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스포츠의 맛, 예능과 만나니

 

도쿄올림픽은 끝났지만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끝나지 않았다. 한때는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스포츠예능이 진짜 스포츠의 맛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들이고 있어서다. 

뭉쳐야 찬다2

‘슛 어게인’으로 돌아온 <뭉쳐야 찬다2>

JTBC <뭉쳐야 찬다>가 시즌2로 돌아왔다. 사실상 스포츠예능을 되살리고, 다양한 레전드 스포츠스타들을 방송인으로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안정환이야 본래부터 예능의 블루칩으로 자리했던 바이니 차치하고라도 <뭉쳐야 찬다>를 통해 허재, 여홍철, 이형택, 김병현 같은 스포츠 레전드들이 방송가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허재는 이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러브콜을 받았고, 이제는 단독으로 MC를 맡을 만큼 떠오르는 예능인이 되었다. <뭉쳐야 찬다>의 성공은 종목을 농구로 바꾸고 선수였던 허재가 감독으로, 감독이었던 안정환이 선수로 크로스되는 <뭉쳐야 쏜다>로 이어졌다. <뭉쳐야 쏜다> 역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현주엽과 이동국, 윤동식 같은 새로운 스포츠 레전드 출신 예능인들을 발굴했다. 그리고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뭉쳐야 찬다2>가 시작된 것. 

 

흥미로운 건 <뭉쳐야 찬다2>가 시즌1과 달리 비인기 스포츠종목 선수들을 오디션 형식으로 선발하는 과정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어느 정도의 기초적인 실력을 검증하면서 동시에 비인기 스포츠종목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한 것. 그 오디션 형식은 JTBC <싱어게인>에서 따왔다. 심사위원으로 안정환과 이동국 그리고 김용만과 정형돈이 합격 버튼을 눌러 적어도 3개 이상의 축구공에 불이 들어와야 합격하는 방식이다. <싱어게인>이 데뷔 가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다시 노래 부르기’ 위해 나온 가수들의 오디션 형식인 것처럼, <뭉쳐야 찬다2>의 오디션(?)은 과거 축구에 꿈을 가졌지만 다른 종목 선수로 뛰었던 이들이 ‘다시 축구를 하기’ 위해 나왔다. 일종의 ‘슛 어게인’인 셈이다. 

 

첫 회에 오디션에 참여한 씨름선수 박정우는 씨름으로 다져진 남다른 근력으로 안정환을 무등태워 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우리에게는 비인기종목이지만 인도의 국기인 카바디로 인도 현지에서 맹활약하며 ‘코리안 킹’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레전드 선수 이장군이 허벅지 힘만으로 수박을 깨는 괴력을 보여줬다. 남다른 피지컬은 기본이고 공을 다루는 축구 실력도 예사롭지 않아 이들의 참여는 단박에 <뭉쳐야 찬다2>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놨다. 그저 예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축구’의 맛을 진심을 다해 보여줬던 <뭉쳐야 찬다>가 아니었나. ‘슛 어게인’으로 돌아온 <뭉쳐야 찬다2>에 대한 높은 기대감은 첫 회 만에 무려 8%(닐슨 코리아) 시청률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출연자들의 진심, 스포츠예능을 바꾸다

<뭉쳐야 찬다>가 이런 성과를 거두게 된 건,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자세 덕분이다. 사실 축구, 농구, 야구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껏 꾸준히 등장한 바 있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다양한 스포츠들을 예능프로그램의 소재로 다뤘다. 유소년축구를 지원해 실제로 성과로까지 만들었던 <날아라 슛돌이(2005)>, 연예인 야구단을 방송으로 끌어안았던 <천하무적 야구단(2009)>, 생활스포츠를 진흥하겠다는 기획의도로 전국을 다녔던 <우리동네예체능(2013)>, 그리고 축구 미생들의 완생 도전을 담았던 <청춘FC(2015)> 등이 그 사례들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 스포츠 예능들은 생각만큼 방송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보다 예능적 요소가 가미된 스포츠예능이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뭉쳐야 찬다>를 기점으로 스포츠예능은 예능이 아닌 ‘스포츠’에 방점을 찍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KBS <씨름의 희열>은 대중적인 인기가 식은 씨름을 오디션 형식으로 끌어안아 이 스포츠의 맛을 제대로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서장훈이 감독을 맡아 ‘진짜 농구’의 맛을 보여준 SBS <핸섬 타이거즈>, 박찬호와 이영표가 생활스포츠에 도전하는 <축구 야구 말구> 등에 이어 여자축구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SBS <골 때리는 그녀들>까지 이어지면서 스포츠예능의 붐이 만들어졌다. 특히 개그맨부터 모델, 배우 등등의 연예인들이 팀을 꾸려 여자축구에 도전한 <골 때리는 그녀들>은 발톱이 빠져도 온몸이 멍이 들어도 뛰고 또 뛰는 출연자들의 진심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무엇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바꿔놓았나

