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폭넓은 지지층을 다시 얻으려면

 

최근 들어 강호동은 아마도 죽을 맛일 게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고 진심을 다해 방송에 임하지만 그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하는 모든 예능 프로그램이 한 자릿수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과거의 그를 떠올려보면 너무 비참한 일이다. 하지만 시청률이라는 수치보다 더 힘든 건 그토록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그다지 좋은 반응이 대중들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대체 뭐가 이런 대중정서의 변화를 만들었을까.

 

'무릎팍도사(사진출처:MBC)'

예능 프로그램의 MC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행능력도 아니고 개인기도 아닌 호감도다. 그런데 호감도는 그 MC가 가진 이미지에서 생겨난다. 유재석이 현재 최고의 MC인 것은 그 호감도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행도 잘하고 야외예능에서는 신체적인 능력도 뛰어나지만 호감이 없다면 MC로 성공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호감이 있는 사람은 프로그램에서 굳이 웃음과 재미를 주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웃음과 재미에 대한 강박이 덜하다는 점이다. 최근 <무릎팍도사>에서 퇴출된 ‘비정규직’ 올밴 우승민은 대표적인 사례다. 우승민은 몇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게스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열고 듣는 역할을 주로 했다. 꿰어다 논 보릿자루가 그 캐릭터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지층이 생길 수 있었다. 어딘지 소외된 이미지는 서민을 지향하는 예능에서는 중요한 호감의 포인트다.

 

반면 호감이 덜한 사람은 정반대로 프로그램에서 웃음과 재미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그 MC가 그 프로그램에 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수근이 강호동과 함께 있을 때 최고의 장점을 발휘하는 이유는, 강호동이라는 핍박하는 강력한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가 당하는 입장에서의 호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톰과 제리가 함께 서면 그 모습 자체로 제리에게 지지가 더 가기 마련인 것처럼.

 

하지만 강호동에게서 빠져나와 홀로 프로그램에 투입되게 되면 이러한 호감의 요소가 사라지게 된다. 강호동이 빠진 <1박2일>에서 호감을 가져가는 인물들은 유해진이나 차태현처럼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 인물들이다. 부담스럽게도 <1박2일>을 초창기부터 해왔던 이수근은 프로그램을 전면에서 이끌어야 하는 역할을 억지로 떠맡았기 때문에 과거 강호동과 함께 했던 그 좋은 이미지가 잘 나오지 않는다. 결국 끊임없이 깨알 같은 유머와 몸 개그를 시도해야 하는 불리한 입장인 셈이다.

 

강호동은 잠정은퇴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호감의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서민적인’ 이미지였다. 해외가 아니라 우리네 오지를 찾아가는 <1박2일>은 그래서 강호동의 이런 이미지를 한껏 강화시켜줄 수 있었다. 그가 조금은 독재 스타일로 밀고 나가도 그것이 용인되는 것은 다 이 서민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호감의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과적으로 강호동의 이 서민적인 이미지는 깨져버렸다. 그의 가장 강력한 호감의 요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강호동은 유재석처럼 배려의 아이콘으로 이미지화되어 있지 않았다. 조금은 강하게 앞에서 밀어붙이고, 때로는 상대방을 공격함으로써 대중들이 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림과 이야기를 끌어내는 식이었다. 과거 서민적인 호감의 이미지가 있을 때는 이러한 공격조차 대중들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공격이 공격으로만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자칫 비호감만 키울 위험성이 있다.

 

강호동 본인도 이러한 대중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미지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복귀 초부터 좀 더 강인한 인상으로 밀어부치지 못했을 게다. 그는 좀 더 유재석 같은 배려의 모습을 보이려고 했고, 특히 맨 몸으로 부딪치는 노력을 통한 진정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유재석 식의 변화는 강호동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서 오히려 주목되는 인물이 김구라다. 김구라는 과거 인터넷 방송 시절의 위안부 막말 파문이라는 어마어마한 논란으로 잠정 은퇴했었지만 강호동보다 훨씬 더 빨리 예전 모습을 회복했다. 그것은 그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방송은 방송이라는 식으로 재빨리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김구라에게 굉장히 쿨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호감의 요소는 김구라에게는 MC로서 가장 소중한 불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강호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 호감도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먼저 과거에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벌면 버는 대로 드러내고 또 버는 만큼 좋은 일에도 참여하면 된다. 세금문제로 겪은 과거사를 묻어두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김구라처럼 자꾸 끄집어내 심지어 유머의 소재로도 삼을 수 있을 만큼 떳떳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 전성기 때 그가 보여준 그 강인한 모습을 다시 끌어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나야 한다.

