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티스트가 열고 있는 새로운 세계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의 첫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가 싱글 ‘Done’을 발표하며 본격행보에 나섰다. 버추얼 휴먼이 붐처럼 등장하고 있는 시대, 버추얼 아티스트의 심상찮은 행보는 음악산업에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걸까. 

나이비스

에스파의 세계관에서 빠져나온 나이비스

에스파는 그 세계관 자체가 버추얼 세계와 맞닿아 있는 걸그룹이다. SM엔테터인먼트는 에스파에 일종의 아바타 개념인 ‘아이(ae)’ 캐릭터를 덧붙였다. 그래서 에스파의 멤버는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과 더불어 이들과 연결되어 버추얼 월드에 존재하는 ae들을 합쳐 총 8명이다. 리얼 월드와 버추얼 월드. 에스파가 가져온 이 세계관은 이제 이들의 활동 역시 두 세계를 넘나드는 것이라는 걸 예고했다. 이건 에스파(aespa)라는 그룹명에도 담겨있다. ‘아바타 X 익스피리언스(Avatar X Experience)’의 첫글자를 딴 ‘ae’에 영단어 aspect(양면)가 합쳐진 이 이름은, 아바타를 통한 두 세계(리얼 월드와 버추얼 월드)를 경험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에스파의 등장과 함께 SM엔터테인먼트는 이례적으로 이러한 세계관을 담은 세 편의 에피소드를 내놨는데, 그건 실사와 버추얼 이미지, 툰 스타일 이미지들이 결합된 것이었다. 버추얼 월드에 존재하는 각각의 ae들과 소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에스파는 블랙맘바의 등장과 함께 그 연결이 끊겨버리자 버추얼 세계로의 모험을 떠나 블랙맘바와 대결한다. 여기서 리얼 월드로부터 버추얼 월드로 인도하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나이비스다. 

 

에스파가 리얼 월드에서 버추얼 월드로 들어가 그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서사를 보여준다면, 나이비스는 이제 정반대로 버추얼 월드에서 리얼 월드로 빠져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본래 그 곳을 벗어나면 안되는 존재지만, 에스파를 돕기 위해 그 곳을 벗어나게 된 나이비스는 이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활동을 시작한다. 나이비스라는 이름은 ‘사이버 항해사(cyber+Navigator)’라는 뜻이다. 최근 발표한 싱글 앨범 ‘Done’은 그래서 나이비스의 본격 독자 활동의 출사표다. 

 

나이비스가 이렇게 리얼 월드로 나오는 과정을 보면 그간 SM엔터테인먼트가 이 버추얼 아티스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가 느껴진다. 에스파의 세계관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과정은 사실상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버추얼 휴먼이 어떻게 탄생할 것인가를 예고하는 대목 그대로다. 리얼 월드에 사는 이들이 각각 버추얼 월드에 연결되어 갖게 될 ae란 사실상 개인 데이터에 기반해 만들어질 아바타 개념이고, 데이터들이 점점 축적되고 스스로 학습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 특이점에서 독자적으로 대화하고 움직이는 버추얼 휴먼이 가능할 거라는 상상이다. 그 세계를 빠져나오면 안되는 룰을 어기고 리얼 월드로 나오는 나이비스는 그래서 일종의 ‘자유의지’를 획득한 버추얼 휴먼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나의 세계관이지만, 버추얼 세계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나이비스라는 존재가 뛰어넘는 본질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에스파의 세계관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 장 폴 사르트르의 이 문구는 나이비스가 앞으로 해나갈 행보와 이로 인해 변화할 음악산업(나아가 엔터 산업)을 예감하게 만든다. 가상이지만 그 존재가 실제 세상을 움직인다면 그것은 실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말해주는 이 문구는, 이미 우리네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봇물 터지듯 등장한 무수한 버추얼 휴먼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갖가지 산업에 들어와 모델, 가수, 아나운서, 인플루언서 등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들을 대하는 팬들의 자세다. 플레이브 같은 버추얼 아이돌을 떠올려보라. 물론 2D 캐릭터의 이면에 실제 아티스트들이 존재하는 그룹이지만 버추얼 캐릭터로만 하는 활동에도 팬들은 진짜 ‘존재’로서 이들을 받아들이고 열광한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도 하고, 심지어 콘서트도 일반 아티스트들과 똑같이 한다. 물론 스크린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관객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보여주는 무대는 여느 콘서트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가상이라는 본질은 적어도 팬과 호흡하는 이 과정에서는 무화된다. 실제 존재하는 아이돌 그룹으로서 세상을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비스가 싱글로 내놓은 ‘Done’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가상과 현실을 과감하게 넘나드는 이 존재의 야심이 엿보인다. 3D 실사 캐릭터와 더불어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2D 캐릭터 등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는 이른바 ‘플랙서블 캐릭터’를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캐릭터들은 앞으로 나이비스의 활동이 다양한 매체에 맞게 가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오갈 것이라는 걸 예고한다. 예를 들어 가수로서 음악프로그램에 등장할 것이지만 향후 게임 속 캐릭터가 될 수도 있고, 웹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실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활동들(이를테면 가상 캐릭터로서의 활동 같은)을 나이비스는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버추얼 아티스트가 넘어가는 불편한 골짜기

