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상황 더 까칠해진 김희애, 통쾌한 반격 안길까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2막으로 돌아왔다. 외도하면서도 뻔뻔하기까지 한 이태오(박해준)와 결국 이혼하고 아들의 양육권까지 쟁취한 지선우(김희애)의 6회까지의 이야기가 1막이었다면, 2년 후 여다경(한소희)과 가정을 꾸려 성공한 영화 제작자로 금의환향한 이태오와 그로부터 위협받기 시작하는 지선우의 7회부터의 이야기가 2막을 열었다.

 

하지만 1막이 워낙 파괴력이 컸던지라 2막부터는 힘이 빠질 거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혼 후 무슨 이야기가 더 이어질 수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 2막은 어떤 면에서는 1막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상황을 들고 왔다고 보인다. 그것은 1막에서 지선우가 싸워서 쟁취하려 한 것이 최소한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면, 2막은 그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터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태오와 여다경이 이 동네로 돌아와 자축하는 파티를 열고 그 지역의 유력자들을 초대하는 건 단지 뻔뻔하게도 영화제작자로 성공해 돌아왔다는 걸 알리려는 의도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가진 돈과 권력을 이용해 그 곳 지역의 커뮤니티에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지선우를 그 터전으로부터 밀어내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태오는 병원 이사장에게 투자를 얘기하며 그 조건으로 지선우를 부원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라 말하고, 절친인 척 하는 설명숙(채국희)은 그 빈틈을 파고 들어와 자신이 그 부원장 자리에 대신 앉으려 한다. 또 이태오는 민현서(심은우)를 상습폭행했다는 진단서로 감방에까지 갖다온 박인규(이학주)를 시켜 지선우의 터전을 위협한다. 돌을 던져 창을 깨고 그것도 모자라 집안으로 난입해 지선우와 난투극을 벌인다.

 

지선우는 결국 일터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고, 집에서도 안전을 위협받으며 나아가 아들 준영(전진서)이 부모의 이혼이 자신 때문이라 자책하며 흔들리면서 돌아온 아빠 이태오를 자꾸만 찾아가는 것에 엄마로서의 위치 또한 위협받는다. 하지만 지선우가 어디 그냥 당하기만 할 인물인가. 그는 대놓고 여다경이 들어간 ‘여우회’에 들어간다. 자신이 위협받는 커뮤니티부터 반격에 나설 거라는 행보다.

 

<부부의 세계>는 이로서 2막의 전선도 확실하게 만들어 놓았다.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이태오와 여다경이 저 편이라면, 지선우와 그를 옆에서 지켜봐주는 김윤기(이무생)와 여우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는 지선우가 걱정되어 다시 연락한 민현서(심은우)가 이 편이다. 저편이 뻔뻔한 가해자들이면서도 돈과 권력을 통해 화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이편은 피해자이면서도 여전히 그 가해자들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다.

 

과연 2막에서도 지선우는 이런 위협들을 보기 좋게 이겨내고 저 뻔뻔한 가해자들을 처절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부부의 세계>는 이제 부부라는 관계를 연장시켜 지역 커뮤니티 사이에서의 권력 구도와 대결로 확장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혼을 한다고 해도 그저 끝나지 않는 관계가 바로 부부의 세계라는 걸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자식으로 연결되고, 지역 사회의 권력 구도까지 들어간 사회적 관계로도 얽혀있다. 그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지선우는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2막의 이야기가 더 강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사진:JTBC)

‘팬텀싱어3’, 감동을 넘어 충격적인 출연자들이라니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3>의 첫 회가 감동이었다면 2회는 충격이다. 어디서 이런 놀라운 기량의 출연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놨을까 싶을 정도다. 최고의 무대를 보고 다음 참가자가 걱정될 때, 그 다음 참가자는 이전 무대를 싹 잊게 만드는 또 다른 놀라운 무대를 보여준다. 심사평을 해야 할 프로듀서들은 본연의 역할을 잊고 무대에 빠져버렸다. 놀라고 감탄하다 눈물 흘린다. 이러니 시청자들은 오죽할까. 한번 본 무대 영상을 다시보기로 보고 또 보게 된다. 요즘처럼 퍽퍽한 시국에 귀 호강을 넘어 마음까지 정화시켜주는 듯한 무대를 보다보면 웬만한 콘서트를 보는 듯한 감흥에 빠져드니 말이다.

