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서숙향 작가라 다르다... KBS주말극에 쏠린 관심

다리미 패밀리

“누가 지갑 잃어버렸다고 신고가 들어오면 그 지갑 찾았다고 금방 파출소로 가져고 들어오는 동네가 이 동네야.” KBS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다리미 패밀리’는 순찰을 돌며 이 동네의 청렴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찰들의 목소리로 문을 연다. 동네 이름이 청렴이고, 이제 이 주말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다림(금새록)이네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 이름도 ‘청렴세탁소’다. 좀도둑 한 번 안들었다는 동네. 그 세탁소를 해온 다림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안길례(김영옥), 이만득(박인환)은 실제로 건조기에서 돈이 나오자 챙기기보다는 챙겨주려 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청렴은 계속 될 수 있을까. 다림이네 가족은 다림의 아버지가 1차 사시 패스를 수석으로 한 후 연거푸 떨어지면서 가세가 기울어진다. 무려 10차 재수를 하며 희망고문을 하던 다림의 아버지는 결국 병이 들어 사망하고, 다림의 엄마 고봉희(박지영)는 셋이나 되는 아이들에 노시부모들까지 부양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다. 다림은 퇴행성 희귀 망막염에 걸려 어릴 때 2.0이던 시력이 0.02가 됐고 점점 주변 시야가 좁아지다 실명할 위기에 처했다. 

 

그렇지만 다림이 살아오면서 느낀 가장 큰 고통은 ‘희망고문’이었다. 아버지의 희망고문이 만들었던 가족들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심지어 실명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겠습니다”라며 “엄마한테는 말씀하지 말아달라”고 의사선생님에게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심지어 대학시절 좋아해 하룻밤을 보낸 서강주(김정현)에게조차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면 그에게 기대하게 되고 기다리게 될 거라며. 

 

하지만 그렇게 포기가 더 쉽다고 해도, 실명을 벗어날 수 있는 효과 있는 주사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희망을 갖지 않을 수가 있을까. 주사를 맞은 이들이 모두 시력을 되찾았다는 의사의 말에 반색하지만 그 주사비용이 한쪽에 4억씩 무려 8억이라는 말에 다림은 또다시 희망고문에 빠진다. 안 하던 로또를 사서 긁고 또 긁으며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보지만 그게 될 턱이 없다. 포기했다 생각했던 희망이 만든 고문 속에 또 다시 빠져든 것이다. 

 

‘다리미 패밀리’에서 다림이네 가족의 짧은 서사는 의미심장하다. 그건 우리가 살아온 삶의 변화를 대변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좀도둑 한 번 안들 정도로 청렴하고 지킬 건 지키던 동네는 세월이 흘러 변해간다. 다림이네 가족이 그러한 것처럼, 아들의 성공에 희망을 걸기도 하며 착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왔던 우리네 서민들의 삶은 어찌 된 일인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런데도 청렴하게만 살 수 있어? 드라마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물론 ‘다리미 패밀리’는 이러한 불행의 연속을 무겁게 그리지는 않는다. 발랄하고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코미디로 담아낸다. 그간 ‘파스타’부터 ‘질투의 화신’ 같은 로맨스와 코미디를 그려온 서숙향 작가의 공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문제의식을 잊지 않는 작품의 전개가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이게 KBS 주말드라마일까 싶은 첫 회의 색다른 풍경이다. 

 

사실 그간 방영됐던 KBS 주말드라마들의 첫 시작을 생각해보라. 거의 문법에 가깝게 극적 사건들이 빵빵 터지고 출생의 비밀의 밑거름을 깔아 놓는 식의 클리셰들도 꽉꽉 채워져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번엔 좀 다르겠지’ 하다가도 ‘또 시작됐군’ 하면서 기대감을 서서히 접게 되는 ‘희망고문’을 반복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면서 KBS 주말드라마는 시청률조차 뚝 떨어지는 추락을 겪었다. 

