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월드컵 중계 전쟁, 이영표가 보여준 것

 

본 게임인 한국 대 러시아 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브라질 월드컵 중계방송 전쟁에서 MBC는 확실한 승기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 어디가> 3인방, 김성주 캐스터와 안정환, 송종국 해설위원은 예능에서 오래도록 다져진 친근한 이미지로 마치 예능 같은 중계방송의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영표(사진출처:KBS)'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영 달랐다. 한국 대 러시아 전 중계방송의 승자는 초롱도사, 문어영표, 표스트라다무스 등등으로 불리는 이영표 해설위원이 포진한 KBS에게로 돌아갔다. 시청률이 무려 16.6%(닐슨 코리아)로 본 게임 이전에 시청률 선두를 지켰던 MBC( 13.5%)를 압도했다. 차범근 해설위원과 배성재 캐스터가 중계한 SBS는 겨우 8.5%에 머물러 이번 월드컵 중계 전쟁에서 SBS의 준비가 안이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KBS 해설에 대한 호감은 한국갤럽이 최근 전국의 성인 남녀 6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이번 월드컵 중계는 어느 방송사가 가장 잘한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31%의 응답자가 KBS를 지목한 것. MBC23%, SBS18%에 그쳤다.

 

단연 그 힘은 현재 화제의 중심에 선 이영표 해설위원에게서 나온다. 스페인의 몰락과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전의 경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냈던 그에게 문어영표라는 닉네임이 붙고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에 기사화되며 국제적인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영표 해설위원의 힘은 단지 문어영표라는 닉네임처럼 경기 결과 예측 같은 이벤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제시되는 다양한 논거들과 증거들이 이영표 해설의 진짜 힘이다. 이영표는 국가별 팀의 색깔은 물론이고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과 장단점까지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토대로 경기의 흐름을 예측해낸다는 점에서 해설의 묘미를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안정환과 송종국 그리고 김성주가 함께하는 MBC 중계는 어딘지 산만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처음에는 만담중계처럼 친근함 때문에 보게 됐지만 자꾸 듣다보니 결국에는 제대로된 분석의 묘미가 스포츠 중계의 핵심이라는 걸 대중들도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것. MBC중계가 너무 시끄럽다는 반응은 말은 많지만 쏙쏙 들어오는 효과적인 해설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이영표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해설자에 걸맞는 전문적인 언어구사 역시 이번 월드컵 중계 전쟁에서 KBS가 우위를 가져갈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대했던 안정환은 예능 멘트를 날려 주목을 끌었지만 결국 축구 해설의 묘미란 축구의 본령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지난 20일 오전 7시부터 방영된 일본과 그리스 전에서 KBS는 시청률에서 10.9%를 기록하며 5.4%를 기록한 MBC를 두 배 가까이 앞질렀다. 후끈 달아올랐던 예능 경쟁으로 월드컵 중계 전쟁의 서막이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결국 스포츠 중계의 본질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이영표는 그 스포츠 중계가 갖는 본연의 재미와 힘을 보여주었다.

<별바라기>, 별보다 바라기 토크에 주목하는 까닭

 

이상한 일이다. MBC에서 정규편성된 <별바라기>에는 별들(스타)과 바라기들()이 함께 나와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별들보다는 바라기들의 이야기에 더 시선이 집중된다. 윤민수, 오현경, 우지원이 게스트로 출연해 이른바 국가대표 특집이라고 이름을 붙여놨지만 사실 <별바라기>가 집중하는 건 그들이 아니다. 별들은 침묵하고 바라기들이 한바탕 수다를 풀어내는 곳. 그것이 <별바라기>라는 토크쇼의 독특한 지점이다.

 

'별바라기(사진출처:MBC)'

바이브 때는 얼굴이 영 아니었다. 얼굴로 좋아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가수 윤민수의 바라기인 박서린씨는 팬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라는 식의 객관적인 토크로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는 자신이 상심을 당했을 때 바이브의 노래가 자신을 치유해줬다는 조금은 슬픈 이야기를 할 때조차 출연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참지 못하게 했다.

