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박봄, 박민우까지 <룸메이트> 논란, 그 책임은?

 

이번엔 박민우의 졸음운전이 논란이 됐다. SBS <룸메이트>에서 떠난 강원도 여행에서 운전대를 잡은 박민우가 살짝 졸다가 차량이 가드레일쪽으로 나가는 것을 서강준이 급하게 깨워 사고를 면하는 아찔한 장면이 고스란히 방영되면서 생긴 논란이다.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장면이었다.

 

'룸메이트(사진출처:SBS)'

박민우는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같이 차를 탄 출연자들도 괜찮다고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방송이 나간 후 박민우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사실 이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논란이었다.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제작진이 배려했다면 굳이 방송이 나오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의도된 편집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 날 방송은 시작부터 아예 논란을 준비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늘 함께 사는 동생들을 살뜰히 챙겨주던 신엄마 신성우가 설거지가 가득한 부엌을 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그대로 나갔고, 결국 설거지를 하게 된 박민우는 스케줄이 적어 집에 있는 사람들만 계속 일을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송가연은 화가 난 듯한 박민우의 눈치를 보며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껏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여줬던 <룸메이트>하고는 사뭇 다른 장면이었다.

 

무언가 사건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에서 출발한 강원도 여행에서도 에어컨이 고장 나 찜질방이 된 차량에서 한껏 날카로워진 출연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에 나갔고, 그 와중에 박봄과 박민우의 날선 대립이 보여지기도 했다. 사실 차량 문제 같은 것도 제작진이 조금만 신경 썼다면 충분히 배려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차량을 수리해주거나 교체해주는 모습은 보여지지 않았다.

 

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제목이 보여주듯 이번 방송 분량은 아예 대놓고 논란을 예고한 느낌이 짙다. 관찰카메라는 그 리얼한 느낌 때문에 잘 포장되어 나가게 되면 출연자에 대한 호감도가 훨씬 높아지지만, 거꾸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장면이 나가게 되는 순간 일종의 폭로카메라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출연자들은 그 편집에 의해서 비호감에 빠지거나 심지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룸메이트>의 관찰카메라가 얼마나 아슬아슬한가를 잘 보여주는 건 나나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나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 그대로 방송을 타면서 악플에 시달리게 되자 그 심경을 방송을 통해 토로한 바 있다. 그 후의 나나는 초반의 발랄했던 모습에 비해 침체된 느낌으로 유독 조세호와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논란에 대해 그만큼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봄의 문제는 프로그램 바깥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전적으로 제작진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미 문제의 소지가 발생해 시청자들이 박봄을 과거처럼 바라보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는 것은 그저 어쩔 수 없다는 토로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것은 박봄 마약밀반입 논란의 진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로지 시청자들의 입장을 배려한다면 내보내지 않는 게 맞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로 버젓이 나오는 박봄의 모습은 당사자에게도 점점 비호감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논란이 터지기 전에 찍은 방송 분량이라도 논란이 터진 후에 방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뻔뻔한인상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봄을 위한 제작진의 배려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룸메이트>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제목으로 보여주려는 건 분명하다. 그것은 같이 사는 이들이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크고 작은 갈등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들은 또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박민우의 사례처럼 심지어 안전마저 담보로 하는 문제적 장면들이 편집 없이 방영되는 것은 이런 제작 의도를 넘어서는 일일 것이다.

 

한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여주던 <룸메이트>의 관찰카메라는 이제 대단히 위험한 모습으로 돌변해 있다. 호감이던 연예인이 비호감이 되고 심지어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이 제작의도인 공동 주거 문화의 뜻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또한 시청률이라는 열매를 가져가고 있지도 못하고 있다. 어쩌다 괜찮은 출연자들을 이렇게 모아놓고도 이런 결과밖에 만들지 못했을까. 그것은 관찰카메라라는 형식이 가진 양날의 칼일까, 아니면 공동주거라는 문화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갈등의 소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시청률도 취지도 못 살리고 있는 제작진의 무능일까.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무도>, 기부금보다 귀했던 유재석의 마음

 

