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권하는 사회에 대한 도발, '결못남'

'결혼 못하는 남자'는 언뜻 보기에는 이 결혼적령기를 지나 혼자 살아가는 남자, 조재희(지진희)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다들 하는 것을 '못하고' 있는 이상한 성격의 남자, 조재희의 행동에 주변사람들은 "재수 없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먹는 저녁에 정성껏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까지 챙겨먹는 모습은 자신의 고독감을 속이려는 행동으로 보인다. 심지어 고깃집에 혼자 앉아 고기 맛을 음미하며 먹는 모습은 측은하게까지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결혼 못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측은한 생각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마음 한 편으로 이 남자가 꽤 매력이 있고, 또 심지어 이 남자의 생활이 부럽기까지 한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 첫 번째는 이 남자가 관계의 피곤에서 해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혼자인 대신, 그 혼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축제가 벌어질 때, 군중들 속에 자신도 끼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는 종종 그 군중들이 가져오는 피곤함에 의해 배반당할 때가 많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은유다. 조재희가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저 혼자만이 아는 뷰포인트에서 와인이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 오페라망원경을 손에 들고 그걸 감상하는 것이 궁상맞아 보이다가도 부럽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관계 밖으로 나와 있는 그의 삶은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그려낸다. 드라마는 과장되게 마니아적인 삶으로 그것을 그려내지만 어떤 음악을 들을 때는 볼륨을 어느 정도에 맞춰 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즐거움에 철두철미하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거나 혹은 포기해버린 그 즐거움을 그는 지독할 정도로 챙긴다. 파도에 자갈 쓸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때의 그 즐거움은 사실 이런 삶의 태도에서 비로소 건져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혼 못하는 남자'는 지상과제로서의 결혼을 거부함으로써 혼자 사는 삶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의 일면들을 목도하게 해준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가진 사회적 압박감, 즉 '결혼은 몇 세 이전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그 압력은 혼자로서의 삶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결혼이 사회구성원의 생산과 관련된 것이기에, 이것은 사회의 생존을 건 압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결혼은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의 삶의 모든 것들을 규정해버린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싫어도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해야 하고, 그 속에서 개인적인 삶은 잠자리에 들기 전 소파에 앉아 잠깐 TV를 쳐다보는 것 정도로 뒷전에 세워두어야 한다.

'결혼 못하는 남자'는 이러한 결혼을 중심으로 상식이 되어버린 삶에 대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혼자 사는 조재희가 처음에는 이상하고 심지어 안쓰럽게까지 보이다가 차츰 그 삶이 부럽고 또 그가 매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이 사회에 대한 도발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또한 결혼이 궁극의 목표가 되는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다. 멜로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지극히 상투적인 '결혼 못해 안달난 남녀들'보다 이 드라마의 "결혼? 그걸 왜 해?"하고 묻는 이 남자가 더 매력적인 건 그 때문이다.

대작, 캐스팅, 막장을 넘어선 '찬란한 유산'

시청률 40%를 돌파한 '찬란한 유산'의 성공은 신드롬에 가깝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이승기, 한효주, 배수빈 같은 출연 배우들에 대한 관심도 가히 신드롬급이다. 그런데 '찬란한 유산'의 성공 요인들을 들여다보면 지금껏 통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왔던 공식들에서 빗겨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찬란한 유산'은 흔히 말하는 대작드라마가 아니다. 어찌 보면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가족드라마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로케이션이라고 해봐야 멀리 간 곳이 동해안 정도일 정도로 소박한 드라마다. 이것은 툭하면 해외 로케이션이 범람하는 작금의 드라마 공식 속에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찬란한 유산'은 그 소박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40% 시청률을 넘기는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대작드라마가 가진 한계를 오히려 '찬란한 유산'이 벗어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블록버스터 드라마라고 부르는 대작드라마들은 그만큼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다. '거대한 그림'에 집착하다가 디테일한 이야기에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찬란한 유산'은 그 외형보다는 내실이 탄탄한 드라마다. 유산과 핏줄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보편적인 주제로 공감을 이끌어내면서도, 드라마가 보여주어야 하는 극적인 갈등구조를 균형 있게 병치시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드라마는 극적인 힘을 가지면서도 세대를 넘어서는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러한 스토리와 연출에 대한 자신감은 흔히 대작드라마들이 가져오는 스타마케팅의 함정도 벗어나게 했다. 이 드라마의 이승기와 한효주는 한류스타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견배우도 아니다. 이승기는 가수출신으로 '소문난 칠공주'에서 첫 연기 신고식을 치른 후, 이 드라마가 두 번째 작품이 되는 셈으로 연기자로서는 이제 막 시작한 새내기라고 할 수 있다. 한효주는 상대적으로 이승기보다는 많은 작품에 등장했지만, 그간 제대로 된 캐릭터를 만나지 못해 빛을 보지 못했던 배우다.

