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이주의 영화 대사 (25)
주간 정덕현
“이 정도 외모면 예쁜 편” 김한결 ‘파일럿’“다들 비행하느라 고생하는데 이 정도 외모면 예쁜 편입니다.” 항공사 회식자리에서 술취한 상무가 승무원들의 외모에 대한 부적절한 말들을 늘어놓자 파일럿 한정우(조정석)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렇게 둘러댄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는 그대로 녹음되어 세간에 퍼져나가고 일파만파 논란이 커지면서 잘 나가던 한정우의 삶은 바닥으로 추락한다. 일자리를 잃고 심지어 이혼도 당한다. 업계에 소문이 퍼져 그 어떤 항공사도 그를 채용하지 않으려 하자, 그는 엉뚱한 선택을 한다. 술에 취해 여동생 이름으로 경력까지 위조해 지원서를 내고 결국 여장을 한 채 항공사에 들어가 파일럿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김한결 감독의 영화 ‘파일럿’은 여장을 해 한정우가 한정미로 활동하게 되면서..
“근데 아파트를 못 구했네?” 김용화 ‘국가대표’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의 스키점프 선수들은 단체전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실제 사실은 당연히 주목되지 못했다. 당시로서는 스키점프 같은 종목 자체가 이른바 ‘비인기종목’이었고, 결과 역시 최하위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목되지 못했던 사실을 모티브로 해 제작된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는 무려 8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드라마틱한 허구의 재미를 더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올림픽 결과는 실제 사실과 다르지 않았다. 역시 최하위 성적을 기록하는 걸로 끝을 맺은 것. 어째서 실제와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이토록 달랐을까. 그건 물론 영화적 내러티브의 힘이 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결과만이 ..
“지금이 가장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신카이 마코토 ‘언어의 정원’장마철이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다. 흔히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빛의 마술사’라고 표현하지만, 필자에게는 ‘날씨의 마술사’로 더 각인되어 있다. 그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날씨의 정경들을 보다보면 세상이 어떤 표정을 갖고 있다고 느껴진다. 때론 환한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만, 때론 한없이 처연한 눈물을 흘리고, 때론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바로 그 날씨의 정경들이 전해주곤 해서다. ‘언어의 정원’은 그 날씨들 중 특히 비의 다양한 표정들이 담긴 작품이다. 비오는 날이면 오전 수업을 빼먹고 도심의 정원에 있는 정자에서 구두 스케치를 하는 고등학생 다카오. 그런데 어느..
“가라, 가서 마음껏 실패하라.” 이종필 ‘탈주’북한의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두고 있는 규남(이제훈)은 탈북을 꿈꾼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제대 후에도 그의 출신성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급 노동’뿐이다.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그 어떤 선택들도 가능하지 않은 삶. 규남이 철책을 넘어 지뢰지대를 뚫고 남으로 가려는 이유다. 하지만 규남의 탈북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현상(구교환) 역시 그 상황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귀족에 해당하는 출신성분으로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와 보위부 소좌로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그 역시 피아노에 대한 꿈을 접었다.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고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이종필 감독의 ‘탈주’는 그 감옥 같은 삶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청춘들의..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없네요.”- 봉준호 ‘기생충’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동익(이선균)이 사는 번듯한 2층집에 하나둘 기생하며 살게 된 기택(송강호)의 가족 이야기를 그렸다. 신분을 속이고 기택은 운전기사로, 기우(최우식)는 과외선생으로, 기정(박소담)은 미술치료 교사로, 그의 아내 충숙(장혜진)은 가정부로 들어온다. 동익이 누리고 사는 집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눈에 보이지 않게 그림자 속에 숨어 살아가는 기택 가족의 세상이 된다. 하지만 캠핑을 떠나 빈집에 남은 기택의 가족이 마치 제 집처럼 술판을 벌이고 놀 던 날 그 착각은 깨진다. 마침 폭우가 쏟아지면서 동익의 가족이 돌아오자 바퀴벌레들처럼 숨게 된 것. 그리고 그 폭우는 낮은 지대에 있는 기택의..
“희망... 맛있어?” 김성한 ‘하이재킹’“희망... 맛있어?” 1971년 겨울 속초공항, 여객기 기장 규식(성동일)은 태인(하정우)이 피우고 있는 담배를 보며 묻는다. 태인이 그저 문양이 예뻐서 피우는 담배의 이름은 ‘희망’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지만 그 대사는 앞으로 벌어질 엄청난 사건들에 대한 복선을 담는다. 그 ‘희망’을 별 생각없이 피울 때까지만 해도, 김포공항까지 가는 민항기에 사제폭탄을 든 테러범이 등장할 줄 그는 전혀 몰랐을 게다. 그 테러범이 다짜고짜 폭탄을 터트리고 북으로 가자고 위협하는 상황은 더더욱. 하지만 희망이란 그저 평범한 나날 속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떠오르는 단어가 아닐까. 태인은 결국 그 희망 하나를 붙들고 테러범..
“난 아직 부족해” 켈시 만 ‘인사이드 아웃2’불안은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게 하고 그래서 대비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부러움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내 보다 성숙한 나로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감정들이 과해질 때다. 과도한 불안은 그 사람의 영혼을 잠식해버리기도 하고, 과도한 부러움은 자기비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디즈니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2’는 바로 이 불안과 부러움 같은 감정들이 야기하는 사건들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사춘기를 맞은 라일리의 감정 제어 본부에 생겨난 변화로 시작한다. 불안, 부럽, 따분, 당황이라는 새로운 감정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기쁨이를 비롯한 기존 감정들을 내쫓은 후 본부를 장악해버린다. 새로 ..
“엄마는 죽었어.” 김태용 ‘원더랜드’2003년 방영된 드라마 ‘다모’는 이른바 ‘다모 폐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마치 폐인처럼 드라마에 빠져들었던 시청자들이 만든 말이다. 2019년에 방영된 대만드라마 ‘상견니’는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라는 말을 만들었고, 최근 종영한 ‘선재 업고 튀어’는 ‘선친자’라는 말을 남겼다. 폐인이니 미친 자니 하는 말들은 본래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이들 과몰입을 말하는 데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과몰입’의 시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의 의식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다. 이 기술로 죽음의 의미는 달라진다. 죽은 후에도 인공지능을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