽게 따라갈 수 있는 형태를 가지며, 동시에 캐릭터들의 변화되는 감정선이 극대화된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러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한국형(?) 액션 스릴러의 시도는 우리네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아떨어진 점이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이 흥미진진함을 엮어내는 힘은 ‘태극기 휘날리며’, ‘야수’의 한지훈 작가와 유용재라는 신인작가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여기에 혼신을 불태우는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들은 스토리 속 캐릭터의 결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이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야누스적인 감정 선의 급격한 변화를 그려내야 하는 난점을 갖고 있지만, 성지루, 김갑수, 이기영, 최재성 같은 중견배우들이 무게 있는 존재감으로 안정감을 살리면서 그 위에 이준기를 비롯한 정경호, 남상미의 광적인 연기가 덧붙여지면서 폭발력을 얻고 있다.

제목에 걸맞는 갈등과 대결구도로 가고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각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갈등의 시간을 맞고 있다.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군상들을 보면서 깊은 공감대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생을 살아가는 시간 역시 저들이 겪는 오리무중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이라는 가녀린 힘에 덧대 살아가는, 그래서 기억, 추억, 시간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들이 한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이라는 상황 말이다.

청춘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차별점

“오늘 완전히 드라마 찍었어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이 최한결(공유)에게 웃으며 건네는 말이다. 그런데 상황을 보면 그게 웃을만한 일은 아니다.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할머니가 돈 때문이냐며 헤어질 것을 강요하는 장면을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고은찬의 말처럼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치다. 그런데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주인공들은 보통의 드라마가 하듯 반응하지 않는다. “촌스럽게 왜 그래?” 할머니의 반응에 한결이 이렇게 말하듯, 그런 반응은 적어도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촌스러운’ 것이다.

“우리 결혼할까? 물론 결혼 안 하고 그냥 살 수도 있지만 아이가 3일은 우리 집, 3일은 당신 집 이렇게 사는 건 이상하잖아.” 최한성(이선균)이 아기가 생긴 한유주(채정안)에게 하는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기가 생긴 그들이지만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적어도 그들에게 결혼이란 껍데기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보여주는 연애와 사랑의 방식은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아왔던 그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이미 고은찬이 남장여자로 등장하고 그녀가 “남자라고 해도 너를 사랑하겠다”고 최한결이 얘기하는 부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들의 사랑법에는 관계 자체를 구속하는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어떠한 틀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그 사랑법을 정의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가는 대로’.

이것은 이 드라마와 여타의 드라마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별점이다. 청춘 멜로 드라마든 트렌디 드라마든 거기 등장하는 남녀들의 사랑과 연애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들이 많다. 그것은 때론 나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돈이 되기도 하며 좀 구질구질한 것이지만 심지어 출신성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현실이기 때문에 아무리 세련된 드라마라 해도 피해가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캐릭터가 가진 설정만으로 보면 여타의 드라마들이 갖고 있던 상투성을 거의 다 갖추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 사장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의 로맨스, 아들이 가진 숨겨진 과거, 삼각 사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물구도 모두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왜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그것은 이 트렌디한 설정을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장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이란 설정이 틀에 박힌 신데렐라 이야기로 가지 않는 것은 이들의 사랑 속에 돈에 대한 냄새가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한결이 외제차를 끌고 다녀도 그건 그냥 그런 것일 뿐, 외제차가 가진 부를 상징하진 않는다. 그것은 최한결과 최한성의 집이나 그들이 누리는 생활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과시라는 측면이 없고 그냥 좋은 것이라는 솔직함만 존재한다.

최한결의 숨겨진 과거도 이 드라마에서는 특유의 상큼함으로 처리된다. 친아버지를 만났지만 그는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끝내 친아버지에게 밝히지 않는다. 굳이 그걸 밝히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좋은 감정으로 헤어지고 또 만남을 기약하면 그뿐이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길러준 부모와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기존 드라마가 관행처럼 사용한 관계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전혀 다른 쿨함을 확보한다.

네 캐릭터들이 엮어내는 사각관계 역시 멜로 드라마들이 상투적으로 써왔던 질투와 질시로 이어지는 대결구도를 벗어난다. 그들에게 사랑은 진실된 감정이고 그 감정의 흐름에 정직한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 되지 않는다. 최한성의 순간적인 감정의 흔들림은 결과적으로 자신 속에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한유주에 대한 사랑을 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모든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중심에는 ‘마음이 말하는 것에 솔직한 젊은 감성’ 이 있다. 거기에는 트렌디 드라마가 갖는 돈도 지위도 직업도 쿨하게 넘어서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그들의 사랑법이 환타지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더 계산적이기 때문일까. 좋아하면 좋아한다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며,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는 이들의 ‘마음가는 대로의 사랑법’은 그래서 문득 문득 잊었던 청춘의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무엇도 감히 사랑과 연애를 구속하지 못했던 그 순수했던 때 말이다.

