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진경의 개과천선 왜 <펀치>를 닮았을까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와 월화드라마 <펀치>를 보다보면 그 유사한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피노키오>는 언론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고, <펀치>는 법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다. 물론 소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정치, 언론, 법은 같은 드라마인 것처럼 똑같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피노키오>에서 언론은 대기업 회장과 결탁해 여론조작을 일삼으며, 그 대기업 회장은 그 위에 정치인과 맞닿아 있다. 이 커넥션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양으로 고통 받는다. 기하명(이종석)과 최인하(박신혜)는 이 커넥션을 폭로하고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피노키오>가 그나마 어떤 풍자를 섞어 약간의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면, <펀치>는 쉴 틈 없는 진지함과 무게감으로 법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권력 투쟁만이 남은 현실을 두드려 댄다. <펀치>의 이태준(조재현) 총장이나 윤지숙(최명길) 법무부 장관은 그 과정에서 결탁된 언론들을 움직여 여론을 조작한다. 그들과 맞서 박정환(김래원)과 신하경(김아중)은 그들의 결탁을 밝혀내려 한다. <피노키오>와 다른 얘기 같아도 주인공의 관점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가진 파괴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펀치>의 박정환은 이태준을 검찰총장으로 세운 인물로서 그를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마음을 바꾼 내부고발자다. <피노키오>의 송차옥(진경) 부장은 대기업 회장인 박로사(김해숙)와 결탁한 부패언론인이었지만 딸 최인하로 인해 개과천선해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나선다. 박정환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태준 총장을 감옥에 보내려 하고, 송차옥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박로사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려 한다.

 

작년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도 잘 살펴보면 이 구조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정치-언론-법이라는 커넥션에서 변호사의 입장을 통해 들여다본 <펀치><피노키오>의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김석주(김명민)라는 내부고발자가 등장한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붙어 그들의 죄를 덮는 역할을 해온 인물이지만 드라마 제목처럼 어떤 계기를 만나 개과천선하면서 오히려 이들과 싸워나간다.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더 힘을 발휘하고 오히려 현실적이라 여겨지는 건 선악 구도가 그다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이들이 나쁜 놈들과 싸워 이기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펀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나쁜 놈덜 나쁜 놈이 맞붙는 형국이 훨씬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펀치>의 박정환이 내가 살아왔던 세계의 방식으로 더 나쁜 놈들과 맞서는 장면이나, <피노키오>의 송차옥이 박로사가 취할 일련의 방식들을 모두 꿰면서 거기에 맞는 대처방식을 얘기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통쾌하면서도 현실감을 만든다.

 

드라마 속 내부고발자들이 해결사로 등장하는 이 상황은 씁쓸한 현실을 담아낸다. 시스템 바깥에서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스템 안을 경험한 이들만이 그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현실이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 드라마들의 커넥션 구조가 꽤나 현실감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준 사건이 되었다. 박창진 사무장을 위시한 대한항공 전현직 사원들의 내부고발은 이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끄집어낸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들 덕분이라는 걸 드라마도 현실도 말해주고 있다.

 

<펀치>, 정의와 진실을 빙자한 끝없는 난타전의 현실

 

이것은 난타전이다. 한쪽에서 스트레이트를 날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어퍼컷을 올린다. 주먹이 날아갈 때마다 피가 튀고, 맞은 자는 휘청거리지만 금세 자세를 잡고 회심의 일타를 날린다. 게다가 이 난타전의 주인공은 절박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 내에 상대방을 넘어뜨리지 않으면 자신은 허망하게 링을 내려와야 한다.

 

'펀치(사진출처:SBS)'

드라마 <펀치>는 바로 이 권력의 링 안에서 벌어지는 난타전이다. 제 멋대로 해석되고 활용되고 이용되는 법은 스트레이트이자 어퍼컷이고, 국민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언론은 카운터펀치가 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박정환(김래원)과 그와 함께 하게 된 전처 신하경(김아중)이 한 편이라면 서로의 약점을 쥔 채 동거에 들어간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과 윤지숙(최명길) 법무부장관이 다른 한 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난타전은 처음부터 편이 이렇게 정해져 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박정환과 이태준이 한 편이었고, 신하경과 윤지숙이 다른 한편이었지만 이태준이 박정환을 배신하고, 윤지숙의 숨겨진 본색이 신하경에게 드러나자 판이 바뀌었다. 오션캐피털을 가지려는 이태준 총장과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으려는 윤지숙 장관을 움직이는 동력은 돈과 권력이다. 그들은 번지르르한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런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박정환과 신하경은 목적이 약간 다르다. 신하경이 정의와 진실을 추구한다면 박정환은 오로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박정환이 날리는 펀치는 그래서 절박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이렇게 말하는 박정환에게는 죽음을 앞둔 자의 욕망에 대한 무상함이 담겨 있다. 정의로운 검사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진한 싸움 따위는 하지 않는 박정환이 그나마 이 살벌한 링 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이태준, 윤지숙과 맞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정의를 얘기하지만 드라마의 재미는 저마다의 목적 앞에서 끝없이 변화하고 부딪치는 인간군상의 이야기에 담겨져 있다. 적어도 <펀치>는 정의로운 자가 승리한다는 식의 순진한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들이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일 것이다. 정의 운운하며 발표되는 사안들은 겉치레일 뿐이고 그 내막은 그네들의 끝없는 욕망들이 꿈틀댄다.

