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만 있고 스토리는 없는 '태삼'의 문제

'태양을 삼켜라'는 애초에 기대만큼 불안감도 컸던 드라마다. 그리고 그 기대와 불안감은 같은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대작, 이른바 블록버스터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가 기대만큼 불안감이 큰 이유는 그것이 볼거리에 지나치게 치우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왜 위험성을 내포할까. 그것은 드라마라는 장르와,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TV라는 매체를 이해한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는 영화처럼 볼거리가 주는 영상체험보다는 스토리에 더 치중되는 장르다. 우리가 과거 연속극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드라마는 그 끊임없이 찾아보게 만드는 스토리의 연결고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끊임없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시키는 것은 따라서 드라마가 가진 책무이자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볼거리가 드라마에 만들어주는 힘은 그다지 크지 않다. TV라는 매체 자체가 집중보다는 분산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여지는 영상만으로는 영화만큼의 몰입도를 가져오기가 어렵다. 폐쇄된 공간에 불이 꺼진 채 대형 화면과 실감 음향을 통해 온 몸으로 전해지는 극장의 볼거리는 같은 영상이라고 해도 TV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드라마의 몰입을 만들어주는 것은 볼거리가 아니라 스토리(그 속의 캐릭터들)가 만들어내는 감정이입으로서의 몰입이다.

물론 스토리도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면서 볼거리까지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인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차라리 볼거리는 조금 차치하고라도 일단 스토리가 탄탄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더 경제적인 방법이다. '찬란한 유산'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스토리가 매번 시청자들의 눈을 홀리게 만들었다. 결과는 4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나타났다.

'선덕여왕'은 대작으로서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볼거리에 치중하지는 않는 영리함을 보이고 있다. 백제와의 전쟁 신에서는 훌륭한 볼거리를 보여주었지만, 그 외에는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왜 전쟁 같은 스펙타클이 또 안 나오냐고 불평하기보다는, 덕만(이요원)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그 스토리나 비담(김남길)처럼 스토리성을 그 안에 갖고 있는 캐릭터의 등장이 주는 몰입감에 열광하고 있다. 결과는 시청률 30%를 넘어 40%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 '태양을 삼켜라'는 수목드라마들이 모두 주춤하는 사이에 시청률 1위를 여전히 기록하고는 있지만 대작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 1위는 오히려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스토리가 눈에 띄도록 매력적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서 이 드라마는 초반부에 반드시 살아나야 하는, 주인공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마저 잘 부여하지 않았다. 이것은 거의 기초적인 것이다.

주인공 김정우(지성)의 탄생배경을 보여준 초반 1,2부의 스토리는, 말 그대로 현란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그 초반 스토리를 장악했던 정우의 아버지 일환(진구)의 모험담은, 다만 정우와 혈연적 관계를 말해줄 뿐, 스토리로는 아무런 연결고리를 보여주지 못한다. 즉 주인공 정우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나 목적, 욕망과는 상관없는 드라마의 볼거리만을 나열한 셈이다.

이것은 그나마 드라마 초반에 있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방법적인 선택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떨까. 정우는 일환과의 연결고리 없이 그저 가난하고 거친 삶을 살았다는 뉘앙스로 불쑥 등장하고, 갑작스레 장민호 회장(전광렬)의 휘하로 들어간다. 정우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성공에 대한 욕망 같은 상투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수현(성유리)이 갑자기 서커스 공연을 기획한다고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것과 정우와 그 친구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프리카에서 망명한 갑부의 경호팀으로 역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것은 그 둘은 라스베이거스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하겠다는 의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설정 자체가 지나치게 무리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드라마의 애초 기획의도에 들어가 있는 해외로케의 정당성마저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 그 곳에서 잭슨리(유오성)가 도박을 하고 동시에 교차편집되어 보여지는 그의 여자가 선정적인 스트립쇼를 하는 장면은 도박과 섹스를 연결한 자극을 보여주지만, 스토리의 맥락과는 역시 떨어져 있다.