 

‘다리미 패밀리’는 바로 그런 상황에 절치부심한 KBS가 내놓은 새로운 결과물이다. 먼저 서숙향 작가가 주말극에 처음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관심을 쏠리게 만든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코미디적 상황 그리고 달달하고 시크한 멜로까지 줄줄이 풀어내는 작가가 아니던가. 그가 시도하는 주말극이니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첫 회가 슬슬 풀어낸 작품의 문제의식은 역시 서숙향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가장 좋은 건 과도하게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려는 강박이 별로 없고, 하려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빌드업하려는 작가의 뚝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완성도를 위해서 주로 50부작으로 기획되던 주말극이 이번에 36부작을 내세웠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괜스레 고무줄처럼 질질 끌려 늘리기보다는 그만큼 밀도있게 작품을 풀어나갈 수 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완성도가 아니면 이제 시선도 주지 않는 현 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에 조응하는 선택이다. 

 

희망고문은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리미 패밀리’의 다림이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이 던지는 질문이고, 열심히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네 서민들이 다시금 던져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질문은 또한 그간 난맥상이었던 KBS 주말드라마를 그래도 관심있게 봐온 시청자들의 질문이 될 것이다. 과연 ‘다리미 패밀리’는 그동안 구겨져온 KBS 주말드라마의 주름과 무너진 자존심을 깨끗하게 다려줄 수 있을까. 모쪼록 그 질문의 답이 희망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사진:KBS)

“아이고 힘들어.” 류승완 ‘베테랑2’

베테랑2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 명대사로 기억되는 ‘베테랑’이 시즌2로 돌아왔다. 그 대사에 담긴 뉘앙스처럼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서민들을 대변한다. 가난해도 지킬 건 지키며 살려는 서민들의 마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천인공노할 죄를 짓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자들 앞에서 서도철은 분노한다. ‘베테랑’ 시즌1은 막강한 돈과 권력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를 끈질기게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이야기로 서민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줬다. 그런데 시즌2는 이야기의 결이 조금 다르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도 법망을 빠져나가며 제대로된 처벌을 받지 않은 범죄자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해치(정해인)라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형사가 아닌 보통 서민들의 입장에서 서도철의 마음은 그 해치와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특히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형사가 아닌가. 

 

‘사적 제재’는 어쩌다 보니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정서로 떠올랐다. 법 정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민심이 불러일으킨 공분은 ‘모범택시’부터 ‘비질란테’, ‘국민사형투표’, ‘노웨이 아웃’ 등등 다양한 사적 제재를 소재로하는 콘텐츠들을 양산했다. 그리고 이 사적 제재는 실제로 범죄자의 사적 정보를 마음대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일이 됐다. 하지만 정의가 어찌 간단할까. “살인은 살인이야”라며 “사람 죽이는데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냐”고 묻는 서도철은 해치의 엇나간 정의를 바로잡는다. 만신창이가 되어 사건을 마무리한 후 서도철이 넋두리처럼 하는 “아이고 힘들어”라는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분노와 처단 같은 단순한 선택만으로 얘기될 수 없어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 그것이 진짜 정의가 아닐까.(글:동아일보, 사진:영화 '베테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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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받지 마세요, 내가 정답입니다.”

전현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굴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닌 전현무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의하면 그가 지난해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만큼 그가 해내는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이 폭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선보인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에는 반드시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전천후 방송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인포테인먼트의 흐름, 전천후 방송인의 탄생

전현무는 방송의 흐름이나 시대의 변화를 앞서 내다보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2012년 그가 프리 선언을 했을 때 마침 방송가에는 ‘인포테인먼트’의 흐름이 생기고 있었다. 교양에서조차 정보만이 아닌 재미를 요구하는 새로운 변화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로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아나테이너의 길로 나아간 선택은 이런 변화에 딱 맞는 거였다. 진행자인 MC로서의 역할, 예능에서의 플레이어로서의 역할, 또 코멘테이터의 역할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 건 이 변화의 흐름에 적응한 결과였다.