과거 사이버 가수 아담이 처음 버추얼 아티스트의 탄생을 예고하며 등장했을 때 신기해하면서도 넘지 못한 벽은 이른바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였다. 실제와 너무 멀면 조악해서 또 너무 가까우면 마치 완벽한 마네킹이 사람 흉내내는 것 같아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그것이다. 이것은 결국 이러한 버추얼 이미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감각의 문제인데, 최근 들어 가파르게 빠져들던 이 골짜기는 점점 완만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상에 대한 낯설음이 과거에 비해 점점 흐려지고 있어서다. 

 

플레이브나 이세계아이돌 같은 2D 기반의 버추얼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덤이 형성되고 있는 건, 이제 만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캐릭터 산업을 통해 대중들이 이를 마치 실제처럼 과몰입하는 일이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들 툰스타일의 캐릭터들이 오히려 실사 3D 캐릭터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이들 캐릭터들이 실제 인간과 비교되기보다는 캐릭터로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실사 캐릭터로 등장해 모델에서 가수까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버추얼 휴먼들이 불편한 골짜기를 넘는 방법은 이미지 재현 기술을 통해서다. 말그대로 진짜 사람처럼 구현해내는 것. 그런데 여기서 ‘진짜 사람처럼’이라는 표현에는 인간다운 면 또한 포함하는 걸 말한다. 그래서 일부러 완벽한 피부보다는 주근깨가 있는 피부를 구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버추얼 휴먼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나이비스가 툰스타일 2D와 캐주얼 3D, 실사 3D를 오가는 플랙서블 캐릭터를 내세운 것 역시 다양한 활동을 전제한 것이면서 동시에 그 캐릭터성을 전면에 끄집어냄으로써 불편한 골짜기를 넘으려는 전략 또한 담겨져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면 실제 인간과의 비교를 슬쩍 벗어나 캐릭터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론 버추얼 아티스트는 이를 디자인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탄생하고 대중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아직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데이터가 점점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진화하게 되면 자율성을 어느 정도 갖게 된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에스파의 세계관을 빠져나온 나이비스가 이 새로운 특이점을 향해 가는 버추얼 아티스트의 세계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할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글:시사저널, 사진:SM엔터테인먼트)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

 