스토리가 잘 구축되지 않는 볼거리란 때론. 캐릭터가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볼거리를 위해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맥락 없이 돌아가는 라스베이거스의 풍광들이나, 비키니 입은 여인들, 그리고 가끔씩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들은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캐릭터의 심리와 깊게 와 닿지 않을 때, 그저 지나치는 파편적인 영상으로 전락한다. 계속 반복적으로 이미지가 삽입되는 '태양의 서커스'는 물론 볼거리로서는 압도적일지 몰라도, 왜 그게 그렇게 등장하는지 드라마는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 캐릭터는 당연히 살아나기가 어렵다. 모든 행동이 맥락을 찾지 못하는 캐릭터에 어떻게 시청자가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되는 미국 드라마에서도 볼거리는 스토리보다 중요하지 않다. 치밀한 스토리가 있고 그 위에 볼거리는 덧씌워질 뿐이다.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지향했던 '로비스트'가 스토리는 없이 볼거리만 나열하고 추락했던 것처럼, '태양을 삼켜라' 역시 마찬가지 길을 가고 있다. 볼거리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볼거리에만 치중하고 스토리에 소홀하게 되면 상황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볼거리가 드라마를 잡아먹는 것이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스토리텔링이 만드는 기대감

'선덕여왕'에 비담(김남길)이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든 시간은 얼마일까. 짧게 말하면 1초도 걸리지 않았고, 길게 말한다 해도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맨발만 살짝 드러냈을 때, 그리고 빛으로 나와 예사롭지 않은 얼굴로 하품을 해댈 때, 덕만(이요원)을 향해 찡긋 윙크를 했을 때 그는 이미 범상치 않은 고수의 캐릭터로 우리들 마음 속에 들어와 있었다. 후에 덕만을 해치려는 무리들을 향해 무차별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이미 시청자들의 마음에 구축된 캐릭터를 확인시켜 주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선덕여왕'의 제작진이 비담을 비밀병기라고 공공연히 발표한 시점은 작품이 시작하기도 전부터였다.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이 얘기는 그저 지나가는 얘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20회가 지난 시점에서 비담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비밀병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선덕여왕'이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하고 활용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선덕여왕'은 주제를 함축하고 스토리를 굴러가게 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내고는, 그것을 특유의 미션식 스토리텔링 속에서 가장 극대화되는 지점에 순차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선덕여왕'이 만들어내 첫 번째로 선보인 캐릭터는 미실(고현정). 이 매력적인 캐릭터는 모든 갈등과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사극의 뼈대에 해당하는 캐릭터다. 강력한 악역으로서의 미실이 구축된 후, 그녀로 인해 중국으로 도망친 어린 덕만이 고개를 내민다. 당돌하면서도 착하고 때론 대담하면서도 남다른 영민함이 보이는 이 캐릭터는 미실과의 격차를 드러내면서 차츰 대립각을 만들어낸다. 덕만이라는 캐릭터가 미실에게 근접하고 그 미실을 누르는 과정이 이 사극의 전체 얼개라면 이때 이미 이 사극의 방향성은 만들어진 셈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천명(박예진)과 유신(엄태웅)으로 이들은 각각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어 보이는 미실과 정면승부를 예고하며 부각되었다. 즉 미실의 캐릭터를 통해 구축된 이 캐릭터들은 정치적인 상황 보다는 대의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것으로 미실의 정치 장악력을 벗어난다. 한편 미실 측은 그들대로 새로운 캐릭터들을 구축하며 진영을 갖춘다. 백제와의 전쟁을 통해 그 카리스마를 보여준 설원공(전노민)이 무인이면서도 동시에 지략을 갖춘 캐릭터로 등장하고, 미생(정웅인)은 미실의 일식을 이용한 깜짝쇼를 구상해내고 때론 미실의 심중을 정확히 읽어내는 면모를 보이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부차적인 인물들이 다만 부차적으로만 활용되지 않는 것은 '선덕여왕'이 가진 캐릭터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사막에서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던 소화(서영희)와 칠숙(안길강)이 궁으로 돌아와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궁의 인물들과 그들이 가지는 일련의 만남들에 극적인 상황을 제공했다. 칠숙과 덕만의 만남, 칠숙과 미실의 만남, 미실과 소화의 만남... 이런 식으로 극은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사극의 감초로서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는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극을 만들어가는 역할도 수행해낸다.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캐릭터들이 덕만을 중심으로 잘 꿰어져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덕만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그다지 복잡하지 않게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덕만을 위기로 몰거나, 혹은 도움을 주는 캐릭터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덕만을 움직이게 만든다.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이처럼 이 사극이 가진 캐릭터 장악력과 거기서 비롯되는 능수능란한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이다. 사실상 캐릭터들은 창조되는 그 순간부터 저마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이상은 갖고 등장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비담의 등장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그 캐릭터 속에 내장된 앞으로의 이야기를 첫 등장에서부터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사에 무심한 듯 보이며, 뛰어난 무공을 갖추고 있지만 어느 편에 붙을 지 종을 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아군이라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 되지만, 적이라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덕만의 입장에서 사극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비담이란 존재가 주는 무게감은 따라서 클 수밖에 없다. 그가 미실의 버려진 아이라는 점은 이 상황을 더 흥미진진하게 한다. 혈육으로서의 입장은 버려졌다는 입장과 상충하며 비담이라는 캐릭터의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선덕여왕'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바로 이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의 운용으로 만들어지는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가장 적확한 스토리의 시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성격의 캐릭터라면, 그것이 구축되는 데 드는 시간은 어쩌면 단 1초면 충분한 지도 모른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 속에 척척 달라붙는 캐릭터의 힘, 그것이 '선덕여왕'이라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선덕여왕'의 고현정, '드림'의 박상원, '스타일'의 김혜수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은 주역은 아니지만 이 사극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사극은 바로 이 미실이라는 악역 캐릭터에서부터 그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그 힘으로 굴러가며 주역은 물론이고 주변인물들까지 이 캐릭터에 의해 창출되고 움직여진다. 이 사극이 가진 미션의 목적 자체가 바로 이 절대 권력의 소유자인 미실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은 어쩌면 이 사극의 가장 중요하고도 힘겨운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녀가 굳건히 버티고 있어야 극은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수 있다.

