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바너3', 서사예능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 가능했던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범인은 바로 너>가 시즌3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은 지난 2018년 시즌1이 공개된 후, 지금껏 달려온 대장정의 마무리다. 사실 이 대장정의 시작점은 SBS <런닝맨>이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끝에서 되새겨보면 <런닝맨>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는 <범인은 바로 너>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이른바 '서사예능'이라는 색다른 지점이다. 

 

이번 시즌3의 부제는 '잠재적 범죄자 리스트'다. 그래서 매 회 각각의 사건들이 펼쳐지면서도 그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야기 구성을 갖고 있다. 법으로 심판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는 사건 배후의 조직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이것은 시즌3 이야기의 구성이면서, 각각의 사건들이 갖는 구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넣어뒀던 간장게장이 사라지고 그걸 가져간 범인(?)을 찾는 소소한 사건을 추리해가다가 갑자기 한 인물이 살해되면서 살인사건으로 이야기가 커져나가고, 그 사건은 그 후 벌어진 비밀도박장에서 손목이 잘린 채 죽은 사체와 사택 옥상에서 굵어죽은 사체에게 벌어진 사건들과 다시 연결되면서 그것이 각각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식이다. 

 

물론 8회에 걸쳐 구성된 많은 사건들이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건 이 시리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좋은 방법도 아니다. 대신 매회 매 사건 속에 던져진 추리의 미션들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출연자들에 몰입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8회에 구성된 사건들을 보면, 물론 살인사건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액션이 가미된 부분도 있고, 공포나 미스터리, 멜로가 가미된 부분도 존재한다. 

 

이처럼 완벽한 유기적 연결이 이뤄지지 않는 건 <범인은 바로 너>가 보여주고 있는 리얼 예능의 캐릭터쇼와 드라마의 극적 요소의 연결 자체가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 예능이 신박한 건 캐릭터들이 들어가서 게임처럼 사건을 추리하고 풀어나가는 예능적 요소가 갖는 돌발적인 흐름과, 드라마가 하나의 메시지나 스토리를 제시하기 위해 그려나가는 인위적 상황을 연결해 놨다는 점이다. 

 

<범인은 바로 너>는 제작진이 전체 판을 그림으로써 던져놓은 드라마틱한 상황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출연자들이 들어가 경험하며 추리해나가면서 돌발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제작진이 완성된 어떤 흐름을 그려나가려는 방향과, 그 안에서 움직이며 그 흐름을 따라가거나 혹은 엇나가는 방향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8회에 걸쳐 각각의 사건들이 진행되고, 그것이 거대한 한 사건으로 귀결되는 제작진의 의도가 100% 구현되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드라마틱한 상황은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 팔이 잘리고 사체가 사라지는 연쇄 살인사건으로 등장하는 스릴러다. 이 부분은 이 프로그램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런닝맨>과는 다른 선택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즉 <런닝맨>은 초창기에 다양한 드라마틱한 장르들의 스토리텔링을 시도했지만, 중반을 지나면서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통한 게임 예능화의 경향을 보인 바 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보다는 예능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바로 너>는 예능적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추리적 재미에 예능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대신 드라마틱한 상황의 스토리를 구사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예능이 추구하는 이완적인 웃음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

 

<범인은 바로 너>는 그래서 <런닝맨>에서 시작했지만 캐릭터쇼의 웃음보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추구함으로써 '서사예능'이라는 색다른 지점에 도착하게 됐다. 그리고 이 선택은 예능도 매회 그저 웃음으로 휘발되는 어떤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흐름의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처럼 기억되는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물론 <런닝맨>식의 웃음을 기대한다면 어딘지 모자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예능도 하나의 서사를 그려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이야기와 추리의 재미에 빠져본다면 <범인은 바로 너>는 색다른 예능의 맛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이 부분은 어쩌면 시즌3까지 뚝심 있게 걸어온 <범인은 바로 너>의 가치와 의미가 아닐 수 없다.(사진:넷플릭스)

'결사곡', 막장은 아직 모르겠고 분명한 건 뻔한 불륜 공식

 