달라지는 아줌마 드라마의 패턴

‘아줌마 드라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기업 총수 아들과 그 아들에 낙점을 받은 신데렐라?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며느리?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자식사랑으로 치부하면 다 되는 모성애? 그것도 아니면 억척 아줌마의 눈물겨운 홀로서기? 물론 아줌마들이 트렌디한 가족드라마에 시선을 빼앗기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막연히 상정하는 ‘아줌마 드라마’라는 범주가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3,40대 아줌마들을 중심으로 시청하는 드라마의 패턴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과거 ‘아줌마 드라마’로 통칭되던 개념은 재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른바 ‘이모 드라마’의 출연이다.

아줌마요? 이모라 불러주세요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청춘을 다루는 드라마. 등장인물의 연령대는 20대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를 가장 많이 본 시청자 층의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 10대나 20대가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AGB 닐슨의 타깃별 시청점유율에 따르면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 중 30대 28.2%, 40대 19.1%로, 3,40대 점유율이 거의 50%에 이른다. 반면 10대(14.8%), 20대(18.5%)는 전체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30대 여성이 19.4%로 가장 많이 나타난 걸 보면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30대 중년 여성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라마 성공의 주 동력이 이른바 이모 팬들에게 있었다는 말이다.

7월 둘째 주 국립국어원 신어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모 팬’이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10대∼20대 청춘 스타들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중년 여성. 팬들이 보통 연예인의 이모뻘이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젊은 스타들에 열광하는 팬층이 10대였다면 이제는 그 저변이 중년층으로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팬 미팅 자리나 각종 인터넷 팬클럽에서 이모 팬들의 활약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주지훈 같은 젊은 스타의 팬 미팅 자리에서 ‘오빠’ 대신 ‘지훈아’를 외치는 이들은, 특유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10대 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뒷심이 되고 있다. 아예 가입조건에 이준기씨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는 이준기의 팬클럽 ‘준스레이디’는 돈을 모아 이준기 모교에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성공, 이모들의 마음에 달렸다
중요한 것은 이들 이모 팬들이 미치는 드라마 성공에 대한 영향력이다. 준스레이디의 한 이모 팬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성공이 그 드라마가 중년의 마음 속에 감춰진 순정만화 필을 건드렸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순정만화에서 막 나온 듯한 젊고 잘 생긴 미소년들이 등장해 예쁘게 사랑하는 모습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멋진 장면에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드라마를 볼 정도라는 이모 팬들은, 흔히 ‘아줌마 드라마 = 여성드라마’라는 공식도 깨고 있다.

AGB 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전문직 장르 드라마를 표방하며 나온 범죄수사물 ‘히트’의 주 시청자층은 전체 시청자 중 3,40대 여성층이 무려 30%(30대 19%, 40대 12%)를 웃돈다. 이어 나왔던 ‘에어시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전체 중 3,40대 여성이 25%(30대 13%, 40대 12%)다. 최근 시작해서 호평을 받고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 은 첫 방송에서 3,40대 여성층이 29%(30대 16%, 40대 13%)를 차지했다. 흔히 오인되고 있는 멜로 드라마 위주의 시청패턴을 할 것이라 여겨지는 중년 여성층들은 이제 액션과 서스펜스를 다루는 드라마에도 열광한다는 것이다.

뜨는 이모 드라마의 조건
최근 들어 드라마 여 주인공들의 연령대가 30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후부터 드라마에서 주목해온 30대 여성 시청층에 대한 희구는 이제 그 계보를 만들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김삼순(김선아)에서 ‘여우야 뭐하니’의 고병희(고현정), 그리고 현재 방영되는 ‘9회말 2아웃’의 홍난희(수애)와 ‘칼잡이 오수정’의 오수정(엄정화)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연령대가 비슷하다 해서 ‘커피 프린스 1호점’, ‘개와 늑대의 시간’ 같이 소위 뜨고 있는 드라마와, ‘9회말 2아웃’, ‘칼잡이 오수정’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은 ‘9회말 2아웃’, ‘칼잡이 오수정’이 어느 정도의 30대 감성을 가져가긴 하지만 여전히 결혼에 목매는 과거 아줌마 드라마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들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여주인공들의 일에 대한 부분이다. 결혼에 목매는 여성을 그리기 때문에 홍난희나 오수정의 직업을 통한 자아성취 같은 부분이 상당부분 사라지면서 현대여성들의 또 다른 욕망, 즉 일에 대한 자아성취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다.

