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거예요.” 정윤철 ‘말아톤’

말아톤

“초원이 다리는?” 이렇게 물으면 자동적으로 “백만불짜리 다리”라는 답변이 나올 정도로 정윤철 감독의 영화 ‘말아톤’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자폐로 다섯살 지능을 가진 스무살 청년 초원(조승우)과 그의 엄마 경숙(김미숙)의 마라톤 도전기를 다뤘다. 장애가 있지만 달릴 때만큼은 너무나 행복해하고 또 재능도 있다는 걸 엄마로서 잘 알고 있는 경숙은 초원이를 마라톤 선수로 키우기 위해 헌신한다. 한때 세계 대회 1위를 기록했던 전직 유명 마라토너였지만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를 하게 된 정욱(이기영)은 경숙의 애원으로 어쩔 수 없이 초원이의 코치를 맡게 되고,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차츰 가능성을 보면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초원이를 몰아붙이는 경숙과 정욱은 대립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경숙은 이것이 자신의 집착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마라톤을 그만 두게 하지만, 초원이는 저 스스로 대회에 참여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완주함으로써 그것이 자신의 의지였다는 걸 보여준다. 

 

“그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정숙이 하는 말은 그 헌신적인 모성애에 큰 감동을 주지만, 여기에는 장애를 사회가 책임지기보다는 가족이 감당하고 특히 엄마들이 희생해온 사회구조가 담겨져 있다. “소원이 뭐냐고 물으셨잖아요.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거예요. 그러려면 내가 100살까지는 살아야 되겠죠?” 한 기자의 질문에 정숙이 건네는 답변은 이 상황을 잘 말해준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돌봄은 사회가 아니라 가족의 책임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된 2005년에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현재 파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패럴림픽에 우리 사회는 올림픽만큼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을까.(글:동아일보, 사진:영화'말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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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2’로 돌아온 김민하, 더 단단해졌다

파친코2

“너는 정말 강한 사람인 것 같아.”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서 젊은 선자 역할을 연기하는 김민하는 무려 4개월 동안 8차례에 걸쳐 이뤄진 오디션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내성적인 성격이고 어려서는 누가 말을 걸어도 땀이 날 정도로 소심한 아이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에게도 그런 면이 있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다고 한다.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자신이 가진 진가는 어느 순간 누군가 혹은 어떤 계기에 의해 드디어 꺼내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김민하는 그런 점에서 보면 ‘파친코’의 선자라는 인물을 통해 그 숨겨져 왔던 매력이 드디어 꺼내진 배우가 아닐까 싶다. 

 

일제강점기의 부산 영도 어시장에서 어린 선자(유나)는 일본 경찰 앞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는 당찬 아이다. 그 아이는 성장해 사업가인 한수(이민호)를 만나 사랑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에게는 이미 일본에 아내가 있다는 것. 결국 홀로 아이를 낳은 선자(김민하)는 마침 다 죽어가는 몸으로 선자네 하숙집을 찾아왔다가 겨우 살아난 이삭(노상현)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와 부부가 된다. 갖은 일본인들의 핍박과 차별 속에서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오사카에서의 삶. 노동자들을 돕다가 이삭은 감옥에 끌려가고 결국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선자는 길거리로 나가 김치를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선자는 끝없이 무너지고 내팽개쳐지는 삶의 바닥에서도 끝내 다시 일어나 그 삶을 버텨내는 인물이다. 

