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동그란 세상 (180)
주간 정덕현
‘옷소매’의 열광에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남다른 시선이 있다 “이렇게나 저하를 연모하면서 후궁 되기는 왜 싫은 건데? 제조상궁마마님의 힘이 아니더라도 넌 후궁이 될 수 있어. 그저 저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기만 하면.” 영조의 분노를 사 위기에 처한 이산(이준호)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성덕임(이세영)에게 서상궁(장혜진)은 그런 말로 위로를 건넨다. 사실이다. 이미 이산은 성덕임을 마음에 두고 있고, 그 사실은 성덕임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서상궁의 말에 성덕임이 오히려 던지는 질문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왜요? 왜 연모하면 후궁이 돼야 해요? 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후궁이 돼서 무슨 좋은 꼴을 본다고. 새로운 여인들이 날마다 줄줄이 굴비처럼 들어올 걸요? 모두가 내로라하는 사대..
‘그 해 우리는’, 최우식, 김다미만 모르는 미숙한 사랑이어서 더 설레는 “너 때문에 망친 게 한두 번이 아니지. 내 인생도 망쳤지. 엉망으로.(아 이게 아닌데..)” 최웅(최우식)은 과거 학창시절 국연수(김다미)가 툭 쳐서 망친 그림 이야기를 하다 저도 모르게 ‘인생 운운’하는 이야기까지 뱉어버린다. 버렸다고 했던 그 그림을 최웅은 여전히 갖고 있었다. 당시 미안해서 국연수가 화이트로 지워뒀던 그 흔적이 여전히 그림에는 남아있다. SBS 월화드라마 의 이 장면은 최웅과 국연수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다큐를 함께 찍게 되어 인연이 됐던 그 해 그들의 관계는, 마치 최웅이 그리는 그림 속에 갑자기 툭 하고 들어온 국연수의 존재감처럼 분명한 선을 남겼고 그 선 같은 과거 관계의 잔상은 10년이 지나 다시 만..
개그맨 오지헌, ‘유퀴즈’가 끄집어낸 세상 따뜻한 사람냄새 “등반을 하다 보면 셰르파들이 필요하잖아요. 셰르파들이랑 같이 등반을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급하고, 잘하니까 3일 정도 갈 길을 하루 만에 간 거죠. 근데 셰르파들이 인제 나 더 이상 못가겠다고 주저앉은 거에요. 왜 못가냐. 이대로 가면 히말라야 등반할 수 있는데. 셰르파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대요. 내가 몸은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 마음은 못 따라왔다. 제가 그런 상태였던 거 같아요.” tvN ‘DNA편’에 젊어서 국사 1타 강사로 유명했던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개그맨 오지헌은 20대 때의 자신의 감정을 셰르파의 이야기로 전해줬다. 부모가 이혼한 후 지냈던 아버지와도 서로 표현이 어긋나 각자 살아가게 된 그는 재수를 하고 대학을 간 후 ..
‘옷소매’, 이준호와 이세영이 그린 이산 그 강력한 힘의 원천 어쩐지 심상찮다. 벌써부터 MBC드라마의 부활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MBC 금토드라마 에 쏟아지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은 시청률 수치로도 드러난다. 첫 회 5.7%(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은 매회 상승해 6회 만에 9.4%를 찍었다. 이 기세대로라면 두 자릿수는 당연히 돌파할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그간 부진의 늪에 빠졌던 MBC드라마 브랜드까지 일으켜 세울 조짐이다. 물론 이라는 사극이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MBC가 사극으로 만들었던 의 이야기다. 워낙 영정조 시대에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이준호)과 그의 후궁이었던 의빈 성씨의 사랑이야기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다. 끝없는 신변의 위협을 받으며 말 그대로 ‘궁에서 살아남기..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 디스토피아에 담아낸 것 인간은 왜 지옥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만들어냈을까. 물론 이런 질문은 논쟁적이다. 지옥의 실재를 믿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의심이 그 질문 안에 담겨 있어서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 논쟁적이다. 미리 말해두면 이 드라마에 흔히 불길이 치솟는 아비규환으로 그려지곤 하는 그런 진짜 지옥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지옥의 사자’라 불리는 괴 존재들이 등장한다. 갑자기 유령처럼 어떤 차원을 뛰어넘어 나타난 이들은 사전에 ‘지옥행’을 ‘고지’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다짜고짜 폭력을 가해 피와 살점이 튀는 처참한 광경을 마치 보여주려 작정한 것처럼 ‘시연’한 후, 손을 모아 만들어내는 빛 속에서 순식간에 뼈의 형상 정..
“니가 씨부린 말이 책으로 나오면 내가 그 책으로 평생 똥을 닦을 것이다!” 음흉하기 이를 데 없고 말도 안되는 신화처럼 자신의 삶을 포장해 자서전을 내려는 박회장(박영규)에게 안소희(이선빈)는 마치 랩이라도 하듯 속사포로 욕을 쏘아댄다. 술에 잔뜩 취해 기관총처럼 쏴대는 욕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속 시원할 수가 있을까.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의 이 장면은 이 독특한 드라마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준다. 애초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소재와 내용 그리고 표현수위를 가진 드라마다. 이 사실은 첫 회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술을 마셔대는지 보는 사람이 취할 정도다. 그래서 이거 너무 ‘술 권하는’ 드라마 아닌가 하며 드라마가 이래도 되나 싶지만, 그게 다가 ..
시청자 홀리는 ‘연모’, 말 안 되는 데 박은빈, 로운에 빠져든다 KBS 월화드라마 는 이상한 드라마다. 말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 남장여자 콘셉트의 드라마가 어떤 꼬인 관계를 보여줄 걸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빠져든다. 정지운(로운)이 달밤에 이휘를 찾아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사실상 정지운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인 이휘(박은빈)에게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물론 이 대사는 에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에게 했던 그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
‘해피니스’가 묻는 행복,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그래. 가까운 데 있었어. 이현아 너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 있어? 너 코 고니? 이 갈아? 우리 결혼할까?” tvN 금토드라마 첫 회 엔딩에서 윤새봄(한효주)은 정이현(박형식)에게 대뜸 결혼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고, 정이현은 윤새봄에게 “우리 사귈래?”하고 물었을 정도로 그에게 설렘을 느낀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윤새봄에게 거부당했던 정이현은 그의 갑작스런 결혼 제안이 너무 친해 던지는 농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윤새봄은 농담이 아니라고 정색하며 진지한 얼굴로 정이현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사실 가 첫 회에 보여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전조들과는 사뭇 대비된다. 윤새봄과 정이현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곳은 다름 아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