올림픽 같은 스포츠 제전을 통해 우리가 새삼 확인하는 건 스포츠가 그 자체로 충분한 재미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장감 넘치는 승부의 세계는 물론이고, 팽팽한 대결구도와 승패가 갈라졌을 때 터져 나오는 감정들, 그리고 승패와는 무관하게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주는 감동 등등.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 자체로 충분하다. 그러니 굳이 예능 프로그램이 스포츠를 소재로 가져왔다고 해서 예능적 요소들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최근 스포츠예능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또 인기를 얻고 있는 건 바로 이 예능에 대한 강박을 지워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예능적 요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뭉쳐야 찬다2>에서 이번 시즌에도 ‘살아남은 선수들’을 소개하고 또 오디션 형식으로 새 선수들을 기용하는 과정은 다분히 예능의 요소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목적이다. 예능적 요소가 들어간다 해도 그 목적은 온전히 ‘선수단 구성’이라는 스포츠 자체의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 <씨름의 희열>에서 기존 씨름 대회와 달리 선수들을 오디션 출연자들처럼 특장점과 매력을 담은 짦은 영상스토리로 구성해 소개한 후 경기를 보여주는 방식은, 실제 경기의 묘미를 더욱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목적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오히려 씨름 대회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씨름의 희열’을 느끼게 됐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영상 연출이나 자막도 마찬가지다. 실제 경기라면 어떤 한계가 분명한 연출과 자막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자유도를 통해 더 경기를 재밌게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 예능적 장치들이 온전히 스포츠를 더 즐길 수 있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관건이 됐다. 여기에 그 스포츠를 대하는 출연자들의 진정성 있는 자세까지 더해지면 스포츠예능은 스포츠중계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재미를 담보하며 펄펄 날게 된다. 

 

최근 스포츠예능은 SBS <편먹고 공치리>, JTBC <세리머니 클럽>, MBN <그랜파> 같은 골프예능의 트렌드로까지 넓혀지고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주춤해진 스포츠중계에 대한 갈증도 영향이 적지 않다. 또한 예능이 새로운 소재나 문법을 찾아내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스포츠예능의 급성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스포츠 자체의 맛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온전히만 드러낼 수 있다면 당분간 스포츠예능 트렌드는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글:시사저널, 사진:JTBC)

‘내가 키운다’, 기꺼이 김나영의 엄마가 되어준 양희은이 감동적인 건

내가 키운다

“조금 있으면 어린이날이다. 네 안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이를 위해서 준비했어.” 양희은이 써준 카드 속 글귀를 읽는 순간 김나영은 토닥토닥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양희은은 김나영의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연예계에서 어른 없이 혼자 버티고 살아남는다는 게 너무나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아이가 없으니까 나영이한테 어른이 필요할 때는 내가 그 노릇을 해주마. 누구한테 마음이 간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거든요. 그냥 마음이 가는 거죠.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죠.” 양희은의 그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마치 모녀지간을 보는 듯한 김나영과 양희은. 이들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JTBC <용감한 솔로육아-내가 키운다(이하 내가 키운다)>가 보여준 김나영과 양희은의 특별한 관계는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연이 되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김나영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 입학식 전에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홀로된 김나영은 그래서 학급 선생님을 ‘선생님 엄마’리고 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양희은은 김나영이 쓴 책을 통해 읽었고 그래서 그 속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나 가깝게 느낀 것 같아요. 쟤 엄마가 돼주고 싶다. 이렇게.”

 

김나영의 집을 방문한 양희은과 그를 따르는 김나영의 아이들은 마치 할머니와 손자들 같은 친근함이 묻어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모습이나, 스스럼없이 양희은의 품에 안기는 아이들. 그리고 양희은 역시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가족의 풍경이었다. 그런 양희은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는 김나영에게서도 딸 같은 모습이 느껴졌다. 

 

잠시 아이들끼리 놀고 있는 동안 양희은과 김나영이 나누는 대화도 모녀지간의 정이 느껴졌다. 양희은은 함께 밥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을 때 너무 웃겼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동생 이준에게 꿈이 뭐냐 물어보니 형 신우라고 답했는데, 형 신우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동생 이준이라고 답했던 것. 김나영은 힘들 때 의외로 신우가 의지가 되어준다고 말하고, 양희은은 그게 기특하면서도 “철 들어가는 게 속상하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꺼내놓는다. 

