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판타지, 피겨스케이팅, 승부의 세계

'트리플'이 기대되는 것은 이윤정 PD와 이정아 작가라는 이름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녀들이 새롭게 들고 온 '트리플'에서도 '커피 프린스'의 흔적은 쉽게 발견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멋진 남성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온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겪는 달콤한 로맨스를 다루었다. '트리플' 역시 멋진 세 남자들, 즉 신활(이정재), 조혜윤(이선균), 장현태(윤계상)가 함께 사는 공간에 이하루(민효린)가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커피 프린스 2호점'에 해당하는 판타지 공간 속에서 피겨 스케이팅의 꿈을 키워나가는 이하루는 멋진 세 남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로맨스를 키워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저 마다의 매력을 보여주는 세 남자와 또 등장할 젊은 미소년 지풍호(송중기)는 이 드라마의 멜로 구조를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장선으로 보게 해준다. 순정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남성들이 얼마나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인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트리플'은 피겨 스케이팅의 기술을 뜻하는 용어이면서 동시에 이 세 커플(신활-조혜윤-장현태와 이하루-최수인(이하나)-강상희(김희))의 로맨스를 뜻하기도 한다.

'트리플'의 두 번째 기대감은 커피라는 문화적 코드에서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좀 더 동적인 예술적 코드로 바뀌면서 좀 더 다이나믹해질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정아 작가는 이러한 동시대적 문화적 감수성을 이야기의 향기로 피워낼 줄 아는 작가이며, 이윤정 PD는 마치 트렌디한 잡지를 구성하듯 경쾌하게 그 감수성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커피 자체가 드라마의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아름다움과 힘이 절묘하게 예술적으로 엮어진 새로운 문화코드는 '트리플'에 어떤 아우라를 형성한다.

피겨 스케이팅은 운동과 예술의 접목이 그 정점에 서 있는 스포츠다. 거기에는 기예를 방불케 하는 기술이 있고, 파괴력이 넘치는 힘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힘과 기술을 예술로 만드는 음악과 율동이 있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가 현재 각광을 받는 것은 물론 김연아 선수 같은 세계적 스타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로마저 승화되어 있는 이 스포츠 자체가 갖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미 '태능선수촌'으로 스포츠를 다룬 전적이 있는 이윤정 PD가 이 미적인 운동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도 이 드라마에 걸게 되는 기대의 하나다.

세 번째 기대감은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트리플'만의 승부의 세계에 대한 것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말 그대로 경쟁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의 판타지를 마음껏 그려냈다면, '트리플'은 끊임없이 주인공들이 경쟁 속에 놓이게 되고 그것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성장 과정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된다. 남자 주인공들은 광고의 세계에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인 이하루(물론 코치역을 하게 되는 최수인을 포함하여)는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승부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가진 조금은 자폐적인 판타지(경쟁이 배제된 공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를 '트리플'이 좀 더 열려진 세계 속에서의 판타지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경쟁 관계 속에서의 판타지란 때론 진정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콩달콩한 로맨스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현실을 동시에 등장시키는 것. 이것이 '트리플'에서 느껴지는 세 번째 기대감이다.

물론 이 세 가지 기대감은 말 그대로 기대감일 뿐, 아직 이루어진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가 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연출했던 판타지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그 지점에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트리플을 하기위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결국엔 해내는 이하루처럼, 과연 드라마도 이 세 가지 기대감을 동시에 넘는 트리플을 성공해낼 수 있을까. 빙판을 가르는 스케이트의 사각거림처럼 그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사극에서 아역이 주목받는 이유

'선덕여왕'의 초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 중심에 선 인물들은 미소 속에 숨겨진 섬뜩한 악역 미실(고현정)과, 그 정 반대편에 서서 어린 시절을 사막에서 보내고 있는 어린 덕만(남지현)이다. 미실은 이 사극이 앞으로 수행해 나가야할 전체 미션에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을 하고, 어린 덕만은 조금씩 그 미션을 향해 나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극의 시점이 악역이 아닌 선한 우리 편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주목받는 인물은 덕만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사극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아역에 실리는 엄청난 무게감이다. '태왕사신기'에서 어린 담덕 역할을 통해 유승호라는 배우를 얻었던 것처럼, '선덕여왕'의 어린 덕만을 통해서 남지현이란 배우를 얻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거대한 운명을 다루는 사극의 스토리 속에서 그 운명의 첫 걸음을 걸어 나가는 아역은 그 자체로도 특별한 아우라를 갖게 마련이다.