이것은 '드림'의 강경탁(박상원)이란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드림'이 스포츠 에이전트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로서 그 핵심적인 틀이 복수극에 있다면, 그 틀을 쥐고 있는 인물은 강경탁이다. 비정하고 철두철미한 이 악역은 청춘을 온전히 바쳐 개처럼 일해 부와 명예를 쌓아온 남제일(주진모)을 저 바닥까지 내치는 인물이다. 이로써 남제일은 이 드라마 속에서의 미션을 부여받는다. 그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저 스스로 스포츠 에이전트로서 성공해 강경탁을 무릎 꿇려야 한다. 따라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강경탁을 연기하는 박상원은 이 드라마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주말 드라마, '스타일'의 박기자(김혜수)는 이 드라마 속에서 도무지 넘어서기가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악역이다. 직장상사의 표상처럼 과장되게 그려지는 이 박기자는 이서정(이지아)이라는 말단 직원의 캐릭터를 구축해주는 인물이다. 박기자로부터 갖은 핍박을 받는 이서정은 이로써 그녀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이서정의 성장 드라마로도 볼 수 있는 이 '스타일'에서 박기자는 그 성장의 동기를 제공한다. 박기자 역할의 김혜수가 그 어떤 주역들보다 돋보이고 중심축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고현정이나 박상원, 김혜수 같은 이제는 중견이 된 연기자들이 매력적인 악역으로 돌아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악역이란 드라마의 척추 같은 역할을 한다. 극을 만들어내고 극을 움직이게 하며 심지어 거꾸로 주역을 이끌어가기도 하는 악역이 주역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역할을 맡으면서도 악역이라는 이유로 자칫 꺼려할 수 있는 이 배역을 기꺼이 끌어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여전히 주역을 맡아도 빛날만한 자신들만의 아우라를 가진 연기자들이 아닌가.

