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의 백성희, ‘선덕여왕’의 미실, ‘시티홀’의 고고해

‘아내의 유혹’에서 악녀 신애리(김서형)의 트레이드마크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눈을 치켜뜨는 것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거친 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바로 이 연기로 시청자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등장한 악녀들은 신애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차분해졌고, 감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눈을 치켜뜨기는커녕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들이 더 살벌한 것은.

‘찬란한 유산’에서 백성희(김미숙)는 미소 짓는 악녀의 절정을 보여준다.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는 보험금을 혼자 챙기려 배다른 딸인 은성(한효주)과 그 동생 은우(연준석)를 길거리로 내쫓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지체아인 은우를 멀리 내다버리기까지 한다. 살아온 남편을 반기기는커녕 갖은 거짓말로 은성을 만나려는 그를 절망에 빠뜨리고, 모든 것이 탄로 나자 거꾸로 은성을 거둬 유산까지 주려하는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찾아가 거짓말로 은성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그녀는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자신이 하는 행동에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거짓말은 이 차분하게 숨겨진 감정 뒤에서 좀체 진면목을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앞에서 답답할 정도로 착하기만 한 고은성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뭐라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 미소 짓는 악녀에게 완벽한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미소 짓는 섬뜩함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늘 방긋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살벌한 칼날이 느껴진다. 덕만을 놓친 병사의 목을 치면서 그 피가 얼굴에 튄 채로 살짝 웃는 모습은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앞에서는 공손한 척 예를 다하다가 갑자기 귓속말로 천명공주(신세경)에게 “도망쳐라!”하고 명령할 때, 그 숨겨진 칼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시티홀’의 고고해(윤세아) 역시 같은 부류다. 이름처럼 앞에서도 고고한 척 우아함을 떨지만 사실은 뒤에서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붙이는 그 모습은 똑같은 미소짓는 악녀의 자질을 가졌다. 자신이 갖고 싶은 조국(차승원)을 취하기 위해 그녀는 신미래(김선아)를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녀의 목적은 그러나 조국이라기보다는 그를 통해 획득하려는 권력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우아한 악행은 때론 자본이 행하는 그것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악녀들이 이처럼 감정을 숨긴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악역이 아니고 악녀냐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점점 여성 편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보다는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가 그만큼 볼만해졌다는 얘기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와 대결하는 것은 바로 구은재(장서희)라는 여성이고, 이것은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고은성, ‘선덕여왕’의 미실-덕만, ‘시티홀’의 고고해-신미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에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갈등 구조 속에 빠질 수 없는 멜로라인이 결부되면 그 대결구도는 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악녀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것은 바로 감정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해진 섬세함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들에 유독 악녀들이 많고 그녀들이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 '시티홀'의 신미래

‘바보’의 사전적 의미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 본래 ‘밥+보’에서 나온 이 말은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경멸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경제적인 가치가 최우선 가치로 치부되던 개발 시대를 넘어, 이제는 그 부의 올바른 획득이나 올바른 사용이 새로운 가치로 부각되는 현재에 이르러, 이 ‘바보’라는 용어는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나치게 경제논리에만 입각해 살아오다보니 우리가 잊고 또 잃고 있었던 가치들을 여전히 지키고 굽히지 않는 이들. 지금 시대의 ‘바보’는 바로 그런 의미를 부가하고 있다.

드라마 속 바보들, 그들의 지극히 상식적인 삶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은성(한효주)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바보다. 그녀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소식(물론 그 아버지는 실제로는 살아있다)과 함께 계모인 백성희(김미숙)에게 유산을 모두 빼앗긴다. 길바닥으로 장애아인 동생과 함께 내동댕이쳐져 심지어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바로 그 동생 때문에 곧 털고 일어났던 그녀는 그토록 소중한 동생마저 잃어버린다. 자기 자신 돌보기도 힘겨운 이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하지만 그녀는 바로 자신이 그토록 많은 것을 잃고 아파해했던 그 경험으로 인해, 그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기억마저 잃고 길바닥에 쓰러진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집으로 데려와 지극정성 보살피는 것. 흔히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알아 서로 돕는다”는 말은 여기에 해당되는 말이다. 버려진 경험이 있는 그녀는 자신에게 혹처럼 달라붙은 장숙자 여사를 힘겨워하면서도 절대로 버리지 못한다. 후에 장숙자 여사가 사실은 굴지의 기업 대표임을 알게 되고 그녀가 모든 유산을 자신에게 남겨주겠다는 말을 하는데도 은성은 사심을 갖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유산보다는 장숙자 여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종영한 드라마, ‘그바보(그저 바라보다가)’에서 구동백(황정민)이라는 우체국 직원은 한지수(김아중)라는 톱스타를 만나 사랑을 이룬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모든 것이 상업적인 잣대로 구획된 세계 속에 살아가는 한지수는 거꾸로 구동백이라는 제목 그대로의 ‘그바보’를 만나 자신의 잘못된 삶을 되돌리게 된다. 이것은 ‘시티홀’에서 10급 공무원인 신미래(김선아)를 허수아비 시장으로 세워 인주시를 장악하려 했던 조국(차승원)이 거꾸로 그녀의 순수한 정치적 행보에 감화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바보들’의 행보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현실 앞에서는 지극히 어려운 일들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거꾸로 상식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

