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이종석, 진실과 진심을 보는 소년

 

만일 누군가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목소리)>는 바로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가정법의 드라마가 새로운 건 아니다. SF 판타지 장르에서나 판타지 멜로 등에서 자주 봐왔던 설정이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이것과는 결을 달리 하는 새로운 이종결합이 시도되고 있다. 바로 사회극과 멜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사진출처:SBS)'

끔찍한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는 수하(이종석)는 바로 그 사건 현장에서 타인의 속내를 읽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 장면을 목격한 혜성(김소현, 이보영)이 자신을 죽이겠다 협박하는 살인범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수하를 위해 증언에 나서면서 수하의 사랑이 시작된다. 결국 범인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어린 수하의 말 한 마디가 이 드라마의 사회극과 멜로가 엮어지는 부분이다.

 

그래서 수하가 누군가의 속내를 읽는다는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된다. 하나는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진심이다. 즉 진실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게 되면 드라마는 사회극으로 치닫게 되고, 반면 진심 쪽으로 기울게 되면 휴먼드라마나 멜로로 흘러가게 된다. <목소리>는 그래서 이 사회극이 만들어내는 정의의 문제를 질문하면서, 동시에 수하와 혜성의 멜로가 엮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에 대한 휴머니즘을 그려낸다.

 

사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멜로는 가장 흔한 소재이면서도 여전히 고정적으로 먹히는 소재다. 제 아무리 식상하다고 해도 멜로가 빠져버리면 보편적인 시청층을 가져가기가 어려운 게 우리네 드라마 현실이다. 그러나 정통 멜로는 역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멜로의 변형으로서 사회극이라는 보다 서민들에게 현실적으로 공감대를 줄 수 있는 장르가 덧붙여지면 드라마는 그만큼 힘을 얻게 된다.

 

달달한 수하와 혜성의 연상연하 멜로가 주는 풋풋함을 즐기면서 동시에 그들이 목격하는 사회정의의 진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진지함이 곁들여지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판타지의 설정은 멜로나 사회극이 그 자체로 빠질 수 있는 드라마의 공식을 탈피하게 해준다. 세월이 흘러 국선변호사가 된 혜성 앞에 수하가 나타나 자신의 친구의 억울함을 증명하는 방식은 구태의연한 증거 제시나 증언이 아니라 자신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수하와 혜성이라는 두 축으로 움직이게 마련이지만, 두 사람 중 더 집중되는 것은 역시 수하다. 그만이 볼 수 있는 진실과 진심이 먼저 우선되는 것이고, 그 진실과 진심을 혜성에게 전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래서 그들이 함께 어떤 문제를 풀어나갈 때 그것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 되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멜로가 작동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 드라마가 가진 거의 모든 요소들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데는 이종석이라는 연기자가 가진 매력이 절대적이다. 이종석은 <학교 2013>에서 풋풋하면서도 자못 심각한 우리네 청춘의 자화상을 잘 소화해낸 경험이 있다. 특히 장난기 어린 모습과 절절한 감정이 뒤섞인 이중적인 이미지는 그가 이 드라마에서 소화해내야 할 연상연하의 멜로와 사회극의 진지함에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종석의 이 양면을 동시에 끌어안는 이보영의 연기변신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지만.

 

단 2회 만에 <목소리>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간 수목극들이 너무 전형적인 장르의 틀 속에서 전형적인 이야기만을 전해주거나 지나치게 이질적인 것을 섞어 너무 낯설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목소리>는 멜로와 사회극을 판타지로 엮는 신선함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사랑과 정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르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묶어지는 지점이 바로 이 진실과 진심을 보는 매력적인 소년, 이종석이다.

 

케이블과 종편은 되는데 지상파는 안 되는 것

 

한 때 지상파는 특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거대 자본을 가진 케이블 방송들이 콘텐츠 경쟁력을 갖고 지상파를 위협하고 있으며, 종편들도 조금씩 자신들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들을 생산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지상파의 대응은 굼뜨기 이를 데 없다. 다양한 뉴미디어가 TV라는 올드미디어를 밀어내고, 케이블, 종편이 콘텐츠 경쟁력으로 압박해오면서 지상파의 시청률은 이미 반 토막이 난 상태가 아닌가.

