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오디션 의식 말고 갈 길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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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지난해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이 남긴 여운은 여전하다.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화음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박칼린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발견했다.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합창단원들을 한 목소리로 이끌어내는 박칼린의 힘은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대중들을 매료시켰다.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하면서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은 신드롬을 만들었다.

사실 일이 커진 것이다. 신원호 PD는 하모니편이 이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힌바 있다. 좋은 기획이었지만 하모니편의 대성공은 '남자의 자격'이 그간 걸어왔던 형식들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모니편은 최근 예능에서 주목받고 있는 오디션 형식을 활용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음악이 주는 감동을 그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

이러니 사회적인 신드롬까지 만들었던 하모니편에 대한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신원호 PD의 미련이 아니라, 나아가 KBS의 미련이다. 시즌2 이야기는 설혹 신원호 PD가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방송사의 욕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하모니 시즌2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박칼린을 다시 섭외하려 했지만 무산됐고, 결국 신원호 PD는 하모니 시즌2는 시즌1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왜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하모니 시즌2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금 나오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작금의 달라져가고 있는 일요일 저녁 예능의 흐름 때문이 아닐까. MBC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몰고 온 파장은 컸다. 실제로 시청률도 상당 부분 끌어올린 이 프로그램은 이른바 오디션 형식에 대한 대중들의 주목을 이끌어내고 있다. 현재 이른바 김건모 재도전 논란으로 한 달 간의 정비를 하게 된 상황이지만, 이 여파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전망이다. 같은 시간대에 '나는 가수다'와 경쟁해야 하는 '남자의 자격'으로서는 의식될 수밖에 없다.

최근 '남자의 자격'은 '라면의 달인'이라는 소재로 일종의 오디션 형식을 선보였다. 이경규가 꼬꼬면으로 2등을 하는 등, 화제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 바탕을 들여다보면 이 소재 역시 오디션 형식에 대한 '남자의 자격'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남자의 자격'이라는 콘셉트와 '라면 끓이는 법'이 무슨 큰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 물론 제목은 '남자와 아이디어'로 붙였지만, 핵심은 라면 끓이는 법이다. 어찌 보면 라면 끓이기 대회라는 아이디어를 '남자의 자격'과 억지로 붙여놓은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이 소재에서 일찍이 탈락한 김국진이나 이정진 같은 MC들은 애초에 배제되어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만일 이경규나 이윤석마저 초기에 탈락했다면 프로그램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남자의 자격'이라는 틀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저 라면 끓이기 콘테스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되지 않았을까.

오디션 형식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이 지고 있는 건 아니다. 이 형식 속에서 지금껏 단행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을 새롭게 끌어모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남자의 자격'이라면 거기에 맞는 소재를 유지해야 한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스토리의 일관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디션 형식에 대한 것들이 의식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은 제 갈 길을 가야 한다. 합창단에 자꾸만 눈을 돌리는 것이나, 오디션 형식 자체를 자꾸 의식할 필요가 없다. 합창단 말고도 오디션 말고도 '남자의 자격'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가수들의 예능출연을 바라보는 두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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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우리 시대, 가수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해묵은 것처럼 보인다. 즉 90년대 비주얼을 내세운 기획형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했을 때도 이 질문은 등장했었다. 하지만 그 때로부터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디지털 환경을 맞아 음반시대가 저물고 음원시대가 열렸다. 가수들은 더 이상 노래만 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고 재빨리 대형기획사들은 방송사에 드라마에서부터 예능까지 아이돌들을 포진시켰다. TV 어디를 틀어도 아이돌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갈수록 '노래만 하는 가수들'이 설 무대는 점점 사라졌다.

가수들의 '예능-드라마 러쉬'가 이어졌다. 예능과 드라마를 모두 석권하고(?)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이룬 이승기의 등장은 모두들 그를 경이롭게 바라보게 했지만, 이제 아이유가 '영웅호걸'에 출연하고 '드림하이'에서 연기를 한다고 해서 호들갑을 떠는 이들은 없다. 그만큼 가수들의 예능 드라마 출연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예능 프로그램이 아이돌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노래만 하는 가수들'이 설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는 점이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세시봉 친구들'은 '놀러와'에 놀러온 후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세시봉 친구들'에서 확인한 것은 예능이 '노래하는 가수들'을 끌어안았을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토크쇼에 나온 가수들은 노래에 스토리를 엮었다. 김태원은 '네버 엔딩 스토리'의 탄생배경을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전해주었고, '세시봉 친구들'의 노래는 그들의 전설 같은 세시봉 시절 스토리와 결합되어 환상의 하모니가 되었다. 노래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노래에 스토리가 곁들여지면서 노래에 대한 집중도가 그만큼 높아졌던 것이다.