임성한 작가가 돌아왔다. 은퇴를 선언한 지 6년만의 번복이다. 대신 'Phoebe(피비)'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막장드라마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고, 드라마만큼 삶 역시 만만찮은 화제를 쏟아지게 했던 작가. 새로운 필명은 막장이 아닌 새로운 드라마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TV조선 주말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방영된 2회 분까지 만을 놓고 보면, 아직 '막장'의 발톱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앞으로도 막장이 아닐 거라 예단하기는 어렵다. <결혼작사 이혼작곡>이라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결혼과 이혼의 이중주를 그려내려 하고 있지만 그 겉면을 벗겨내면 '불륜'이 소재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한 라디오 방송을 함께 하는 30대 라디오 DJ 부혜령(이가령), 40대 PD 사피영(박주미) 그리고 50대 작가 이시은(전수경)이, 이들의 남편들인 변호사 판사현(성훈), 의사 신유신(이태곤) 그리고 대학교수 박해륜(전노민)에 의해 이혼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단란해보였지만, 알고 보면 저마다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남편들 때문이다.

 

판사현은 가장 먼저 그 불륜이 발각된 인물이고, 신유신과 박해륜도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거나 혹은 배려하는 척 하지만 아마도 다른 여자가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인물들이다. 드라마는 아직까지는 차분한 느낌을 이어가고 있지만, 향후 불륜이 발각되면서 생겨날 폭풍 전야의 고요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불륜을 저질러 아예 딸을 못 만나게 된 아버지가 결국 사고로 죽게 된 것이 엄마 탓이라 여기며 그를 몰아세우는 사피영은 향후 자신 역시 엄마와 똑같은 처지에 이르게 될 거라는 점에서 엄청난 파장이 예고된다. 또 마치 오래도록 헌신해온 아내를 위해 이혼을 얘기하는 줄 알았던 박해륜이 만일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 그 이유라는 게 드러난다면 그 역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방영 전부터 김순옥 작가와 비교되며 '막장의 대모'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같은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드라마는 막장이라기보다는 어딘지 옛날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불륜이라는 소재와 그걸 다루는 방식이 전형적이고, 과도할 정도의 대사 중심으로 이어가는 방식이 그렇다. 특히 사피영이 친모인 모서양(이효춘)에게 두 차례에 걸쳐 불륜을 저질렀지만 죽은 아버지를 두둔하며 오히려 엄마를 몰아세우는 장면은 거의 10분 가까이 쏟아붓는 대사로 이뤄져 있을 정도다. 

 

그런 사피영의 과도한 대사는 당연히 향후 그런 일이 그에게도 벌어진다는 걸 염두에 두고 깔아놓은 것이다. 그가 한 말들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똑같은 고통의 비수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져와(그것도 세 인물 모두) 발각되는 과정에 생겨나는 전형적인 갈등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방식은 지극히 상투적이다. 마치 일일드라마를 보는 듯한 가족드라마 구성에 불륜이라는 파괴적 요소를 넣어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들을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이미 너무 많이 나왔던 이야기들이 아닌가. 

 

사실 김순옥 작가와의 비교까지 예고됐지만 시청자들 중에는 <펜트하우스> 같은 워낙 강력한 막장의 자극이 준 여파 때문인지 드라마가 밋밋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런 옛날 드라마로 회귀한 듯한 틀에 박힌 보수성과 불륜 코드를 활용한 전형적 방식은 TV조선이라는 플랫폼과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 7.1%(닐슨 코리아)라는 높은 시청률은 그걸 방증한다. 임성한이라는 이름값이 먼저 화제로 작용했고, 내용은 막장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옛날 드라마 방식을 가져옴으로써 보수적인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

 

물론 2회까지의 방영된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다. 임성한 작가의 스타일 상 향후 언제든 이야기는 더 극단의 자극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옛날 드라마 방식에서 훌쩍 틀을 넘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TV조선으로서는 플랫폼에 어울리는 기획을 한 셈이고 은퇴를 번복한 임성한 작가도 꽤 괜찮은 선택을 한 셈이다. 일단 막장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며 비판요소를 차단하면서도 화제성과 시청률을 모두 거머쥐며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뻔한 불륜 공식을 따르고 있는 드라마가 그려내는 결혼과 이혼에 대한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시청률은 잘 나올지 모르겠으나.(사진:TV조선)

'윤스테이', 윤여정의 이런 자세가 예능의 품격을 올린다

 

tvN 예능 <윤스테이>에 손님으로 온 네팔 가족은 3대가 함께 했다. 귀여운 딸을 둔 부부가 장인, 장모를 초대해 함께 '윤스테이'에 같이 오게 된 것. 장인어른은 채식을 고수하는 비건이어서 '윤스테이' 사람들은 거기에 맞는 음식들을 준비해 내놨다. 고기 대신 콩고기를 넣어 만든 궁중떡볶이를 저녁식사로 내주었고, 아침에는 만둣국에 들어가는 만두로 야채만두를 따로 준비했다. 

