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약국집’vs‘찬란한 유산’vs‘2009 외인구단’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클럽’ 이후 잠시 주춤했던 주말드라마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주 KBS ‘솔약국집 남자들’은 24.9%(AGB닐슨)로 주말 TV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이제 막 시작한 SBS ‘찬란한 유산’은 단 2회만에 19.6%를 기록하며 주말드라마의 새 강자 자리를 예약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부활한 MBC 주말 자정드라마로 이현세 원작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극화한 ‘2009 외인구단’이 시작된다. 그 3사3색의 드라마가 가진 특징들은 무엇일까.

먼저 첫 스타트를 끊은 ‘솔약국집 남자들’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 형식에서도 늘 대중성을 인정받아온 딸 부잣집 이야기를 아들 부잣집 이야기로 뒤집었다. 약사, 의사, 기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지만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어딘지 하자가 있어 보이는 솔약국집 아들들의 좌충우돌 결혼 성공기. 자극적인 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너무나 건전해 보이는 이 드라마는 바로 그 무자극성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자극을 뺀 대신, 아옹다옹하는 시트콤적인 코믹함이 부각되었다.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볼 수 있는 진짜 가족드라마.

‘찬란한 유산’은 고전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유산,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고전적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보아도 늘 흥미로운 소재라는 의미에서다. 아버지의 죽음(실제로는 살아있지만)으로 인해 가진 것 하나 없이(장애가 있는 동생까지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은 은성(한효주)이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보험금을 가로챈 비정한 계모의 삶과 대비되면서 극적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승기의 드라마 외도도 흥미롭고,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한효주의 연기도 반갑다.

‘바람의 화원’을 빛낸 두 얼굴, 문채원과 배수빈의 현대극 속 변신도 관전 포인트다. 진정한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라는 통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걸 다루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MBC가 자정 시간대에 해왔던 주말드라마는 지금껏 대부분 그 소구대상을 중년 여성 시청층에 맞춰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 다시 시작하는 주말 자정드라마는 그런 색채를 버리고 좀더 넓은 시청층을 겨냥하고 있다. ‘2009 외인구단’은 까치 엄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현세의 만화로 특유의 남성적인 굵직한 면모를 기대하게 만든다. 야구라는 이색적인 소재 자체가 시선을 끌고, 거기에 비주류와 주류가 부딪치는 사회극적인 요소가 공감을 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오혜성의 사랑이 지금 시대에 얼마만큼 어필할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바로 그 점이 어쩌면 오히려 포인트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방송3사가 내놓은 주말 드라마들에 집중되는 관심은 그것들이 모두 과거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공식에서 한 걸음 정도씩은 앞서 있기 때문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전형적인 가족드라마 틀에 아들 부잣집 이야기라는 새로움을 더했고, ‘찬란한 유산’은 고전적인 스토리에 보다 극적인 구성으로 흥미진진함을 더했다. ‘2009 외인구단’은 이미 성공한 만화원작이 갖는 안정적인 힘 위에 드라마로서는 새로운 야구라는 소재를 사회극, 멜로, 휴먼드라마의 형태로 엮은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주말이 가진 편성적 특성을 감안하고 볼 때, 이 안정적인 면과 새로운 시도가 공존하는 주말드라마의 선택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주말극의 양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 어느 것을 선택하든 일정 수준 이상의 즐거움을 확실히 챙겨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방송3사의 주말드라마. 시청자들의 주말 밤은 이로써 한층 더 다양해졌다.

‘그바보’, ‘시티홀’, 그들에게서 보이는 전작의 흔적

새로 시작한 두 편의 수목극, ‘그저 바라보다가(이하 그바보)’와 ‘시티홀’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드라마다. 모두 코믹극인데다가 공교롭게도 둘 다 영화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 ‘그바보’에는 황정민과 김아중이 등장하고, ‘시티홀’에는 차승원이 나온다. 영화배우로서 이미 자신들만의 색채를 확실히 갖고 있는 이들이기에 드라마는 첫 회부터 흥미진진하다.