이 변화하는 가수들의 환경과 대중들의 기호를 재빠르게 포착해 예능으로 끌어들인 건 쌀집아저씨 김영희 PD였다. 그는 '나는 가수다'를 통해 '노래하는 가수들'의 노래 자체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한편, 그 노래를 위한 최고의 무대도 만들었다. '세시봉'이 우연한 발견이었다면 '나는 가수다'는 적극적인 기획의 산물이었다.

'나는 가수다'는 제목처럼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야기했다. 즉 가수들이 '서바이벌' 같은 혹독한 예능의 장치 속에 들어가면서까지 노래를 해야 하는가 하는 전통적인 가수상에 힘이 실린 비판적 관점과, 가수들도 달라진 대중문화의 환경 속에 들어와 노래해야 한다는 우호적 관점이 갈렸다. 실제로 '나는 가수다'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들의 곡은 순식간에 음원차트를 쓸어버렸다. 신보를 내고 활동을 하는 아이돌들이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가수의 예능 출연에 대한 엇갈린 두 시선. 이것은 대중음악의 예능 종속인가, 아니면 예능과의 동거인가.

이러한 대중음악과 예능이 한 틀 속에서 공존하게 된 것은 예능의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리얼 예능이 등장하면서 무언가 예능적인 기술들, 예를 들면 연기력이나 개인기 같은 것들이 그다지 필수요건이 되지 않게 됨으로써 현재 예능은 장르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인물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김태원 같은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국민할매로 불리고, 양준혁 같은 야구의 전설이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게 된 건 모두 이 리얼 예능이라는 형식 덕분이다. 리얼 예능은 거꾸로 리얼리티를 더 강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점점 더 개그맨 같은 예능 기술자(?)들에서 멀어져 새로운 분야의 인물들로 넓혀져 가는 추세에 있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이 예능의 콘테스트 형식 속으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단지 예능 출연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수들의 정체성 논란이 더 증폭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음악 프로그램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능이 해줄 때, 음악은 또한 예능에게 해줘야할 몫이 있게 마련이다. '왜 가수는 그저 노래만 하면 안 되는가', 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지만, 이미 스토리텔링과 맞물리고 대중들과 더 밀착되어 호흡하기를 요구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지적은 심지어 보수적으로까지 읽힌다.

이제 달라진 환경 속에서 질문은 '왜 가수는 그저 노래만 해야 하는가'로 바뀌고 있다. 물론 애호가들이나 전문가들은 그저 노래만으로도 가수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 속에서 대중들에게 노래는 배경음악이 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배경음악을 다시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예능의 툴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도 아니다. 한때 뮤직비디오라는 이름으로 음악이 영상의 서사를 빌려왔던 것이나, 또 영화나 드라마 OST라는 장치를 빌어 스토리텔링을 하려 했던 것들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준혁의 '남자의 자격' 출연, 성공적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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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과 강호동'(사진출처:OSEN)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 PD는 새 멤버로 양준혁을 염두에 둔 이유로, 무엇보다 사람냄새 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누구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스포츠스타면서 동시에 예능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참신한 인물이라는 것도 발탁에 큰 이유라고 했다. 사실 양준혁의 예능 진출은 예전 '1박2일'에 출연하면서 거론된 적이 있었다. '1박2일'이 광역시 릴레이 특집을 했을 때, 이종범, 양준혁, 이대호 선수가 명사로 출연했었는데, 그 때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강호동과 만나서 보여준 양준혁 선수의 재치에 '1박2일' 새 멤버로도 손색이 없겠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 물론 양준혁은 '1박2일'이 아니라 '남자의 자격'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42살이라는 그 나이대, 자신이 가장 존경한다는 이경규가 거기 있다는 것, 특히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 특별히 코미디를 연기해야 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사실 양준혁은 씨름 선수 출신으로 최고의 예능인이 된 강호동과 비교되는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는 것, 그리고 예능에 진출했다는 것과, 또 그들이 만난 멘토가 모두 이경규라는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하다. 먼저 양준혁은 스스로도 밝혔지만 강호동처럼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겠다는 마음은 없다고 한다. 트위터로 밝힌 내용을 보면 자신은 "예능인이 아니라 야구를 좀 더 알리고 홍보한다는 마음으로 어렵게 결정을 하고 나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예능인으로 나가기엔 적잖은 나이인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강호동이 예능으로 들어오던 시절과 양준혁이 예능을 하게 되는 지금의 시기가 다르다. 강호동은 당시 주류였던 코미디부터 시작했다. 즉 연기가 필요했다는 것. 하지만 양준혁 선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들어온다. 연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이 양준혁 선수의 부담을 조금 덜어준 것이 사실이다.

