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훌륭', 반려견과 보호자 소통의 물꼬 틔우는 강형욱의 통역법

 

어째서 강형욱이 하는 코칭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느껴질까. KBS <개는 훌륭하다>가 매회 소개하는 고민견의 상황을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강형욱의 솔루션 과정 중에는 때때로 보호자를 울컥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강형욱이 그간 보호자가 고민했던 반려견의 어떤 행동 속에 담긴 진짜 속내를 읽어줌으로써 단지 그것이 그 반려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려줄 때다. 하지만 강형욱의 코칭에는 반려견에 대한 공감만 있는 게 아니다. 어째서 보호자가 반려견에게 그런 보호를 했는가에 대한 공감까지 전할 때 보호자도 시청자에게도 전해지는 먹먹함이 있다.

 

이번에 소개된 고민견은 지난 5월 새로 입양한 베들링턴 테리어종의 4살 바비였다. 본래 파양된 경험이 있는 14살 쿠키와 12살 슈를 입양해 10여 년을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함께 지냈다는 보호자는 새로 바비를 입양하면서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노견들이라 쿠키는 노화와 치매가 온 상태였고, 슈도 눈에 약간의 이상이 있었지만 그래도 평화로웠다는 것. 하지만 바비가 온 후 매번 일으키는 마찰과 갈등 때문에 운신이 힘든 쿠키는 옷방으로 들어가 피하기 일쑤였고, 슈는 보호자가 안을 때 공격하려는 바비 때문에 늘 긴장하는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다견 가정이 겪는 전형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이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를 강형욱은 바비의 보호자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집착이 심해지면 지배가 된다"고 말한 강형욱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관심을 집중시키려 하는 바비의 행동을 보호자가 제지해야 이 불안불안한 상황이 끝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이미 집착이 지배가 되어 공격성까지 강해지고 있는 바비였다. 심지어 아이를 공격해 상처를 입힌 적도 있었다는 것.

 

강형욱의 코칭은 바비의 마음과 동시에 슈의 마음을 다 읽어내는 공감에서부터 시작했다. 노견이라 보호자가 슈에게 애정을 쏟는 걸 바비는 질투할 수밖에 없었고 그걸 빼앗으려 했다는 것. 결국 바비의 애정과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한 행동들은 슈를 점점 불안하게 만들었고, 보호자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있게 만들었다.

 

솔루션은 의외로 간단해 보였다. 집의 중심이 되어 있는 소파에 바비가 함부로 올라오지 못하게 보호자가 제지하는 것. 그것을 통해 보호자의 반려견에 대한 통제를 조금씩 느끼게 만든 후, 이번에는 슈를 쓰다듬을 때 공격하려는 바비를 제지함으로써 그 행동을 교정했다. 특히 바비가 공격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보호자가 먼저 나서서 제지하는 모습에 대해 강형욱은 슈가 그 모습에서 느끼는 마음을 읽어주었다. "지금 그 모습은 슈가 감동했을 거예요." 스트레스를 받아온 상황을 보호자가 미리 막아준 것이 슈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전해준 것.

 

하지만 강형욱의 공감은 반려견의 속내를 읽어주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보호자가 겪었을 스트레스 또한 그는 알아주었다. "보호자님도 몇 개월 동안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겁이라는 게 생겼을 거예요. 그 겁은 보호자님께서 겁쟁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내 반려견들끼리 싸워서 누구 하나가 크게 다치는 건 정말 절망스러운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런 걸 몇 번 경험하다 보면 보통 보호자님들이 그냥 아파요 마음이. 근데 어쩌겠어. 내가 보호자인 걸."

 

<개는 훌륭하다>에서 강형욱의 솔루션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그가 보호자와 반려견 사이에서 일종의 통역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반려견들의 이상행동에 담긴 속내를 읽어내고, 그런 행동이 왜 생겼는가를 공감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보호자들이 그 행동을 야기한 이유도 공감하려 한다. 그 공감을 통해서만이 보호자의 다짐과 의지를 갖게 해주고 그런 변화가 반려견의 이상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준다.

 

그래서 <개는 훌륭하다>에서 강형욱이 들어가 몇 시간 만에 반려견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건 그저 기적 같은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보호자와 반려견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생겨난 오해가 깔려 있고, 그것을 풀어내고 그 관계를 재정립시키려는 노력이 만든 결과다. 특히 보호자와 반려견 사이에서 엇나간 소통의 물꼬를 틔워주는 그 과정이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는 건 바로 이런 특별한 강형욱의 공감 코칭 때문이 아닐까.(사진:KBS)

'싱어게인', 다시 노래한다는 의미가 이토록 큰 감동일 줄이야

 

"사고가 있고... 활동을 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빈자리가 너무 커서... 무대에서 웃어도 되나 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돼서.. 기쁨과 행복을 드리려고 하는데 안쓰럽게 봐주시니까.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많았습니다."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나온 11호 가수는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줄에 "이제는 웃고 싶다"는 소망을 적었다. 그는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사고의 기억을 남아 있는 레이디스 코드의 멤버 소정이다. 교통사고로 안타깝게도 리세와 은비 둘을 먼저 보낸 레이디스 코드는 그 후로도 남은 세 멤버가 계속 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소정이 말한 것처럼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연민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그들을 무대 위에서조차 웃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소정이 이날 부른 곡은 임재범의 '비상'.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더 이상 그 무엇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 거야. 힘겨웠던 내 방황은-"이라는 가사가 다시 들렸다. 원곡자인 임재범이 부를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들이 레이디스 코드의 소정이 부르는 노래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났다. 그것은 소정이 겪은 아픔과 상처 그럼에도 이를 깨치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더해져서 생겨난 새로운 의미였다.