 

“저는 근데 예전에 이렇게 역할이 다 나뉘어 있을 때부터 그냥 옷만 다르게 입는 거지 다 똑같은 전현무를 하는 거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게스트, 패널, MC, 플레이어 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는데 요즘에 그런 게 없잖아요. 예전에 넌 MC가 왜 이렇게 플레이어를 하려고 해 라고 누군가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요?’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역할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옛날부터 저는 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역할이 다르긴 한데, 약간 MBTI처럼 제가 MBTI P인데 P만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저도 J가 한 20% 정도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다 모든 게 섞여 있듯이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색깔을 좀 넣는 거고 게스트일 때는 게스트를 좀 하고... 100% 완벽하게 하나의 성향만 있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까 그것만 조금씩 조절을 하는 거지 역할은 다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려 노력해온 시간들이 들어있다. 과거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루시퍼’ 춤을 추고 하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한 면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여유로워진 예능인으로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가끔 케이블 채널 몇백 번대에 가면 그거(루시퍼) 나와요. 아직도 나오고 있죠. 진짜 민망해서 못 봐요. 저런 멘트를 하고 저런 표정을.. 그리고 남의 말 듣지도 않고 그냥 나 하나 웃기려고 그냥 너무 안쓰러울 정도로 그러고 있어요. 그런데 그랬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것 같고, 지금 이제 막 예능하는 친구들을 제가 이렇게 MC로서 보면 제가 그랬던 모습이 보여요. 귀여워요. 얘들도 10년 뒤에 얼마나 이걸 흑역사로 생각하고 민망해 할까. 근데 누구나 그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여유를 갖기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에서 능력만큼 중요한 건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현무가 방송가에서 섭외 일순위로 꼽히는 건 어쩌면 이 태도와 자세가 남달라서일 게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저는 캐스팅을 당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을 하는 사람한테 캐스팅 하길 잘했다 라는 말을 들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게스트로 나가도 춤을 한 번이라도 더 추고 편집을 하더라도 그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섭외해 줬으니 이렇게 120% 하고 가겠다 라는 마인드로 지금도 하고 있고, 그 초심은 지금도 여전해요.”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하는 법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OTT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고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콘텐츠들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가 ‘나 혼자 산다’에서 이른바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 캐릭터로 MZ들의 다양한 취향에 뛰어들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트렌드란 도대체 뭘까. 

 

“몸이 늙는 거는 병원 가서 어떻게든 노화를 더디게 할 수는 있는데 정신 늙는 거는 답이 없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정신이 늙으면 진짜 두 배 세 배로 늙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가 몇이든 간에 요즘 세대들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려 하죠. 근데 그거를 재미있게 풀어서 ‘트민남’이라고 한거예요. 요즘 애들은 뭐 이거 한대 이러면 이미 나는 늙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든 그걸 알려고 하고 따라해보려고 하면 주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들이 저를 귀엽게 봐요. 저를 친근하게 생각 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도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 어떤 추세고, 맛집은 어디가 힙한지 관심이 많고 또 그걸 즐기며 살고 있어요.”

 

트렌드 변화는 방송도 예외가 아니다. 연예인보다 인플루언서들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그래서 역으로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뛰어드는 트렌드도 생겨나고 있는데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현무는 아직 그 대열에 들어 있지 않다. 트렌드 변화에 잘 적응해온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행보다.

 

“주변에 유튜브를 안하는 사람이 거의 저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제가 오히려 레어템이 돼서 방송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유튜브 하다 보면 콘셉트가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방송을 안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도 유튜브가 하고 싶기는 해요. 하지만 남들 하니까 나도 계정이나 만들어 놓을까 하는 자세로는 처음 잠깐 주목받다 흐지부지될 것 같아요. 유튜브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해야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또 방송에서 이미 했던 캐릭터를 갖고 비슷한 걸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방송에서 소화못하는 콘텐츠가 있다면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손에 잡히지는 않고 있어요.” 

 

예전에 ‘Moo진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전현무는 브런치 스토리에 ‘트렌드를 대하는 자세’라는 글을 쓴 바 있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가장 나다운 게 곧 트렌드’라고 한 문구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문화에 진심인 것. 그게 가장 트렌디한 일이다.’라고 그는 썼다.