바보들이 전하는 진심, 서민들의 꿈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상식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먼저 ‘찬란한 유산’의 은성이 말해주는 것은 유산이 비단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언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유산이라면 흔히 변호사가 대동되고 공증된 유서가 읽혀지는 그런 재산의 의미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물려진다는 의미에서 핏줄과 혈연의식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찬란한 유산’에서 은성이라는 바보를 통해 말하는 유산이란,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유산을 말한다. 부모가 가르쳐준 정직이나 신뢰, 부지런함 같은 것들이 그런 핏줄과 혈연으로 연장되는 물질적 유산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는 말이다.

‘그바보’의 구동백이 말하는 가치 역시 이 물질화된 사회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연봉 얼마로 수치화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돈이면 다 되는 것 같은 태도의 예의 없는 세상 속에서 구동백은 진정한 관계와 소통을 전하는 예의바른 인물이다. 구동백이라는 서민이 거꾸로 한지수라는 물질화된 사회의 표상으로서 그려지는 톱스타를 감화시키는 내용이 감동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시티홀’은 드라마가 정치를 다루기 때문에 현 우리네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빗나간 가치들을 신미래라는 바보를 통해 보여준다. 그녀는 정치는 신념이 아니라 돈으로 해나간다는 현실 속에서, ‘정치란 못 사는 사람 좀 더 잘 살게, 또 잘 사는 사람 좀 더 베풀게’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물론 현실에서라면 공허한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 말은 그러나 드라마라는 판타지적 공간 속에서나마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픈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이 시대의 바보들은 흔히 서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곤 한다. 이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전하는 가치들이 고단하게 바보처럼 살아가는 서민들이 꾸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바보들이 전하는 진심의 소리가 큰 울림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이들을 통해 때론 슬프고 때론 웃기며 때론 그동안 잊고 있던 어떤 희망이나 꿈을 찾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진심이 우리에게도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선덕여왕'의 전쟁신이 MBC사극에 위치하는 곳

사극에서 전쟁이라는 스펙터클이 가지는 힘은 자못 크다. 다른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그 장면 자체가 대단한 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김명민)이 치르는 일련의 해전들은 마치 스포츠 중계처럼 방영됐다. 예고편에서도 마치 한일전이라도 치르듯 '이번엔 어디서 벌어진 무슨 해전이다'하고 자막이 붙었고, 실제로 사극을 시청하는 입장에서도 그 관점으로 스펙터클한 전쟁의 흥미진진함을 만끽했다.

'태조 왕건', '대조영' 같은 일련의 KBS 대하사극이 주말의 권좌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능수능란한 전쟁과 전투신의 연출이었다. MBC와 SBS에서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그 노하우를 단번에 체득하기는 어려웠기에 사극 하면 KBS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것은 고구려 사극에 와서 정점을 이뤘다. 물론 '주몽'이 특유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늘 아킬레스건처럼 따라오는 건 '소소한 전쟁 신'이 가진 왜소함이었다. SBS는 '연개소문'의 단 2회 동안의 전쟁 신을 찍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어마어마한 물량을 쏟아 붓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KBS는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를 통해 역시 지존의 면모를 과시했다.

전쟁사극이 요령부득인 MBC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갔다. '허준', '상도' 같은 전쟁이 아니라도 인물들 간의 미션들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구축하는 그런 사극들이 MBC사극에 자리했다. MBC 사극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태왕사신기'부터였다. 엄청난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완성도에 공을 들인 결과, '태왕사신기'는 CG와 전쟁 장면의 연출에 있어서 한 단계 높은 성과를 보여줬다. 그리고 '선덕여왕'에 와서 이제 MBC사극은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던 전쟁사극의 한계를 한 발 넘어서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선덕여왕'의 신라와 백제 간에 벌어진 전쟁 에피소드가 남달랐던 것은 스펙터클에 충실하면서도 디테일을 잊지 않는 연출 덕분이었다. 김서현(정성모)이 이끄는 신라군이 아막성을 얻기 위해 벌이는 공성전에서는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상황에 성벽을 뛰어오르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 떨어지는 등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덕만(이요원)과 동료들이 처음 전쟁을 접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이를 차츰 적응해가는 과정을 놓치지 않는다.

