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공심이>, 허술해도 시청자들 사로잡은 건 캐릭터

 

우리는 어째서 이 조금은 허술한 드라마에 빠져들었던 걸까. SBS <미녀 공심이>는 스토리만을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결코 후한 점수를 주기가 쉽지 않다. 이야기는 산만하고, 개연성도 그리 탄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안단태(남궁민)와 공심(민아)이 서로 사랑해가는 그 알콩달콩한 이야기와 안단테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메시지로 뭉쳐지기보다는, 그저 병렬적으로 놓여져 드라마의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내는 기능적인 면에 머문 면이 있다.

 

'미녀 공심이(사진출처:SBS)'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안단태와 공심의 로맨틱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자칫 멜로가 반복되면 생겨날 수 있는 느슨함을 과거를 추적하는 안단태의 이야기를 통해 조이려고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이 긴장감을 만들어내려는 기능에 충실한 안단태의 과거 추적 이야기는 조금 허술한 면들이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절대 악으로 그려지는 염태철(김병옥)이 후반부에 이르러 안단태와 석준수(온주완)의 공조로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미녀 공심이>는 이런 허술함과 단점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SBS 주말극으로서는 최고의 성과를 내놨다. 마지막회를 한 회 남긴 19회는 무려 14.8%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병훈 감독의 사극인 <옥중화>와 동시간대 방영되어 이런 정도 성적이라면 가성비로는 이미 <옥중화>를 앞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안단태 연기를 한 남궁민의 연기 저력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첫 연기 도전을 선보였던 공심 역할의 민아는 꽤 괜찮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그것이 연기력을 운운할 정도는 아닐 것이지만, 적어도 민아가 보이는 연기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그래서 연기에 대해 호감을 갖게 만든 것만으로도 그녀로서는 큰 성과일 것이다.

 

이렇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이다. <미녀 공심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드라마는 공심이라는 조금은 소외되었지만 늘 밝은 모습으로 건강한 웃음을 주는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에 인권변호사 안단태라는 서민적인 호남 캐릭터가 더해져 공심과 만들어가는 케미는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장면들이었다. 캐릭터들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연민 그리고 공감이 다소 스토리는 허술했을지 몰라도 이 드라마에 기꺼이 몰입하게 만들었던 것.

 

<미녀 공심이>라는 제목으로 공심이란 캐릭터를 중심에 세워두고 그 여주인공 역할로 민아를 세운 건 다소 모험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대단히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연기력에 대한 불안감을 얘기했지만, 민아는 이 역할을 연기라기보다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담는 것으로 소화해냄으로써 오히려 더 큰 호평을 이끌어냈다. 어설프게 남 흉내 내기보다 훨씬 더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결국 이건 민아에게는 연기자로 가는 첫 걸음으로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로서도 민아가 아니었다면 이런 좋은 결과가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선택이 되어 주었다. 민아가 가진 본연의 매력이 다소 능숙하진 않아도 그 진심을 투박하게나마 전달하려 했던 그 마음은, 다름 아닌 이 다소 어설퍼보여도 답답한 현실에 서민들을 위로하는 그 진심만은 분명하게 보인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그 진정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다. <미녀 공심이>라는 작품과 민아는 그래서 그렇게 비슷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굿와이프> 미드 리메이크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연기자들

 