전현무와 함께


뻔한 엄숙주의를 넘어선 펀(fun)한 인물

전현무는 누가 봐도 엘리트다. 연세대를 나왔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 43기 기자로 입사했다 1주일만에 나와 YTN에 앵커로 들어갔으며, 2006년에는 KBS에 공채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언론고시에 있어서 기자, 앵커, 아나운서 모두를 합격한 브레인이었던 것. 하지만 그의 행보는 기자에서 앵커로 앵커에서 아나운서로 옮겨간 후에도 또다시 이전에는 없던 ‘예능에 최적화된 아나운서’로 그리고 프리선언 이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때 엘리트주의와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서서히 유연해진 시대의 흐름이 엿보인다. 

 

“저는 예전부터 영상 매체는 뉴스든 다큐든 예능이든 교양이든 재밌어야 된다는게 제 철칙이었거든요. 요즘 종편을 보면 앵커들조차 재밌게 하려고 하는데요, 과거에는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거부감이 있었던 건데 저는 이럴 때가 올 거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바쁜 와중에 TV를 켠다는 건 대단한 행위인데 진지한 얘기만 들으려고 보지는 않거든요. 재미가 있어야 보는 거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예전 싸이월드 제 계정에 제가 이렇게 쓴 적도 있어요. ‘재미 없는 건 재앙이다’라고요. 당시에는 아나운서, 코미디언, PD, 기자 등등 역할이 완전히 나눠져 있었는데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인포테인먼트 시대를 지나 어느 순간에는 교양과 예능이 뒤섞이는 시대로 넘어갔다. 실제로 SBS에서는 당시 교양국과 예능국이 통합되어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이 탄생하기도 했다. 교양의 다큐적 요소들이 예능 속으로 들어와 점점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경향도 생겼다. 아나테이너들이 등장하게 된 건 당연지사였고, 전현무는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얘기해도 될 법한 인물이었다. 

 

“아나테이너들이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장성규와 조정식을 응원하거든요. 너무 이쁜 동생들 좀 더 활발히 설쳐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나다움’을 잃지 말라는 거예요. 나다움을 잃고 기존의 아나운서를 흉내내는 순간 불합격입니다. 나다움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흔히들 하는 얘기거든요. 면접장에서도 본인이 보지도 않는 방송의 아나운서를 제 롤모델이라고 하면 거짓말인 거 다 알거든요. KBS 시험 볼 때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개콘’을 얘기했었어요. 실제로  전 ‘개콘’을 매주 일요일마다 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술렁술렁거렸어요. 당시 아나운서들이 진행할 확률이 제로인 ‘개콘’을 얘기했다는 거는 굉장히 전략적이지 않은 답변이었죠. 근데 거기서 그분들은 솔직하게 본 거죠. 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거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런 걸 되게 잘한다. 방송에서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거를 잃지 말고 면접장에서 어필을 하시면 훨씬 더 합격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요즘 아나운서는 직종 자체가 위기다. 이미 정확한 발음에 특화된 아나운서보다 조금 익숙지 않아도 개성있는 배우가 멘트를 하는 걸 더 선호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어서다. 또한 아무 개성 없이 멘트만 하는 아나운서는 AI를 이기기가 어렵다. 전현무가 말하듯 자기만의 어떤 개성이 확실한 목소리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또 감정도 실을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요구된다. 

 

‘나다움’의 아이콘
이른바 ‘멀티테이너’가 당연해진 우리의 일상이다.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일반인들도 한 가지 캐릭터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졌다. ‘부캐’가 대세가 되고, 역할도 많아졌다. 어떨 땐 굉장히 진지해야 되고 어떨 땐 굉장히 가벼워야 하고 이걸 균형 있게 잘해야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한 가지의 나의 모습에 갇혀 있기보다는 다양한 나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삶이 중요해진 현재, 전현무가 말하는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울림이 적지 않다. 그는 예전에 ‘다움’에 대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움’에 갇히면 다 같아지고 ‘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자가 백만 유튜버가 되고 파워 블로거가 되고 인플루언서로 인기를 얻는다.”