‘그바보’는 한지수(김아중)라는 톱스타와 구동백(황정민)이라는 우체국 직원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로맨틱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너무나 순수해 심지어 바보 같은 남자 구동백 역할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이 드라마에 확실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티홀’은 시청 공무원인 신미래(김선아)와 부시장으로 새로 부임한 조국(차승원)이 엮어 가는 지금까지 드라마로서는 좀체 접하기 힘들었던 정치라는 소재를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낸 드라마다. 코믹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두 사람의 호흡이 드라마를 톡톡 튀게 만든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 작품들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서 전작의 향기가 묻어난다는 점이다. ‘그바보’의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을 닮았고,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너는 내 운명’과 ‘미녀는 괴로워’가 하나로 엮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도 있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에서 자신보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한 여자를 죽어라 사랑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쩌면 내게 이런 일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톱스타를 사랑한다. 반면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에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한 남성을 신데렐라로 만드는 존재가 된다. 이 역전된 캐릭터의 상황이 한 드라마에서 엮어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바보’는 충분히 흥미를 끄는 작품이다.

한편 ‘시티홀’에서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를 떠올리고 하고, 차승원은 그가 해왔던 많은 코미디 영화의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차승원은 코믹 작품 속에서 어떤 일관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시티홀’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그바보’와 달리 전작의 캐릭터들이 가졌던 위치를 고수한다. 즉 김선아는 여전히 신데렐라를 꿈꾸고, 차승원은 폼생폼사를 지켜려다 망가진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를 꽤 안정적인 느낌으로 바라보게 한다. 기대했던 부분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채워주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 속에 등장하던 이들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에 드라마에 나오게 된 것은 영화계에 떨어진 불황의 그늘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영화 제작 편수는 줄어들었고, 톱스타들마저도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들의 드라마 출연은 시청자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들의 등장이 막장으로 치닫거나, 혹은 늘 안전한 틀에 머물고 있는 드라마에도 어떤 자극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솔약국집...’, 딸 부잣집에서 아들 부잣집 시대로

‘딸 부잣집’은 여전히 가족 드라마의 단골 소재. 호평을 받고 종영한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도 딸 부잣집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이들 딸 부잣집 드라마에 역시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부잣집 아들이다. 이 서로 다른 계층의 집안이 얽히는 이야기는 신데렐라 모티브를 자극한다. 즉 ‘딸 부잣집 드라마’란 ‘부유하지는 않지만 딸들이 많은(그래서 그게 재산인!)’ 가족의 딸 시집보내기가 메인이 되는 드라마가 된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시작한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에는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아들 부잣집인 솔약국집 네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인 이 드라마에는 집안 좋고 잘 나가는 부잣집 엄친아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어머니인 배옥희(윤미라)의 속만 푹푹 썩이는 아들들만 가득하다. 이름과 잘 어울리는 이 네 아들들은 모두 결혼 문제에 있어 하자(?)가 있어 보인다.

진풍(손현주)은 약사지만 나이 사십의 혼기를 놓쳐버린(?) 맏아들. 사람으로만 보면 진국이 우러나는 인물이지만 외모나 나이로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내다. 둘째 대풍(이필모)은 소아과 의사로 이 집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들이다. 큰 소리 뻥뻥치는 스타일이지만 실속은 없어 보인다. 셋째 선풍(한상진)은 방송사 기자지만 착해 빠지기만 했지 어딘지 현실적으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어수룩한 인물이고, 넷째 미풍(지창욱)은 재수생으로 성별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성 취향적인 인물이다.

요즘 뜬다는 남데렐라(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그것은 경제적인 의미, 즉 신분상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수생인 넷째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사에 의사에 기자인 그럴 듯한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남데렐라란 경제적 의미보다는, 이 드라마가 내세우는 결혼이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해주는 여성들을 만난다는 의미가 강하다.

바로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이제는 달라진 남녀 관계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맥락을 띄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이 드라마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다른 위치에 선 남녀를 다룬다기보다는, 그저 결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달라진 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물론 현실적인 결혼이 어찌 계층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있겠냐마는 이 드라마는 기존 여러 딸 부잣집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대비되던 빈부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뒤편으로 밀어내고 대신 성향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아들 부잣집을 다루면서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 사고관을 벗지 않고 있다(남자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존재로 그려진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혹은 남녀 간의 사랑, 결혼에 있어서 이제 그런 경제적인 차이의 문제는 촌스러운 어떤 것이 되었다는 현실적인 반증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느 것이든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의 이러한 위치가 보다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트콤에 가까운 코믹한 터치는 이 드라마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해준다.

