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남의 광장' 한돈 특집이 보여준 공익예능의 가능성

 

한때 MBC <느낌표!>나 <일밤> 등에서 시도했던 이른바 '공익예능'은 좋은 취지가 갖는 힘이 얼마나 큰 가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너무 의미에 치중하다 보니 재미를 위한 요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공익예능'은 조금씩 사라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맛남의 광장>을 보다보면 사회적 공감대를 더한 색다른 '공익예능'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는 쿡방에 먹방 심지어 홈쇼핑을 해도 훈훈하고 기분 좋은 방송이 가능하니 말이다.

 

<맛남의 광장>이 이번에 시도한 '한돈 특집'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급식과 식당 영업이 중단되면서 한돈농가들이 처하게 된 심각한 현실을 공감하며 시작됐다. 많이 팔리지 않는 뒷다리살 같은 국산 후지의 재고가 4만5천 톤에 이른다는 것. 백종원은 결국 선호부위인 삼겹살에 집중되는 소비는 그 가격을 올리고 빈선호부위의 재고를 만들게 되며, 삼겹살은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수입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국내 한돈농가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 

 

대한한돈협회와 한돈자조금 관계자들이 백종원과 <맛남의 광장> 제작진들과 머리를 맞대고 긴급회의를 하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적재된 국산 후지의 재고들을 밀키트나 가정간편식 등을 통해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 그래서 시작된 것이 뒷다릿살을 이용한 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찌개와 탕에 어울리는 햄을 개발해 대량생산한 이른바 'K햄'은 영업왕(?) 백종원의 영업으로 다양한 판로들을 만들었다. 물론 이렇게 팔리는 햄을 통해 남는 수익금은 전액 기부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맛남의 광장>은 방송이 갖는 선한 영향력은 물론이고, 백종원이 갖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까지 활용했다. 유통업체의 판로 도움은 물론이고 회사들의 선물세트 구입 그리고 심지어 방탄소년단이 참여하는 홍보까지 더해졌다. 이런 힘이 하나로 모여 대형마트에서는 뒷다리살과 K햄이 완판됐고 온라인 쇼핑몰도 등록하자마자 다 팔렸고 해외에서도 구입 의뢰가 이어졌다고 한다. 

 

<맛남의 광장>은 매회 새로운 '맛남이(식재료 주인공)'를 선정해 대중적인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음식개발을 백종원과 출연자들이 대결구도하듯이 보여준다. 그것은 색다를 것 없는 우리가 늘 봐왔던 쿡방이다. 또한 '백야식당' 같은 코너는 백종원이 그날의 '맛남이'로 만들어주는 음식들을 출연자들이 맛보는 코너로 역시 배경만 달라졌을 뿐, 쿡방과 먹방의 연장선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똑같은 쿡방, 먹방이라고 해도, 공익예능이 갖는 사회적 공감대가 더해지기 때문에 이 평이함이 특별해진다. 보는 것으로 또 그 요리법을 배워 그 소비에 참여하는 것으로 어려운 농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부가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한돈특집에서 마련한 '맛남 라이브 쇼핑'은 한돈 뒷다리살로 초간단 불고기와 카레 그리고 짜장라면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서 3Kg짜리 뒷다리살 세트를 2만2천원에 판매했다. 라이브 쇼핑이 열리자마자 1000세트가 완판되고 25분만에 2000세트 그리고 종료 직전까지 3000세트가 나갔다. 방송에서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하는 홈쇼핑이지만, 그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에 이마저 즐거울 수 있었던 것. 

 

<맛남의 광장>의 공익예능이 흥미로운 건 소비자들의 참여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착한 소비'라는 공익적 요소는 그런데 방송 역시 색다르게 보이는 힘을 발휘한다. 평이할 수 있는 쿡방, 먹방 심지어 홈쇼핑까지 달리 보이게 해주니 말이다. 좋은 취지가 만들어내는 의외로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사진:SBS)

'우이혼', 이혼이 아닌 재혼을 뜬금없이 다룬다는 건

 

최고기와 유깻잎의 '재결합' 운운하는 방송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나마 좋게 봐주려고 했던 시청자들이 많았을 게다. 하지만 김동성과 인민정을 출연시키고, 아예 대놓고 '특별판'으로 '우리 재혼했어요'라고 붙여 놓은 걸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싶다.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에 김동성과 인민정 커플이 등장했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커플이다. 두 사람이 이혼한 부부 사이가 아니고, 각자 이혼한 사이이며 그 후 다시 만나고 있는 커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재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별판'이라고 굳이 붙인 건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들도 이들이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김동성은 전처와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못해 '배드파더스'에 오르며 논란을 일으켰고, 갖가지 불륜 논란과 전 정권 국정농단에 관계된 인물들과의 논란까지 벌어졌던 인물이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것인지 <우리 이혼했어요>에서는 김동성이 방송 출연하는 것에 대해 어머니도 걱정하는 모습을 비췄다.