 

“‘나다운 게 다움에 갇혀 있었다’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학생다워야 한다, 아나운서다워야 된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근데 아나운서답지 않게 해서 성공을 했어요. 그 다움이라고 하는 거는 남이 규정해 놓은 거잖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아나운서는 이래도 돼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싸이월드에 ‘내가 정답이다’라는 글을 썼었어요. 부모님도 정답이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직장 상사, 사장님, 본부장님도 아닌 당신이 정답이에요. 당신 인생의 정답은 당신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나운서 들어가자마자 아나운서다움도 버려 버렸고 이제 프리를 해서도 아나운서 출신 다움에 대한 선입견도 버렸어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유튜브를 예로 들면, 방송과는 전혀 상관없는 곤충에 미쳐있거나, 피규어에 미쳐 있고 또 ASMR에 빠져있는 이런 분들이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있잖아요. 100만 유튜버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너무 좋아 죽겠는거, 나다운 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다움은 요즘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과거 직장인다움이라는 틀 안에서 야근을 당연히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벗어나 퇴근 후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워라밸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흔히들 ‘MZ 같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현 세대들의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일 게다. 전현무는 그런 점에서 스스로도 말하듯 MZ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부터 MZ였다고도 볼 수 있다. 

 

“MG들의 성향을 20대 때 이미 갖고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회식도 하기 싫으니까 안 가는 게 그 때는 쉽지 않았어요. 신입 아나운서 때부터 저는 회식을 안갔는데, 제 아나운서 송별회 하는 날도 제가 안 갔어요. 그만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그렇게 살아왔죠. 저는 나이 50, 60이 돼서도 이런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아직도 음악 방송을 많이 하지만 아이돌들이 인사하고 오는 걸 싫어합니다. 진심으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누가 인사를 안 왔다고 싸가지 없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아니 바빠 죽겠는데 자기 할 일 하고 가면 되지. 그 시간에 쉬고 무대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아요.”

 

왜 전현무가 이 급변하는 방송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지금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인물이 됐는가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나다운 것을 잃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나다움’이란 사회적 잣대가 들이미는 무수한 ‘다움’의 틀에 갇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들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전현무의 나다움은 그래서 복잡해진 현대인들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던진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해가는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뉴스1)

 

‘삼시세끼 light’, 예능적인 맛은 덜해도 임영웅과의 평화로운 시간들이니

삼시세끼light

등장부터가 조심스럽다. 다른 게스트도 아니고 임영웅이 아닌가. tvN ‘삼시세끼 light’의 10년 차 베테랑들인 유해진, 차승원조차 말을 쉽게 놓질 못한다. 워낙 존재감이 큰 게스트지만 임영웅 본인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전날 미리 그 곳에 왔었다는 임영웅은 소주라도 한 잔 하고 방송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긴장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임영웅에게도 이런 예능은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삼시세끼’라는 레전드 예능이고 대선배들인 유해진, 차승원과 함께가 아닌가. 

 

이등병의 마음으로 왔다는 임영웅은 그래서 자기에게 이 일 저 일 시켜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편안하게 해주려는 심산이다. 유해진과 차승원도 조금씩 마음을 놓고 “이제부터는 손님 아냐”라며 일을 시켜본다. 첫 번째 일로 주어진 마늘까기. 사실 뭐 어려운 일일까 싶지만 처음 하는 사람한테는 낯선 일이기도 하다. 마늘까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이 잔잔한 웃음을 준다. 어딘가 서툰 모습에 마늘까기 달인(?) 수준인 유해진과 차승원의 시선은 자꾸 임영웅에게 간다. 

