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종, 수지 마음 훔친 다정함과 무해함의 인간화(‘이두나’)

이두나!

“무서웠겠어요. 혼자서. 누나, 겁내도 되요. 다치는 것보단 낫잖아요. 다치지 말라고요. 누구한테든. 사랑받는 게 업이었던 사람이잖아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성 속에서 반짝반짝 빛났지만, 어느 날 갑자기 노래가 나오지 않아 도망치듯 무대를 떠난 이두나(수지). 혼자 사는 집에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는 사실 그게 두렵지만 마치 그런 일은 흔한 일이라는 듯 익숙한 척 한다. 하지만 그 치한을 붙잡아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해준 원준(양세종)은 두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말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두나!>에서 이 대사는 두나가 원준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한 밤 중 잠에서 깨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원준을 보고는 함께 술이나 마시려던 두나의 마음에 원준의 그 말은 잔잔한 파문을 던진다. 그 누구에게도 그런 다정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다. 두나는 괜스레 더 자야겠다며 원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눕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원준은 무해하게도 그런 두나를 내려다보며 이불을 덮어준다. 

 

그러자 이제 두나가 원준의 손을 포개 잡으며 말한다. “좀 잡고 있을 게. 싫으면 빼.” 그건 마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담긴 말이지만 동시에 원준에 대해 두나가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자 원준은 두나가 포갠 손을 다른 손으로 마치 이불을 덮어주듯 덮어준다. 그 손길을 느끼고 두나 역시 손을 꼭 쥔다. 짧은 장면이지만 두나와 원준의 마음이 드디어 서로에게 닿는 장면이다. 

 

<이두나!>는 한때 화려한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해 홀로 지내는 두나를 같은 셰어하우스에 들어오게 된 원준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다. 화려한 아이돌과는 사뭇 다른 현재의 두나의 모습을 드라마는 담배 피는 장면으로 반복해 보여준다. 아이돌이라고 하면 현실과는 어딘가 유리되어 보이는 그런 인물처럼 느껴지지만, 담배를 피우는 두나의 모습은 그 비현실을 현실로 끌고 들어온다. 

 

<이두나!>는 이처럼 두나라는 전직 아이돌의 캐릭터가 하나의 아우라처럼 극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드라마지만, 그런 비현실적 화려함에 질식됐던 인물을 현실로 이끌어내 조금씩 회복시켜주는 원준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런데 원준이라는 이 캐릭터에 저도 모르게 자꾸만 빠져드는 그 매력의 정체는 뭘까. 그건 두 단어로 정리하면 아마도 ‘다정함’과 ‘무해함’이 아닐까. 

 

원준은 함부로 다가가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대신 한 걸음 물러나 지켜봐주고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섬세한 다정함이 일상에 배어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주 작은 것조차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선하다. 아픈 엄마와 동생을 두고 자취방으로 떠나오면서 자신이 잠깐 좋다고 느꼈던 그 해방감조차 ‘나쁜 생각’이라고 할 정도다. 그래서 성큼 성큼 다가오는 두나 앞에서 뒷걸음질 치며 조심스러워하다 어렵게 어렵게 “내가 많이 좋아해요”라고 말을 꺼낸다.

 

자신이 너무나 좋아했었지만, 그 때로부터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마음이 두나에게 가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원준은 그 마음을 알면서도 끝내 고백하는 진주(하영)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누구라도, 가족이라도 함부로 하게 두지 말라”고 하는 사려 깊고 배려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또 자신이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며 그걸 애써 감당하려는 용기도 가진 인물이다. 이러니 누나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밖에. 

 

최근 들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이상화된 남성상이 바뀌고 있다. 아주 과거에는 카리스마 있는 남성상이 자주 등장하곤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인물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대신 다정하고 또 무해한 모습으로 상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주고 배려하는 남성상이 급부상했다. <이두나!>에서 위태롭게 보이는 두나를 그 따뜻함으로 보듬어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원준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그런 남성상이다. 

