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파트너’에서도 증명한 아역 그 이상의 배우 유나

굿파트너

흔히들 아역이라고 하면 성인역의 보조 역할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실제로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아역이 극의 메인 캐릭터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아역의 존재감으로 인해 극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굿파트너’에서 차은경(장나라) 이혼 전문변호사의 딸 재희(유나)는 단적인 사례다. 재희는 ‘굿파트너’라는 작품이 여타의 이혼 소재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변수가 되는 인물이다. 즉 이혼 소재의 드라마들은 흔히 이혼 사유를 만들어낸 배우자와 이로 인해 심적 고통을 겪는 배우자가 대결하고 이를 통해 권선징악의 단순한 결론으로는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불륜 배우자가 응징되는 복수극 형태의 서사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혼의 현실은 어떨까. 그런 단순한 응징과 복수의 서사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그건 바로 자녀의 문제다. 부부들끼리는 서로 상처를 주면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갈라졌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들의 이혼으로 인해 자녀가 겪을 상처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이 된다. 이른바 자신은 남편을 잃었지만 자식까지 아빠를 잃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게 이들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희라는 캐릭터는 ‘굿파트너’라는 이혼 소재 드라마를 색다르게 만들어낸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건 이 만만찮은 아역을 과연 누가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역할을 맡은 유나는 아역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부모들의 문제에 있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이 아이가 사실은 아빠 김지상(지승현)의 불륜 사실을 엄마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건 시청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엄마를 똑닮아서 ‘리틀 차은경’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똑부러지는 시크함을 가진 재희는 그래서 부모가 이혼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건 어른들이 결정할 일처럼 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차은경과 김지상의 이혼 소송의 핵심은 누가 재희를 키우느냐를 두고 벌이게 된 양육문제가 되고, 여기서 재희는 드디어 아빠에 대해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폭발한다. 자신은 나름대로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줬지만 끝내 아빠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 차은경 앞에서도 뻔뻔하게 버텼던 김지상은 딸의 그 말에 무너진다. 같이 살자며 두고두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갚아나가겠다는 그에게 재희는 놀라운 말을 한다. “아빠랑 안 살아. 잘못한 사람은 벌 받아야지. 아빠한테 가장 큰 벌은 나 못보는 거잖아.”

 

이 대사에서 유나의 배우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건, 거기에 아이 본연의 모습과 더불어 어른스러운 이 아이의 캐릭터 또한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다. 아빠를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감정이 겹쳐져 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나는 표현해낸다. 결국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게 되면서 재희는 또한 아빠의 빈자리를 계속 느끼게 되는데 결국 그 부재를 절감한 재희가 “그냥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이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이 엿보인다. 아역이지만 그저 아이의 연기라고 보기 어려운 유나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유나라는 배우의 가능성은 이미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서 어린 선자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눈에 띠었다. 갈대 숲속에서 잠자리를 잡아주는 아버지를 향해 미소를 짓는 어린 선자의 매력적인 모습이 그랬다. 또 영도 어시장에서 일본인 순사가 지나가자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홀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어린 선자의 모습은 향후 이 인물이 얼마나 당차게 거친 세상을 헤쳐나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만들어준 면도 있었다. 

 

유나의 이런 연기 잠재력이 폭발한 건 ‘유괴의 날’에서 천재 소녀 로희 역할을 연기해내면서다. 김명준(윤계상)이라는 착하고 어설픈 유괴범에게 유괴된 로희는 오히려 유괴범에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유괴를 소재로 하는 범죄스릴러의 평이한 서사구조를 뒤집는다. “유괴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라고 로희가 말하면 명준은 “뭘 책임 져? 유괴를 당한 아이는 경찰이 책임을 져야지.”라고 말하는 식이다. 범죄스릴러의 틀을 갖고 있지만 ‘유괴의 날’은 아이들을 성적 순으로 세우고 그래서 1등과 꼴등을 나눠 그 가치를 판단하는 비뚤어진 어른들의 세상을 꼬집는 드라마다. 로희는 바로 그 어른들의 욕망이 투사된 1등 천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의 연구대상이 된 아이다. 그래서 착한 유괴범이 차라리 가장 어른다운 모습으로 로희를 지키려는 상황을 통해 진정한 어른이 부재한 우리네 현실을 꼬집는다. 여전히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조숙한 면들을 가진 로희를 유나는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사실상 김명준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똑똑한 로희는 그러나 그렇게 정들었던 아저씨와 헤어지는 순간에 아이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 이런 말 하기 진짜 싫은데 난 아저씨랑 같이 있는게 너무 좋단 말이야. 나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사람이랑 내가 배고픈지 졸린지 심심한지 그런 관심 주는 사람이랑 나 처음 있어본단 말이야. 제발 가지마. 아저씨 가지마.” 천상 어린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조숙한 면모를 왔다갔다 하는 연기. ‘유괴의 날’에서부터 ‘굿파트너’까지 이어진 유나라는 배우의 잠재성이 느껴지는 연기가 아닐 수 없다. 