그러니 캐스팅만을 두고 보면 이 드라마의 기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낮은 기대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드라마는 성공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냄으로써 이 두 배우들을 스타덤에 올렸다. 이승기는 이로써 가수, 예능인, 배우로서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한효주는 드디어 자신의 몸에 맞는 캐릭터를 만나 비상했다. 이밖에도 배수빈, 문채원, 김미숙, 반효정 등 많은 배우들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그만큼 좋은 캐릭터들을 많이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찬란한 유산'이 깬 대박공식 중 가장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은 '착한 드라마는 안된다'는 편견이었다. 이 드라마는 막장드라마들이 할거하는 드라마 세상에서 진심과 진정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국민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 보여주었다. '찬란한 유산'은 이처럼 흔히 말하는 대작이어야 한다거나, 대스타들이 캐스팅되어야 한다거나, 자극적이야 한다는 그 대박드라마의 공식들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찬란한 유산'의 성공이 시사하는 점이 크다는 것은 바로 이 깨져버린 공식들 너머에 어쩌면 우리 드라마의 미래가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천하무적 야구단', 야구보다 캐릭터인 이유

'천하무적 야구단'이라는 스포츠 버라이어티는 그다지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하지만 야구라는 소재는 확실히 지금까지의 스포츠 버라이어티들과 이 프로그램이 선을 긋는 지점이다. 누구나 다 알 것 같지만, 꽤 많은 룰을 갖고 있는 야구라는 스포츠는 보다 넓은 시청층 확보가 쉽지 않다. 야구는 '날아라 슛돌이'의 축구처럼 공을 상대방 골문에 넣으면 점수가 오르는 단순한 지식만 갖고도 충분히 버라이어티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종목은 아니다.

이것은 WBC나 베이징 올림픽에서 후끈 달아올랐던 야구에 대한 관심과는 또 다른 문제다. 야구는 겉으로 보기엔 이미 대중성을 확보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어가면 잘 모르는(특히 여성들에게는) 그런 스포츠다. 따라서 폭넓은 대중성을 지향하는 '천하무적 야구단'은 시작부터 몇몇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자세히 알지 못했던 야구의 룰들을 쉽게 알려주어야 하고, 동시에 야구만이 갖는 스포츠 버라이어티의 재미요소를 찾아내야 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세운 것은 마르코라는 캐릭터다. 그는 시작부터 아르헨티나 출신이란 점을 강조했고, 그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가 야구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마르코는 야구의 문외한으로 '천하무적 야구단'에 입성하는 캐릭터다. 그런 마르코가 이 팀의 주장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눈높이를 야구를 잘 모르는 시청자에게 낮춰 맞추겠다는 이 프로그램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내기를 걸고 제작진이 내는 야구 퀴즈에 마르코가 나오는 이유는 그의 성장(야구지식을 알아가는)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야구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그가 야구를 잘 모르면서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캐릭터가 '짐승'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짐승'이란 룰은 몰라도 선천적인 감각,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써 마르코는 '천하무적 야구단' 캐릭터에서 어쩌면 강한 중요한 부분을 맡게 된다. 리얼리티를 올려주는 강한 캐릭터인 동시에, 야구의 기초를 세워주는 역할이다.

이하늘은 마르코와 함께 이 프로그램의 강하고 야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늙은 사자'다. 그는 특유의 반항적인 모습을 내내 드러내면서 프로그램에 긴장감을 만드는 사자지만, 그 앞에 '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음으로 해서 그것을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존재다. 이하늘과 마르코가 벌칙을 수행하기 위해 타이어를 매고 달리고, 뻘 밭에서 뒹굴며 심지어는 최루가스실에 들어가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김창렬과 임창정은 특유의 깐죽 캐릭터로 자리하고, 오지호와 김준은 보기와는 달리 구멍이 많은 이 프로그램의 허당 캐릭터들이다. 동호가 최연소 출연자로 말 그대로의 초딩 캐릭터라면 한민관은 뼈다귀즘으로 의외로 강한 면모를 보여주면서 개그맨 특유의 입담과 몸개그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다. 마리오는 아직 캐릭터가 잡혀있지 않지만 어쩌면 그것 자체가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1박2일'의 김C가 그런 것처럼.