 

‘피아노 치는 소리꾼’이라는 소개 글에서도 느껴지듯이 고영열이 부르는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는 재즈와 판소리의 크로스오버가 만들어내는 절묘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며 그 위에 얹어 넣는 판소리 가락은 우리네 소리의 창법이 그러하듯이 때론 잔잔했다가 때론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또 애잔하기도 한 그 밀고 당기는 힘이 자유자재로 느껴졌다.

 

지용 프로듀서가 말한 것처럼, 그는 혼자 서양과 우리의 음악을 섞어낸 크로스오버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었다. 남성사중창단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의 목표를 두고 보면 이런 판소리 창법과 이를 재즈로 엮어내는 프로듀싱 능력은 향후 그가 들어갈 팀이 어떤 크로스오버를 선보일지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죽음의 조를 넘어 가희 신(神)계 조”라고 표현된 해외파들로 구성된 4조 참가자들은 탄탄한 성악 실력을 바탕으로 하는 노래로 프로듀서들과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뉴욕 예일대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는 테너 존 노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셀리 디온이 듀엣으로 부른 ‘The Prayer’를 팝적인 목소리와 성악적인 발성을 오가며 불러 그가 얼마나 크로스오버에 준비된 참가자인가를 보여줬다. 전혀 힘을 주지 않고도 자유자재로 불러내는 그의 노래에 김문정 프로듀서는 “천재성”이 느껴진다고 했고, 노래 내내 따라 불렀던 옥주현은 “함께 불러보고 싶다”는 진심을 전했다.

 

서로 색깔이 다르게 느껴진 두 명의 카운터테너도 주목할 만한 출연자들이었다. 정통 카운터테너인 윤진태는 가요를 선택해서 부르며 그 절절한 가사로 프로듀서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듣는 이들을 순식간에 유럽의 궁정으로 옮겨 놓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 카운터테너 최성훈은 손혜수 프로듀서가 말하듯 영화 <파리넬리>의 카스트라토가 관객을 기절시키는 정도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큰 감동을 주었다.

 

첫 회에 나와 주목받았던 길병민과 늘 콩쿠르에서 만나 지곤 했다는 독일 바이마르 유학생 구본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Music of the night’을 불러 낮은 저음의 매력에서부터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성의 고음을 통해 소름돋는 무대를 선사했다. 김문정 프로듀서는 그의 무대에 “그 어떤 참가자보다 너무나 섹시했다”고 극찬했다.

 

전반적으로 성악을 하는 출연자들이 주목을 받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잘 보이지 않던 뮤지컬 배우에 대한 갈증은 영화 <알라딘> 더빙판 노래를 했던 떠오르는 신예 신재범이 채워주었다. 뮤지컬 <피맛골연가>의 ‘푸른 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라는 곡을 갖고 나온 신재범은 뮤지컬 배우다운 몰입과 연기를 더해 그 절절한 가사의 진심을 전해주었다. 특히 ‘잊기 위해 꿈을 꾸고 꿈을 팔아 돈을 사고 혼을 팔아 술을 사고 취하려고 꿈을 파네-’라는 대목에서는 프로듀서들도 먹먹해하는 표정이었다.