 

유나의 배우로서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2022년 ‘파친코’를 내놨고, 2023년 ‘유괴의 날’을 그리고 올해 ‘굿파트너’로 매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과정을 보면 우리가 막연히 어리다고만 생각해온 아이의 다른 면들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나이의 아이다운 면을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의 잣대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생각과 아픔 같은 것들도 갖고 있다는 걸 이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가 보여준다. 하긴 아역을 성인역의 보조 역할로 생각하는 그 태도 자체가 구시대적 산물이다. 아이는 어려도 아이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다는 걸 유나라는 배우의 필모가 말해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SBS)

K푸드는 어떻게 예능과 함께 진화해왔나

이제 김치는 더 이상 외국인들에게 낯선 한식이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김치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방송과 K푸드가 그간 해온 공생은 어떤 시너지를 만들었을까. 

서진이네2

‘서진이네2’가 보여준 비비고 컵떡볶이 PPL

“아 떡볶이 먹고 싶다-”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점심 한 타임을 보내고 숨을 돌리는 시간, 직원들이 모여 앉아 간식을 먹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간식은 이들이 직접 해먹는 게 아니라 간편식으로 나온 컵떡볶이다. PPL로 들어간 이 장면에서 박서준은 친절하게 물을 붓고 전자렌지에 3분만 돌리면 완성되는 컵떡볶이를 시연해 보여주며 그 간편함을 설득한다. 컵떡볶이를 받아든 직원들 모두가 그 간편함과 맛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진짜 신기하다. 그냥 소스넣고 물넣고 렌즈 돌리면 이렇게 음식이 완성되는거야?” PPL이지만 최우식의 이 한 마디에는 이 음식이 갖고 있는 장점이 다 들어있다. 한국인들도 한번쯤 편의점 같은 곳에서 사서 즉석으로 만들어 먹어보고픈 욕구가 생기는데, 외국인들은 어떨까. 한식이 전 세계에서 핫한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만들어 먹기에는 어딘가 낯설었다면 이 간편함에 매료되지 않을까. 외국인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커다란 문구로 비비고가 새겨져 있고 ‘Tteokbokki’라고 영문으로도 적혀져 있는 건 이제 이 상품이 겨냥하는 건 국내만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 이 컵떡볶이 PPL은 의외의 효과 또한 제공한다. 그것은 이 ‘서진이네’라는 프로그램이 어찌 보면 하나의 거대한 한식 홍보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걸 가리는 효과다. 장 보드리야르가 디즈니랜드는 실제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이 껍떡볶이 PPL은 이 프로그램 전체가 한식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리는 효과를 낸다. 물론 그렇다고 ‘서진이네’가 한식 홍보 이상의 예능적 재미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진이네’는 이서진의 성장사가 주는 묘미와 그가 동료 연예인들인 직원들(?)과 함께 낯선 타국에서 한식으로 장사를 하는 과정을 리얼리티로 보여주는 재미를 가진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그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전혀 홍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식 홍보를 효과적으로 해내는 성과들을 내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지난 ‘서진이네’ 첫 번째 시즌에서 멕시코 바칼라르로 갔을 때 시도했던 메뉴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당시 ‘서진이네’ 음식점의 콘셉트는 분식이었고 그래서 등장한 음식들은 김밥, 떡볶이, 핫도그, 라면(일반 라면, 붉닭볶음면), 치킨이었다. 이 메뉴들은 어찌 보면 이미 전 세계의 K푸드 붐을 이끄는 음식들이라서 프로그램이 이를 수용한 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비고가 컵떡볶이를 출시하듯이 간편식으로 상품화가 용이한 메뉴들이기도 하다. ‘서진이네’를 봐온 외국인 팬들이라면 첫 시즌에서 메뉴로 나왔던 떡볶이가 ‘컵떡볶이’로 나왔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만큼 자연스러운 한식 홍보가 있을까. 