 

<싱어게인>이 '다시 노래한다'는 그 의미도 소정의 노래를 통해 새롭게 느껴졌다. 심사위원 김종진은 그 노래를 듣고는 이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를 인정했다. "참 음악이라는 게 뭔지 11호 가수님 노래하는 걸 본 것만으로도 상처받았던 것들이 싹 치료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프로그램 저런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확 드네."

 

돌이켜보면 <싱어게인>에 나온 가수들의 노래가 그 어떤 무대보다 더 깊은 몰입감과 감흥을 준 것이 바로 그 '다시 노래하는' 가수들의 마음이 달라서였다. 슈가맨조로 나와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를 부른 33호 가수 유미의 노래를 듣고 김이나 심사위원은 최근 그 어떤 무대보다 가사가 완전 하나하나의 이야기로 들렸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 무대에서 그의 노래가 그 어떤 무대보다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얘기였다.

 

12년 정도를 코러스로 활동해왔다는 40호 가수는 <슈퍼스타K7>에 나왔던 천단비였다. 그는 많은 무대에 섰지만 본인의 무대는 아니었다는 그는 이선희 무대의 코러스를 하기도 했었다고 했다. 그런 진심이 그가 부르는 앤의 '기억만으로도'에 그대로 묻어났다. 놀랍게도 '올 어게인'을 받은 그는 이선희가 말해준 "오늘은 충분히 무대 전면에 드러난 가수였다"는 평에 감동했다.

 

음악을 하기 위해 일용직도 발레파킹도 해봤다는 재야의 고수조 10호 가수가 담담하게 불러 더욱 큰 감동을 준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나, 헤비메탈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꾹꾹 눌러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29호 가수가 부른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가 더욱 감동적인 건, 이들의 '다시 노래한다'는 그 의미가 무대에 남다른 진정성과 몰입감을 만들어줬기 때문이었다.

 

<싱어게인>은 이미 앨범을 하나라도 냈지만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가수들의 오디션이다. 그래서일까. 세상에는 남다른 노력을 오래도록 해왔고 그래서 실력은 갖췄지만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 무명으로 살아가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이 애써 무대를 찾아 다시 노래하는 현장이다. 어찌 감흥이 새롭지 않을까.

 

레이디스 코드 소정의 노래와 무대에 서서도 웃을 수 없다는 그 아픈 사연을 다 들은 이선희 심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감히 이 얘기를 합니다. 웃어도 돼요. 마음껏 웃어도 되고 노래 많이 불렀으면 합니다." 그 말은 마치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채 마음껏 웃지도 노래하지도 못하는 많은 무명가수들에게 전하는 덕담처럼 들렸다. 다시 웃어도 된다. 다시 노래해도 된다고.(사진:JTBC)

'경이로운 소문', 악귀·슈퍼히어로에 학원물이 더해지니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에 빙의된 악귀들과 싸우는 슈퍼히어로. OCN <경이로운 소문>의 언니네 국수집에서 국수를 파는 추매옥(염혜란), 가모탁(유준상) 그리고 도하나(김세정)는 평범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악귀가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가게 문을 닫고 출동하는 악귀 잡는 카운터팀(악귀를 센다는 의미)이다. 어느 날 나타난 3단계 악귀에게 철중(성지루)이 사망하자 그 몸에 있던 저승 파트너 위겐이 빠져나와 소문(조병규)의 몸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소문은 언니네 국수집의 숨은 슈퍼히어로들인 카운터팀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나 <퇴마록> 같은 악귀 잡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이들을 담는 장르적 틀은 훨씬 일상 속의 고수가 등장하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가깝다.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의 육체적 능력을 가진 이들은 저마다 가진 탁월한 재능들이 조금씩 다르다. 추매옥은 치유의 능력을 가졌고, 가모탁은 괴력을 가졌으며, 도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과거까지 읽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이들이 악귀를 잡는 액션은 무협영화의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스타일로 표현된다.

 

아직까지 어떤 그만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경이로운'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탁월함을 드러내는 소문은 위겐이 들어오기 전, 부모를 사고로 잃고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데다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이다. 바로 이 지점은 이 드라마가 '학원물'의 색깔을 더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부분이다.

 

상습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웅민(김은수)과 절친인 주연(이지원)의 친구로 역시 학교 일진들의 괴롭힘을 당하게 된 소문이 능력을 갖게 되고 그래서 이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장면은 이 악귀 잡는 슈퍼히어로 판타지가 현실감을 끌어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교 폭력을 일삼는 일진인 혁우(정원창)는 중진시 시장 아들이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 중 한 명 역시 국회의원 아들이다. 이들은 그런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들을 괴롭히지만, 학교나 경찰도 이들을 제지하지 못한다.