 

'1박2일(사진출처:KBS)'

사극 하면 무조건 50% 시청률은 나오는 줄만 알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사극도 20% 넘기가 쉽지 않은 지금 현대극은 15%만 넘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이라고 여겨질 판이다. 그래도 30%를 넘기는 주말극들이 있지만 자극적인 설정의 막장드라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이런 드라마의 시청률을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능 프로그램은 사정이 더 안 좋다. 주중 11시대에 포진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 10% 넘기기도 힘든 실정이다. <놀러와> 같은 장수 프로그램이 폐지되었고, 한때 새로운 토크쇼로 각광받았던 <무릎팍도사>는 강호동이 돌아왔어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라고 할 수 있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은 무려 두 시간에 가까운 파격편성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15% 시청률을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tvN이나 Mnet 같은 CJ 계열의 케이블 채널과 JTBC 같은 종편의 성장은 점점 눈에 띈다. <슈퍼스타K>로 Mnet이 지상파를 포함해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상파와 케이블 사이에 어떤 벽을 허문 이후, <보이스 코리아>, <응답하라 1997>, <푸른 거탑>, <SNL코리아> 같은 프로그램들은 끊임없이 지상파 프로그램과 비교되었다. JTBC는 <무자식 상팔자>가 무려 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데 이어 <썰전>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히든싱어>는 4%대의 좋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MBN의 <황금알> 같은 집단 토크쇼는 2%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어 유사한 토크쇼들이 종편에서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다. 대중들은 지상파가 어딘지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반면, 그 틈새를 파고 들어오는 케이블 같은 지상파 이외의 채널들이 끊임없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실제로도 그렇다.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 결국은 무언가 위기 상황이나 절실함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때 잘 나가던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10% 시청률로 곤두박질 쳐도 지상파는 이를 과감히 폐지하고 새로운 예능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그 포맷이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제작 책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실적에 모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도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 지상파가 유명 MC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는 고작 리스크를 줄이는 것을 새로운 시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여기는 것이고, 문제가 생겨도 유명 MC 책임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있다. 결국 이런 복지부동의 자세는 제작진의 의욕을 꺾기도 한다.

 

유명 PD들이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이적하는 것은 이러한 회사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다. <해피선데이>에서 이명한 PD, 나영석 PD, 신원호 PD, 그리고 이우정 작가가 모두 CJ에서활동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KBS 같은 지상파 조직이 가진 한계를 일찌감치 본 것이다. 그래서 조금 리스크가 있어도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케이블로 옮겨간 것. 실제로 신원호 PD 같은 경우, 본래 영화를 전공했던 경력을 살려 <응답하라 1997> 같은 드라마를 시도해 큰 성공을 일궈내기도 했다. 이러한 인력의 유출은 지상파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최근에는 지상파에는 불가능하지만 종편이나 케이블이기 때문에 가능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JTBC의 <썰전>이 하고 있는 정치 시사 토크쇼나 예능 비평 토크쇼는 종편이라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형식이다. 또 19금과 정치 시사를 묶어서 라이브 콩트 코미디로 풀어내고 있는 tvN의 <SNL코리아>도 마찬가지다. 이런 프로그램을 지상파에서 했다면 당장 공영성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하지만 종편이나 케이블은 으레 그런 것인 양 넘어가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역차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상파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잣대는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 하락으로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 저하는 잘못된 시청률 추산방식이 야기하는 면도 크다. 지금처럼 모집단의 TV 본방만이 시청률 추산에 들어가는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프로그램을 TV 앞에서 그 시간대에 맞춰 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보고, 또 지나간 방송을 IPTV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롭게 보는 시청 패턴이 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들의 시청 패턴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의 시청률 추산은 지상파의 콘텐츠를 기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지금의 시청률이 주로 기록하는 중장년 세대에 맞춰진 콘텐츠들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이런 경향이 짙게 나타나고 있다.