사실 tvN <굿와이프>는 전도연 같은 연기자들에게는 부담스런 작품이다. 본래 리메이크라는 것이 원작과 늘 비교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굿와이프>2007년부터 CBS에서 방영되어 무려 시즌7을 이어오고 있는 인기 미드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알리샤 역의 줄리아나 마굴리스는 이 연기로 여러 차례를 상을 받은 바 있다. 그 알리샤라는 인물을 이제 김혜경이라는 인물로 재탄생시켜야 하는 전도연으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미드를 리메이크하는 것도 낯선 일이다. 미국적 정서는 아무래도 중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권보다 우리에게는 더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굿와이프>의 알리샤라는 인물은 남편의 불륜 스캔들이 터져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물론 화는 나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쿨함을 유지하는 여성이다. 이것은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다른 면면일 수 있다. 조금만 엇나가면 공감대가 일어나지 않아 그 연기가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원작에서 알리샤는 그래서 감옥에 들어간 남편 때문에 다시 변호사 일을 하게 되고, 집안 일을 시어머니가 와서 돕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이것 역시 우리네 정서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리메이크는 그 설정 자체를 바꾸었다. 밖에서는 변호사로 일하고 집에 와서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돌보는 우리네 워킹우먼들 중 한 명이고, 시어머니는 원작과는 달리(원작에서 알리샤는 시어머니와 그래도 같은 여성으로서의 쿨한 공감대가 있다) 그녀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리메이크된 <굿와이프>는 원작의 내용들을 세세한 장면의 디테일들까지 그대로 가져올 정도로 충실히 따라고 있다. 물론 한국적 정서와 다른 점들은 바뀐 요소들도 적지 않다. 이를 테면 원작에서 집으로 불쑥 배달된 불륜 스캔들 사진을 아이들이 먼저 보게 되고 컴퓨터에 능숙한 아이가 그 사진을 분석해 그것이 합성이라는 걸 발견해내는 장면 같은 건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아 빠져 있다.

 

원작의 알리샤 남편이자 함정에 빠진 검사인 피터 플로릭(크리스 노스) 역시 미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다. 그 역할을 맡아 이태준 검사를 연기하는 유지태는 우리 정서로 보면 자칫 뻔뻔해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스캔들 상대였던 여자를 붙잡아 수틀리면 죽일 수도 있다는 식의 은근한 협박을 하기도 하는 자다. 하지만 유지태는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인물을 어딘가 미스테리한 인물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가 진짜 함정에 빠졌을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아내 김혜경을 위한 일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굿와이프>의 리메이크는 커다란 이야기의 줄기를 바꾼 게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실제 변호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던 작가들이 여럿 모여 쓴 대본인 만큼 그 디테일들이 워낙 좋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굿와이프>는 좀 더 표현적인 면들에서 섬세한 변화들을 통해 이질감을 없애는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결국 그걸 떠안은 건 전도연이나 유지태 같은 연기자들이다. 일종의 우리 식의 연기 해석이 똑같은 설정과 장면에도 조금씩 달리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전혀 미드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도연과 유지태의 저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운빨로맨스>, 이미지 반복한 황정음과 새 이미지 만든 류준열

 

MBC <운빨로맨스>가 종영했다. 성적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첫 회 10.3%(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마지막회에는 6.4%까지 떨어졌으니. 이렇게 된 건 운에 기대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던 것과, 이야기 전개 상 밀고 당기는 멜로는 많았지만 신선하다고 여겨질만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빨로맨스(사진출처:MBC)'

웹툰 원작이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드라마 리메이크에도 큰 기대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역시 웹툰 리메이크는 좀 더 드라마적인 현실성을 바탕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생각보다 난관에 부딪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빨로맨스>의 힘이 그나마 끝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황정음과 류준열이라는 연기자들 덕분이다. 특히 류준열의 경우, 이번 작품을 통해 확실히 매력적인 연기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응답하라1988>에서 류준열이 연기한 정환 역할은 끝까지 자제하는 캐릭터였다.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지만 그 속내를 좀체 표현하지 않는 인물. 이것이 팬들에게는 오히려 강력한 츤데레매력으로 어필되기도 했다.

 

<운빨로맨스>의 제수호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응답하라1988>에서 꼭꼭 숨기고 있던 류준열의 다양한 얼굴들을 끄집어내준 인물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모태 솔로에 극도의 이성으로 자기보호를 위해 오히려 까칠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지만(이 모습은 어딘지 <응답하라1988>의 정환을 닮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차츰 심보늬(황정음)를 통해 각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속내를 숨기지 않고 때론 화를 내고 때론 고백을 하는 캐릭터로 변화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류준열이 제수호 캐릭터를 확실히 잘 소화해냈다고 여겨지는 건 이런 변화를 잘 계획해 그려냈다는 점이다. 초반의 제수호의 모습과 마지막에 이르러 보여주는 제수호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변화는 다름 아닌 시청자들이 이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류준열이 꽤 괜찮은 준비된 배우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기존 작품의 이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 류준열과 달리, 아쉽게도 황정음은 이번 작품이 그다지 그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연기한 심보늬라는 캐릭터가 기존 작품들의 캐릭터와 그리 다른 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운에 지나치게 기대는 모습은 처음에는 코믹하게 다가왔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는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다.