 

가끔씩 뉴스로 보여지는 대기업 회장의 병보석 이야기나, 병역 브로커를 두고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의 거래, 인사권을 갖고 벌이는 장관과 총장의 갈등 같은 것들은 우리가 현실에서도 늘 뉴스로 보던 것이지만 그 내막을 드러내는 드라마는 그것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달한다. 아마도 땅콩 회항을 염두에 둔 시퀀스인 듯한 브로커의 해외도피를 막기 위해 비행기를 돌리려 하자 이를 막는 윤지숙 장관의 대사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된 윤지숙 장관은 항공보안법 42조를 얘기하며 회항을 막는다. “항공보안법 제 42조 위계 또는 위력으로 항공기의 정상 운행을 방해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얘기했듯이 어차피 링이란 현실의 또 다른 축소판일 것이다. <펀치>라는 링은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축소해 보여준다. 그러면서 저들의 입에서 툭하면 호명되는 정의와 진실의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를 아프게도 드러내준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박정환처럼 저들의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다 알고 있는 자가 죽음 같은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돌리고, 저 자신마저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 해야 겨우 가능성을 보인다는 걸 <펀치>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그리고 더 나쁜 놈이 있는 현실. <펀치>는 그 난타전의 현실에 날리는 주먹이다.

 

'힐러', 지창욱의 사랑, 유지태의 성장

 

<힐러>에 출연하는 박상원은 과거 송지나 작가의 <모래시계>에서 강우석 검사로 나왔었다. <모래시계>80년대 격동의 시절을 태수, 혜린, 우석 같은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으로 그려내면서 당시로서는 귀가시계라고 불릴 만큼 사랑받았던 드라마다.

 

'힐러(사진출처:KBS)'

그 때의 번듯했던 박상원은 그러나 <힐러>에서는 김문식이라는 악역이다. 겉보기엔 성공한 사업가 정도로 보이지만 그는 지금의 아내를 얻기 위해 과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 아내의 아이를 내다버린 것. 그 때의 고통으로 심적 트라우마를 갖고 성장한 영신(박민영)을 김문식의 동생인 김문호(유지태)가 찾아내고 보호하려 한다. 그 사이에 김문호가 영신을 찾고 보호하기 위해 고용한 힐러 정후(지창욱)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든다.

 

<힐러>에는 80년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젊은이들의 과거가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성장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과거 벌어졌던 어떤 사건이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쥐고 있다. 힐러 정후나 영신은 모두 과거의 어른들에게서 버려져 외롭게 자라온 청춘들이다.

 

드라마의 과거가 되고 있는 80년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언뜻 과거 <모래시계>의 뉘앙스가 풍겨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그 때 그렇게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이상을 외치던 젊은이들은 이제 나이 들었다. 그 중에는 김문식처럼 당시 그토록 혐오했던 권력의 심층부에 들어와 있는 인물도 있다. <모래시계>의 박상원이 <힐러>의 박상원으로 나이든 모습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캐스팅이 아닌가 생각된다.

 

80년대의 정서를 살짝 담고 있기 때문인지 드라마의 구도 역시 익숙한 옛 구도를 재연하는 느낌을 준다. 사랑하게 됐지만 돈 받고 의뢰받아 접근하게 된 힐러 정후의 사랑은 그래서 <모래시계>의 보디가드로 이름 높였던 이정재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숨어서 사랑하는 것. 이것은 확실히 요즘처럼 대놓고 키스 먼저 하는 사랑법과는 사뭇 다르다.