딸 부잣집을 뒤집어 아들 부잣집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를 가지고 섣불리 뒤집혀진 남녀 관계를 얘기하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남성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이 개인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결혼에서도 성공(물론 그것이 여성들에 의한 구원일지라도)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핏줄로 세습되는 부잣집 아들의 식상한 이야기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것이 부잣집 아들 이야기보다 아들 부잣집 이야기가 좋은 이유다.

‘카인과 아벨’, ‘미워도 다시 한번’, 가족의 힘 여전

종영한 수목극 ‘카인과 아벨’과 ‘미워도 다시 한번’은 장르적으로 보면 상이한 드라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그 구조는 비슷하다. 두 드라마는 모두 그 중심에 뒤틀어진 가족사가 있으며, 그 가족 내에서 사랑 받기 위해 대결구도를 벌이는 인물들이 있고,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이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 본래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족이 있다. 결국 이 두 드라마는 스타일과 장르가 달랐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았던 셈이다. 그것은 우리 드라마의 영원한 주제, 가족이었다.

‘카인과 아벨’의 엇갈린 가족사는 형이 동생을 죽이려 하고, 어머니(물론 친어머니는 아니지만)가 자식을 죽이려 하며, 형이 동생의 여자를 뺏으려 하고, 어머니가 자식의 유산을 가로채려하는 파국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부모 대에서부터 시작된 연원이 자식대로까지 반복되는 이 불운의 가족사는 저 제목이 말해주듯 꽤 오랜 전통(?)을 가진 본원적인 스토리 라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카인과 아벨’이라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그 스토리가 가진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종영에 이르러 이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를 정리하면 ‘사랑 받기를 갈구하는 자들을 구원해주는 행복했던 기억’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혜주(김해숙)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선우가 결국 비뚤어지게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이고, 그 과정에서 사랑을 독차지해온 것처럼 보인 이초인(소지섭)이 사지에 내몰렸다가 살아 돌아와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리는 이야기다. 이초인의 마지막 진술로 보자면 이런 아픔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누구나 하나쯤은 있는 ‘행복했던 기억’이 된다.

그간 접어두었던 기억의 문제는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면서 다소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렇게 제시되는 메시지는 사실 이 드라마가 가진 힘을 설명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메시지를 떼놓고 보면 이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파괴 직전까지 내몰리는 한 불행한 가족사라고 볼 수 있다. 해체되는 가족에 대한 집착, 가족 구성원으로 편입되려는 안간힘 같은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핏줄과 가족에 대한 드라마의 집착은 왜 우리네 드라마에 파탄난 가족들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우리네 드라마의 전형적인 핏줄 정서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1968년 정소영 감독이 동명의 원작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파국적인 가족이야기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스타일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반복된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복잡한 가계도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명진그룹 회장인 한명인(최명길)은 남편 이정훈(박상원)사이에 아들 이민수(정겨운)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민수는 이정훈의 친아들이 아니고 한명인의 첫사랑의 소산이며 한편 이정훈과 내연관계에 있는 은혜정(전인화)은 그와의 사이에 딸 수진(한예인)을 두고 있는데, 사실은 숨겨진 딸 최윤희(박예진)가 하나 더 있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한 명씩 과거에 숨겨져 있던 가족과 관련된 인물들을 하나씩 불러들임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 첫 번째는 이정훈의 숨겨진 내연녀 은혜정이고 두 번째는 죽은 줄 알았던 한명인의 첫사랑이며, 세 번째는 은혜정의 숨겨진 딸 최윤희다. 실로 제목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 끄집어내 뒤틀렸던 가족사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욕망이 이 드라마가 굴러가는 진짜 힘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소환된 인물들은 끊임없이 현재 유지되어 있는 가족을 뒤흔든다. 과거와 현재의 충돌,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하는 가족, 그리고 어떤 화해(어떻게든 되어야만 하는). 이것은 고전적인 가족극의 전형이다.

종영하는 두 드라마는 모두 공교롭게도 이처럼 뒤틀린 가족의 제자리 찾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러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어딘지 급하게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이들 드라마들의 힘이 끊임없이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그래서 그걸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반대급부의 힘까지)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들 드라마가 주목한 것은 그 끊임없이 파탄 일로를 달리는 가족들의 대결과정 그 자체이지, 어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결말이나 메시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끈끈함은 이번 종영하는 이 두 드라마를 통해서도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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