 

결국 이번 작품에서 황정음의 공적이라면 아쉽게도 류준열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끄집어내준 점 정도에 머물렀다. 물론 그것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연기를 위해 이 작품에서 보여준 열성에 비하면 캐릭터가 그것을 너무 받쳐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래도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확실히 빛났다는 건 이 작품이 남긴 작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김우빈, 수지라 가능한 <함부로 애틋하게>의 옛 감성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까칠한 톱스타 남주인공,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가난한 여주인공, 남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부모와 얽혀 원수지간이 된 남녀, 일주일간의 계약연애 등등. KBS <함부로 애틋하게>에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너무 익숙한 설정들과 클리셰들이 가득 하다. 익숙한 설정과 클리셰는 그만큼 극적 상황들을 손쉽게 만들어낸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투성 때문에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이러한 익숙한 극적 상황과 상투성은 향후 드라마가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를 쉽게 예측하게 만들기도 한다. 까칠한 톱스타인 신준영(김우빈)과 가난한 여주인공인 노을(수지)은 악연으로 얽혀있지만 함께 다큐 작업을 하면서 가까워질 테고, 그렇게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두을 갈라놓는 상황들(이미 들어가 있는 시한부나 부모 간의 악연, 나아가 빈부 격차까지)로 인해 안타까워질 것이다. 만일 시한부 선고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드라마의 비극적 엔딩은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보여주는 이런 익숙한 전개들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그리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한다.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면들은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게다가 드라마의 판타지를 통해 짧아도 어떤 위로와 위안을 그 때 그 때 받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비극의 비장함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제목이 담고 있듯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건 함부로라도 애틋함을 그려내는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시간을 되돌려 현재의 상황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오래도록 보여준다. 고교시절로 돌아가 노을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거를 들춰보고, 20대 시절로 돌아가 신준영이 자신의 친부가 노을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증거물을 빼앗으려다 노을이 사고를 당하는 끔찍한 순간을 돌아본다.

 

드라마가 애틋함을 만들어내는 건 그 사람의 아픈 삶을 하나하나 새삼 들춰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길거리에서 지나쳤다면 몰랐을 사연들을 알게 되고 다시 돌아보게 되며 나아가 걱정하게 되는 것. 그것이 애틋함의 실체다. 요즘처럼 쿨한 세태에게 그래서 애틋함이란 감정은 다소 옛날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함부로 애틋하게>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는 지점은 그 애틋함을 절절한 휴머니티로 느끼는가 아니면 올드한 감성으로 느끼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건 이러한 옛 감성을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설득하는 일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과거로 회귀해 당대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금의 시청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그 옛 감성이 주는 따뜻함같은 것들이 어떤 위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그러나 그 옛 감성이 따뜻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익숙한 비극 속에서의 애절함이나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트렌디한 부분은 김우빈과 수지다. 이야기는 옛 감성으로 가득 차 있고 설정도 익숙하지만, 그걸 연기해내는 인물들이 다름 아닌 김우빈과 수지라는 현 세대의 시선을 잡아끄는 인물이라는 것. 그래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까칠한 스타 역할이 조금은 새롭게 보이고, 얼굴에 잔뜩 낙서를 해놓고는 그걸 보고 웃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들의 트렌디함은 과연 <함부로 애틋하게>의 옛 감성을 살려낼 수 있을까. 지금의 시청자들은 과연 김우빈과 수지를 통해 함부로 애틋해지는 감정에 빠져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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