 

흔히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프로듀서로 불리던 마스터로 불리던 심사평이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팬텀싱어3>는 심사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과 충격을 전하는 프로듀서들의 평이 이어졌다. 그것은 워낙 출중한 출연자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애초 목표 자체를 오디션의 경쟁이라는 자극적인 틀보다는 ‘귀호강 무대의 힐링’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기도 하다. 합격자들 중심으로 편집해 보여주고, 탈락자들의 무대는 최소화하는 방식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오디션이라기보다는 마치 좋은 콘서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사진:JTBC)

‘사랑의 콜센타’, 고전적 포맷이지만 폭발력 생긴 건

 

TV조선 <사랑의 콜센타>는 어딘지 옛날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튜디오에서 가수들이 앉아 노래를 하거나 이야기를 하고 여러 명의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이들이 앉아 있는 그 구성 자체가 그렇다. 제목도 ‘콜센터’가 아닌 ‘콜센타’이고 포스터를 통해 드러나는 글자 폰트도 의도적인 옛 느낌이 묻어난다. 어딘지 빈티지가 느껴지는 톤 앤 매너가 이 프로그램에는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어딘지 소소해 보이고 옛 감성이 묻어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20%대(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는 트로트 신드롬을 일으킨 <미스터트롯>의 주역들인 톱7(임영웅, 영탁,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큰 화제가 됐던 <미스터트롯>이었고, 이미 팬덤까지 공고하게 만들어진 톱7이 아닌가.

 

그렇지만 신드롬의 주역이 모였다고 해서 그 후속프로그램이 거저 성공의 과실을 따내는 건 아니다. <미스트롯>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송가인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떠올려보라. <뽕따러가세>는 송가인이 전국을 찾아가 사연자들을 만나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었다. 다른 인물도 아닌 송가인인지라 최고 시청률 7.8%라는 수치는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13회로 종영하면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너무 송가인을 혹사한다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까지 찾아가면서 차안에서조차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송가인은 너무 열심히 해서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항간에는 송가인의 “뽕을 빼먹는” 프로그램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기도 했다.

 

<미스터트롯>의 대성공으로 여기서 배출된 스타들을 어떤 프로그램으로 묶어낼지 관심이 컸던 게 사실이지만, 마침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콘서트도 프로그램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사실 가수들, 그것도 트로트가수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대중들과의 접점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노래를 부르고 호응해주는 대중들이 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상황, 그래서 대규모 관객들과의 접점이 어렵게 된 상황은 역발상을 요구하게 되었다. 스튜디오에서 전화로 사연자들과 연결하고, 그들이 원하는 가수를 통해 노래를 들려주며 상품도 전하는 그런 방식. 이건 어찌 보면 라디오에서 주로 하는 방식이고, 거의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이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던 과거 예능의 방식이다.

 

그런데 워낙 출중한 가창실력들을 갖춘 톱7이 신청곡을 받아 불러주는 노래의 수준이 상상 이상인데다, 한 명의 사연자를 위해 온전한 시간을 제공한다는 판타지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불효자는 웁니다’로 어르신을 울려버리는 정동원의 믿기 힘든 감성과, ‘데스파시토’ 같은 곡도 자기 색깔로 소화해내고 ‘상사화’로 순간 사극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임영웅, 구수한 청국장 보이스로 ‘공’이라는 곡을 통해 인생의 허허로움을 전하는 이찬원 등등. 단 한 명의 신청자가 감동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대규모 관객들의 반응보다 더 크게 시청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코로나 19 앞에서 <사랑의 콜센타>가 보여준 역발상은, 지금 우리가 ‘온라인 탑골공원’에 열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떠올려보면 신박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랑의 콜센타>는 아예 옛 감성의 노래 프로그램을 가져와 ‘전화 연결’이라는 더더욱 아날로그적인 형식으로 포장해냄으로서 빈티지한 맛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트로트라는 장르와도 썩 잘 어울리는 이 형식은 그래서 기성세대들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젊은 세대들에게는 방송에서 재연되는 온라인 탑골공원 같은 힙함으로 다가오게 만들고 있다.(사진:TV조선)