 

물론 방송에 나오면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가 그 이유였지만, 그건 어떤 이유에서건 김동성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걸 뜻한다. 김동성은 방송 출연의 이유로 "출연료"를 들었다. 양육비를 주기 위한 출연료를 벌기 위해서라도 방송을 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김동성은 출연료 때문에 출연한다지만, 시청자들은 왜 그걸 봐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게 됐다. 방송에서는 인민정이 직접 출연하는 걸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추켜세웠지만, 시청자들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건 일종의 '변명의 장'이자 나아가 '이미지 세탁'의 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인민정은 김동성과 다정하게 앉아 "내가 아는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시청자들도 그 이야기에 공감할 지는 의문이다. 즉 사적으로는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이건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이를 방송으로 내보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많은 이들이 바라보는 다소 공적인 의미를 띄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건 재혼을 하건 그건 그들의 지극히 사적인 결정에 따르는 일이다. 하지만 재혼 과정을 방송에 내보낸다는 건, 그래도 한때 가족이었던 전처나 아이들에게도 과연 괜찮은 일일까. 물론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이들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 또한 자충수처럼 여겨지지만.

 

관찰카메라는 최고기와 유깻잎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둘 사이에 나누는 이야기와 방송에서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유깻잎도 또 시청자들도 불편하게 느꼈던 점은 '재결합'의 이야기를 굳이 방송에서 꺼냈다는 점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방송으로 나간다는 건 그 자체로 '공적'인 장에 올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동성과 인민정의 재혼 과정을 방송으로 내보낸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너무 무리한 일이 아닐까.(사진:TV조선)

'싱어게인', 오디션을 매 공연으로 만들었던 태호의 성실함

 

JTBC 오디션 <싱어게인> 톱6에는 이정권, 이소정, 이승윤, 요아리, 정홍일 그리고 이무진이 오르게 됐다. 톱10 대결에서 아쉽게도 태호, 최예근, 유미, 김준휘는 탈락했다. 사실 누가 톱6에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은 대진표가 아닐 수 없었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음악의 색깔도 달라 심사위원들로서는 곤혹스러운 톱6 결정전이었으니 말이다. 

 

<싱어게인>이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달리 느껴지는 건, 톱6가 결정됐고 그래서 나머지는 탈락하게 되었지만 저마다 각자 개성을 살린 강렬한 인상의 무대를 펼쳐 보인 가수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톱10에서 탈락한 4인만 봐도 그렇다.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만만찮은 퍼포먼스와 더불어 흔들리지 않는 가창력을 보여준 태호와, 시작부터 남다른 그루브와 끼, 편곡능력을 선보인 최예근, 여전히 가슴을 울리는 가창력을 보여준 유미 그리고 낮은 읊조림만으로도 짙은 허스키 감성에 빠져들게 만드는 김준휘가 그렇지 않았던가. 

 

특히 탈락했지만 매 무대마다 성실한 준비가 돋보였던 37호 가수 태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돌 그룹 임팩트 활동 이력을 가진 태호는, 아이돌 출신이라면 갖게 되는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준 가수였다. 아이돌 출신이라면 퍼포먼스는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다 여겨지지만, 가창까지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태호는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매 회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성실하게 준비해 보여줬고, 그러면서도 가창 역시 빠지지 않는 가수였다. 

 

유희열 심사위원이 말했듯 춤과 노래를 함께 한다는 건 두 배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부상 투혼까지 발휘하면서도 무대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오로지 '관객'들을 위한 최선을 보여주려는 태호의 태도는 보는 이들을 감복하게 만들 만했다. 선미가 눈물을 흘리고, 이승기가 "성실도 끼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준다고 말했던 건 진심이었다. 그 후로도 태호는 매 무대마다 참신한 선곡을 가져와 이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편곡해 들려줬다. 

 

톱6 결정전에서 <싱어게인> 최고의 발견이라고 할만한 30호 가수 이승윤과 대결해 2:6으로 졌지만 그가 아버지의 18번이라며 부른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은 마치 아이돌 그룹 활동을 해왔던 자신의 색깔을 온전히 담은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채워졌다. 이례적으로 백댄서들과 함께 군무를 펼치는 모습이 그랬다.