 

정후가 <힐러>의 사랑법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김문호는 <힐러>의 여주인공인 영신의 성장을 이뤄주는 인물이다. 일과 사랑은 역시 여성들에게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김문호를 통해 한 단계씩 성장해가면서 정후와 조금씩 사랑을 알아가는 영신은 여성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건드린다.

 

조금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오는 듯한 느낌과, 요즘 숨 가쁘게 몰아치는 드라마들과는 달리 조금은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이 단점을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그 80년대식 정서를 여전히 담고 있다는 점이 은근한 매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슈퍼맨적인 힐러 설정과 권력자들의 비리를 파헤치는 언론의 이야기는 마치 <인간시장>의 장총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물론 <힐러>는 요즘 드라마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도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죽음의 위협까지 겪은 인물이 한가롭게 <영웅본색>의 한 시퀀스처럼 공중전화 부스에서 남자와 달달한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낯설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금은 구닥다리의 정서가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힐러>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현재의 팍팍한 삶의 치유로서 과거적인 정서를 끌어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펀치>, 흰 옷이든 검은 옷이든 속은 똑같다?

 

청와대에 들어온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과 법무부장관 윤지숙의 옷은 마치 이들의 대립된 입장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검은 옷을 입은 이태준과 하얀 옷을 입은 윤지숙. 이태준은 옷에 빗대 자신들의 상황을 얘기한다. 까만 옷은 뭐가 묻어도 잘 안보이지만 흰 옷은 조금만 묻어도 확 드러난다는 것. 이것은 윤지숙 아들의 병역비리 카드를 쥐고 있는 이태준이 그녀가 진행하고 있는 그에 대한 수사를 멈추라는 압력이다.

 

'펀치(사진출처:SBS)'

그러면서 이태준은 윤지숙에게 은근한 손을 내민다.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다. 충격적인 건 윤지숙이 그 손을 잡는다는 점이다. 흰 옷을 입었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윤지숙이나 이태준이나 마찬가지의 인간이라는 걸 이 장면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독한 <펀치>의 현실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퀀스다.

 

<개그콘서트>도찐개찐이라는 코너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만일 윤지숙과 이태준이라고 화두를 던지면 도찐개찐!”이라는 답변이 나올만한.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다 마찬가지인 세상이다. 세상에 선과 악으로 선명히 나눌 수 있는 경계란 게 있겠냐마는 <펀치>가 그려내는 세상은 악으로만 가득한 암울한 현실을 담고 있다.

 

검찰총장이 되어 권력을 갖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치우는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이 나쁜 놈이라면, ‘청렴한 검찰을 내세우며 그와 대적하는 윤지숙(최명길) 법무부 장관 역시 그저 덜 나쁜 놈에 불과할 뿐 은 아니라는 것. 결국 그들은 거래를 하고 박정환(김래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꼬리자르기를 하려 한다.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의 거래. 그래서 생겨나는 희생양. 이것은 어쩌면 <펀치>가 우리네 정치와 사법의 현실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일 것이다. 머리는 늘 살아남는 꼬리 자르기는 무수한 의혹 속에서도 늘 반복되어 나오는 우리네 아픈 현실이 아닌가.

 

윤지숙의 이중성은 늘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7년 전 병역비리를 수사 중이던 박정환을 갑자기 구속한 건 과정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윤지숙 자신의 아들이 그 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7년 후, 이태준과 김상민 회장의 유착에 대해 진술을 받아내고도 박정환만을 희생양으로 삼은 그녀는 또 경제가 어렵다는 식의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즉 윤지숙의 이중성을 통해 권력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란 사실은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걸 <펀치>는 아프게도 보여준다.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왔던 정치인들의 이야기들, 비전과 포부는 사실 어쩌면 개인적인 야망을 채우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펀치>의 인물들은 그 욕망의 동기가 진정한 선이나 정의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와 연결되어 있다.

 

윤지숙의 이중성은 아들의 병역비리와 연결되어 있고, 이태준의 야망과 복수심은 살인자였지만 자신의 형인 이태섭(이기영)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시한부 삶을 판정받고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박정환의 행보는 그 모든 것이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건 정의니 사법 현실이니 하는 거창한 것들이지만 사실은 모두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그들은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한다.

 

사람은 결국 다 죽어.” 시한부 삶을 판정받은 박정환의 허무는 <펀치>가 바라보는 세상의 이전투구가 덧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좌우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서로 좀 더 나은 세상을 외치지만 그 이면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과 야망들이 번뜩이는 현실. 그 살풍경한 현실을 <펀치>는 죽음이라는 극단의 설정을 통해 폭로하고 있다. 결국은 도찐개찐인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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