 

악귀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세워두면서, 그들이 현실 세계의 '악한 숙주'를 찾아들어간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비현실성에 현실적인 상황을 이어놓는다. "이미 살생 경험이 있거나 살인 충동과 욕망이 강한 자"가 바로 그 악한 숙주라는 것. 즉 드라마는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거나 상습적인 가정 폭력을 일삼는 그런 이들에게 악귀가 달라붙는다는 설정을 더하고, 이를 막는 존재로서의 카운터들의 활약을 그려낸다. 그래서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들은 우리네 현실에 담겨진 범죄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오게 만든다.

 

<경이로운 소문>이 그저 어디선가 봐왔던 슈퍼히어로물의 퓨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저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들을 괴롭히지만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하거나, 아이나 장애를 가진 약자들이 폭력에 더더욱 내몰리는 현실이 여기에는 투영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융의 책임자이자 소문의 저승 파트너인 위겐은, 소문에게 그 곳의 삶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아.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다만 선한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악한 사람들은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차이 정도."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소문은 말한다. 그것이 "엄청난 차이"라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선한 사람이 보상받고 악한 사람이 대가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는 이 단순하지만 명쾌한 현실인식이 들어있어 이 드라마의 실감이 달라지고 있다.(사진:OCN)

'며느라기'가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드러내는 방식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결혼하면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카카오TV <며느라기> 2회의 엔딩에서 무구영(권율)은 명절에 민사린(박하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렇게 생각한다. 무구영은 그날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다들 너무했다"며 날린 팩폭 돌직구에 아버지의 분노와 엄마의 눈물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생각한다. 자신이 결혼할 사린이는 착한 며느리가 되어 엄마를 도울 거라고.

 

하지만 무구영의 생각은 당장 눈물을 흘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분노로 엉망이 된 명절 분위기가 며느리의 '이의 제기'에서 비롯됐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며느라기>는 시월드의 모든 노동이 며느리들(엄마도 며느리다)에게만 부여되고, 그것도 며느리(엄마)가 나서서 며느리에게 강요되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조리한 명절의 풍경을 정혜린의 목소리를 통해 팩폭한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씨와 미영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하는 정혜린에게 작은 아버지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시어머니 혼자 일하라고?" 되묻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명절 조상을 모시는 일에 있어서 온 노동을 며느리가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나서서 함께 그 노동을 분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당연한 걸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며느리가 괘씸할 뿐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건 그런 강요를 오래도록 당연한 듯 받아온 시어머니가 이제 저 스스로 나서서 그걸 며느리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고부갈등이나 시월드에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졌다. 하지만 극화되어 악역으로 그려지는 시어머니의 극단적인 모습과, 그에 대항해 당장의 사이다만을 보여주던 며느리의 이야기는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라기보다는 '저런 집'에서나 벌어지는 일들로 치부하게 만든 면이 있다. 그래서 그런 시월드를 드라마로 보는 어르신들은 줄곧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요즘 세상에 저런 시부모가 어디 있어.

 

이것은 너무나 극적으로 그려져 그것이 우리네 모습이라는 걸 은폐하기도 하던 시월드 소재 드라마들의 한계였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무구영네 집안사람들은 그렇게 괴물화된 인물들이 아니다. 나름 예의도 차리고, 며느리 생각해 상냥한 말도 건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그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과 행동은 민사린을 이상하게도 힘겹게 만든다. 시어머니 생일상을 혼자 차려내고 시댁 식구들이 저들끼리 대화하고 후식을 먹을 때 혼자 당연한 듯 설거지를 하고 있는 민사린 역시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며느리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다. 그래서 민사린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하지만 이제 그 부당함을 얘기함으로써 '며느라기'에서 벗어난 정혜린은 그 평온해 보이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팩트 그대로 이야기함으로써 고발한다.

 

모두가 귀성길에 올라 도심에 차들이 많이 사라진 명절에 민사린은 무구영을 기다린다. 결혼 전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장면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달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 장면으로 시작한 드라마가 그 날 무구영네 집에서 벌어진 정혜린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의 팩폭 풍경을 거친 후 엔딩으로 이어지자 달달함은 사라지고 대신 씁쓸함이 더해진다. '착한 며느리' 운운하는 무구영의 생각은 이제 민사린이 겪을 시월드의 '며느라기'로 이어질 거라는 기시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20분 남짓의 드라마를 다 보고나면 당연해 보였던 많은 것들이 사실 부당한 것들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엄마는 왜 그 부당함을 당연한 일로 체화시키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째서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나서서 강요하고 있을까. 엄마가 해온 평생의 독박노동과 그 고생을 절감하는 아들이라면, 착한 며느리를 들여 엄마를 도와줄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 노동 자체가 부당했다는 걸 말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엄마가 했던 그 차별적인 대우와 노동을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대신 맡아 똑같이 하는 걸 당연시 할 게 아니라.(사진: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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