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의 알몸, 혹서기의 잠바, 김C가 만드는 계절감

'1박2일'에서 계절은 실로 중요하다. 계절이 주는 자연적인 도전 자체가 '1박2일'의 미션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한겨울의 차가운 날씨는 야외냐 실내냐를 정하는 잠자리 복불복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갑작스런 기상악화는 목적지 자체를 바꾸게도 만들고, 예상했던 일정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한여름에 바다에 빠지거나,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입수하는 것 역시 모두 계절이 주는 묘미와 한계를 이용한 것이다.

혹한기 대비 캠프와 혹서기 대비 캠프는 이러한 계절을 활용한 '1박2일'만의 아이템. 그런데 이 아이템에 유독 어울리는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C다. 그는 종종 '고통의 달인'으로 불린다. 복불복이 제공하는 고통스러움을 꽤 잘 버텨내기 때문이다. 매운 소스가 들어있는 음식도 별 표정 없이 잘 삼키고, 모두가 꺼려하는 번지점프도 별 감흥 없이(?) 뛰어내린다. 어찌 보면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다. 평상시의 모습 자체가 고통을 버티고 있는 듯한 고행자의 그것이니까.

이것은 김C를 종종 그 자체가 '다큐'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 진지한 얼굴은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음식을 놓고 하는 복불복게임에서 조금은 과장되거나 놀라는 리액션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그는 반응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웃음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가 '1박2일'이라는 야생 버라이어티에 위치하는 존재감이 꽤 크다는 것은 말이다.

지난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김C는 박스 하나에 의지한 채 알몸으로 방송을 했다. '1박2일'이 계절 자체를 중요한 아이템으로 삼는 혹한기 대비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추운 기온을 시청자들에게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C의 희생(?)은 프로그램에 어떤 기본적인 바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혹서기 대비 캠프에서 그가 뜨거운 날씨에 두꺼운 잠바를 입고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수박을 따거나, 잠자리에 드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캐릭터가 그것을 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두었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김C가 걸린 것은 '1박2일'로서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1박2일'에서 김C만이 가진 독특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코끼리 열 바퀴'를 돌고도 별 어지러움 없이 달려 나갈 수 있는 고통과 한계에 둔감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음식을 먹고 리액션을 보이지 않는 것은 보통은 예능을 썰렁하게 만들지만, 그는 자신의 캐릭터로 그것을 끌어들임으로써 오히려 웃음을 유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C의 이런 과장 없는 모습으로 인해 '1박2일'의 리얼리티가 한층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이 "다큐를 예능화 했다"고까지 말하는 데는 김C가 역할한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한기에는 알몸으로, 혹서기에는 두꺼운 잠바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김C의 존재감은 이처럼 크다. 그 다큐적인 얼굴과 다큐적인 리액션이 그 자체로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본업인 '뜨거운 감자'의 꾸미지 않은 듯 담담하기 그지없는 노래 속에서도, 또 이제는 하나의 부업으로 자리한 각종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렇게 보면 김C는 리얼리티 시대가 낳은 최적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 ‘선덕여왕’의 미실, ‘시티홀’의 고고해

‘아내의 유혹’에서 악녀 신애리(김서형)의 트레이드마크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눈을 치켜뜨는 것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드라마는 거친 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바로 이 연기로 시청자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등장한 악녀들은 신애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차분해졌고, 감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눈을 치켜뜨기는커녕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들이 더 살벌한 것은.