고립되어 백제군에게 포위된 덕만과 화랑들이 원진을 짜고 대항해가는 장면 역시 인물의 감정을 살림으로써 왜소해 보이는 전투를 극적 긴장감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설원랑(전노민)이 백제군을 속이기 위해 벌이는 고육지책은 전쟁 스펙타클의 또 한 요소인 전술적인 묘미를 안겨주었다. 백제군을 물리치고, 동시에 정적이랄 수 있는 김서현과 김유신(엄태웅)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거양득을 취하는 모습은 전쟁과 정치가 맞물리는 재미를 선사한다.

사실 '선덕여왕'의 이러한 전쟁 장면들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은 그 비교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일 저 '적벽대전' 같은 작품과 비교한다면 '선덕여왕'의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전투에도 못 미치는 장면으로 치부될 수 있다. 또 일련의 명장면이라 일컬어지는(예를 들면 '불멸의 이순신'의 해전들이나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 같은) 장면들과 비교해도 여전히 소소한 느낌을 벗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스펙터클의 완성도는 노하우도 노하우지만 기본적으로 제작여건과 함수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선덕여왕'이 보여준 전쟁 신의 가치를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최근 들어 사극에서의 전쟁 스펙터클은 디테일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가 싸우고 누가 전쟁을 이끌었고 어떻게 이겼는가 하는 그 교과서적인 내용의 전달보다는, 전쟁 속에서의 인물들의 실감나는 심리나 그 관계들이 엮어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거대한 전쟁과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시청자들을 방관자로 세워놓던 스펙터클에서, 이제는 그 속에서 같이 뛰는 스펙터클을 대중들이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덕만과 그 일행을 앞세운 '선덕여왕'의 전쟁 신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충돌, 미션으로 승부

'선덕여왕'이 아역들을 떠나보내고 성인연기자들을 본격적으로 출연시켰다. 사실 드라마에서 아역의 존재는 가능성이면서도 그 자체로 위험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아역이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배역과 시간의 변화로 인해 반드시 이미지의 충돌이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처럼 어린 덕만(남지현)이 호연한 드라마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성인 역할을 맡은 이요원이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껏 가녀린 이미지의 역할을 해온 이요원으로서는 그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연기변신을 해야 하는 숙제까지 떠안았다. 본인 스스로 그런 자신의 고정된 이미지가 지긋지긋하다고 밝혔을 정도로 그녀에게 이 역할을 모험이자 기회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생각보다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넘어온 덕만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이미지의 충돌은 덜한 편이다. 심지어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 모습에서는 어린 덕만의 모습이 중첩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런 무난한 느낌을 주는 데는 물론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이요원의 자세가 가장 큰 몫을 차지했지만, 드라마의 긴박한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작용한 결과임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먼저 덕만은 극 중에서 남장여자의 캐릭터로 존재한다. 따라서 이요원에게서 여성적인 면모를 지워낼 수 있는 기본전제를 제공한 셈이다. 그 중성적 배역이 연기자에게 주는 낯선 힘은 이미,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은찬(윤은혜)이나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문근영)을 통해 입증된 바이다.

여기에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스토리는 계속 되는 미션 제시로 재빠르게 성인 연기자들을 배역의 새로운 이미지로 정착시켜 나갔다. 화랑들 간의 대결구도를 전면에 내세웠고, 그 속에 백제와의 전쟁을 중첩시킴으로써 '선덕여왕' 특유의 미션사극이 가진 힘을 이미지 변신의 한 과정으로 활용해나갔다. 이로써 미션의 제시와 그 해결과정이 주는 캐릭터의 성장은 성인 연기자들에 와서도 여전히 진행형이 되는 셈이고, 이것은 현재 보여진 이미지(아역에서 넘어와 아직은 낯선)가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미션의 제시는 가녀린 여성 캐릭터에 강인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일찍이 김영현 작가는 '대장금'에서 그 가녀린 이미지의 이영애를 누구보다 강한 이미지로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즉 고정된 이미지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캐릭터에 끝없이 고난과 역경을 제시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요원은 지금 바로 그 첫발을 디디고 있는 셈이고, 그 결과는 무난한 편이다. 이요원이 이처럼 차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기존 가녀리기만 했던 이미지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된다면, 이 사극은 미실 역할의 고현정에 이어 또 한 명의 연기변신을 선보이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 사극의 성인연기자로의 재배치에 남은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그것은 덕만 역할의 이요원에게서보다는 김유신 역할의 엄태웅과 천명공주 역할의 박예진에서 발견된다. 엄태웅은 이미지 자체가 너무 강해서 어린 아역과의 부조화가 크게 나타난 면이 있고, 박예진은 그 역할 자체가 새로운 미션을 제시받지 못함으로써 현재 모습이 성장의 과정이 아닌 고정된 이미지로 보이게 되는 부담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모든 숙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스토리 속에 그 열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는, 어린 아역의 이미지를 그저 성인들이 물려받았다는 오해를 불식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역에서 성인연기자로 넘어오며 생겨나는 문제는 물론 연기자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성인연기자가 가진 캐릭터가 성장하는 아역과 달리 성장을 멈추는 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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