 

웃음만이 아니었다. “보통 발라드를 들으면 더 슬프지 않을까 생각하잖냐. 그게 아니다. 발라드를 들으면 , 이 사람이 나와 같구나라는 느낌이다. 나를 위로해주는 느낌.” 박서린씨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결국 공감이 주는 깊은 위로가 팬들로 하여금 스타를 바라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

 

별들이 아니라 바라기들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은 최근의 방송 경향이 왜 일반인 트렌드로 바뀌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사실 토크쇼의 첫 게스트로서 윤민수, 오현경, 우지원은 그리 강력한 존재감을 기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따라서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 프로그램이 어떤 매력을 전해주게 될지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웬걸? <별바라기>의 진짜 게스트는 별들이 아니라 더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바라기들이었다.

 

오현경과 바라기인 채민경씨의 이야기는 별과 바라기의 입장이 역전된 느낌마저 주었다. 살뜰하게 오현경을 챙겨주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채민경씨에 감복한 오현경은 오히려 자신이 삶의 큰 힘을 얻었다고 증언했다. 생일에 친구들에게 축하 편지를 쓰게 하고 영상편지까지 담아 오현경씨에게 전해주었다는 채민경씨의 이야기는 팬과 스타의 관계 그 이상을 보여주며 가슴 한 구석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별바라기>가 최근 토크쇼의 경향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스타들의 공간처럼만 여겨져 온 토크쇼가 이제는 일반인들로 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 게스트들이 어떤 토크에 대한 예측된 기대를 하게 만든다면 일반인 게스트들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그 예측 불허의 지점으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뻔한 스타들의 이야기에 대한 식상함보다는 일반인 팬들의 이야기가 훨씬 참신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와 팬의 공존을 보여주는 <별바라기>는 그 독특한 관계에서 나오는 이 프로그램만의 특별한 공감대를 선사하면서 지금껏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게 스타들이 그들만의 무대를 선사하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재미나 화제성을 떠나 일단 대중들을 잡아끌 수 있는 정서적인 부분만큼은 확실히 확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일반인 출연자들이 제공하는 의미와 감동은 충분하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이 프로그램이 좀 더 화제를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스타가 아닌 팬에 집중한 만큼 소박하고 진솔한 색깔을 가져왔지만 그만큼 화제성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면을 보이는 것. 만일 <별바라기>가 이 화제성까지 끌고 갈 수 있다면 이 독특한 토크쇼는 스타와 팬이, 연예인과 일반인이 공존하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울고 갈 개과천선의 디테일

 

살릴 수 있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대학 4학년 때 백두그룹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한국 소주시장의 마켓 쉐어를 40에서 60% 늘렸습니다. 판사님도 백두소주 드시죠? 그게 바로 제 작품입니다. 하하하. 백두소주와 그룹 살려내겠습니다. 백두그룹은 민족기업입니다. 잠시 외세 투기자본과 악덕로펌이 결탁한 농간에 시달리는 것뿐입니다. 국내 채권단의 90%와 전체 평균 60%가 저 진진호가 단독 경영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 짧게 등장한 이 법원의 장면은 여러 모로 진로그룹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진술한 백두그룹 진진호 회장(이병준)은 당시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진호 회장을 모델로 한 듯하다. 이야기의 소재도 그렇지만 심지어 외모까지도 비슷하게 연출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진진호 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제금융위기 때문에 국내의 그룹들이 휘청했던 건 사실이지만 소주 매출을 통해 진로만큼 현금보유고가 높았던 회사가 무너진 건 외세 투기자본인 골드만삭스의 작업(?)과 법정싸움에서 졌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김석주(김명민) 변호사의 마지막 의뢰인으로 등장할 이 진진호 회장의 이야기는 진로그룹이 겪은 과정을 재현할 것으로 보인다.

 

<개과천선>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이처럼 거의 실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낸 기업의 편에 서서 생업이 달린 어부들의 보상을 막는 차영우펌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재벌의 부실 사채 판매를 한 유림그룹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부실사채를 떠넘기고 돈을 챙긴 후 회사를 법정관리로 넘겨 채무를 청산한 다음,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부실을 털어낸 회사를 다시 장악하는 대기업의 행태는 실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대형 은행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벌인 파생상품 영업 문제는 키코사태를 다루었다. 드라마로도 이 파생상품이 갖고 있는 복잡한 금융의 문제는 결코 쉽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것은 이 사태 자체가 전문가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복잡한 금융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양산되었지만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태를 드라마가 정면에서 다룬다는 건 놀라운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디테일은 세세한 취재와 조사가 아니라면 도무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사실상 국내의 법조계를 거의 흔들고 있는 차영우펌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국내 굴지의 로펌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니네 차영우펌은 손이 안 닿는 데가 어디야 대체.” 이렇게 묻는 이선희 검사에게 김석주는 이렇게 줄줄이 관련 기관들을 늘어놓는다. “청와대, 내각, 법무부, 법원, 검찰청, 국세청, 금감원, 공정거래위원회 심지어 교정국 출신 고위간부들도 영입해 오는 거 알지? 회장님들 옥수발해야 하거든.” 중수부장 출신이나 대법원장 판사 출신들을 영입해 전관예우를 받는 차원을 넘어서 거의 모든 공공기관들에 손을 뻗고 있는 것. 이러니 사법정의가 제대로 이뤄질 까닭이 없다.