 

지상파 프리미엄이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오히려 지금은 지상파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들이 있는 시대다. 결국 다매체 시대에 접어든 이상, 지상파는 콘텐츠 경쟁력을 이 변화된 환경에 맞게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지금의 시청률 추산 방식이나 지상파라는 안온한 시스템에 여전히 취해 있어서는 곤란하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상파이기 때문에 역차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상파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개발해나가는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 지상파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연과 필연이 만든 <라스>와 구라의 기막힌 재회

 

이건 마치 헤어졌던 연인이 어느 날 우연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재회한 것만 같다. <라디오스타>와 김구라의 헤어짐과 만남(?) 얘기다. 물론 사전에 MBC 측과 김구라는 <라디오스타> 출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디오스타>의 대표선수격이 김구라이며, 김구라의 대표 프로그램 역시 <라디오스타>이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복귀 후 케이블과 JTBC에서 맹활약한 김구라지만, 그 여세가 지상파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상파 바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김구라의 토크 방식이 지상파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화신>이나 <두드림>에서 김구라는 늘 하던 대로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렸을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로서는 편집되는 부분도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이런 편집된 방송은 김구라의 토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두드림> 같은 조금은 진중한 프로그램은 김구라가 들어감으로 해서 어떤 교조적인 분위기를 상당 부분 없앤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김구라만의 뾰족한 토크 스타일도 조금은 유화됐던 것도 사실이다. 즉 김구라와 <두드림>같은 지상파의 진지한 토크 프로그램과의 만남은 그다지 시너지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화신>은 어떨까. <화신>은 김구라가 들어가면서 토크 형식을 바꾸었다. 공감 설문 토크 방식에서 벗어나 신설된 ‘한 줄의 힘’과 ‘풍문으로 들었소’는 연예인이 스스로 던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와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는 토크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서 김구라의 역할은 좀 더 과감한 ‘풍문’을 끄집어내는 일일 게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미 <라디오스타>에서 즐겨 하는 것들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라디오스타>의 팀워크는 완벽한데 반해 <화신>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반면 <라디오스타>는 지상파이면서도 김구라가 자신의 토크 스타일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즉 김구라에게도 <라디오스타>는 지상파에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간 <라디오스타>에 복귀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김구라가 이해는 하면서도 늘 아쉬움을 표명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사정은 <라디오스타>도 마찬가지다. <라디오스타>는 김구라가 빠져나간 후에도 그 독특한 색깔을 잘 유지해왔다. 대타로 들어온 유세윤은 김구라의 빈 자리를 특유의 콩트식 재연으로 채워주었다. 하지만 <라디오스타>는 그러면서도 늘 김구라를 위한 빈 자리를 남겨두기도 했다. 규현이 정신적 지주라며 김구라의 인형을 꺼내 그의 존재감을 맥거핀화 하는 것은 <라디오스타>의 김구라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지상파에 김구라가 입성한다면 제일 먼저 복귀할 프로그램이 <라디오스타>라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생각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김재철 MBC 전 사장이 김구라의 <라디오스타> 복귀에 대해 불가방침을 내려 돌아올 수가 없었고,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후에도 공석이 되어버린 사장 자리 때문에 김구라의 복귀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김구라가 <두드림>에 먼저 합류하고 <두드림>이 수요일 밤 편성이 되면서 사실상 김구라의 <라디오스타> 복귀는 물 건너간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드림> 폐지가 결정된 것은 김구라나 <라디오스타> 양측에게는 기막힌 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불운하게도 유세윤이 ‘음주운전 자수’라는 해프닝으로 하차하게 되면서 MBC 내부에서도 <라디오스타>에 김구라의 복귀를 서두르는 것에 대한 확실한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물론 필연적으로 양측이 갖고 있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거기에는 기막힌 우연이 따랐다는 점에서 이것은 실로 인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김구라는 지상파에 확실한 자기의 무대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또 <라디오스타>도 그간 잃었던 대표주자를 복귀시킨 셈이다. 그간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유세윤이 아쉽긴 하지만 김구라가 만들어내는 기대감은 유세윤이 그랬던 것처럼 또한 그 빈 자리를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 김구라와 <라디오스타>의 재회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것은 그간 팬들을 못내 아쉽게 했던 끝없는 어긋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김구라의 <라디오스타>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순신> 최고 시청률 얻었지만... 아이유 호연이 아까운 이유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말했다. KBS 주말극에 한 번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이유? KBS 주말극은 기본 시청률이 20%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당시 25%에 머물고 있던 <최고다 이순신>에 대해 누군가 한 마디 농담을 던졌다. “그럼 <최고다 이순신>은 시청률이 5%네?” 모두가 웃고 넘겼지만 그 농담이 남긴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게 남아있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한때 MBC <백년의 유산>이 30% 시청률을 내면서 주말극 경쟁에서 KBS <최고다 이순신>을 따라잡았을 때만 해도 이번 KBS 주말극은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시작부터 불거진 이순신 비하 논란은 그 신호탄처럼 보였지만, 진짜 추락의 원인은 진부한 스토리에서 비롯됐다. 딸 부잣집 이야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하고 노래할 것 같은 여주인공, 그를 구원해줄 잘 나가는 백마 탄 왕자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매들 등등.