 

K예능과 함께 하는 K푸드

‘서진이네’ 첫 시즌이 분식이라는 훨씬 진입장벽이 낮은 한식을 메뉴로 내세웠다면, 아이슬란드에서 펼쳐진 ‘서진이네2’는 이보다는 진입장벽이 좀 있는 한식들을 가져왔다. 추운 나라에서 뜨끈한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로 ‘서진뚝배기’라는 음식점을 열고, 꼬리곰탕, 뚝배기불고기, 소갈비찜, 돌솥비빔밥, 닭갈비, 순두부찌개, 육전비빔국수 등을 메뉴로 내놨다. 시즌1에 비해 보다 한식에 가깝게 접근한 것이고, 그래서 이 음식들을 주문에 맞춰 만들어야 하는 출연자들의 미션도 난이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보다 외국인들에게는 낯설 수 있는 한식을 꺼내온 건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제 그만큼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한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적으로도 익숙한 맛이 아닌 새로운 맛에 반응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겠다는 것이다. 

 

이 자신감은 ‘서진이네2’에서는 확실한 성과로 돌아왔다. 즉 보통은 입소문이 나지 않아 한산했던 첫날부터 오픈런이 이어졌고, 음식들에 대한 만족도는 거의 모두가 최상급이었다. 그래서 ‘서진이네2’의 관전 포인트는 장사가 잘 될까 안될까 하는 불안감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문만 열면 오픈런하는 손님들의 주문들을 과연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맞춰졌다. 일 잘하는 고민시가 단번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고, 이제 주방일에 익숙해진 출연자들의 부지런함에 사장인 이서진이 “쉬면서 해”라고 얘기하는 반전의 스토리텔링이 생겨났다. 즉 한식에 대한 좋은 반응은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는 것. 대신 이 인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한식의 스토리로 떠올랐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복잡해 보이는 음식들도 대부분 간편식으로 상품화되는 추세다. 곰탕도 불고기도 비빔밥도 또 찌개도 이제는 저 ‘컵떡볶이’치럼 상품화가 가능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K예능이 담아내는 음식 관련 콘텐츠들은 K푸드와 동반성장하는 시너지를 더욱 낼 수 있게 됐다. 그 간편식으로 한식에 익숙해진다면 그 다음은 직접 해먹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뉴욕에 뜬 한국식 기사식당의 위용

K푸드 열풍은 물론 드라마, 영화, K팝 같은 K콘텐츠가 촉발시켰다.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라면이나 김밥은 외국인들이 먹고 싶어하는 한식이 됐고, 좋아하는 K팝 아이돌이 먹은 음식들 역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외국인들을 입맛 다시게 했다. 여기에 음식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지분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나영석 사단이 ‘삼시세끼’에 이어 ‘윤식당’ 그리고 ‘서진이네’로까지 이어온 일련의 음식 관련 여행 예능프로그램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서진이네’ 시즌1은 아마존 프라임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는데 여기에 방탄소년단 뷔는 물론이고 ‘기생충’의 최우식 그리고 ‘이태원클라쓰’의 박서준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포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또 백종원을 중심으로 내세운 ‘장사천재 백사장’ 같은 프로그램도 외국 현지에서 한식을 선보임으로써 보다 친숙하게 외국인들에게 다가간 면이 있다. 이 일련의 흐름을 CJ가 전면에서 끌어간 건 콘텐츠는 물론이고 푸드 산업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 시스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K콘텐츠를 통해 낮춰진 한식 열풍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뉴욕 맨해튼에 지난 봄 등장한 한국식 기사식당이다. 어찌 보면 국내의 기사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돼지불백이나 계란찜 같은 한국식 백반을 메뉴로 하는 이 기사식당은 개점부터 길게 늘어선 대기줄이 화제가 됐다. 그저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이제는 일상화된 한식이 아니라 좀더 깊게 경험해보고 싶은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욕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뉴욕에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100곳에 한식당만 7곳이 들어 있다고 한다. 