 

<개과천선>처럼 하나의 드라마가 이처럼 우리 사회를 강타한 금융과 법조 비리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 적이 있던가. 이것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것만 같은 디테일들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말하는 개과천선이란 단지 김석주 변호사만의 이야기를 지목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거기에는 금융경제로 넘어오면서 대기업들에 의해 자행된 그 많은 잘못된 일들의 개과천선을 바라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만한 의지와 뜻이 아니라면 이런 디테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준비와 분석, 예측이 만든 이영표 해설의 묘미

 

브라질 월드컵 우리 대표팀의 러시아와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교체 투입된 이근호 선수가 한 골을 먼저 넣었지만 단 몇 분만에 아쉽게도 러시아에 골을 내주면서 무승부가 됐던 것. 하지만 첫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평가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알제리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KBS월드컵중계(사진출처:KBS)'

한편 경기만큼 관심을 끈 것이 지상파 3사가 벌인 월드컵 중계전쟁이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도 방송사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중계를 보여주었다. MBC<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이 팀을 이뤄 중계팀을 꾸렸다는 점을 강조했고, 실제 해설에서도 그 친근감을 활용하는 중계가 엿보였다. 안정환의 직설화법은 공격적인 느낌의 해설로 주목을 끈 게 사실이다.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지금껏 해설이라고 하면 감싸주기가 대부분이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MBC 중계방송의 전체적인 느낌이 감정적으로 토로되는 듯한 인상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대표팀으로 뛴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걸 바탕으로 하는 코멘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냉철하게 경기를 분석하는 식의 전문성은 잘 엿보이지 않았다.

 

반면 KBS는 이런 MBC와는 정반대의 중계방송을 선보였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활약은 예상 외의 안정감을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전을 해설하면서 꼼꼼하게 러시아팀이 첫 골을 넣은 경기와 첫 골을 먹은 경기의 승률을 분석하거나, 대부분의 골이 후반 경기 종반에 몰려 있다는 점 등을 예시로 드는 모습은 이영표가 그간 꽤 많은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경기 해설에 있어서도 이영표는 선수들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모습이었다. 또한 선수들 개개인에 대한 장단점 분석을 통해 향후 경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짚어주는 대목도 시청자들로서는 경기를 보는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한 지점이다. 무엇보다 꽤 열심히 준비한 듯 해설의 단어 선택 또한 전문가들만큼의 안정감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영표 해설이 왜 빛을 발하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예능을 끌어와 그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운 직설화법의 MBC 중계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중계에 있어서 안정감과, 분석을 통한 적절한 예측 해설이 주는 재미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고 있는 건 이영표가 이끌고 있는 KBS 중계다. 안타깝게도 SBS 중계방송은 차범근 차두리 부자와 배성재 아나운서의 깔끔하고도 노련한 중계가 빛을 보고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 색깔을 확실히 어필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사전 홍보에서 예능을 앞세운 MBC와 예측을 앞세운 KBS가 양대 대결구도를 만들면서 생겨난 결과다. 물론 향후 차범근과 차두리 부자의 해설이 가진 잠재력을 무시할 순 없다.

 

예능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MBC 중계에 대한 관심은 다름 아닌 거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중계는 그만한 철저한 준비와 분석을 통해서 깊이가 생긴다는 것을 이영표는 보여주었다. 물론 차두리의 말대로 함께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이영표나 안정환, 송종국 그리고 차두리가 각각 방송사를 대표해 해설경쟁을 벌이는 것은 불편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만담중계든 예측중계든 노련미를 보여주는 중계든 시청자들로서는 그 경쟁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치열해진 월드컵 중계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시청자들로서는 그만큼 선택이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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