 

대중들이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초심이 살아있어야 하고, 여전히 지지할 수 있을 만큼의 호감이 있어야 한다. 지상파라는 무대가 그 초심을 다시 살리는데 부담이 된다면 과감하게 케이블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식으로 먼저 강호동 자신의 호감도를 높이고 지지층을 넓히는 것이 우선이다. 재미와 큰 웃음은 그 다음에 주어도 늦지 않다.

막장 선생 고현정, 화나지만 공감 가네

 

성적순으로 앉히고 성적순으로 사물함도 사용하게 하며 성적순으로 꼴찌 반장을 뽑아 갖은 궂은일을 시킨다? 점심시간 배식 중에 실수로 카레를 엎지르자 남은 카레 역시 성적순으로 나눠줘 몇 명 빼고는 맨밥을 먹이고, 시험 볼 때는 화장실도 못 가게 해 결국 오줌을 싸게 만들며, 심지어 아이들의 숨은 가정사를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해 창피를 준다?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고현정) 선생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막장이다.

 

'여왕의 교실(사진출처:MBC)'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학생은 무조건 꼴찌 반장. 제목이 보여주듯 마여진은 선생이라기보다는 교실에 군림하는 여왕처럼 보인다. 이 역할을 맡은 고현정이 <선덕여왕>의 미실을 떠올리게 하는 건 그래서 당연하고, 어쩌면 오히려 이 캐스팅이 그 효과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이 막장 선생 마여진은 왜 이토록 지독하게 아이들을 어른들의 현실 앞에 내세우는 걸까.

 

만날 중학생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때리겠다는 위협을 받는 동구(천보근)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도망치거나 굴복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선생. 그 둘 다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 선생. 이제 겨우 초등학생에게 과연 할 말일까. 또 늘 코미디언 흉내를 내는 동구에게 반 아이들 앞에서 미혼모에 가출한 동구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며 “넌 진짜 동구가 되기가 두려운 거야”라고 말하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선생. 마여진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직장의 신>과 비교해 <여왕의 교실>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들 말하는데 사실 마여진 같은 선생은 실제 교실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선생님보다 더 갑이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학교로 항의하러 몰려온 학부모들을 오히려 마여진 선생이 포섭해버리는 시퀀스는 그래서 이것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지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여왕의 교실>은 도대체 뭐가 현실적이라는 걸까.

 

그것은 작금의 아이들 교육이 앞으로 아이들이 맞닥뜨릴 지독한 현실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이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차별이 어때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이 차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잖아.” “사회의 99%는 너희 부모들처럼 차별 받는 것을 한탄하며 산다.” 마여진 선생이 던지는 이 이야기는 아프게도 모두가 현실이다.

 

<여왕의 교실>이 때론 지나치고 때론 너무 가혹하다 여겨지는 건, 이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을 진짜 현실을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직시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것은 달리 보면 아동 학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꿈이라던가, 평등이라든가, 자유 같은 이상적인 가치들은 이 냉혹한 현실주의 앞에서는 심지어 무력하게까지 보인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왜 이런 냉혹한 현실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일까. 지금의 교육이 너무 안일하다는 비판일까. 성적순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교육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속내는 교육의 문제보다는 마여진 선생으로 대표되는 냉혹하게 되어버린 현실의 문제를 더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되바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순수한 아이들 앞에서까지 냉혹한 세상의 잣대를 강요하는 마여진 선생 같은 괴물을 탄생시킨 지독스런 현실을.