 

아마도 ‘파친코’의 원작 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는 바로 이런 끈질긴 생명력이 한인들의 정체성이라고 본 것 같다. ‘역사는 우리를 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인상적인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바로 선자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있다. 낯선 타지에서 아이들을 홀로 키우며 무너질 것 같은 그 삶 속에서도 끝까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선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래서 ‘선자’라는 이름은 당대의 조선인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김민하는 오디션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마치 제 안에 숨겨져 있던 선자를 찾아낸 양 강렬한 눈빛과 앙다문 입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 위대한 인물을 표현해낸다. ‘파친코2’에서도 밤이면 굶주린 아이들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는 엄마들이 못할 게 뭐가 있냐며 위험한 밀거래에도 나서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되어 함께 부부의 연을 맺고 한수의 아이까지 자신의 아들로 보듬는 이삭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 그리고 의리를 잊지 않는다. 늘 선자와 아들에 대한 동태를 살피고 있던 한수가 감옥에 들어갈 처지에 놓인 선자를 꺼내주고, 이제 곧 대규모 공습이 있을 거라며 떠나라고 하자 선자가 단호히 선을 긋는 모습에서는 서릿발이 느껴진다. “옥살이 중인 남편 두고 내 어디 못갑니더. 그 사람 두고 내 어디 안갑니더. 못가예.” 여기서 선자는 똑바로 한수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것이 마치 돌맹이 같은 단단한 의지를 느끼게 만든다. 이 장면은 김민하라는 배우가 얼마나 깊이 선자라는 인물 속에 들어가 그 자체가 되어 있는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끝까지 남편 없이는 떠나지 않는다는 선자의 단호함에 결국 한수는 힘을 써 오래도록 감옥살이를 해온 이삭을 빼내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이삭이 그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에 선자와 마주하는 장면은 ‘파친코’의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점점 힘이 빠져가지만 살고 싶어하고 또 그 와중에도 아이들 걱정을 하는 남편을 선자는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늘 헌신적으로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남들을 위해 살았던 남편이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자 또 그 선자 특유의 단호한 표정과 말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 또한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사실 선자 역할에서 드러나는 김민하의 이런 강렬한 인상은 ‘파친코’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물론 영화 ‘킬러스웰:아워 스페이스’의 유진이나 ‘봄이 가도’의 현정 같은 인물 모두 이처럼 단단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들이지만, ‘파친코’의 선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김민하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고나 할까. 이건 배우들이 어떤 캐릭터를 만나느냐에 따라 본인도 잘 몰랐던 가능성의 영역이 열린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파친코2’에서는 이제 이삭을 떠나보낸 선자와 그의 앞에 나타난 한수가 보여주는 애증의 관계가 이어질 전망이다. 즉 선자와 한수는 두 사람의 아들인 노아(김강훈)가 그 중간 매개가 되는 셈이다. 무기 사업으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인 한수는 노아에게는 일종의 ‘출생의 비밀(?)’이 되는 것이지만, 선자는 여기에도 단호하게 선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선자는 일제로 대변되는 차별과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또 한수로 대변되는 자본의 힘 앞에서도 굳건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 지점은 ‘파친코’라는 작품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즉 권력과 자본의 힘이 마치 시대의 가치인 양 이야기되는 현재에, 이를 거부하는 선자라는 인물의 강렬한 생명력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가치라는 걸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하가 배우로서 보여준 가치 역시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내면에 깃든 단단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었다. 주근깨가 매력적인 이 배우는 선자라는 기회를 통해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진짜 매력을 꺼내놨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뿐인 내면의 단단함은 그 어떤 외적 잣대로도 깨질 수 없는 거라는 걸 김민하는 그 연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글:국방일보, 사진:애플TV+)