 

수지가 담배 피우는 모습 하나로도 두나라는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한없이 흔들리는 인물을 표현해냈다면, 양세종은 흔들리는 두나 옆에서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원준이라는 인물을 눈빛과 목소리로 그려낸다. 수지와 양세종이 서로를 바라보는 그 장면만으로도 애틋해지는 오랜만에 보는 청춘 멜로드라마다. 깊어가는 스산한 가을에 더더욱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사진:넷플릭스)

 

‘연인’, 존버 시대 안은진이라는 독보적 캐릭터의 탄생

연인

“내가 살고 싶다는데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야? 종종아 일전에 강화도 때 다 뛰어내리는데도 우린 살았어. 난 살아서 좋았어.” 노예 사냥꾼들에게 쫓기다 벼랑 끝에 몰린 조선인 여성들은 그 곳에서 치마로 얼굴을 감싼 채 뛰어내린다. 더럽혀진 몸으로 돌아가면 부모님께 죄를 짓는 거라며. 그러자 길채(안은진)는 그렇게 말한다. 살고 싶은데 부모님은 상관없다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MBC 금토드라마 <연인>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사극이다. 병자호란이라는 극단적인 전쟁 상황을 가져와 그 곳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민초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담았다. 파트1이 병자호란 상황 속에서의 살아남기라면, 파트2는 전쟁은 끝났지만 그 배경을 중국 심양으로 옮겨 노예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살아남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길채는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때론 철부지처럼 살아오던 이 인물은 위기 속에서 변화한다. 병자호란 속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종종이(박정연)와 방두네(권소현)를 이끌고 심지어 그 사지에서 아이까지 받아내며 끝내 버텨 살아남는다. 전쟁이 끝나고 사랑하는 연인 이장현(남궁민)과 엇갈려 구원무(지승현)와 혼례를 치르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도망노예라는 누명을 쓰고 심양으로 끌려가게 된다. 

 

돈에 팔리고 노리개처럼 핍박받는 노예의 처지가 된 조선인들은 도망치다 발뒤축을 잘리거나 상전의 질투로 손목이 잘리거나 심지어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는 참혹한 처지가 된다. 하지만 특히 여성들이 더 절망하게 되는 건,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주홍글씨 같은 꼬리표다. 길채를 구하러 나선 남편 구원무 역시 그렇게 끌려갔다면 ‘볼 짱 다 본 몸’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린다. 

 

실제로 이렇게 노예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은 살아 돌아왔어도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가 된다. 역시 노예로 끌려왔다가 이장현에게 구출된 양천(최무성)은 그 자신 또한 노예의 처지를 잘 알면서도 다른 조선인 여성이 아이의 젖을 주려 하자 ‘원수에게 물린 젖’을 물릴 수 없다며 밀쳐낸다. 심양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예들은 다 같이 참혹한 상황 앞에 놓여 있지만, 그 안에서도 여성들은 차별받고 핍박받는다. 

 

그래서 조선인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당연한 것처럼 벌어지는 그 지옥 같은 현실 속이지만, 길채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그는 ‘살아남자’고 손을 내민다. 절개니 부모님이 하는 그런 유교적 사고관 따위는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밀쳐낸다. 죽으려 하는 종종이에게 내미는 손이, 자신이 끝까지 지켜주겠다 하는 그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다.  

 

<연인>은 이른바 ‘존버’ 시대의 가치관이 투영된 사극이다. 현재 우리 시대의 청춘들은 대단한 꿈이나 이상보다 일단 ‘살아남기’가 더 중요해졌다. 쉽지 않은 취업현실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무엇보다 ‘생존’하는 일이 우선이고, 그것은 결코 수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져온 <연인>은 그 시대 그 어떤 손가락질에도 끝내 살아남았던 길채 같은 인물을 통해 지금의 ‘존버’하는 청춘들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중이다. 