 

<여왕의 교실>은 그래서 청소년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잔인하지만 아이들이라는 눈높이로 다시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동구에게 “너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잔인하게 실상을 말하는 마여진 선생에게 동구의 좋은 점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선생님은 이런 동구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고 말하는 하나(김향기)는 그래서 냉혹한 현실 운운하는 어른들을 뜨끔하게 만든다.

 

<여왕의 교실>은 아이들 앞에 무시무시한 현실의 잣대를 제시하는 마여진 선생과, 그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지켜야할 가치들, 이를 테면 정의나 자유나 평등 같은 것들이 왜 소중한가를 드러내는 아이들이 대결하는 드라마다. 따라서 마여진 선생으로 대변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현실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정반대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순수와 가치를 가르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동구는 좋은 친구”라고 밝히면서 눈물 흘리는 하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졌다면 여전히 우리 어른들에게도 가능성은 있는 게 아닐까.

안티카페 차단에 대한 이중 잣대, 그 기준은 뭘까

 

<아빠 어디가>의 윤후 안티카페는 전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겨우 일곱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자체가 충격이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해당 포털은 카페에 대해 접근 차단 조치를 내렸고 운영자도 카페를 폐쇄했고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례적인 것은 대중들이 나서서 ‘윤후야 사랑해’를 실시간 검색어로 채워 안티카페의 흔적마저 지우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윤후 안티카페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안티카페는 윤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싸이 열풍으로 갑자기 스타가 된 리틀 싸이 황민우군의 피해사례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반응은 윤후 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그는 <한밤> 인터뷰를 통해 “악플을 봤는데 베트남 엄마 꺼지라는 내용”이었다고 그 상처받은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SBS <한밤의 TV연예>에 이 문제로 출연한 박찬민 아나운서는 자신의 딸 박민하에게도 안티카페가 생겨 폐쇄신청을 문의했지만 “카페를 만든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에 없앨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어째서 윤후 안티카페는 포털이 나서서 접근 차단 조치를 내리면서 박민하 안티카페에는 그러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이 이중 잣대는 어디서 나온 걸까.

 

윤후 안티카페의 차단 조치 이유에 대해 해당 포털은 “윤후는 연예인(공인)보다는 일반인에 더 가깝다고 판단해 카페에 대한 접근 차단을 결정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민하는 일반인이 아니고 연예인이기 때문에 차단 결정이 나지 않는 것인가. 사실 이 기준도 애매하다. 일반인 안티카페는 허용 안 되고 연예인 안티카페는 허용된다는 건 과연 상식적일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릴 권리는 아니지 않은가.

 

놀라운 건 윤후 안티카페에 대해 모두가 공분했던 것과, 박민하 안티카페에 대한 반응이 사뭇 다르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박민하 안티카페가 생긴 것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식의 반응들이다.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이의 순수함을 잃었다는 식의 비판도 들어있다. 안티카페가 생긴 것이 인피니트의 엘에게 박민하가 볼 뽀뽀를 한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윤후의 경우와 달리 갖가지 이유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안티카페의 존폐는 아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인기와 호감에 비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안티카페’라고 치면 무수히 많은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는 이제 청소년인 연예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김유정 안티카페는 대표적이다. 김유정은 작년 <강심장>에 출연해 자신의 안티카페에 들어갔던 경험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제 겨우 열 다섯 살. 그녀는 “어린 나이에 관심을 받아보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결국 윤후나 김민국, 황민우 같은 아이들의 안티카페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이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 안티카페는 넘쳐나고 그 대상을 아이 어른 따지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빠 어디가>로 급부상한 윤후의 안티카페도 생겼던 셈이다. 따라서 윤후 한 명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아이들마저 대상으로 삼는 안티카페의 문제를 해결했다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이 문제의 근원은 아이들까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방송 문턱을 드나들게 된 작금의 달라진 세태에서 비롯한다. 그 아이들은 천사 같고 예쁘기 그지없지만 방송은 똑같이 이들을 소비하기 마련이다. 인기를 얻게 된 그들은 그만한 팬들을 갖게 되지만 그것은 빛과 함께 그림자도 갖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팬클럽은 언제든 방향만 바뀌면 안티로 돌아설 수 있다. 팬과 안티 팬의 차이는 그 방향성의 차이일 뿐이다.