 

하지만 이렇게 주말극이라고 해도 너무나 구태의연하고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로 시청률이 좀체 오르지 않을 때, 슬슬 고개를 든 것이 ‘출생의 비밀’이다. 이순신(아이유)이 사실은 죽은 아버지의 숨겨둔 딸이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 김정애(고두심)가 그녀를 핍박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친모인 여배우 송미령(이미숙)이 그녀를 도와주는 척 하다가 다시 내치고 그 사실을 안 김정애와 송미령이 드잡이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드라마는 흘러갔다.

 

<최고다 이순신>이 최고 시청률을 회복하게 된 순간은 송미령이 막장 엄마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부터다. 그녀는 이순신이 자신의 딸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상처는 생각도 않고 세상에 그 사실을 공표해버린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엄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 자기 중심적인 행위에 시청자들이 드디어(?) 욕을 하며 드라마를 보았던 셈.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이 송미령을 찾아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는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보복 심리를 자극했다. 또한 이순신이 처한 입장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갖게 만들었다. 친 딸이 아니지만 친 딸처럼 집 나간 이순신을 찾아 헤매는 김정애의 절절함이나, 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이순신이 김정애를 만나 ‘그래도 자기가 여전히 엄마 딸’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래서 가슴 찡한 아픔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최고다 이순신>이 지금껏 해온 이야기가 결국은 ‘출생의 비밀’ 한 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드라마들이 사용하면서 이제는 그 패턴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상투적인 코드의 반복. 무려 26회나 방영되면서 이렇게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반복하는 드라마가 있을까.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가 말하듯 KBS 주말극이 시청률 프리미엄을 갖는다고 해도, 과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내 딸 서영이> 같은 작품은 저마다 분명한 메시지와 차별화된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최고다 이순신>은 어떤가. 과연 스스로 칭하듯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청률이 조금 떨어질 때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대체로 극악한 캐릭터 하나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는 속성이 있다. 송미령이라는 인물이 점점 막장으로 치닫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이러한 막장스럽고 상투적인 스토리를 어느 정도 연기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송미령을 연기하는 이미숙은 그나마 어떤 품위를 지켜내고 있고, 김정애 역할의 고두심도 모성애와 분노가 뒤섞인 역할을 잘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건 애초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이유의 연기다.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으로 충분히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공감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스토리의 진부함이다. ‘출생의 비밀’이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최고다 이순신>은 언제쯤 거기서 빠져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부터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던 걸까. KBS 주말극이 그간 쌓아놓은 고정시청층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거기에 기대 그저 그런 코드들로 꾸며진 드라마를 반복하다보면 그 고정층도 이탈할 것은 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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