 

이것은 길채를 잊지 못하고 심양에서도 줄곧 그리움의 나날을 보내는 이장현이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 곳에 끌려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치욕이라고 말하는 소현세자(김무준)에게 이장현은 이렇게 말한다. “소인은 포로시장의 조선 포로들인 치욕을 참고 있다 생각지 않습니다. 저들은 살기를 선택한 자들이옵니다. 배고픔과 매질, 추위를 이겨내며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삶을 소망하고 있나이다. 하루를 더 살아낸다면 그 하루만큼 싸우면서 승리한 당당한 전사들이 되는 것이옵니다.”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인가. 이장현의 말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보여주는 길채라는 인물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노예 시장에 끌려 나와 몸값 흥정을 당하는 처지 속에서도 끝내 생존하겠다는 의지만은 꺾지 않는 이 인물 앞에 이장현이 드디어 나타나 “도대체 왜?”라고 분노와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피투성이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처럼 느껴진다. 길채라는 사극 속 인물이 존버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져서다. (사진:MBC)

아이들 놀이 같은 윤계상과 유나의 반격이 특히 통괘한 건(‘유괴의 날’)

유괴의 날

마치 살벌한 어른들과 천진한 아이들의 대결 같다.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 드러낸 최로희(유나)를 두고 벌어졌던 사건의 전말은 ‘천재 아이 프로젝트’라는 끔찍한 실험이었다. 두뇌 기능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이 실험을 위해 최진태(전광진) 원장은 아이들을 입양했고, 성과가 없으면 파양하는 걸 반복해왔다. 최로희는 그렇게 입양되어 실험대상이 됐던 아이이고 그 실험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 끔찍한 실험은 최진태 원장이 시작한 게 아니라 그 부친에서부터 이어져온 것이었다.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최로희를 유괴하라고 부추겼던 김명준(윤계상)의 아내 서혜은(김신록) 역시 최진태 원장의 부친에 의해 실험됐다가 성과가 나오지 않아 파양됐던 아이였다. 게다가 이 실험에는 모은선(서재희) 박사나 제이든(강영석) 같은 연구비 투자자들이 있었다. 물론 목적은 달랐다. 모은선 박사가 아픈 딸을 위해 최로희가 필요했다면, 제이든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다. 

 

천재 아이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고, 그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파양시키는 비정한 어른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엘리트주의’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적 상위 몇 프로인 엘리트들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버려지거나 소외시키는 사회가 그것이다. 그 목적은 돈이거나 혹은 가족이기주의 같은 것들이다. 

 

최진태 원장이 살해되자 그 막대한 유산이 최로희에게 갈 것을 우려해 아이를 죽이려고까지 하는 최동준(오만석) 같은 유족들의 모습도 저 천재 아이 프로젝트를 2대에 걸쳐 해온 비정한 어른들과 다를 바 없다. 이들에게는 아이도 하나의 소유물 같은 실험대상이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버려지는 소모품 같은 존재로 치부된다. 

 

그래서 뒤늦게 밝혀진 ‘천재 아이 프로젝트’의 전말은 애초 어설픈 유괴범 김명준이 최로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사실이 유괴가 아니라 구조였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기억을 잃어 김명준을 아빠라 착각하지만, 기억이 되돌아온 후에도 최로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김명준에게 최진태 원장에게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을 끈끈한 정을 느낀다. 

 

흥미로운 건 김명준이 과거 유도를 하다 사고로 상대 선수를 죽게 만들었을 정도의 괴력의 소유자지만, 하는 짓은 어딘가 아이 같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모자라다고 느껴지는 이 인물은 그러나 최로희와 함께 할 때는 어른과 아이가 아닌, 아이들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오히려 천재적인 두뇌를 발휘해 이 복잡하게 욕망들이 꼬여버린 상황들을 헤쳐 나가는 최로희가 어른 같은 역할을 한다. 