이들은 탄생부터 신화적이다. '태왕사신기'의 담덕이 쥬신의 왕이 될 운명을 점지해주는 왕의 별과 함께 태어난 것처럼, '선덕여왕'의 덕만은 '일곱 개의 북두칠성이 여덟이 될 때 미실에 대적할 영웅이 나타난다'는 신탁을 받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신탁은 탄생부터 이미 이루어진 셈이다. 덕만이 선덕여왕이 된다는 것은 이미 사극의 시작부터 예고되는 일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덕만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오르느냐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 덕만은 탄생의 신탁이 주는 아우라와, 후에 선덕여왕이 된다는 기정 사실이 주는 아우라를 모두 갖고 사극에 등장한다. 그 성장과정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어린 덕만이 자신을 살해하려는 자들로부터 도망쳐 지내고 있는 중국의 사막과 훗날 돌아와 여왕의 자리에 오를 신국(신라)과의 거리만큼 덕만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어린 덕만은 기대감에 부응할 만큼 남다른 지혜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 '돌 뽑기 미션'이나 서역 상인들과의 자유로운 교류 등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그를 여전히 쫓는 터미네이터 같은 자객과의 대결은 어린 덕만의 존재감을 더욱 높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캐릭터에 부여된 아역 덕만이 갖는 매력을 그걸 맡은 연기자가 100% 소화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남지현은 그런 면에서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배우로 주목된다. 특별히 연기하는 것 같지 않는 천진함에 절절함이 묻어나는 눈빛을 보여주는 남지현은 어린 덕만이 겪어야 하는 고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씩씩한 태도를 제대로 연기해 내고 있다. 이로써 사실상 사극의 한 축을 이루어야 하는 선한 우리 편의 존재감은 확실히 살아나고 있고, 이것이 미실의 악역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이 사극의 초반 시청률 상승의 주원인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들어 이처럼 사극에 아역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사극이 부여하는 아역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며, 또 한 편으로는 그걸 연기해내는 아역들의 연기력이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성인 역할을 할 이요원은 어쩌면 남지현의 아역 연기를 통해 한층 부담을 느끼게 된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극을 통해 마치 배우의 운명을 신탁 받은 것 같은 또 한 명의 아역 연기자를 얻었다.

신구세대를 아우른 '찬란한 유산'의 판타지가 말해주는 것

'찬란한 유산'이 그리는 세계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제 아무리 올바른 기업관을 가진 사업가라고 하더라도 제 혈육이 아닌 제 3자에게 기업을 물려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신문지상에 연일 보도되는 편법 증여의 문제는 그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찬란한 유산'의 풍경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론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한편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젊은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찬란한 유산'의 은성(한효주)은 신데렐라로 여겨질 만큼 행운아다. 그녀는 장숙자 여사(반효정)와의 특별한 인연(그것도 단 일주일의 인연)을 통해 절망의 끝에서 엄청난 희망을 부여잡은 인물이다. 물론 그녀는 그저 유산을 물려받아 호의호식하겠다는 장숙자 여사의 후세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녀가 잡은 행운은 혈연, 학연, 지연 같은 운명적 고리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로 볼 수 있다. 각종 연줄이 거미줄처럼 쳐진 현실에서 공평한 기회란 역시 한낱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찬란한 유산'은 이처럼 두 가지의 판타지를 쥐고 달려간다. 그 첫 번째는 유산만을 바라는 철없는 혈육을 내치는 장숙자 여사로 대변되는 판타지다. 아무리 못나도 자식에게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 하지만 판타지를 통해 '찬란한 유산'은 그 가려운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준다. 환이(이승기)와 그 가족들 앞에서 은성에게 진짜로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자리는 심지어 복수극의 그것처럼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두 번째 판타지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사회에서 맘껏 뜻을 펼치는 고은성으로 대변되는 판타지다. 시험대로 제시될 2호점을 살리는 과정은 사실상 이 땅의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의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이 판타지적 존재를 심정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 것은 그 캐릭터가 가진 고운 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산, 재산만을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백성희(김미숙)와 유산 상속만을 꿈꾸는 환이네 가족과의 대비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은성은 실로 노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환이와 은성 사이의 멜로가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노력하는 모습이 먼저 그려지고, 환의 마음이 그 모습에 점점 흔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긍정의 드라마가 신구 세대를 모두 끌어안는 이유는 바로 이 두 판타지가 하나로 엮여져 있기 때문이다. 장숙자 여사와 고은성의 끈끈한 관계는 두 판타지의 고리를 보다 강력하게 연결해주고, 대중들을 그 세계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다. '찬란한 유산'이 타 드라마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쉽게 30%의 시청률을 돌파한 것에는 그만큼 우리네 심연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이 판타지들의 힘이 강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정석적인 이야기에 충실한 '찬란한 유산'의 성공은 따라서 그 정상적인(정상적이어야 하는) 일들이 판타지로나 존재하는 현실을 거꾸로 드러내준다. 올바른 기업관이나 실력과 노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는 우리에게는 판타지에 불과한 것일까. 주말 저녁 이 찬란한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한 편으로 씁쓸함이 느껴졌다면 이것이 바로 그 정체가 될 것이다.