떴거나 뜨고 있는 이모 드라마의 조건 속에는 반드시 여주인공(혹은 남성이라도)이 분명한 자기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이 그랬고, ‘여우야 뭐하니’의 고병희가 그랬으며,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미소년들과 고은찬(윤은혜)이 그랬고,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수현(이준기), 강민기(정경호), 서지우(남상미) 심지어는 마오(최재성)가 그렇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제 모든 드라마들은 멜로나 장르를 떠나 전문직으로 갈 것이 요구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모 팬들이 드라마에 요구하는 것
이모 팬들은 그저 갑자기 등장한 외계인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일찍이 팬 문화를 만들었던 세대들이 이제 중년이 된 것뿐이다. 그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젊음에 대한 향수를 가지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젊으며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표현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있는 홍대 앞을 기웃거리고, 고생하는 스텝들과 연기자들에게 줄 도시락을 싸들고 ‘개와 늑대의 시간’의 촬영장을 찾아갈 준비를 한다.

이들은 꾸준히 자신들의 감성에 맞는 드라마를 희구해왔다. 정말 느낌이 좋은 연기자, 느낌이 좋은 드라마를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대체 욕구로 외국 드라마를 기웃거렸다. 미드가 주로 남성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면, 일드는 정확히 이모 팬들의 시선을 잡았다. 바삭하게 잘 구워낸 듯한 쿠키 같은 일드를 보면서, 신파에 트렌디에 푹 젖어 습기를 먹어버린 우리네 드라마란 쿠키는 언제쯤 달라질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제 아줌마 드라마라고 다 같은 것으로 분류하지 말자. 든든한 이모들이 있으니까.

기대 이상 전문직 장르 드라마, ‘개늑시’

이제 막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오랜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미드 수준의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그저 장르에 충실한 드라마였을 뿐이다. 그것은 적어도 소재가 획일화된 우리네 드라마 풍토에서 장르 드라마가 가진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가능성을 보인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그러나 ‘히트’와 ‘에어시티’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물론 형사라는 직업과 공항이라는 공간만 가지고도 이들 드라마는 가치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장르에 충실하지 못한 단점이 있었다.

액션이든 미스테리든 휴먼드라마든 장르는 그것을 선택 혹은 표방하는 순간, 거기에 충실할 것이 요구된다.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에서 갑작스런 멜로가 섞이고, 공항이라는 긴박한 공간 속에서 국정원 요원이 뛰어다니는 상황에 멜로와 휴먼드라마가 틈입하는 건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히트’와 ‘에어시티’가 훌륭한 캐릭터와 좋은 소재를 갖고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 이유다.

이런 면에서 보면 MBC 수목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은 기대 이상의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먼저 기본적으로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액션과 스릴러라는 장르가 갖춰야 하는 요건들을 제대로 구비하고 있다. 먼저 이수현(이준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처와 그로 인한 갈증이 살해당한 부모에 대한 복수심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이 설정은 그러나 이수현 눈앞에서 벌어진 어머니의 살해장면이 등장하면서 강력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 복수심을 속에 품고 태국과 한국을 넘나드는 액션극이 장르적으로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은 적절한 타이밍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때문이다. 태국의 어린 시절에서 지우(남상미)와 추억을 만들 즈음, 갑자기 등장하는 어머니의 살해장면은 상황을 급박하게 만들어버린다. 한국에 들어와 강중호(이기영)에 의해 자라나 국정원 요원이 되는 것까지 아픔을 잊고 평탄한 삶을 살아갈 것 같은 장면들이 연출될 즈음, 갑자기 이수현은 어머니를 살해한 마오(최재성)를 보고 다시금 복수의 불길에 휩싸인다. 이후에도 이수현의 감정은 적절한 간격으로 완급조절되면서 시청자를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즐거움에 빠뜨린다.

이렇듯 이 드라마가 가진 강점은 액션, 서스펜스가 가진 장르적 호흡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중심이 되는 것은 마오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적과 거기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약하기만 한 이수현의 성장이다. 이 대척 구도는 사실상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시청자들에게 더 흥분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이 드라마가 활용한 멜로는 기존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활용한 멜로의 방식보다 효과적이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수현이 죽이려는 마오는 그가 사랑하는 지우의 아버지이기에, 그들의 멜로가 강해질수록 이수현은 더 깊은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바로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이수현이 처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복수의 일념으로 마오의 심복을 하게 된 이수현이 기억상실로 그 복수심을 잊어버리는 상황은 이 드라마가 가진 최대의 극적 장치가 아닐 수 없다. 기억 하나를 중심으로 원수와 심복의 갈림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수현이 서 있는 지점에서 마오에 대한 복수를 하게되는 곳까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주는 재미의 핵심이다.

그렇게 장르에 충실하면서 얻어낸 재미는 이수현이 가진 기억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의미까지 확보한다. 복수심이나 충성심 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기억이 만들어내는 정체성에서 비롯된다는 것. 인간은 그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을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는 얘기해준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무엇보다도 양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마오와 이수현을 연기하는 최재성과 이준기의 광적인 연기는 이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장르적인 충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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