“유명요리사인 백수저 여러분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지만 무명요리사인 흑수저 여러분은 자신의 이름대신 본인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불리게 됩니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에서 한 자리에 모인 100인의 요리사들을 설명하는 이 대목은 여러모로 JTBC ‘싱어게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명요리사’라는 표현은 ‘무명가수’처럼 들리고 닉네임으로 불리게 될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건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상황이 ‘싱어게인’의 룰을 떠올리게 만든다. 역시 ‘싱어게인’을 제작했던 팀이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는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들은 아마도 ‘무명요리사’라는 지칭에 꽂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무명요리사’가 아닌 ‘흑백요리사’다. 굳이 흑백이라는 비교점을 제목에 집어 넣었다. ‘싱어게인’이야 무명가수들이 유명해지기 위해 자신의 기량을 끝까지 뽑아내는 절박함을 보여줄 수 있지만, 여기 출연한 80인의 무명요리사들은 지칭만 그러할 뿐 사실상 재야의 유명요리사들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몇 개의 유명한 음식점들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고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들도 있다. 또 닉네임이라고 해도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유튜버도 있다. 그러니 요리에 있어서 한 가락 한다는 자존심이 충만한 이들이 더 절박하게 요리를 해야할 동기부여가 필요했을 테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른바 ‘흑백’이라는 계급 설정을 집어 넣는다. 80인의 무명요리사들을 1층에 앉혀 놓고 2층에 마치 신전에 세워진 석상들처럼 20명의 유명요리사들이 등장한다. 그 면면은 업계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을 가진 요리사들이다. 스타셰프 최현석, 중식 그랜드 마스터 여경래, 한국 최초 여성 중식 스타 셰프 정지선, ‘마스터 셰프 코리아2’ 우승자 최강록, 이탈리아 미슐랭 1스타 오너 셰프 파브리, ‘한식대첩2’ 우승자 이영숙, 심지어 레전드라 불리는 ‘2010 아이언 셰프’ 우승자 에드워드 리까지, 경쟁자가 아니라 심사를 해야될 법한 요리사들이 유명요리사들로 세워졌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공감한다 해도 당당하게 이름을 드러내는 저들을 ‘백수저’로 닉네임으로 불리는 자신들을 ‘흑수저’로 나누고, ‘계급’이라는 표현을 쓰며 저 20명의 백수저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80명이 치열하게 대결을 벌여 20명 생존자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룰이 제시되는 순간 흑수저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아무리 유명과 무명으로 나뉜다고 해도 맛으로만큼은 자신들 또한 뒤지지 않는다 생각하는 흑수저 계급 무명요리사들의 의지가 불타오른다. 그렇게 계급 전쟁이 시작된다. 프로그램 제목이 ‘무명요리사’가 아닌 ‘흑백요리사’가 된 이유다. 

 

‘무명’에서 ‘흑백’으로 계급이라는 코드가 들어가자, ‘흑백요리사’의 관전포인트도 달라진다. 과연 흑수저 요리사들은 백수저 요리사와의 대결에서 그들을 꺾고 자신들의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언더독의 성장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서사가 생겨난다. 또 반면에 백수저 요리사들은 치고 올라오는 흑수저 요리사들과 대결해 자신의 명성이 허명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낼 수 있을까. 요리연구가 백종원과 대한민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세프 안성재가 심사위원으로 등장해 80명에서 20명으로 추려지는 첫 번째 서바이벌 미션은 마치 ‘쇼미더머니’의 1차오디션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맛을 보고 즉석에서 합격과 탈락을 결정하는 것. 물론 40명이 동시에 요리를 하는 스펙터클도 빠질 수 없지만, 백종원과 안성재의 맛보고 말하는 입에 침이 꼴깍 넘어가는 긴장감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의 본 게임은 역시 흑백이 맞붙는 1;1 대결로 펼쳐진 두 번째 미션이다. 묵은지를 소재로 벌어진 에드워드 리와 고기깡패의 대결, 시래기를 재료로 펼쳐진 중식여신으로 불리는 정지선과 중식여왕의 대결, 우둔살을 소재로 이영숙과 장사천재 조사장의 대결, 또 고추장, 간장, 된장을 소재로 한 최현석 셰프와 원투쓰리와 대결 등등 하나하나가 명승부라고 할 수 있는 대결이 펼쳐진다. 물론 다음 미션에는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벌이는 팀전도 예고되어 있다. 요리 서바이벌이지만 단순히 최후의 1인을 향해 달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다채로운 관전의 재미가 들어 있는 서바이벌. 여러모로 ‘싱어게인’의 묘미들이 떠오르는 프로그램이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아저씨는 왜 나만 보면 웃어요?” 허진호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나만 보면 웃어요?”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다림(심은하)은 정원(한석규)에게 묻는다. 주차단속요원으로 단속차량 사진을 현상하러 자주 초원사진관을 찾아오면서 다림은 그 곳을 운영하는 정원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난다. 무표정했던 삶에 피어난 웃음.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괴로워진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림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정원은 그 시한부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어려서 모두가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혼자 남아있을 때 느꼈던 감정 같은 거라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의 삶 속으로 불쑥 들어온 다림에 대한 감정이 생겨나면서 정원은 흔들린다. 술에 취해 친구에게 농담처럼 자신이 곧 죽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경찰서에서 조용히 있으라는 말에 왜 자신이 조용히 있어야 하냐고 절규한다. 삶에 대한 기대감은 희망고문처럼 그를 짓누른다. 