 

<내가 키운다>가 보여주는 김나영과 양희은의 특별한 관계는 훈훈한 감동을 주면서도 그 자체로 이른바 ‘정상가족’ 신화를 깨준다. 이른바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세워둠으로써 그 바깥의 다양한 가족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곤 했던 그 사고방식을 이들의 관계는 그 어떤 모녀보다 끈끈한 모습으로 깨주고 있는 것. 

 

프로그램 제목에 굳이 ‘용감한 솔로 육아’라는 부제를 담아놓은 <내가 키운다>는 최근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다양해지고 있는 가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많은 육아예능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지만, 잠시 ‘육아를 체험해주는’ 것으로서 일상적인 육아와의 괴리감을 드러냈던 일들이 적지 않았다. 또 관찰카메라가 연예인 가족들을 등장시켜 보여주는 것들 역시 심지어 이혼한 이들조차 다시 엮어내려는 ‘정상가족’ 신화를 재현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내가 키운다>가 단연 주목되는 건, 이혼 후 솔로 육아를 선택한 연예인들이 용감하게 방송에 출연한다는 그 사실만이 아니라, 거기 담겨진 ‘대안 가족’이 정상 가족 신화를 깨주는 점 때문이다. 솔로 육아를 엄마와 재혼한 새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는 김현숙네 가족이나, 언니의 도움을 받는 조윤희네 가족을 보면 ‘솔로 육아’라고는 해도 그들을 돕는 가족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혈연과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더라도 진짜 모녀 같은 관계를 보여준 김나영과 양희은의 특별한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가족이 얼마나 다른 의미일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가까이서 “엄마가 돼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이들과, “엄마 같이 의지돼요”라고 말하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족의 범주가 그것이다. 

 

혼자 아이 둘을 기르면서 제일 힘겨웠던 기억이 무어냐는 양희은의 질문에 김나영은 “맨 처음”이 가장 겁나고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양희은을 찾아갔는데 따뜻한 국수를 해주시면서 너무 겁난다는 자신에게 양희은은 이 말을 했다고 한다. “고요하게 너의 마음속의 말을 듣고 있어. 그러면 하나도 무서울 게 없어.” 김나영은 그 말을 듣고 정말 무서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더 힘든 건 어쩌면 세상의 왜곡되고 편견 가득한 시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양희은의 그 말은 바깥의 시선 따위는 내버려두고 내 마음에 더 집중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저들이 뭐라 떠들 건 “그러라 그래”라고 말하곤 하던 양희은의 말처럼. 

 

<내가 키운다>는 이러한 솔로 육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들이 구성해가는 다양한 가족과 관계의 양태를 꺼내놓은 후, 이를 관찰카메라로 보며 공감해주는 그 구성 자체가 가치가 있다. 김나영과 양희은의 이야기를 스튜디오에서 모니터로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채림은 김나영에 대한 깊은 공감을 전했다. “애기를 낳으니까 엄마의 존재가 너무 커요. 우리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의 시간이 있잖아요, 응원한다 너의 길을. 그건 가족밖에 없잖아요. 근데 (김나영은) 그 길이 너무 외로웠을 것 같아요. 혼자서 오롯이 꿋꿋이 그걸 이겨냈다는 게 너무 대단해요. 너무 멋진 사람이에요.” 

 

그 누가 결혼할 줄 알았고 또 이혼할 줄 알았으며 그 과정에 아이가 생길 줄 알았을까. 살다보면 마치 사고가 나듯 여러 일들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삶은 늘 어떤 ‘가야만 할 것 같은 길’로만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건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내가 키운다>는 그들을 “너무 멋진 사람”이라고 응원과 지지의 목소리를 더해준다.(사진:JTBC)

‘모가디슈’, 두 시간이 쫄깃한 남북 공조 소말리아 탈출기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모가디슈>는 먼저 그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유발한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1991년 그 곳에서 벌어진 내전을 소재로 했다. 한국영화가 한국도 아닌 해외 배경으로, 그것도 아프리카라는 공간을 소재로 가져온 것만으로도 색다른 그림과 스토리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영화 시작부터 부감으로 보여지는 모가디슈의 이국적인 풍광은 그 곳에서 벌어질 대혼전을 예고하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이 배경 위에 남북한의 외교 총력전이라는 대결구도를 세워두니, 영화는 더욱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이역만리의 땅에서 벌어지는 대한민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이 그것이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으로 국제사회에 발을 디딘 한국이 UN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한 표를 얻으려 하고, 이미 이전부터 그 곳에서 입지를 마련하고 있던 북한 대사관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하지만 이 남북 대결 구도는 내전이 벌어지면서 생존을 위한 ‘협력’의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남북 간의 분단을 넘은 우정 이야기 같은 것이다. 실제로 <모가디슈>에서 한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는 외교전 속에서 티격태격하지만 생존상황을 맞이하면서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물론 각자 자국을 대표하는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는 그들은 쉽사리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을 나눠 먹고, 탈출하기 위해 저마다의 루트를 통해 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려는 인간애를 발휘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구도로 보면 <모가디슈>는 자칫 섣부른 신파적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이 작품에서 감정 과잉을 유도하는 신파적 장면들을 되도록 배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함께 협력하며 탈출해야 하는 남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과잉된 정을 담는 식의 설정 또한 피한다. 