죄송하다. 내가 사고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내 잘못이다. 내가 차를 고장 내서 그렇다.” 유재석의 이 말이 왜 그렇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까. <무한도전> 스피드레이서 특집에서 유재석은 결전을 이틀 남기고 난 사고 때문에 갑자기 다른 차량으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엔진에 문제가 생겨 가속이 되지 않는 바람에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려 5개월 간의 준비기간이다. 그 긴 시간을 부단히도 노력하고 달려온 유재석이 아닌가. 그를 가르쳐주던 프로들도 이제 가르칠 입장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일취월장한 그였다. 그런데 결전의 문턱에서 만난 의외의 사고로 달릴 수 없는 차량을 모는 그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런 그가 남 탓이 아닌 자기 탓을 하며 죄송하다”, “괜찮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사고로 인해 달리지 못하는 자신이 가장 고통스럽고 안타깝겠지만 그것이 자기 혼자만의 준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 때문이다. 차와 함께 동고동락한 정비사들이나 그에게 레이싱을 가르쳐준 프로 선수들, 그리고 이 대회를 위해 방송을 준비해온 <무한도전> 제작진들, 또 스폰서가 되어주겠다고 그가 약속했던 나눔의 집의 할머니들까지 그는 떠올렸다. 그러니 어찌 자신의 안타까움이 우선이겠는가.

 

이미 대회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다. 멤버 전원 완주 실패. 그래서 예고편에 잠깐 등장한 멤버들의 눈물바다는 아직 보지 못했어도 미루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지금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들이 쏟았던 눈물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한계 이상으로 자신을 내던진 이들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회한과 아쉬움과 자기 위안 같은 것들이 뒤범벅된 감정일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 특집은 오랜만에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무한도전> 특유의 진심을 드러낼 참이다.

 

예능이 그저 저들끼리 웃고 까불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치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라는 걸 <무한도전>은 그간의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곤 했다.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도전하는 것. 그 진심을 확인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의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던 것. 사실 <무한도전>의 도전은 그래서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그 가치가 더 빛나기 마련이다. 불가능해 보여도 일단 부딪쳐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

 

우승도 아닌 완주도 못한 유재석이 경기가 끝나고 나눔의 집을 찾아가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할머니들과의 약속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그를 나눔의 집으로 인도하지 않았을까. 그가 기부한 2천만 원이라는 돈의 액수보다 더 귀한 건 그가 이번 대회를 통해 보여준 마음이다.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 잘 안된 일에 남 탓을 하기 보다는 자기 잘못이라고 스스로 책임지는 마음. 지금의 리더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좀체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마음.

 

<혹성탈출> 변칙 개봉 논란과 영화의 공존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에서 시저는 유인원 종족들을 이끌고 인간들 앞에 서서 서로의 영역에 대해 말한다. 숲은 유인원들이 사는 공간이고, 도시는 인간 생존자들이 사는 공간이라는 것. 시저는 각자의 영역에서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즉 인간과 유인원 간의 대결을 보여주는 <혹성탈출>20세기 내내 인류를 전쟁으로 내몰았던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사진출처: 영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10여 년을 각각 살아가던 인간과 유인원이 어느 날 우연히 조우해 총성이 울리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한다. 인간은 낯선 숲에서 갑자기 마주친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유인원에게 느낀 공포로 인해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유인원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잡혀 갖가지 실험을 당했던 유인원 코바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다른 선택도 있다. 시저와 말콤이 유인원과 인간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를 뛰어넘어 신뢰와 우정으로 나아가는 선택이 그렇다. 말콤이 유인원들의 숲에 죽음을 불사하고 들어간 것은 그 두려움을 공존의 의지로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공존에 대한 노력은 양자 간의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깨려는 내부의 적들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

 

블록버스터이면서도 진지한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혹성탈출>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개봉에 있어서 아이러니한 문제를 남기고 있다. 즉 이 영화는 공존을 이야기 하지만 이 같은 블록버스터들이 극장가를 점령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작은 영화들에게는 공존은커녕 생존을 얘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같은 변칙개봉 논란은 이 거대한 몸집의 영화가 개봉일 변경 하나만으로도 작은 영화들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되는 현 영화 생태계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 논란을 단지 할리우드 vs 우리 영화로 구분해 대결구도를 갖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혹성탈출>의 이야기가 인간 vs 유인원의 대결이 아니라는 것과 유사하다. 시저는 영화의 말미에 유인원이 인간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그것은 인간과 유인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할리우드와 우리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네 영화는 상당 부분 할리우드를 닮아가고 있다. 우리 영화에 있어서도 끝없는 스크린 독점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이 개봉되면 작은 영화들은 소리 소문 없이 스러져 버린다. 그러니 <혹성탈출>의 변칙 개봉의 문제는 우리 영화를 포함한 블록버스터들의 독점적인 스크린 장악 시스템을 얘기하는 것일 게다. 영화는 이제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자본 아래 국적성이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진정 <혹성탈출>이 주제로 보여주는 것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일까. 전 세계의 영화관을 거의 독점 하다시피 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시스템을 욕하면서도 우리의 자본은 그 시스템을 철저히 배워 우리 시장에 적용하고 있다. 결국 <혹성탈출>이 얘기하는 것처럼 적은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부에 있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끝없는 욕망은 영역과 종족 구분 없이 전쟁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인간의 총을 가져와 유인원들에게조차 총구를 겨누는 코바의 모습은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제 저 할리우드의 습격을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잣대를 내세워 욕할 자격이 더 이상 우리에게는 없다. 결국 그 총을 들여와 우리 영화계를 향해 겨눈 것은 우리네 거대자본이 아니던가.