야구인으로서 예능에 출연한다는 건 양준혁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양준혁은 은퇴 이후 야구 해설위원으로 SBS와 계약을 한 상태. 야구 해설위원은 여러모로 야구인으로서의 양준혁 선수의 행보에 아무런 무리가 없지만 '남자의 자격'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그것도 게스트가 아니라 고정으로 출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의 팬들에게 야구를 버리고 방송에 투신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물론 각종 연예 관련 게시판은 그동안 '1박2일'이나 '무릎팍 도사', '맛있는 초대'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보여준 양준혁 선수의 모습에 긍정적인 기대를 갖는 편이지만 스포츠 관련 게시판에는 "야구 후배를 키우는데 더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도 많다. 그래서 자신은 거듭 예능인이 되려는 게 아니고 야구를 더 알리기 위해서 출연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호동의 예능 출연 성공 이후에 스포츠 선수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부쩍 많아졌다. 특히 강호동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포츠 선수들이 많이 소개됐다. '무릎팍 도사'에서는 양준혁 선수를 포함해서 이만기, 박세리, 이종격투기 선수인 추성훈 선수, 박태환, 추신수, 신지애, 장미란, 이봉주 선수 등이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알렸고, '1박2일'에서는 박찬호 선수가 명사로 출연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이만기와 강호동의 씨름 대결 역시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사실 예능에 출연하는 게스트들이 대부분 연예인이라는 점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예능 출연은 여러 모로 예능에 신선함을 더해준다. 게다가 스포츠 선수들은 특유의 끼가 충만하다. 운동선수들이 갖는 감각들은 예능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스포츠 스타들의 예능 출연이 전부 성공적이지는 않다.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강병규다. 강병규는 방송인으로 전향한 후 꽤 오랫동안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박에 협박 혐의로 방송에서 퇴출됐다. 최근에는 횡령혐의로 피소되기도 됐다. 물론 이건 스포츠 스타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연예인이든 처신을 잘못하게 되면 이런 상황을 맞게 마련이다. 한 때 야구선수 정수근씨도 현역시절부터 방송인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스스로 얘기할 정도로 방송 출연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결국 음주폭행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방송은 물론이고 야구선수로도 은퇴하게 되었다. 어쨌든 방송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 것이 대부분 실패의 사유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예능이 스포츠 스타를 선호하는 이유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연기가 필요 없는 예능 형식에서 무엇보다 진솔한 모습을 끄집어내기가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다. 스포츠 스타들 특유의 순발력과 강인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환경 역시 스포츠 스타를 선호하는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게 된 양준혁은 물론 야구인으로서의 부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담을 떨쳐내고 예능인으로서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면 그가 진짜 목적으로 내세운 것처럼 야구도 더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모쪼록 야구인으로서도 예능인으로서도 활약하는 양준혁을 보기를 바란다.

현대판 '선덕여왕' 같은 '로열 패밀리', 그 흥미진진함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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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패밀리'(사진출처:MBC)

"회장님 지시면 인권을 유린해도 되는 거야? 공회장이 무슨 왕이라도 되는 거냐구. 아니 왜 다들 정가원에만 있으면 시대감각을 잃는 거야. 지금 무슨 사극 찍어요? 멀쩡한 사람을 어디다 가둔다고 그래?" '로열 패밀리'에서 한지훈(지성)은 정가원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가족들을 쥐락펴락하는 공순호(김영애)회장이 자신과 김인숙(염정아)을 감금하려 하자 이렇게 말한다. 한지훈의 비유 섞인 대사지만 사실 이 대사는 이 드라마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로열 패밀리'는 현대판 사극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대판 '선덕여왕'이다.