 

기왕에 아이들이 방송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상, 이 흐름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겪는 남모를 고통을 방송에 들어왔다고 해서 아이들도 똑같이 치러내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방송사든 포털이든 적어도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형돈 돈가스 논란, 무엇이 문제일까

 

‘연예인 돈가스’라는 말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정형돈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형돈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도니도니’라는 제품명, 게다가 정형돈의 캐릭터에서 비롯된 돼지의 이미지가 그를 마치 돈가스의 대명사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형돈이 이름을 걸고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누구나 이 제품의 사업주가 정형돈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홈쇼핑에 직접 나와 물건까지 팔았으니...

 

정형돈(사진출처:현대홈쇼핑)

검찰이 함량 미달 돈가스를 판매해 76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한 축산물가공업체 대표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소식. 그 때 떠올랐던 ‘연예인 돈가스’라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던 검색어는 그렇게 유야무야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한 케이블 채널의 기자간담회에서 정형돈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정형돈은 “그 부분은 회사와 따로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여기서 답변 드리기는 곤란하다”며 대답을 회피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대응방식은 옳았던 것일까.

 

사실 이런 식의 연예인이 참여한 상품 판매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연예인이 제품을 개발하거나 혹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체로 이름을 빌려주고 적당한 홍보를 해주며 제품 판매액의 몇 프로를 이익으로 가져가는 방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아마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정형돈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이름을 빌려주고 상품을 파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제품 판매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도니도니’라는 돈가스를 사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형돈이라는 인물이 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회사와 따로 이야기를 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 제품에서 정형돈의 이름과 ‘도니도니’라는 상품명은 알아도 그 회사명이 뭔지는 잘 모른다. 그만큼 소비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물건을 팔았다면 그 물건의 하자가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 측은 검찰의 함량 측정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모양이다. 즉 냉동상태의 돈가스의 무게를 그대로 재지 않고 흐르는 물에 녹이고 튀김옷을 제거하고 물기까지 짜낸 후 중량을 측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제기도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등심 함량이 162g이라면 다른 걸 빼고 실제 등심의 함량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문제는 이번 돈가스 논란으로 불거진 연예인을 내세운 상품 마케팅이 정형돈에게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로부터 허위, 과장, 기만 등을 이유로 백지영-유리, 김준희, 진재영 등이 징계를 받은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런 연예인 홈쇼핑이나 쇼핑몰 관련 문제들은 이슈화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꽤 많은 수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터넷을 쳐보면 피해사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연예인이 관련된 상품 마케팅에는 이런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

 

광고비가 결국은 제품 가격을 높여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을 내세워 하는 상품 마케팅이 결국 과도한 연예인 마케팅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상품과 서비스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번 정형돈의 경우에도 홈쇼핑과 정형돈에 무려 35%나 떼주는 바람에 원가절감 차원에서 함량을 속였을 것이라고 검찰은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홈쇼핑에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른바 방송인이 다된 전문가들을 출연시키는 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종편 예능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집단 토크쇼에 출연하는 변호사, 의사, 요리사 등등의 속칭 전문가들이 속속 홈쇼핑의 쇼 호스트로 투입되어 상품 판매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신뢰성을 상품 판매에 활용하는 것이지만, 이들이 진짜 전문가인지는 의문이다. 이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되는 방식은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방송인으로서 재미적인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든 방송인이든 자신의 명성을 빌어 어떤 상품의 대박을 기록했다면, 그만한 책임감도 똑같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연예인의 명성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들로부터 받은 명성을 이용해 대중들을 속이는 행위는 어떠한 변명에도 용납되기가 어렵다. 그것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관리까지가 책임의 범위인 것은 분명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그 연예인의 얼굴을 보고 그 말을 믿고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연예인이든 방송인이든 사업에 연루될 때는 훨씬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저 얼굴 빌려주는 것이라고 뛰어들었다가는 그 얼굴에 먹칠하는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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