한효주, '찬란한 유산'에서 빛을 발하는 이유

'찬란한 유산'에는 이질적인 두 세계가 공존한다. 그 하나는 철부지 같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착한 환(이승기)의 가족 속에서 은성(한효주)이 고난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빛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뒤로는 엄청난 비밀과 죄로 얼룩져 있는 승미(문채원)네 가족으로 인해 숨겨진 진실이 은성을 고통 속으로 빠뜨리는 어둠의 세계다.

이 두 세계의 교차는 이 드라마를 승승장구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빛의 세계가 긍정의 힘으로 대중들의 공감을 서서히 끌어올린다면, 어둠의 세계는 이 조금은 밋밋해질 수 있는 극에 계속해서 자극을 준다. 드라마가 일일드라마와 미니시리즈가 적절히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은성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하려는 장숙자(반효정)여사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일일 가족드라마의 속성을 가지지만, 은성에게 살아있는 아버지와 버려진 동생의 진실을 숨기려는 계모 백성희(김미숙)의 이야기는 미니시리즈를 속성을 가진다.

은성의 밝은 생활이 묻어나는 일일드라마 같은 편안한 느낌에 젖어 있다가, 갑자기 죽었다 믿었던 아버지가 백성희의 집을 찾아 얼굴을 들이미는 장면에서는 스릴러적인 긴박감이 넘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연기자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두 가지 세계에 걸쳐 있다. 즉 한 쪽에서는 웃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울어야 하며, 때론 그 두 감정이 한 상황 속에서 보여지기도 해야 한다.

한효주의 연기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 두 세계의 교차점에 그녀가 연기하는 은성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은성은 밝고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면서도 그 속에는 깊은 아픔을 품고 있어야 한다. 동그랗게 뜬 눈은 명랑함을 연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드러난 진실로 인한 충격을 표현해야 하고, 아련한 눈빛은 어떤 고마움과 사랑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숨겨왔지만 내면에 자리한 깊은 슬픔을 담아내야 한다.

이제 스물 두 살의 연기자, 한효주가 연기하는 은성이 가진 감정의 스펙트럼은 이처럼 넓다. 하지만 이 복합적인 스펙트럼을 가진 '찬란한 유산'이 어쩌면 한효주에게는 '제 물'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윤석호 PD의 계절 연작 마지막 편인 '봄의 왈츠'를 통해 얼굴을 알렸지만 그 작품 속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그다지 살아나지 않았다. '봄의 왈츠'의 박은영은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처럼 역시 내면에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가진 생활력 강한 여성이지만 캐릭터 자체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윤재하(서도영)에 이끌리는 면이 많았다.

한편 '일지매'에서의 은채는 캐릭터가 너무 단선적이었다. 한효주가 가진 또 한 면인 내면적 아픔은 이 드라마에서는 드러나지 않았고 오로지 쾌활하고 밝은 모습만 비춰졌다. 오히려 그녀의 연기를 담아내주었던 것은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였다. '여자 정혜'와 '러브토크'로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를 포착해내기로 유명한 이윤기 감독의 이 영화에서 한효주는 그 슬픔과 쾌활이 뒤섞인 아련한 눈빛을 선보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요구하는 '찬란한 유산'은 그러나 한효주에게는 자기 옷 같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장숙자 여사 앞에서는 일일드라마가 보여주는 며느리감의 면모를 보여주고, 철부지 환이 앞에서는 그 마음을 뒤흔드는 멜로의 여성상을 그려낸다. 악녀인 계모 백성희 앞에서는 복수를 외치는 분노의 얼굴을 끄집어냈다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준세(배수빈) 앞에서는 싱그러운 미소를 피워낸다. '찬란한 유산'은 나이는 젊지만 연기는 이미 물이 오른 한효주라는 배우를 발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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