 

손님을 위한 세심함은 그 비건 장인어른을 위해 최우식이 김치 대신 매실장아찌와 마늘쫑 같은 다른 반찬을 준비하는 데서도 드러났다. 김치에 새우젓이 들어가 있어서였다. 윤여정은 서빙을 직접 하면서 그 음식들이 비건을 위한 채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혹여나 갖게 될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네팔 가족이 3대가 함께 하고, 그래서 그들 사이에도 조금씩 세대 차이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그 음식에서부터 드러난 부분이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그 한옥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합류하게 된 윤여정과 네팔 가족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그것은 세대와 국적으로 다를 수 있는 문화가 서로 어떻게 소통하고 존중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종교 때문에 비건이냐"고 최우식이 던진 질문에 "신앙심이 깊으셔서 고기를 안 드신다" 설명한 사위는 장인도 자신도 모두 힌두교지만 "아버님을 빼고는 유연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여정은 "요즘 세대는 그렇다"며 공감을 표했다. 서로 다른 나라 종교지만, 어느 나라나 종교라고 해도 세대 차이로 인해 문화가 조금씩 다른 건 마찬가지라는 점을 든 것이다. 거기에는 젊은 세대들의 그런 변화를 긍정하는 마음이 담겼다.

 

"저도 종교를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아도 종교의 가치관은 중시해요. 습관이나 전통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사위의 말에 윤여정은 이제 어르신의 입장을 공감하는 말을 내놨다. "알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이전에 있었던 것들을 붙잡고 싶어져요.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지죠. 남은 시간 동안."

 

사위는 아버님 세대는 변한다는 게 힘든 것 같다고 이해하는 입장을 밝혔고, 윤여정은 그것이 당연하다며 세대차이가 크고 자신도 그렇다고 공감했다. 그리고 그 어르신에게 사위 칭찬을 해줬다. "운이 좋으시네요. 좋은 사위를 얻으신 건 행운이에요. 좋은 여행 선물도 받으시고.." 그러자 사위 역시 "여러분도 저희에게 굉장히 친절하셨어요"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저 훅 지나가는 짧은 대화에 불과해 보였지만, 이 광경은 <윤스테이>가 가진 타문화에 대한 자세를 잘 드러내 보여줬다. 그건 한옥에 한식을 경험하게 해주며 외국인들의 반응을 살피는 이 프로그램이 우리 문화에 대한 도취적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서 세대와 국적이 달라도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는 점이다. 

 

<윤스테이> '대표님'을 맡고 있는 윤여정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이런 입장을 그 존재 자체로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정력적으로 일하며,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고 또 외국인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때론 친 할머니처럼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엄마처럼 대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윤스테이>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나 뭐 시켜줘"하고 일을 자청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이런데 나오면 라면이 먹고 싶다며 젊은 친구들이 가끔 보여주는 '면치기'의 신기함을 얘기한다.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에게 '진, 선, 미'로 이름 붙은 숙소의 의미를 설명하고, 착하게 지내야 한다,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는 식의 덕담을 넣은 유머를 던지고, 또 문을 닫을 때 앞뒤 문이 같이 움직이자 "사실 여기 우리집 아니에요. 나도 잘 몰라요"라고 말하듯, 가끔씩 서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 손님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웃음을 주기도 한다. 