단장으로 들어온 백지영과 감독이 의심되는(?) 해설가 김C 역시 빼놓은 수 없는 캐릭터다. 백지영은 이 프로그램의 여성 시청층의 눈높이를 대리해주는 역할로 팀원들을 쥐락펴락 하는 동시에, 유일한 여성으로서 팀내의 분위기를 알콩달콩하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김C는 '1박2일'에서와는 달리, 이 프로그램 속에서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특유한 입담이 살아나는 해설은 프로그램의 진짜 리얼 요소인 실제 경기가 가지는 박진감과 쇼적인 요소인 웃음을 모두 잡아내고 있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이로써 캐릭터 야구버라이어티의 진용을 갖춘 셈이다. 흔히들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하는 스포츠로서의 야구가 갖는 리얼리티 요소들은 이제 이 캐릭터들이 강화되면서 좀더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WBC같은 스포츠 경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이면의 이야기들, 예를 들면 연습과정이나 인간적인 면모들 같은 것들은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이다. 만일 이 '천하무적 야구단'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자리를 잡는다면, 그것은 또한 야구의 저변을 넓힌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 실보다 득이 많다

'선덕여왕'의 덕만(이요원)은 남장여자다. 시청자들은 덕만을 연기하는 이요원이 여자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아직까지 그녀가 여자임을 모른다. 이것은 하나의 약속이다. 하지만 약속이라고 하더라도 그 드라마 속 리얼리티는 충분히 있어야 수긍이 갈 것이다. 낭도로서 동료들과 오래도록 함께 지내면서 훈련을 하고 전쟁까지 수행하면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 사극의 리얼리티에 꽤 큰 빈틈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약점이 예기되는 상황 속에서 굳이 덕만을 남장여자로 설정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유는? 실보다 득이 많으니까.

먼저 덕만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으로 전쟁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덕만은 사막에서 암살자에게 쫓기면서 성장했고, 신라로 들어오면서 가야의 유민들에게 붙잡혀 또 한 번의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극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가장 큰 성장의 계기는 역시 전쟁이다. 아무리 주인공이 정치적으로 뛰어난 지략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쟁만큼 극적일 수는 없고, 또 그만한 시각적인 효과도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덕만이 남장여자인 것은 그녀가 전쟁에 투입되는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도드라지며, 그 속에서 여성적인 카리스마(공포보다는 희망으로 이끄는 카리스마)를 발휘해 위기를 넘어서는 이야기에도 부합한다.

대체로 사극이 다루는 재미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전쟁 같은 미션을 직접 몸으로 수행해나가는 것이 주는 볼거리의 재미고, 또 하나는 대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팽팽한 정치적인 대결구도의 재미다. 대체로 지금껏 남성사극 속의 남성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나갔다. 전쟁을 수행해나가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포석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마련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 사실상 전쟁이 주는 스펙타클한 재미는 포기될 수밖에 없다. 여성이 전쟁이 참전하는 것은 거의 예외적인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천추태후'의 경우는 바로 그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녀는 전쟁에도 참전하고 정치에도 관여한다. 그런데 '천추태후'의 이런 면모는 여성적인 카리스마를 끄집어내기가 어렵다. '천추태후'는 생물학적인 성별구분으로서는 분명 여성이지만 캐릭터로 봤을 때 남성성을 더 많이 가진 여걸이기 때문이다.

덕만이 남장여자인 점은 이 두 가지를 여성성을 유지하면서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녀는 겉으로는 남자이기 때문에 전쟁에 직접 투여되어 미션을 수행할 수도 있고, 그 미션 수행 과정에서도 여성성(실제로는 여성이기 때문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이렇게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녀는 아마도 실제 선덕여왕의 면모가 그러했을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덕만의 이 남장여자라는 설정은 그녀와 짝패를 이룰 천명(박예진)과 정적인 미실이 가지지 못한 이 두 가지 측면의 매력을 모두 가지게 해주는 유용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천명과 미실은 모두 정치적인 면모만을 보일 뿐,덕만 같은 실전적인 매력은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 사극 속에서 천명과 미실은 말만 하고 있지만 덕만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의 활용은 연기자의 입장에서도 유용하다. 여성 연기자의 이미지 변신에 있어서 남장여자라는 캐릭터만큼 힘을 발휘한 것도 드물다. 윤은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고은찬이라는 남장여자로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켰고, 문근영은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로 설정된 신윤복을 통해 비로소 국민여동생이라는 족쇄를 풀어내고 온전히 연기자의 이름을 얻어냈다. '선덕여왕'의 이요원 역시 마찬가지다. 늘 어딘지 가녀린 이미지로 굳어져 있던 그녀는 덕만이라는 남장여자 캐릭터를 만나 연기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발군의 아우라를 구축했던 아역 남지현의 호연으로 더더욱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요원이 그나마 그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바로 이 남장여자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은 물론 역사 왜곡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작금의 사극이 이제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상황으로 보면, 사극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역사가 권위로 자리하지 못하는 시대에, 사극은 어떤 진실(사실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을 주장하기 보다는 스토리가 갖는 재미에 더 천착하고 있다. 사극은 이제 역사와 결별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선덕여왕'의 남장여자 설정의 유용성을 따지는데 있어서 봐야할 것은 역사 자체 보다는 드라마에서 그 설정이 갖는 득과 실일 것이다. '선덕여왕'의 남장여자는 드라마적으로 봤을 때, 물론 실도 있지만 득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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