 

‘서진이네2’에서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이 갖는 호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은 김치에 열광하는 모습이다. 한 때는 냄새 난다며 외국인들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던 음식이 아닌가. 그만큼 한식에 친숙해진 이들은 김치 맛에 깊게 빠져들고 있는데 김치 맛을 안다는 건 한식을 그만큼 이들 역시 이해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 직접 집에서 김치를 담근다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나, 한식을 맛보기 위해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K푸드는 어느새 세계인들의 음식으로 자리하게 됐다. 물론 여기에는 ‘서진이네’ 같은 전혀 한식 홍보 같지 않지만 그 효과는 200%인 방송과의 시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글:시사저널, 사진:tvN)

손현주와 김명민의 죽음보다 더한 대결 만든 이것(‘유어 아너’)

유어 아너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 그걸 저에게 주셨어요.” 지니TV 오리지널 월화드라마 ‘유어 아너’에서 송판호(손현주) 판사의 아들 송호영(김도훈)은 속으로 꾹꾹 눌러왔던 그 감정을 드디어 드러낸다. 판사인 아버지가 엄마를 성폭행한 김상혁(허남준)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해버린 건 송호영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그 충격으로 끝내 엄마가 자살하자 송호영은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겪었다. 

 

송호영에게 송판호는 그것이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자신이 아니라 아들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송판호의 이야기는 아마도 당시 재판 역시 김강헌(김명민) 회장이 감옥에 있는 와중에도 막강했을 우원그룹의 외압이 있었다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송판호의 그 선택은 아들에게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고통 뿐인 삶으로 돌아갔다. 

 

송호영은 그래서 자신이 겪은 그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김강헌에게도 고스란히 되돌려 주려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의 아들을 차로 치어 죽게 하는 것. 송호영이 저지른 뺑소니는 우연이 아니라 계획된 범죄였다. 이로써 김강헌 또한 죽는 것보다 못한 그 고통을 느끼게 됐다. 자신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족의 죽음. 이 지점은 ‘유어 아너’라는 작품이 여타의 작품들보다 극성이 높은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어찌 보면 드라마에 있어서 극적 갈등의 최고조는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생겨난다. 하지만 ‘유어 아너’는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을 극적 갈등으로 가져왔다. 그건 자신이 아닌 가족의 죽음이다. 송판호는 이미 아내를 잃었고 자칫 잘못하면 아들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한번 가족이 죽어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겪어본 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더더욱 결사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김강헌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아들을 잃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자지만 그 고통은 똑같이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이유다. 그런데 그에게 딜레마가 생겼다. 송호영이 의도적으로 김강헌 회장의 막내 딸 김은(박세현)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지능장애를 갖고 있어 우울증을 겪으면 위험할 수 있는 김은은 송호영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김강헌 회장은 그럼에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해야할까. 그 복수로 송호영이 죽게 된다면 자칫 딸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는데? 

 

결국 김강헌 회장도 송판호 판사도 모두 자식을 잃게 되는 파국을 맞는다. 김상혁(허남준)에게 총을 쏜 송호영은 김상혁의 엄마 마지영(정애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죽은 송호영에 슬퍼하던 김은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식물인간이 된다. 살아남은 김상혁은 미국으로 도주하고 마지영의 살인은 충복인 박창혁(하수호)이 뒤집어쓴다. 자식을 잃지 않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유어 아너’는 이처럼 송판호와 김강헌 당사자들이 복수하고 반격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가족들이 당하거나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더 절박해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들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가족의 죽음이고 그걸 봐야 하는 고통이다. 송판호와 송호영, 김강헌과 김상혁, 김은이 짝을 이뤄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갈등 양상은 죽음보다 더 큰 극성을 띠게 된다. ENA 채널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시청률이 4.6%(닐슨 코리아)까지 치솟은 건 이 극적 구도에 시청자들이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안위가 아닌 가족의 안위가 달린 문제를 짚어낸 이 드라마는, 정의로운 판사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하게 되는 극적 상황들조차 공감하게 만든다. 또한 사람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비정한 인물인 김강헌 같은 조직 보스조차 가족 안에서는 그다지 보통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는 아버지라는 걸 드러내게 해준다. 