 

제이든과 최동준(오만석)이 공조해 최로희를 김명준이 살해한 것처럼 꾸미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폭로하겠다며 저들을 협박해 300억을 내놓으라고 하는 최로희와 김명준의 공조는 그래서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그려진다. 제이든에 의해 납치 구금되어 있고 300억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이 있는 상황에서도 최로희와 김명준은 이 판세를 다 읽어가며 여유있게 바닷가에서 모래 놀이를 한다. 

 

<유괴의 날>의 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인 ‘아이들의 반격’에 들어갈 작정이다. 어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비정한 짓들을 하나하나 폭로하고 저들의 욕망을 역이용해 저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 그리고 아이 같은 어른 김명준이 끝내 원하는 건 최로희가 ‘천재’가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다. 마치 아이들이 놀이하듯 펼쳐지는 김명준과 최로희의 반격이 특히 통쾌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사진:ENA)

 

코다 소년 려운에 담은 청춘들에 대한 ‘반짝이는 워터멜론’의 응원

반짝이는 워터멜론

“제가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님이 욕을 먹어요.” 은결은 비바 할아버지(천호진)에게 숨겼던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는다. “장애인이라 애를 제대로 못 키웠다고. 두 분 다 농인이시거든요. 제가 잘못하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욕을 들으세요. 그래서 제가 잘해야 돼요.” 은결은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는 물론이고 형 은호의 입과 귀가 되는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은결의 아버지는 가족이 모두 위험에 처하면 가장 먼저 은결이를 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아버지는 가족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아빠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될 수도 있다”며 은결이는 분명 “뛰어가서 아빠를 도와줄 누군가를 반드시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어린 은결이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빠가 말한 것이지만, 그것이 은결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자 책임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tvN 월화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코다로 살아오며 누구보다 더 가족을 위해 노력해온 은결이 비바 할아버지를 통해 기타를 알게 되고 배우는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수화를 통해 침묵의 세계에 살아가는 가족과 소리의 세계인 세상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온 은결에게 불쑥 등장한 기타라는 음악의 세계. 비바 할아버지는 음악의 세계가 수화와 비슷하다며 “손으로 말을 걸고 음으로 돌려받는 것”이라고 했다. 

 

또 코드의 세계는 인생과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코드에는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라는 게 있는데, 메이저 코드가 밝은 느낌을 준다면 마이너 코드는 좀 슬프고 우울한 느낌을 내지. 메이저와 마이너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멋진 곡이 완성된단다. 인생도 마찬가지야. 시련도 있고 기쁨도 있어야 비로소 반짝이는 인생이 완성되는 법이지.”

 

하지만 음악의 세계 깊숙이 빠져들던 은결은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나는 사건을 겪으며 기타를 내려놓는다. 그 화재로 형과 아버지가 죽을 뻔 하고 집은 잿더미가 됐다. 은결이 그 안에 있다 생각한 아버지가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은결은 알았을 게다. 아버지가 아니 나아가 이 가족이 얼마나 자신을 의지하는가를.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알쏭달쏭한 제목에도 담겨 있지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반짝임을 응원하는 드라마다. 그 이야기를 은결이라는 코다 소년으로부터 시작하는 건,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접어두고 살아가는 삶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건, 가끔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에서 기타 버스킹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가족을 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이 청춘은 이 족쇄를 벗어나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 단서는 이미 비바 할아버지가 어린 은결에게 코다를 설명하며 전한 바 있다. 그는 은결이 가족 중에서 혼자서만 듣고 말할 수 있는 코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코다가 하는 수화와 음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줬기 때문이다.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이어주는 사람들이지. 말과 손으로. 그리고 때로는 너처럼 음악으로.” 

 

간만에 느껴지는 따뜻함과 청량함이 있는 드라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비바 할아버지가 은결에게 전하는 음악처럼, 그가 해온 코다로서의 삶이 음악인으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가족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존재가 되기를 응원한다. 그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청춘들에게 뭐든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어른의 시선이 있고, 그게 뭐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청량한 청춘들이 있다. 이 드라마가 첫 회부터 꺼내놓은 진심은 그래서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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