연기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스타라는 허울보다는 연기자라는 실재에 더 몰입하는 것은 실로 중요하다. 이것은 중견 연기자라는 칭호를 받는 그들에게도 그렇지만, 우리네 드라마 전체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렇다. 한때 청춘스타들로 빛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연기자들은 어찌 보면 우리 드라마의 큰 손실이기도 하다. 그들이 기꺼이 스타의 스포트라이트보다 드라마의 척추 역할로 돌아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몇몇 한류스타라는 빛 속에 여전히 서서 그 언저리를 배회하는 연기자들이 외면당하는 것은 이처럼 큰 틀 속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보다는 여전히 하고 싶은 역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의 드라마를 보는 시각은 그만큼 성숙해졌다. 그들은 이미 드라마 속에서 악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고, 심지어 그 악역 속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해내 기꺼이 박수를 쳐준다. 드라마의 성패가 그 드라마를 움직이는 매력적인 악역의 발굴에 있다고 볼 때, 어쩌면 이런 선택을 하는 중견 연기자들의 어깨 위에 우리네 드라마의 향방이 달려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악역의 중견들, 그 의미있는 귀환은 주목받고,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찬란한 유산'의 후속작, '스타일'이 갖지 못한 것

꿈의 시청률 47%를 기록하고 종영한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첫 회부터 17%의 시청률을 냈다. 아무리 대단한 작품이라고 해도 이런 수치는 이례적이다. 그런 면에서 '찬란한 유산'은 후속 작품에도 찬란한 유산을 남긴 셈이다. 하지만 정작 '스타일'은 '찬란한 유산'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서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스타일'은 먼저 외관이 화려하다. 칙릿을 추구하는 이 작품에는 무수한 명품의 이미지들이 꿈틀댄다. 명품 백과 옷들이 마치 광고로 도배된 패션잡지의 그것처럼 화면 전체를 도배하고 있고, 주인공들은 패션쇼를 하듯 연거푸 옷을 갈아입고는 마치 무대처럼 화려한 세트와, 화보의 배경처럼 판타지를 자극하는 장소에 서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 화려한 패션쇼를 연출하는 당사자들의 조각 같은 몸들은 이 화보 같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전시된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그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엣지'나는 상품들에 눈을 멀게된다. 박기자(김혜수)의 까칠함과 이서정(이지아)의 지질함이 주는 대비효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구도는 이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본 분이라면 심지어 식상하다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똑같은 설정에도 그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이 다르고, 그 인물들이 서 있는 화보(?)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그 영화의 내용보다도 시골출신 촌뜨기 주인공 앤드리아가 이것 저것 명품들을 입어보는 그 행위에 더 빠져드는 것과 같다. '스타일'은 확실히 이 칙릿의 대표격인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의 판타지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어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생활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판타지가 인물들을 통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스타일'의 스토리텔링 역시 마찬가지로 이 사회생활 속의 여성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스토리텔링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처럼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좀 더 압축적인 영화의 옷과 다를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옷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에서 비롯되는 바가 더 크다. 이 드라마에서 인물들은 지나치게 오버하고 있다. 박기자는 '엣지'를 남발하면서 확실히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만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지는 못하고 있다. 박기자가 가진 긍정적인 면들, 예를 들면 실력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서정 캐릭터에서 발견된다. 명품에 빠져 있지만, 배신한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신파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명품이 주는 쿨한 이미지와 신파가 주는 지질한 이미지의 충돌을 겪고 있다. 시청자들은 명품에 혹하는 그녀의 캐릭터에 감정이입되다가도, 남자친구 앞에서 구질구질하게 구는 그녀에게서 몰입을 방해받는다. 무엇보다 이 캐릭터는 안정되어 있지가 않고,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설정 속에 서 있다. 이서정 캐릭터가 이런 상태에 머물게 되면, '스타일'의 스토리텔링은 부각되기가 어렵다. 그 스토리텔링이 특별한 것도 아닌 이미 나와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현재 2회가 지난 '스타일'은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문제(혹은 욕망)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서정이 좌충우돌하는 그 장면들을 마음 속으로 공감하며 따라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남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드라마의 스타일뿐이다. 뭔지 몰라도 화려하고 감각적인 그 스타일.

극중에서 서우진(류시원)은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라는 이유로 박기자의 인터뷰를 거절한다. 그는 어떤 요리로서의 진정성에 도달하려고 하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그 캐릭터의 진정성을 잘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준비된 듯한 인터뷰 멘트와 역시 화보 같은 배경 속에 서 있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타일'이 서우진의 목소리로 비판했던 그 '광고로 도배한 패션잡지' 같은 상품 전시장의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드라마가 전하려는 스토리텔링의 중심을 먼저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의 키는 이서정이 쥐고 있다. 드라마에 있어서 스타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스타일만으로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찬란한 유산'은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스타일이 아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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