 

또 새로 온 이란 부부가 저녁 식사 자리에 앉게 됐을 때도 "저는 이런 자세가 익숙한데 두 분은 이런 자세가 익숙하지 않으시죠?"하며 우리네 좌식문화가 외국인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꺼내놓는다. 그러자 자신들도 좌식문화가 익숙하다 말하는 이란부부와 윤여정은 금세 친밀한 느낌이 만들어진다. 같은 과 같은 연구실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그들에게 "이거 축복인가요?"하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윤여정과 직원들(?)은 외국인들이 저마다 문화가 달라 우리 식의 한옥과 한식에 혹여나 불편함이 없을까를 걱정하고, 외국인들은 너무 맛있어 그릇째 만둣국 국물을 들고 마시는 게 예의가 아닌 건 아닌가 걱정한다. 북영국 출신이라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영국손님은 산책 중 만난 다른 외국인들과 금세 친해져 마치 동네 이장님 같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윤스테이>가 우리 문화에 대한 도취에 빠지지 않고 시청자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건,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긴 시선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여정이 상징처럼 서 있다.(사진:tvN)

'런 온', 최수영의 갑질마저 무너뜨린 강태오의 무기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은 기선겸(임시완)과 오미주(신세경)가 주인공이지만, 최근 급부상하는 커플은 서단아(최수영)와 이영화(강태오)다.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이자 서명그룹 상무인 서단아는 겉보기에 '갑질'로 보이는 명령과 거래가 일상인 인물. 하지만 그가 그렇게 깐깐한 태도로 일관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서명그룹의 유일한 적통으로 모든 걸 다 가진 채 태어난 그였지만, 후처의 아들로 태어난 서명민(이신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그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 것. 그는 한 살이 어린 서명민이 오빠로 둔갑하고 서명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그 과정 속에서 '잃지 않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내 것 챙기는 일에 온 힘을 쓰고,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여기면 먼저 버리기도 하는 그런 인물이 됐다. 

 

이영화는 그런 서단아의 아킬레스건으로 등장한다. 보통 서단아가 갑질을 하거나 명령을 하면 그대로 모든 게 척척 되곤 했는데, 이 그림을 그리는 학생일 뿐인 이영화는 그게 통하지 않는 인물이다. 의뢰한 그림은 그리는 도중에도 자기 것이라 여기고, 그림 그리는 사람을 마치 '자판기' 취급하는 서단아에게, 이영화는 "그림 뒤에 사람 있다"고 일갈한다. "당신 줄 때까진 내 거"라고 말하곤 그 그림을 망쳐버린다. 

 

서단아로서는 당혹스러운 순간이다. 늘 원하는 대로 됐고, 그것이 자신이 더 이상 뺏기지 않기 위해 해야만 하는 말과 행동이라 여겼지만 이영화는 을의 위치에서도 그것이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 하지만 그 일이 너무 과했다 여긴 이영화가 며칠 뒤 다시 찾아오자 서단아는 쾌재의 미소를 보이며 먼저 계약서부터 내민다. 계약을 하면 자신의 뜻대로 모든 걸 얻을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고 나니 이제 이영화가 진짜 하청업자나 된 듯 거리를 둔 채 요구대로 그림을 그리는 그 모습에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서단아는 깨닫는다. 제 마음대로 하곤 있지만 그건 마치 로봇 같은 마음 없는 '거래' 관계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그래서 결국 서단아는 자신이 이영화에 대해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키스 후 그는 "그림 뒤에 네가 있었다"는 걸 이영화에게 고백한다. 

 

이들의 관계 변화는 <런 온>이 그리려 하는 청춘들이 바라보는 다소 도발적이고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즉 빈부나 지위 같은 태생에 의해 나눠지는 관계, 그래서 그림을 그려달라는 갑의 의뢰와 을의 승낙이라는 거래를 통해 관계를 시작했지만, 이들은 서로를 겪어가면서 마음을 열고 그러한 갑을관계나 거래를 뛰어넘는 진정한 관계로 변화한다. 

 

<런 온>은 결국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갖고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그것 때문에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뿐,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생에 의해 나뉘는 갑을관계가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바로 이 메시지를 극적인 만남과 그 관계 변화를 통해 잘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서단아와 이영화라는 캐릭터다. 

 

특히 이영화라는 인물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당당하게 사람들과 만나고 그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강태오라는 신인배우가 이 작품을 통해 단박에 로코 기대주로 떠오르게 된 건 바로 이 이영화라는 캐릭터 덕분이다. 향후 이 배우가 성장해서 되돌아봤을 때, '인생캐'였다 부를 법한.(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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