 

시저와 말콤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존을 꿈꾸면서도, 시저의 말대로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제 더 이상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이 아니다. 공존하겠다는 의지와 모든 걸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대결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현재 우리네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크린 전쟁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혹성탈출>의 변칙 개봉 논란은 할리우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현재 처한 문제이기도 한 셈이다.

<7인의 식객>에 필요한 것, 지식과 음식의 조화

 

MBC <7인의 식객>은 중국에 이어 에티오피아로 가면서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 배낭팀과 테마팀으로 나눠 마치 비교체험 극과 극을 보여주던 중국편과 달리, 에티오피아편은 커피팀과 와인팀, 소금팀과 닭팀처럼 좀 더 구체적인 음식이나 재료로 팀을 나누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7인의 식객>이 좀 더 음식에 집중하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7인의 식객(사진출처:MBC)'

하지만 첫 회에서 커피팀과 와인팀으로 나뉘어 여정을 보여준 후 다시 합류해 소금팀과 닭팀으로 나누어 각각 떠난 여행에서 음식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보다는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문명, 그리고 지리적인 지식 전달이 더 많았다.

 

물론 에티오피아에서 사용한다는 게즈력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나 고대문명 악숨에서 보여준 칼렙왕의 무덤, 9세기경 지진으로 무너졌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오벨리스크, 단 한번의 전투로 이탈리아의 침략을 막아낸 아두와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지식이다. 아마도 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그 현지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나면 비로소 그 체험의 묘미가 다르다는 걸 느껴봤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러한 지식이 과연 <7인의 식객>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와 잘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지식 자체가 있고 없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지식이 이 여행의 목적이기도 한 음식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하는 점이다. <7인의 식객>을 보는 시청자라면 당연히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아는 경험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지식 따로 음식 따로의 병렬적 이야기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

 

소금사막 다나킬에서의 여정 역시 소금이 그 특정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어떻게 생겨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음식문화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는 잘 보여지지 않았다. 60도에 가까운 폭염 속에 탈진해 쓰러진 PD의 이야기가 다나킬에서의 주요한 이야기가 되는 건 어딘지 아쉬운 대목이다. 그나마 김경식이 소금을 먹고 오한이 사라졌다는 체험을 들려주며 다나킬은 죽음의 사막이자 생명의 사막이구나.”라고 하는 대목이 여행의 기획의도를 살짝 보여줬을 뿐이다.

 

<7인의 식객>이 예능보다는 다큐적인 성격을 보이는 건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칭 스타강사고종훈씨가 뜬금없이 중간 중간 등장해 지식을 전해주는 장면 역시 이물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능이든 다큐든 또 지식여행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인 음식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음식은 물론 지식으로 채워질 수 있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직접 먹고 맛보는 그 감각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지식여행을 강조한다고 해도 음식이 주는 이 체감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해주는 건 <7인의 식객>의 책무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다룬 첫 회의 와인과 커피 이야기는 너무 단선적이고 표피적이다.

 

에티오피아의 커피나 와인 맛이 타국과 어떻게 다르고, 그것은 왜 그런가에 대한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과정들을 프로그램이 추적해나갔다면 어땠을까. 사실 커피 하나만을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 에티오피아까지 날아가는 관광객들도 많지 않은가. 지식을 다루더라도 음식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프로그램에 일관성이 생기고 또 보는 맛도 생기기 마련이다.

 

음식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조화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도 가장 필요한 것이 중심과 부수적인 것을 잘 엮어내는 그 균형감각이다. 지식을 염두에 두더라도 음식을 다루기 때문에 감각과 감성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이성적인 지식과 감각적인 음식이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이 둘은 실로 잘 어울린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은 결국 지식을 통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넘어설 수 있는 일이다. 낯선 이국의 음식에 대한 편견을 바꿔주는 지식. <7인의 식객>이 그런 걸 보여줄 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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