‘찬란한 유산’에서 백성희(김미숙)는 미소 짓는 악녀의 절정을 보여준다. 남편의 사고소식을 듣고는 보험금을 혼자 챙기려 배다른 딸인 은성(한효주)과 그 동생 은우(연준석)를 길거리로 내쫓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지체아인 은우를 멀리 내다버리기까지 한다. 살아온 남편을 반기기는커녕 갖은 거짓말로 은성을 만나려는 그를 절망에 빠뜨리고, 모든 것이 탄로 나자 거꾸로 은성을 거둬 유산까지 주려하는 장숙자(반효정) 여사를 찾아가 거짓말로 은성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그녀는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자신이 하는 행동에 감정을 최대한 숨긴다.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거짓말은 이 차분하게 숨겨진 감정 뒤에서 좀체 진면목을 드러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앞에서 답답할 정도로 착하기만 한 고은성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뭐라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 미소 짓는 악녀에게 완벽한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미소 짓는 섬뜩함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늘 방긋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살벌한 칼날이 느껴진다. 덕만을 놓친 병사의 목을 치면서 그 피가 얼굴에 튄 채로 살짝 웃는 모습은 귀기스럽기까지 하다. 앞에서는 공손한 척 예를 다하다가 갑자기 귓속말로 천명공주(신세경)에게 “도망쳐라!”하고 명령할 때, 그 숨겨진 칼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시티홀’의 고고해(윤세아) 역시 같은 부류다. 이름처럼 앞에서도 고고한 척 우아함을 떨지만 사실은 뒤에서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붙이는 그 모습은 똑같은 미소짓는 악녀의 자질을 가졌다. 자신이 갖고 싶은 조국(차승원)을 취하기 위해 그녀는 신미래(김선아)를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녀의 목적은 그러나 조국이라기보다는 그를 통해 획득하려는 권력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우아한 악행은 때론 자본이 행하는 그것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악녀들이 이처럼 감정을 숨긴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악역이 아니고 악녀냐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점점 여성 편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보다는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가 그만큼 볼만해졌다는 얘기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와 대결하는 것은 바로 구은재(장서희)라는 여성이고, 이것은 ‘찬란한 유산’의 백성희-고은성, ‘선덕여왕’의 미실-덕만, ‘시티홀’의 고고해-신미래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여성과 여성의 대결구도에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갈등 구조 속에 빠질 수 없는 멜로라인이 결부되면 그 대결구도는 더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악녀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것은 바로 감정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해진 섬세함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들에 유독 악녀들이 많고 그녀들이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메시지를 뉘앙스로 전하는 방식이 가진 힘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라는 추격전의 시작은 박명수의 등에 그려진 7개의 그림에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는 남대문-산삼-시계-민들레-아령-파리-트럭이 차례로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이 뜻하는 것은 그 첫 글자를 따서 '남산시민아파트'로 가라는 것. 이 첫 장면은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를 읽는 하나의 독법을 제시한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연결시키면 의미를 형성하는 단어들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련의 사건들이 주는 키워드가 하나의 의미망을 형성할 거라는 것이다.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의 배경이 된 시민아파트, 연예인아파트, 오쇠동 철거지는 모두 철거 혹은 재개발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서울의 공간들이 낯설게도 허름하고 낡은 아파트들이라는 점, 그리고 비행기가 내릴 때 찍혀진 오쇠동의 철거 전 사진은 건물들이 사라진 현재와 오버랩되면서 이 키워드를 공고하게 한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김태호 PD는 자막을 통해 키워드를 박아 넣는다. '몸싸움'이니 '철거'니 하는 단어들이 그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는 자막이 보여주는 단어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을 보는 독법은 처음에 제시되었고, 그 다음에는 차례로 그 배경을 제시했으며, 그 위에 구체적인 단어들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이 이들이 찾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그 3백만 원이 오쇠동 세입자들의 이주보상비 액수였다는 것을 찾아내고, 또 2부에 등장한 소래 생태공원과 만석부두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의 의미를 읽어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왜 하필이면 마지막에 탈주범들이 타고 도주한 배의 이름이 '황천길호'였을까. 길로 대변되는 빡빡이들은 이 철거 혹은 재개발이라는 의미 속에서 어떤 존재들을 패러디한 것일까. 마지막에 결국 이들이 도망쳤을 때 나온 '해경에게 맡긴다'는 자막은 또 어떤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의미 부여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청자들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그 의미 찾기에 골몰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는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철거와 재개발 문제를 거론한 것이 없다. 이것은 '프리즌 브레이크'의 패러디로서 쫒는 자와 쫒기는 자를 세워 리얼 타임 액션이 주는 재미를 리얼 버라이어티 속에 녹여냈을 뿐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여드름 브레이크'를 통해 우리가 갖는 재미의 본질은 그 흥미진진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상황전개에 있다. 즉 재미와 의미의 요소들은 하나로 엮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었던 셈이다.

