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288)
주간 정덕현
'개천용'의 재심사건들, 범인이 나타나도 돌려보내는 사법이라니 "잘 나신 변호사님과 기자님은요, 할 말 다 하고 사는지 모르겠는데요, 저 같은 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 못해요. 기자님. 말이란 것은요, 입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하는 거예요. 세상 천지에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을 누가 들어주기나 합니까?" SBS 금토드라마 에서 오성시 트럭 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옥살이를 하고 나온 김두식(지태양)은 재심을 해서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되지 않겠냐는 박태용(권상우) 변호사와 박삼수(배성우) 기자의 말에 그렇게 일갈했다. 과거 그는 형사에게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그토록 항변했었다. 하지만 이미 그를 범인으로 특정해버린 형사들은 강압적인 수사로 그를 결국 범인으로 만들..
'구미호뎐'의 문제점, 너무 들쭉날쭉한 이야기로는 몰입이 어렵다 지난주 결방의 이유를 tvN 수목드라마 은 '완성도'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한 주 결방을 선택했다는 것. 그래서 돌아온 은 과연 그 완성도를 높였을까. 구미호 이연(이동욱)과 이무기(이태리)의 일대 격전을 앞두고 있는 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드라마는 생각만큼의 극적 긴장감이 생기지는 않고 있다. 심지어 이연이 사랑하는 남지아(조보아)의 몸에 이무기가 깃들었고 그래서 점점 이무기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겪게 될 수 있는 위험(죽음이든 위기든)은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런데 남지아나 이연 같은 남녀 주인공은 물론이고 이들..
'펜트하우스'가 개연성 없는 막장에 시청자를 중독시키는 방식 SBS 월화드라마 는 사실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틀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복수극이다. 김순옥 작가가 늘 해왔던 방식의 반복. 사회적 공분을 일으킬 만큼 추악한 악당들의 갖가지 행태들이 먼저 공개되고, 그렇게 당하던 이들이 저들에게 처절한 응징을 해주는 방식이 그것이다. 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가 지목하고 있는 공분의 대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미 JTBC 드라마 이 끄집어냈던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대한민국 0.1%의 부를 차지한 이들이 갖고 있는 천박한 선민의식과 갑질 그리고 그것을 핏줄로 이어받는 자식 교육의 문제다. 물론 은 그 문제의식을 가져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냈지만, 는 완성도보다는 그 소재의 자극성만을 끌어..
'산후조리원'의 가치, 풍자 코미디에 담아낸 우리네 출산·육아 tvN 월화드라마 이 8회로 대미를 장식했다. 보통 미니시리즈가 16부작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그 절반의 분량이지만, 이 드라마가 남긴 여운은 그보다 훨씬 더 길 것 같다. 산후조리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우리네 여성들이 겪게 되는 출산, 육아의 독특하고도 이상한 풍경은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그려졌지만, 그것이 꼬집는 현실은 매서웠다. 드라마는 첫 회부터 출산 과정을 디테일하게 여러 단계로 잡아내며 그것이 저승사자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는 걸 가감 없이 드러내준다. 흔히들 '순산'이라며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곤 하던 출산의 그 풍경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왜 '격정 출산 느와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가를 실감나게 만든..
'며느라기'의 담담해 보여도 날카로운 시월드 폭로 '그런데 내일 아침에 엄마 미역국 끓여드리면 진짜 좋아하실 것 같은데 아무래도 힘드시겠죠? 내일 출근하셔야 하니까.' 카카오TV 에서 남편 구영(권율)의 여동생 미영(최윤라)은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의 생신에 민사린(박하선)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릴 수 있냐고 넌지시 메시지를 보낸다. 에둘러 요구하는 그 메시지에 민사린은 마치 당연한 걸 잊고 있었다는 듯이 "미처 생각을 못했다"며 그러겠다고 한다. 그러자 미영은 고맙다며 엄마가 '황태' 미역국을 좋아한다는 걸 마치 팁이라도 되는 양 알려준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드린다는 말은 단순히 음식을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생일상을 차리라는 이야기고, 그러려면 전날부터 시댁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야..
'스타트업', 부족한 청춘들의 일과 사랑에서의 성장서사 "나 개발 빼곤 다 엉망이야. 언어영역은 낙제 수준이고 메타포도 몰라. 피아노, 그림, 예체능 쪽으로 꽝이고 이게 디저트 포크인지 샐러드 포크인지도 구별 못해. 나 천재 아니고 바보 천치야." tvN 토일드라마 에서 남도산(남주혁)은 애써 그를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나게 하려는 서달미(배수지)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의 말대로 그는 서툴다. 코딩 빼고는 잘 하는 게 없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서툴기 그지없다. '도산아 자?' 하고 묻는 메시지에 아직 안 잔다며 아직 자기에 이른 시간이고 보통에는 몇 시에 자는지를 답변으로 쓰는 인사다. 그걸 옆에서 본 엄마가 답답해하며 "지워"라고 하고 등짝 스매싱을 날리게 만들 정도로. 일에 있어서도 ..
'일의 기쁨과 슬픔', 단편만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건 장편 드라마들은 긴 호흡의 스토리들을 다룬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소 거창해지고, 극적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다 그렇게 거창하고 극적인 건 아니다. 그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나고 난 후에 기억으로 각색된 이야기들은 거창하고 극적인 사건들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이란 매일 매일 조금씩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것들이 먼지처럼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스페셜 은 바로 그 소소해 보이는 일상을 통해 우리의 삶을 관조하는 드라마다. '한국의 실리콘 밸리'라는 판교에 있는 중고거래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우동마켓. 실리콘 밸리 스타일로 영어 이름을 쓰며 수평적 ..
'개천용', 돈만 있으면 기사도 맘대로? 그 정반대인 이유 "야 다 니들 때문에 그러는 거야. 보란 듯이 사옥 올려서 니들 월급 주고 취재에만 전념하라고." 뉴스앤뉴 문주형(차순배) 사장은 강철우(김응수) 서울시장의 뒤를 봐주는 것이 결국 기자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강철우 시장이 지을 테크노 타운 분양권을 받아 입주하려 한다. 그것이 수백억의 이익을 회사에 가져다 줄 것이고 그 이익은 결국 기자들의 처우를 좋게 해줘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줄 거라는 게 그의 논리다. 하지만 문주형 사장의 그 말에 이유경(김주현) 기자는 너무나 따끔한 비판을 내놓는다. "저 앞 광화문만 나가도 언론사 빌딩 많아요. 그 언론사 보란 듯이 진실을 쫓고 있나요? 누가 보는데도 자기 주머니만 채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