 

이런 일이 익숙지 않은 임영웅은 어딘가 엉성하다. 요리부인 차승원을 도와주는 역할에서도 그렇지만, 작업부 유해진이 양념통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일을 도와주는 데서도 그렇다. 호기롭게 어렸을 때부터 가구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며 나섰지만 톱질이 삐뚤빼뚤 엉성하다. 유해진은 그걸 콕 집어 “임! 이거 상당히 삐뚤어”라고 말해 웃음을 준다. 도와주려 열심히 했는데 엉성하게 된 상황에 멋쩍어 하는 임영웅의 모습이라니. 

 

하지만 엉성해도 그렇게 익숙지 않은 요리와 작업을 하고, 잘 하면 잘 한다 못 하면 못 한다고 말하며 웃고 떠들면서 조금씩 임영웅과 유해진, 차승원 사이에 존재하던 어색함은 사라진다. 웰컴 드링크로 막걸리 한 잔을 주고, 특별 코스요리(?)라며 부추전에 수육 그리고 임영웅이 가져온 수박으로 후식까지 챙겨먹으며 식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물론 농촌에 왔으니 노동이 빠질 수 없다. 수육거리로 산 고기 대신 빚으로 갖게 된 감자 캐기 140Kg을 채우기 위해 세 사람은 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한다. 허리를 굽힌 채 하는 안해본 감자캐기 역시 만만찮은 노동이지만 커다란 감자가 쏙 나왔을 때의 즐거움이 교차된다. 일하고 함께 끼니를 챙겨먹는 평범한 시골에서의 일상이 후루룩 지나간다. 오롯이 삼시 세 끼 챙겨먹는 일에만 집중함으로써 복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는 그 ‘삼시세끼’ 특유의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드라마처럼 예능도 어떤 갈등이나 대결 같은 것들이 들어가야 극적인 재미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삼시세끼 light’는 아예 ‘light’를 표방한 것처럼 그다지 극적인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이제 어언 10주년을 맞이한 ‘삼시세끼’가 이 프로그램의 본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본래 ‘삼시세끼’는 그 시절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가득해 있던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 쪽으로 선회했던 프로그램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풍경처럼 자리한 평창의 산세들과, 그 사이를 유유히 움직이는 구름들, 어스름해지는 저녁에 식사 후 감자밭 저편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정서적인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라면 대단한 사건보다는 밥 한 끼 같이 해먹고 수다를 떠는 일조차 푸근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밍밍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도록 함께 해온 유해진과 차승원은 이 평범한 시골에서의 하루에도 깨알같은 재미들을 채워놓는다. 고추장찌개에 유해진이 시큼한 김치를 썰다가 충동적으로 맛있을 것 같아 그걸 찌개에 몰래 넣자 차승원이 “안 만든다”며 국자를 놓고 나가버리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해진이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에 막걸리를 권하며 “한 잔 해”라고 하는 말에 금세 풀어지는 차승원의 모습은 그 짧은 장면 하나에 마치 드라마 같은 극적 상황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제는 뭐 하셨어요?”라는 임영웅의 질문에 “어젠 좀 싸웠어.”라고 너스레를 떠는 유해진의 말은 전 날의 그 사건을 가져와 그 때와는 너무나 다른 임영웅과의 평화로운 하루를 그려낸다. 대단한 일이 생기지도 않았지만 그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낯선 손님들에게도 배를 다 드러내고 누워 애교를 부리는 집주인의 반려견 복구만 봐도 힐링이 되는 그런 평화로움이랄까. 

 

도시에서라면 지나쳤을 찌개 끓는 소리도 더 잘 들리고, 날이 어둑해져 가는 그 시간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는 평창의 시골집이니 그런 낯설음에 엉성함 또한 작은 재미들이 된다. 유독 뜨거웠던 늦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너무 좋다”고 말하는 평화로움이 있으니. “이거 평화를 어떻게 하면은 쉽게 깨는 방법을 알려줘? 뭐 넣으면 돼.” 유해진의 말은 그래서 본질로 돌아온 ‘삼시세끼 light’ 본연의 맛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그런 별 것도 아닌 자잘한 일조차 사건처럼 느껴지게 되는 재미가 그것이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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