 

가족과 연결된 대결구도로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은 드라마는 그 위에 정의와 생존 사이에 놓여진 딜레마라는 깊이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게 삶인가. 그래서 정의를 부정하고라도 생존을 선택해야 옳은 일일까. 아니면 그렇게 살아남는 건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고통 속의 삶일 뿐인 것인가. 그러니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정의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강력한 몰입감과 더불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깊이있는 문제의식까지. ‘유어 아너’의 파죽지세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사진:ENA)

파친코2

“왜 한국인 이야기를 쓰나요?” 한국판으로 번역되어 나온 소설 ‘파친코’에 한국독자들을 위한 서문에서 이민진 작가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진 작가는 10년 넘게 집필해 ‘파친코’를 낸 후에도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는데 이 역시 한국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이민진 작가가 내놓은 답변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한국인 이야기를 씁니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가 시즌2로 돌아왔다. 2년만에 돌아왔지만 선자(김민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시즌1에서의 그 매력이 다시 상기된다. 그 매력은 핍박받고 차별받는 상황에서도 당당한 이 인물의 태도에서 나온다. 어쩌면 저렇게 가난하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꼿꼿할 수 있을까. 이민진 작가가 말하는 한국인의 매력이란 바로 선자가 보여주는 바로 이 모습 그대로일 게다. 

 

‘파친코’ 시즌1에서 선자는 한수(이민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갖게 됐지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수가 이미 일본에 아내와 딸들이 있고 곧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마침 하숙집을 찾아와 죽을 위기를 넘긴 이삭(노상현)이 홀로 아이를 키우려는 선자의 사정을 알게 된 후 함께 오사카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선자는 고향을 떠나 오사카로 오지만 그 곳의 삶 또한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어려운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싸우다 이삭마저 감옥에 끌려가자 홀로 두 아이(한수의 아들과 이삭 사이에서 낳은 아들)를 키워야 하는 선자는 길거리에 나와 김치 장사를 시작한다. 시즌2는 바로 그 오사카에서 그 힘겨운 삶을 버텨내는 선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7년이 넘었지만 이삭은 돌아오지 않고, 궁핍한 삶에 밀주를 담가 밀거래까지 하다 체포된 선자는 감옥살이를 해야할 처지에 놓이지만 한수의 도움으로 풀려난다. 오사카에 선자와 이삭이 왔을 때부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수는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 노아(김강훈)가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역시 살피고 있었던 것. 마침 미군의 대규모 공습이 있을 거라는 정보를 알게 된 한수는 선자에게 그 곳을 떠나라고 말하지만 선자는 단호히 이를 거부한다. “옥살이 중인 남편 두고 내 어디 못갑니더. 그 사람 두고 내 어디 안갑니더. 못가예.” 여기서 한수와 선자의 대비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한수가 저 살 궁리만 하는 사람이라면, 선자는 자신과 아들을 거둬준 이삭을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해 살아가는 재일 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핍박받는 한인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 사이의 대비를 드러낸다. 그것은 크게 보면 총칼에 의한 무력과 돈에 의한 금력이다. 즉 제국주의와 더불어 자본화되어가는 세상의 폭력이 이들 재일 한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파친코’는 제국주의와 자본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그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당당한 한인들의 태도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 당당함은 가난하고 배운 것 없어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외면하지 않는 삶에서 나온다. 

 

언청이에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게 선자를 키워낸 아버지,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하숙집을 홀로 운영하며 억척스럽게 살아낸 선자의 엄마 양진(정인지), 자신을 밀고해 감옥살이를 하게 만든 이를 용서하고 죽는 순간에도 아내와 아이 걱정을 하는 이삭, 그렇게 죽어가는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는 내 남편한테 사랑받고 존중받았으예. 전부 다 받은 거라예.”라 말하는 선자... ‘파친코’에는 저 이민진 작가가 말했던 매력적인 한국인들이 넘쳐난다. 대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지고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살아가는 한인들이 보여주는 당당함은 그래서 자본과 무력이 권력이 된 세상을 숙연하게 만드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 인상적인 이 ‘파친코’ 원작 소설의 첫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역사가 되기도 하는 세상의 폭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헌사. ‘파친코2’가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다.(글:일간스포츠, 사진: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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