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288)
주간 정덕현
기레기는 어떻게 탄생하나, '허쉬'의 시스템 고발이 변명이 안 되려면 기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잘 안 된다는 통설이 있다. 거기에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서 있는 드라마의 위치가 작용한다. 즉 너무 현실감 있게 기자의 세계를 그리면 고구마 가득한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푸념과 변명처럼 다가오게 되고, 그렇다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자를 판타지를 섞어 그리면 너무나 다른 현실과의 부조화 때문에 공감이 안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 JTBC 새 금토드라마 는 이 중 전자를 선택한다. 섣불리 정의감 넘치고 그 어떤 외압 앞에서도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자라는 판타지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정반대로 이른바 '기레기'로 전락해버린 기자들이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는가를 찾아간다. 매일한국의 12년차 베..
'카이로스' 사고가 아닌 범죄, 그래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건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MBC 월화드라마 가 그 정체를 드러냈다. 밤 10시 33분 단 1분 간 전화로 연결되는 한 달 전의 한애리(이세영)와 한 달 후의 김서진(신성록). 이 판타지 설정을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떻게든 과거로 돌아가 향후 벌어질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애초 이야기는 아이가 유괴 살해되고 아내 강현채(남규리)마저 이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절망에 빠진 김서진이 한 달 전을 살아가는 한애리를 통해 자신에게 벌어진 비극을 막으려 하는데서 출발했다. 그렇게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김서진과 한애리는 그 1분을 통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서..
'며느라기', 딸 같다면서 차별하는 건 무슨 심리인가 '핫 딜' 하는 옷을 사려고 집중하고 있는 딸 무미영(최윤라)의 방에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오는 엄마. 그러자 여지없이 딸은 버럭 화를 낸다. 그런 딸이 익숙하다는 듯 자신도 가디건이 필요하니 하나 구입해달라는 엄마. 하지만 핫 딜 뜬 옷을 구입하지 못한 딸은 그것이 엄마 탓이라고 화를 내며 가디건 따위 시장 가서 아무 거나 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칭얼댄다. 카카오TV 가 이른바 '딸 같은 며느리'라는 주제로 담은 3회는 보통의 철없는 진짜 딸이 엄마들에게 하는 리얼한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에게 가디건은 시장 가서 아무 거나 사면 된다 했던 말과는 달리, 그 딸이 시어머니에게 하는 말은 완전히 다르다. "가디건은 매일 입는 건데 좋은 걸로 사..
'바람피면 죽는다'는 과연 불륜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을까 KBS의 새 수목드라마 는 제목대로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는 코미디다. 소재만으로 보면 뻔해 보이지만, 의외로 빵빵 터지는 코미디가 만들어지는 건 여기 등장하는 강여주(조여정)와 한우성(고준)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들과 그 조합이 주는 상황 덕분이다. 범죄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로 사랑보다는 '살인'에 대한 걸 더 많이 생각하고 글로 쓰는 강여주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바람난 남편을 처절하게 살해하곤 했다는 사실은, 이혼전문변호사지만 아내 사랑꾼으로 통하는 한우성이 남모르게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드라마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바람을 피우고 있지만 아내에게 들키면 죽는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쫄보 한우성은 그래서 절대 외박은 하지 않고..
'펜트하우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가짜 판타지 예상했던 대로지만 SBS 월화드라마 는 벌써부터 20% 시청률을 목전에 두고 있다. 9.2%(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는 매회 1% 남짓 시청률을 끌어올리다, 11회에 이르러 19.6%를 기록하며 시청률이 껑충 뛰었다. 시청률이 모든 걸 증명해주는 바로미터가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렇게 갑자기 시청률이 뛰어오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개연성 없이 자극적인 설정과 복수극을 통한 고구마와 사이다만을 담음으로써 막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 생겨나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가 그 이유다. 이상한 관전 포인트라는 건, '욕하면서 본다'는 우리가 흔히 막장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에 이미 들어가 있다. 욕한다는 건, 개연..
불친절한 '낮과 밤', 시청자들은 몰입할까 포기할까 28년 전인 1992년 어느 산골에 위치한 건물들이 불타고 있다. 깜깜한 밤이지만 솟아오르는 불길로 환한 그 곳으로 어린 아이가 겁도 없이 걸어 들어간다. 그곳은 죽은 자들 천지다. 아직 살아남은 자들도 살아있다 보기 어렵다. 그들은 서로를 찌르고 죽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얼굴은 웃고 있다. 건물 안 어느 방으로 들어간 아이에게 공포에 질린 한 청년이 다가와 안아주지만, 오히려 청년을 다독이는 건 아이다. 청년에게 자신과 함께 나가자고 말하는 아이는 말한다. 이 미친 광경을 만든 건 바로 자신이라고. 그러면서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 혼자 있어. 태양이 하얗게 빛나고 있는데 절대..
'경이로운 소문', 악귀·슈퍼히어로에 학원물이 더해지니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에 빙의된 악귀들과 싸우는 슈퍼히어로. OCN 의 언니네 국수집에서 국수를 파는 추매옥(염혜란), 가모탁(유준상) 그리고 도하나(김세정)는 평범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악귀가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리면 가게 문을 닫고 출동하는 악귀 잡는 카운터팀(악귀를 센다는 의미)이다. 어느 날 나타난 3단계 악귀에게 철중(성지루)이 사망하자 그 몸에 있던 저승 파트너 위겐이 빠져나와 소문(조병규)의 몸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소문은 언니네 국수집의 숨은 슈퍼히어로들인 카운터팀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 나 같은 악귀 잡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이들을 담는 장르적 틀은 훨씬 일상 속의 고수가 등장하는 에 가깝다. 보통 사람..
'며느라기'가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드러내는 방식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결혼하면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카카오TV 2회의 엔딩에서 무구영(권율)은 명절에 민사린(박하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렇게 생각한다. 무구영은 그날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다들 너무했다"며 날린 팩폭 돌직구에 아버지의 분노와 엄마의 눈물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생각한다. 자신이 결혼할 사린이는 착한 며느리가 되어 엄마를 도울 거라고. 하지만 무구영의 생각은 당장 눈물을 흘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분노로 엉망이 된 명절 분위기가 며느리의 '이의 제기'에서 비롯됐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는 시월드의 모든 노동이 며느리들(엄마도 며느리다)에게만 부여되고, 그것도 며느리(엄마)가 나서서 며느리에게 강요되며,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