이것은 '무한도전'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김태호 PD만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본질은 그 첫째가 웃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웃음 속에 어떤 사회적 메시지가 요구될 때, 때론 그것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무한도전'이 취하는 방식은 의미를 숨겨놓는 것이다. 그것은 숨겨져 있기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발견되었을 때, 그 의미는 직접적인 전달보다 더 무게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숨겨진 의미는 늘 열혈 시청자들의 눈에 의해 발견되고 조명된다. 즉 이 방식은 일방적인 제시가 아니라 쌍방적인 소통에 의해 메시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메시지를 뉘앙스로 전하는 '무한도전'의 방식이 가지는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로 가는 '트랜스포머', 시골로 가는 우리영화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의 바람몰이가 심상치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개봉 첫날 '트랜스포머2'는 5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를 접해보면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빠져보았을 변신로봇에 대한 로망은, 주인공의 말 잘 듣는 오토봇들의 휘리릭 뚝딱 변신 CG가 주는 짜릿함으로 우리의 시선을 압도해버린다. 게다가 1탄에 비해 2탄은 그 시공간의 스케일이 더 커졌다. 원시시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과, 미국의 한 동네에서 전지구로 확장되고 거기서 또 우주까지 펼쳐지는 공간은 마치 지구라는 별을 하나의 장난감 놀이하는 공간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영화의 압도적인 스케일이 가져온 결과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이 영화가 주는 감각적인 만족감이다. 거의 두 시간 반 동안을 쉬지 않고 달리는 그 속도감은 거기에 편승한 관객들을 짜릿한 롤러코스터의 세계로 인도한다. 달려 나가는 자동차들,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현란할 정도로 빠른 변신, 끊임없이 뛰고 또 뛰는 주인공들, 출격하는 전투기들, 탱크들, 긴박한 국방성의 움직임까지, 그 속도 있는 전개는 스토리의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어딘가 거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걸 막기 위해서는 무조건 달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져온다. 스토리가 주는 맥락의 재미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엔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효과로서의 영화가 자리한다. 이것은 사실 블록버스터가 추구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판타지의 극점이며, 시각과 음향으로서의 영화 효과가 가져다주는 롤러코스터적인 감각적 만족감의 정점을 달리는 '트랜스포머2' 앞에 우리네 영화가 가진 면면은 언뜻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우리 영화는 이제 이 거대한 블록버스터 앞에서 여름 영화 시장을 온전히 내주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영화가 이 거대 블록버스터에 대처하는 자세가 꽤 의미 있고 효과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거북이 달린다'는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시골형사의 탈주범 추적기를 다룬다. 영화 속에서 시골형사와 탈주범이 취하고 있는 대결구도의 뉘앙스는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와 취하고 있는 그것과 유사하게 보인다. 즉 탈주범은 혼자 몇 명의 형사들을 상대할 정도로 싸움에 능하고 두뇌회전도 빠르며 대담한 반면, 시골형사는 거북이처럼 굼뜨기 그지없고 싸움도 잘 못한다. 그런 그가 탈주범을 추격하고 결국에는 잡을 수 있는 것은 돌봐야할 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조금은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이 설정은 그러나 장르적 문법 속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독특한 가족중심주의와 맞아 떨어지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새로 개봉할 영화, '킹콩을 들다' 역시 이야기는 중심이 아닌 시골 변두리로 향한다. 88올림픽 동메달리스트였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시골여중으로 내려간 역도부 코치와 역도선수로 커나가는 시골소녀들의 눈물겨운 한 판 들어올리기가 그 주 내용이다. '거북이 달린다'가 지칭하는 거북이가 토끼를 상정하는 것처럼, '킹콩을 들다'의 킹콩은 이 자그마한 시골소녀를 상정하게 한다. 즉 '거북이 달린다'의 대결구도가 마치 블록버스터와의 대결구도로 그려지는 것처럼 '킹콩을 들다'의 킹콩 역시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대적해야할 블록버스트의 뉘앙스를 풍긴다.

'트랜스포머'가 우주로 날아갈 때, 우리 영화는 시골로 내려간다. '트랜스포머'가 전 지구적인 이야기를 건넬 때, 우리 영화는 우리 이야기로 승부를 건다. '트랜스포머'가 감각적인 영화 효과에 기댈 때, 우리 영화는 감성적인 영화의 스토리와 영상에 기댄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 거북이는 토끼와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이 순박하기 그지없는 시골소녀는 킹콩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인가. 화려한 '트랜스포머'의 멋진 변신 앞에서 이들이 그 성공을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대처하는 자세만큼은 상당히 다부진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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