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고 있는 JK그룹은 하나의 왕국이고, 공순호 회장은 그 왕국의 여왕이다. 여왕의 가신들은 가족이다. 가족적인 회사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 회사 같은 가족이라고 할까. 여왕인 공순호 회장은 이 가족들을 끊임없이 경쟁에 세운다. 그 경쟁의 전면에 나서는 인물들이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후계가 이미 결정된 것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첫째 며느리 임윤서(전미선) 그녀는 구성그룹의 장녀로 뼛속 깊이 재벌가 출신이다. 막내 며느리 양기정(서유정)은 정치인의 딸로 호시탐탐 JK그룹의 실권을 노린다. 여기에 공순호 회장의 딸인 조현진(차예련)이 끼어들면서 여왕의 후계를 노리는 싸움은 흥미진진해진다.

반면 집안도 학력도 일천한 둘째 며느리인 김인숙은 남편도 잃고 자식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겉보기에는 그저 순정가련형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서울 정도로 '준비된' 여인이다. 스토리는 바로 이 밑바닥부터 아무 것도 없는 여인 김인숙이 차츰 JK그룹의 실세로 성장해가는 투쟁의 과정이다. 바로 이 점은 시청자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준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보이는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 태생으로 신분을 계층화하는 그들 속에서 수십 년을 조용히 준비해온 김인숙이 벌이는 일종의 복수가 보는 이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이 사극에서라면 신분을 뛰어넘는 성공의 이야기는, 일의 측면에서 보면 워킹우먼들의 조직생활로 읽히기도 하고, 가족의 측면에서 보면 시집과 며느리의 대결구도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야기를 끊임없이 풍부하게 하는 건 이 여인들 옆에 또 그녀들을 돕는 측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첫째 며느리 임윤서와 막내 며느리 양기정은 그 유력한 집안이 움직이고, 여기에 맞서는 김인숙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후원해서 변호사가 된 한지훈, 조용히 그녀를 옆에서 돕는 정가원의 집사 엄기도(전노민), 또 그녀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넓혀놓은 사회적 인맥을 갖고 있다. 이들의 대결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건, 이 왕국의 여왕인 공회장이 이들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정계와 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김인숙은 JK클럽의 대표가 되며, 로엘을 JK에 입점시키는 미션을 성공시킴으로써 첫째 며느리를 무릎 꿇린다.

'로열 패밀리'가 갖고 있는 '선덕여왕' 같은 사극의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에 강력한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사극이 갖는 서열구조(즉 신분사회 속에서 신분을 넘어서려는 욕망)는 로열 패밀리의 JK그룹의 집안으로 재현된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공회장은 이 모든 걸 장악한 미실 같은 인물이고, 아무 것도 없지만 차츰 한 계단씩 정상으로 올라가는 김인숙은 덕만 같은 인물이다. 임윤서와 양기정이 미실 세력을 만드는 외척들이라면, 한지훈은 외부에서 들어와 김인숙에게 충성하는 김유신 같은 인물이다.

'로열 패밀리'가 가진 강점은 신분사회라는 사극만이 가진 극성을 재벌가 사람들 속에서 발견해낸 것이다. 마치 싸이코 패스 같은 무감정한 경제 동물들은 신분으로 세습되고, 끝없이 축적된 자본으로 저들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그 속에 인간 김인숙이 서 있다. 그녀는 묻는다. "내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 경제 동물의 왕국 속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온 그녀가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나머지 두 번째는 그들을 뛰어넘는 방식으로서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힘(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사극적인 패턴이 들어간 것은 아마도 크리에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김영현, 박상연의 영향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선덕여왕'을 통해 현재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극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로열 패밀리'는 거꾸로 현재 속에도 그래도 남아있는 사극적인 사회의 잔재를 보여준다. 이 현대판 사극은 따라서 그 자체로 비판적인 시선을 담는다. 저 한지훈이 "지금 무슨 사극 찍어요?"하고 되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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