‘슬의생’, 신원호 PD가 시트콤과 드라마 사이를 선택한 까닭

 

“미국 드라마 <프렌즈>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자 했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신원호 PD는 제작발표회에서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미국의 장수 시트콤인 <프렌즈>를 거론했을까 싶었지만, 이제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코미디만이 아닌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시트콤의 이야기 구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의대 5인방이라는 캐릭터를 주축으로 율제병원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지향성을 뚜렷이 드러내기보다는 에피소드별로 나열되는 형식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첫 회에 안정원(유연석), 2회에 채송화(전미도), 3회에 이익준(조정석)과 김준완(정경호) 그리고 4회에 양석형(김대명)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에피소드들을 차례로 담아냈다.

 

그러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매력적인 주변인물들을 채워 넣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러브라인은 그 관계의 주요 촉매제로 등장한다. 안정원을 짝사랑하는 장겨울(신현빈), 김준완의 고백에 ‘오늘부터 1일’을 선언한 익준의 동생 익순(곽선영), 채송화에게 좋아한다 고백하는 후배의사 안치홍(김준한), 양석형의 환자를 배려하는 모습에 반해버린 추민하(안은진) 게다가 황혼에도 우정과 애정을 넘나드는 정로사(김해숙)와 주종수(김갑수)까지 달달한 관계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러브라인을 넘어서는 우정이나 부모 자식 간의 관계, 남매애, 동료애도 빠지지 않는다. 양석형의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효심이 그렇고, 싱글대디가 된 이익준과 아들 이우주(김준)의 찐 부자애, 친구처럼 유쾌하지만 진한 애정이 느껴지는 이익준과 익순의 남매애, 채송화를 좋아했지만 그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한 양석형과 그 때문에 고백을 포기했던 익준의 우정 등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무언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가는 메인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캐릭터들이 세워지고 그들이 서로 관계를 이어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는 구조인지라, 본격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어딘지 무게감이 덜한 드라마로 보일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목표가 있어야 극의 긴장감과 속도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는 항상 목표가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누가 누구의 남편이 될 것인가가 그 목표 지점이었다. 그래서 산발적인 에피소드들도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 귀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런 목표 지점을 세워두지 않는다. 병원 내에서의 권력을 추구하는 인물도 없고, 게다가 이들을 외적으로 위협하는 어떤 압력이나 세력도 없다. 악역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목표가 제시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한 줄기의 목표 대신,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자잘한 일상에서 부딪치는 작은 갈등들과 선택들을 다룬다. 그러니 특정 시추에이션을 가져와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트콤을 닮은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시트콤은 아니다. 그런 자잘한 일상 소재 속에서도 웃음만큼 감동적인 메시지들이 담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어딘지 무게감이 떨어진다 여겨지는 건 어쩌면 우리가 드라마라고 하면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달려 나가는 ‘본격 드라마’를 떠올리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시트콤은 드라마가 아니며 심지어 본격 드라마보다 낮게 바라보는 시선과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트콤은 그렇게 취급받을 장르가 아니고, 드라마에도 다양한 결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본격 드라마만이 진짜 드라마라는 생각에서 살짝 벗어나보면, 다소 시트콤적이고 때론 예능 프로그램을 드라마화한 것 같은(캐릭터를 세우고 매회 관계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편안한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예능적인 접근방식을 제대로 실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 앞선 실험들이었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형식적으로도 편성적으로도 좀 더 시스템화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만일 이 작품이 드라마지만 마치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처럼 캐릭터를 공고해 세워 매 시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장착해 돌아오는 그런 드라마로 서게 된다면 그건 우리네 드라마에서 색다른 지대를 여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너무나 어려운 편성이나 제작방식 때문에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시트콤 형식의 가치를 세워주는 일이기도 하다. 과연 이런 실험은 훗날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기획한대로 ‘슬기로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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