 

죽음 앞의 삶.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그러니 사라져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일이 힘겨워지는 건 사랑하게 된 존재들과의 이별 때문이 아닐까. 정원은 끝내 그 이별을 받아들인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다림에게 고마움을 갖고 조용히 혼자 떠난다. 삶이 아름다운 건 언젠가 사라져가기 때문일 게다. 웃을 일 없던 정원이 다림을 보며 자꾸만 웃었던 것도. 또 하나 둘 떨어져 수북히 쌓여갈 낙엽들이 벌써부터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아름답도록 슬픈 멜로 영화 한편이 그리워지는 가을의 문턱이다. 9월의 끝자락에서도 푹푹 찌던 여름이 어느새 지나고 있다.(글:동아일보, 사진: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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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light’, 유해진이 보여주는 촌스러움의 가치

삼시세끼 light

차승원이 고추장찌개에 넣을 청양고추를 따러 잠시 자리를 비운 몇 분 사이, 김치를 썰던 유해진은 갑자기 찌개에 김치를 넣고 싶어진다. 그만큼 김치를 좋아하고 펄펄 끓는 냄비만 봐도 넣어 끓여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는 유해진은, ‘그러다 차승원한테 혼난다’는 나영석 PD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숭덩 짤라 찌개에 넣고만다. 돌아온 차승원이 고추장찌개에 청양고추를 잘라 넣고 휘휘 젓는데 무언가 낯선 비주얼에 눈에 들어온다. 금세 알아챈 차승원은 “이거 왜 김치를 넣었어?”하고 나무란다. 유해진이 감짝 놀라 올려다보자 차승원은 누가 고추장찌개에 김치를 넣냐며 안만든다며 국자를 던져놓고 나가버린다. 순간 흐르는 침묵. 유해진 특유의 너스레가 시작된다. 차승원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괜스레 막걸리 채운 잔을 들이밀며 “한 잔 해”라고 말한다. 그러자 점점 굳었던 차승원의 표정이 풀어진다. 망쳐버린 고추장찌개를 되살려내고 금세 화기애애 해져서 함께 밥상을 차려 먹는 두 사람의 풍경이 이어진다. 

 