‘파친코2’, 가난해도 당당한 한인들, 보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유

파친코

“근데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빤 그 큰 집은 그립지 않아.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이 그립지. 진짜 부자는, 모자수야.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이란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2’에서 오랜 감옥 생활 끝에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선자의 남편 이삭(노상현)은 아들 모자수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에 그렇게 답한다. 이삭 역시 그렇게 큰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 곳을 떠나 가난하고 힘겨운 이들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었다. 삶의 불이 점점 꺼져가는 순간에도 그는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밀고해 감옥에 보낸 것이 바로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불러 용서하려 한다. 목사는 이삭을 질투한 거였다. 부모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유일하게 유목사가 자신을 거둬주셨는데 이삭이 나타나면서 그 사랑이 희미해졌고 그래서 밀고했다는 것. 하지만 밀고한 후 그는 후회했다고 했다. “이게 변명이 안되는 거 압니다. 절대 용서 못하시겠지만...” 목사는 그렇게 용서를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걸 안다고 말하지만, 그 순간 이삭은 곧바로 말한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이삭의 아들 노아(김강훈)은 자신이 믿고 따랐던 목사가 아버지를 밀고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받고 어떻게 용서하냐고 절규하지만, 이삭은 말한다. “너희에게 물려줄 거라곤 이 망가진 몸뚱이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건 꼭 기억했으면 한다. 후 목사와 우리들의 운명이 다 같은 처지에 놓인 거야. 노아야. 자비는 선물도 권력도 아니야. 자비는 인정하는 거야. 살려면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거.” 그는 후 목사의 잘못조차 끌어안는 사람이었다. 

 

이민진 작가가 쓴 ‘파친코’ 원작의 첫 문장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하는 건 아마도 이 작품이 이삭 같은 당시 한인들의 의연함을 그리려 하고 있다는 걸 말함이었을 게다. 다 같은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래서 후목사 같은 이에게도 용서와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 그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버텨내고 살아내는 것이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걸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비라고 말한다. 

 

이삭이 자신을 밀고한 후목사를 용서하는 장면은, 땅 주인 한금자(박혜진)를 찾아가 그 땅에 군사시설이 있었고 거기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 묻혔다는 사실을 듣고는 그것조차 이용해 아베를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선자의 손자 솔로몬(진하)의 이야기와 교차 편집된다. 솔로몬은 아베에게 그 땅을 판 후 이 소문을 내면 콜튼 호텔 측에서 개발을 포기할 거라며 당하기만 하지는 않겠다는 복수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조차 이용하려는 솔로몬에 한금자가 혀를 차자 솔로몬은 자책하는 말을 한다. 한금자도 또 선자도 자신을 경멸의 시선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이런 꼴을 볼려고 그렇게 살았나? 네? 다 쓸데 없었다 하시겠죠.” 솔로몬이 그렇게 말할 때 한금자는 저 이삭이 보여준 그 의연한 모습을 드러내며 단호하게 말한다. “후회없어 그렇게 산 거. 충분히 값진 인생이었어.” 한금자도 선자도 또 이삭도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내며 그 속에서도 자식들을 키워낸 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충분히 값진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삭이 죽기 직전 선자와 나누는 대사는 인간의 위대함과 고귀함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절감하게 한다. 이삭은 그 상황에서도 이 모든 비극이 자신 때문인 양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이에 대해 선자는 이삭의 삶이 얼마나 숭고했는가를 말해준다. “뭘 용서합니까. 안 계신 몇 년 동안 내한테 와가 당신이 자기들한테 잘해줬다고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예.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더. 14년 전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예. 시상은 변했어도 당신은 안변한 거라예.” 그러면서 이삭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 

 

죽으면서도 아이들 걱정하는 이삭에게 걱정말라며 남편의 죽음을 직시하는 선자의 눈빛은 강인하다. 그 죽음을 피하지도 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뿐이다. ‘파친코’가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건 바로 이 인간의 숭고함이 주는 뭉클함 때문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깊숙이 들어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그 모습 앞에 누구나 감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애플TV+)

‘언니네 산지직송’, 여성 예능이 보여준 색다른 정경

언니네 산지직송

“분위기가 오늘... 갯장어 잡는가 보다.” tvN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에 나온 차태현은 예능 고수답게 정확하게 그 날 그들이 해야할 일을 꿰뚫어본다. 사실 그건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남해의 멸치와 단호박, 영덕의 복숭아와 물가자미에 이어 고성으로 이어진 ‘언니네 산지직송’을 통해 그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에 그 날 해야할 일이 들어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갯장어 음식점에 먼저 들어온 차태현이 금세 분위기를 파악해버린 이유다. 