 

하지만 무엇보다 태호에게서 주목되는 점은 그의 무대에 임하는 태도였다. <싱어게인>은 다시 노래 부르기 위해 무대에 선 무명가수들이라는 그 특성 때문에 그 간절함이 남다른 면이 있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며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가수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태호가 지금껏 보여준 무대들을 되새겨보면, 그다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준비해온 걸 보여주고 들려주는 무대가 대부분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어찌 그라고 떨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게 해준 건 아마도 매 번 최선의 무대를 공연처럼 준비했던 것처럼, 무대 위에서도 자신이 아닌 관객을 위한 시간을 제공하려는 그 성실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 짤막하게 자신이 준비한 노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그대로 최선을 다한 무대를 선보이고, 당락과 상관없이 일관된 목소리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싱어게인>이 적어도 그에게는 오디션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준비해온 작은 공연들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졌지만 잘 싸웠다. 그 성실함으로 이제 다시 노래 부르는 가수로 만나게 되길.(사진:JTBC)

'아카이브K', 일회적 방송으로는 아까운 소장 가치 음악 예능

 

발라드편을 2회로 구성하며 이문세부터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에 이어 백지영, 이수영, 임창정, 김종국, 성시경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여줬을 때,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이하 아카이브K)>라는 다소 거창한 야망(?)이 엿보이는 프로그램은 기대 반 아쉬움 반이었다. 이른바 K팝이 글로벌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재까지 우리네 가요사를 제대로 아카이브 관점에서 다룬 프로그램을 보기가 어려웠다는 점에서 반가운 기대가 반이었다면, 그 짧은 시간에 1990년대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발라드의 계보를 완벽하게 그려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반이었다. 

 

하지만 3회에 1990년대 나이트 DJ와 댄스음악의 계보를 그려나가는 부분과 4회에서 이태원 미군 전용 클럽 문나이트를 중심으로 풀어낸 춤꾼들의 이야기는 <아카이브K>가 가진 진정성과 가치를 느끼게 만들었다. 사실 그토록 많이 들려졌던 90년대 댄스음악들이지만, 이 음악들의 가치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담아낸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나이트클럽의 DJ들이 주축이 되어 직접 노래를 만들고 가수 활동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가수들을 발굴해내기도 했던 그 시대의 풍경은 어쩌면 지금의 K팝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는 걸 고스란히 보여줬다. 

 

게다가 만화가 김수용이 그렸던 <힙합>의 실제 무대였던 문나이트를 중심으로 현진영은 물론이고 양현석, 이현도, 김성재, 구준엽, 강원래 같은 춤꾼들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다룬 이야기나, 이들에 의해 시작된 이른바 블랙뮤직의 흐름을 찾아가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흔히들 음악사를 다루거나 혹은 가요의 레전드를 말하면, 대형가수들 중심으로 풀어냄으로써 사실상 소외되기 마련이었던 댄스 음악 같은 장르들을 <아카이브K>가 제대로 맥락을 짚어 조명해주고 있어서였다. 

 

5회에 방영된 '홍대 앞 인디뮤직'편도 마찬가지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라는 대중적인 인디밴드의 탄생 뒤에 존재하던 클럽 '드럭'이 소개되고, 우연찮게 땜빵으로 토요일 무대에 섰다가 황인뢰 감독의 제안으로 OST를 내놓으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자우림의 마치 영화 같은 스타탄생의 과정이 담겨진다. 펑크락을 하던 크라잉넛과 노브레인과는 사뭇 다른 모던락을 시도했던 밴드들이 소개되고, 그 밑바탕에 PC통신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소통 방식이 존재했다는 걸 짚어낸다. PC통신 음악동호회를 중심으로 탄생한 델리 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 같은 밴드가 그들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어느 한 장르의 계보를 모두 담아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개되지 못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는 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발라드에서부터 댄스음악, 인디 등 다양한 음악장르들을 한 프로그램에서 아카이브 형식으로 담아낸다는 그 의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그건 K팝으로 현재 통칭되곤 있지만 사실상 아이돌 음악 정도가 우리네 가요가 가진 유산의 전부인 양 보이는 것에 대한 전복의 의미가 거기 자연스럽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K팝이라는 하나의 지칭이 생겨나기 전 무수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존재했고 현재도 그러하다는 걸 <아카이브K>는 에둘러 말해준다. 그래서 겨우 10회 분량으로 제작된 <아카이브K>는 이처럼 일회적인 방송으로 끝내긴 너무나 아까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애초 '아카이브K'라는 거창한 목표를 제시한 만큼, 좀 더 지속적인 '사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시즌제라는 좋은 형식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매년 새 시즌으로 우리네 가요사의 다양한 부분들을(혹은 지나간 것 중 빼놓은 것들까지 망라해) 조명하고 채워 넣는다면 그건 우리네 대중문화사에 있어서 실질적인 자산(아카이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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