최근 시작한 tvN ‘삼시세끼 light’에서 등장한 이 짧은 장면은 유해진이라는 인물이 무엇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토록 빛을 발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이번 ‘삼시세끼’가 ‘light’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이전처럼 두 사람을 보조해주던 손호준 같은 후배가 빠져 있어서다. 오롯이 차승원과 유해진이 끌고 가는 콘셉트이랄까. 물론 게스트로 임영웅이나 김고은이 출연하지만 두 사람에 온전히 무게중심을 세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손호준 같은 후배가 없이 차승원과 유해진 두 사람이 막상 가게 되니 어딘가 심심한 느낌이다. 두 사람이 해야 할 노동(?)이 많아져 수다 떨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아저씨 둘이 수다를 떨 것도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해진이 진짜 시큼한 김치 냄새에 혹해서 고추장찌개에 그걸 넣는 순간 갑자기 이 심심했던 예능의 정경에 재미가 생겨난다. 요리에 진심인 차승원이 진짜로 기분 상해 하고 유해진은 특유의 너스레로 그 마음을 풀어주면서 별 거 없어 보이는 이 시골 저녁에 긴장과 이완의 극적 상황들이 전개된다. “분명 끈인데 왜 아니라고 하는 지 모르겠어.”라며 ‘노끈’을 꺼내놓고 해학적으로 웃는 유해진의 모습은 어딘가 촌스러운 정감이 묻어난다. 일을 하면서 별것도 아닌 농담을 툭툭 던져 웃게 만드는 허허로움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시골에 가서 세 끼 챙겨먹는 단순한 콘셉트를 가진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유해진이 어째서 이토록 찰떡 같은 캐릭터로 서 있는가가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 냄새 가득한 유해진의 모습은 그가 지금껏 해온 연기의 영역에서도 특유의 빛을 발한 면이 있다. 그는 97년부터 영화 ‘블랙잭’으로 배우를 시작했지만 거의 대부분 단역과 조연을 오가는 역할들을 맡았다. 그러다 대중들의 눈에 확실하게 각인된 건 2005년 이준익 감독의 천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 육갑이라는 광대로 등장하면서다.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코믹하면서도 처연한 광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낸 그는 이듬해 ‘타짜’의 고광렬 역할과 주목을 받았고 그 다음 해인 2007년 ‘이장과 군수’에 차승원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이 때부터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유해진은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는데, ‘전우치’ 같은 판타지물에서 초랭이 역할로 깨알같은 감초 웃음을 선사했고, ‘이끼’ 같은 스릴러에서는 정반대로 다소 모자라면서도 섬뜩한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오가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밑바닥에는 어딘가 사람 냄새 나는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한 몫을 차지했다. 따뜻한 느낌이 해학적으로 풀어지면 코미디가 되지만, 그 따뜻한 이미지를 배반하는 모습에서는 섬뜩한 스릴러가 만들어졌다. 물론 매일 아침 루틴처럼 해온 운동으로 단련된 몸은 액션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놈이다’, ‘럭키’, ‘공조’, ‘택시운전사’, ‘1987’, ‘완벽한 타인’, ‘말모이’, ‘봉오동전투’, ‘승리호’ 등등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했지만 최근 그의 연기가 가장 도드라진 작품은 ‘올빼미’다. 유해진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인조라는 왕 역할을 연기했는데, 다소 병적이고 광기 가득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소름돋게 만들었다. 과거 ‘왕의 남자’에서 광기 어린 연산군 앞에서 살기 위해 광대 놀음을 했던 육갑 연기를 했던 걸 떠올려보면 17년만에 이제 왕 역할을 하게 된 유해진의 성장 과정이 배역으로도 느껴진다. 물론 최근 ‘파묘’를 통해 또 하나의 천 만 영화 배우가 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지만. 

 

그런데 이러한 유해진이 가진 경쟁력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특유의 촌스러움 혹은 사람 냄새 가득한 그만의 개성이 엿보인다. 그는 아는 것도 많아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지성적인 배우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더 느껴지는 배우다. 그가 해온 일련의 역할들이 이른바 ‘장삼이사(張三李四)’라 불리는 평범한 서민들이었던 건 우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그건 물론 오래도록 조연과 단역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작을 수 있는 그 역할들을 크게 만들어내는 그의 진정성 가득한 연기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삼시세끼’로 그가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기대하게 된다. 특유의 사람 냄새가 불러 일으키는 따뜻한 정서가 만들어내는 그리움이랄까. 

 

유해진은 이른바 ‘촌스러움’의 가치를 되살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흔히들 ‘촌스럽다’는 표현을 우리는 한때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해왔다. ‘촌뜨기’나 ‘촌놈’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 생활이 주는 각박함은 정반대로 ‘촌스럽다’는 표현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어딘가 어수룩하고 빈틈이 많아 보이는 시골의 푸근함이 그것이다. 유해진은 바로 그 기분 좋은 촌스러움이 ‘인간화’한 인물처럼 우리 앞에 등장했다. 그래서 그의 빙그레 웃는 웃음을 마주하고 있자면 지독한 도시의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 한껏 힘을 빼는 삶을 동경하게 만든다. 단 며칠이라도 그렇게 삼시 세 끼 챙겨먹으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글:국방일보,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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