 

하지만 차태현이 이토록 예능 눈치가 빨라진 건 그가 꽤 많은 프로그램들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박2일’ 시즌2와 시즌3를 함께 했고 ‘용띠클럽’, ‘거기가 어딘데?’, ‘서울촌놈’, ‘어쩌다 사장’까지 차태현은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의 예능 단골 출연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언니네 산지직송’에 게스트로 출연하자 새삼스레 현재 변화된 예능의 풍경이 그려진다. 차태현이 맹활약해온 예능의 시대에 당연한 듯 보였던 남성 출연자들이 주축이 되던 풍경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누가 뭐래도 염정아가 그 중심이고 그를 받쳐주는 박준면, 안은진과 더불어 막내 덱스가 청일점으로 고정 출연한다. 남성 출연자들로만 채워지던 ‘1박2일’이나 여성 출연자가 한두 명씩 들어가 있던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과 비교해보면 이 구도는 정반대다. 여성 출연자들이 주축이고 오히려 덱스 같은 남성 출연자가 한 명 더해진 구도이니 말이다. 

 

사실 제목부터 ‘언니네’를 붙인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이 애초 기획한 여성 예능의 면면을 드러낸다. ‘삼시세끼’ 산촌편에 윤세아, 박소담과 함께 출연하면서 보여줬던 염정아의 매력적인 면면이 ‘언니네 산지직송’에는 중요한 기획 포인트였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뭐든 많이 요리해내는 ‘손 큰 언니’로서의 매력이 그것이다. 이런 인물이 산지에서 바로 나온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는다면 장관(?)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했을 게다. 

 

실제로 염정아는 ‘언니네 산지직송’에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요리들을 크게 크게 선보였다. 생멸치를 튀기고 구워 내놨고, 물가자미를 통째로 전을 부쳤다. 또 없는 재료로도 뚝딱 한 끼 요리를 해내는데, 계란탕 하나를 끓여도 계란 한 판을 더 쓰고, 참치비빔밥을 만들어도 캔 몇 개를 따서 넣는 손 큰 면모들을 보여줬다. 

 

염정아가 중심을 잡으니 베짱이들이지만 열심히 언니를 돕고 또 감성 충만한 면모로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박준면과 안은진 또한 프로그램에 점점 익숙해졌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인 안은진은 갈수록 발랄하고 당찬 모습이 두드러진다. 플러팅의 고수라는 덱스가 막내로 들어왔지만, 흔한 남성 예능들이 해왔던 멜로적 분위기 대신 티격태격하는 남매 케미를 보여준다. 비상금을 만들기 위해 민들조개를 캐러 가자는 안은진에게 덱스가 차라리 데이트가 하고 싶다고 말하라며 농담을 하자 순간 “인성 문제 있어?”라고 받아치는 안은진의 재치가 그것이다. 

 

염정아가 중심이 되어 세워진 여성 예능의 틀이어서인지 ‘언니네 산지직송’은 게스트들의 면모도 남다르다. 직접 일을 해서 식재료를 얻는 콘셉트를 갖고 있어서 그런 면도 하지만, 게스트들은 모두 일 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일터에서도 그렇지만 함께 지내는 숙소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정민도 박해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깔끔하게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모습으로 염정아가 엄지척을 하게 만든다. 집안 일도 잘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남성예능에서 출연자들이 베짱이 콘셉트로 주로 웃음을 주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사실 ‘언니네 산지직송’이 굉장히 색다른 소재나 시도를 하고 있는 에능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가 늘상 봐왔던 여행 예능에 노동과 쿡방, 먹방이 더해져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평이해보이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풀어가는 여성예능의 풍경이다. 염정아라서 열리게 된 색다른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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