 

대신 <모가디슈>는 마지막까지 어쩔 수 없이 협력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남북 간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게 가능해진 건 한신성 대사를 돕는 안기부 출신 정보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북한의 림용수 대사를 돕는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의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북한 대사관이 약탈당하고 갈 곳이 없어 한국대사관에 의탁하게 되는 그 상황 속에서 이 두 사람은 각자 서로 다른 의중으로 대결한다. 즉 강대진은 이들을 ‘망명자’로 만들려고 하고, 태준기는 아예 한국대사관을 무력으로 장악하려 한다. 이 팽팽한 대결구도가 있어 한신성과 림용수 사이에 만들어지는 화해적 분위기와 균형을 이루면서 지나친 ‘신파 구도’의 위험성을 벗어나게 된다. 

 

류승완 감독은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이 내전 상황을 마치 실제처럼 영화로 재현해낸다. 모로코에서 100%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 속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로 내전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실감을 준다. 긴장감 가득한 내전의 풍경 속에서 가장 섬뜩한 건 아이들마저 마치 장난감총이나 되는 듯 소총을 들고 위협하고 총을 허공에 쏘아대는 장면이다. 내전이라고 하지만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폐허가 된 도시 풍광이나 그 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던가를 잘 표현해낸다. 

 

또한 흥미로운 건 <모가디슈>를 통해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색다른 액션이다. <모가디슈>는 결국 탈출기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공격하는 액션이 아니라 방어하고 도망치는 액션에 집중되어 있다. 추격하는 반군과 정부군의 총격을 피해 도주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 속에서 빠져나가는 그 과정들이 마치 실제 관객이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실감으로 전해진다. 

 

김윤석, 허준호 그리고 조인성의 연기는 이러한 실감을 몇 배로 몰입하게 해주는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 작품의 발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구교환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이 영화가 신파로 흐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은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데는 구교환의 날 선 연기가 한 몫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밖에도 정만식, 김소진, 김재화, 박경혜 같은 현실감을 채워주는 연기자들이 있어 <모가디슈>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한 마디로 <모가디슈>는 ‘선수들이 만든 작품’이다. 현지 로케를 통한 당시 상황의 완벽한 재현과 류승완 감독의 균형감 넘치는 연출 그리고 배우들이 제공하는 몰입감으로 두 시간이 순삭되는 액션과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대폭 줄어든 상황이지만, 영화관에서 보길 권한다. 그래야 그 실감이 200% 느껴질 작품이니까.(사진:영화'모가디슈')

‘킹덤: 아신전’, 북녀 전지현을 세우자 생겨난 대서사의 서막

킹덤 아신전

92분짜리 한 편의 영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시즌2를 잇는 시즌3의 서사도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아신전>은 참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에피소드다. 그래서 시즌1,2의 열광에 전 시즌을 보지 않고 이번 <킹덤: 아신전>만을 본 시청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아신(전지현)의 탄생기를 다소 단순하지만 묵직하게 그려낸 에피소드가 이번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1,2를 챙겨 봤고, 시즌3를 기다리는 그 과정에 ‘스페셜 에피소드’로서 <킹덤: 아신전>을 보는 분들이라면 왜 곧바로 시즌3로 가지 않고 이러한 스페셜 에피소드를 먼저 채워 넣었는가 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세움으로써 향후 <킹덤> 시리즈가 더 거대한 대서사의 서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발을 딛지 않은 분들이라면 <킹덤: 아신전>을 보기 전 시즌1,2부터 챙겨보길 권한다. 그래야 이 작은 피스 하나가 만들어내는 세계의 확장을 실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킹덤> 시즌1,2는 한반도 남쪽의 서사다. 죽은 왕을 살려낸 의원과 함께 갔던 소년이 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고, 그 의원이 동래 지휼현으로 그 시신을 데려오면서 창궐하기 시작하는 ‘좀비 역병’의 서사. 왕세자 이창(주지훈)은 이 역병을 막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남쪽의 영웅으로 세워졌다. 그는 배고픔에 굶주린 민초들의 역병(좀비)을 막고 한편으로는 권력에 눈 멀고 굶주린 세도가들의 역병과 마주한다. 

 

그리고 시즌2의 엔딩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신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좀비떼로 변한 이들을 가둬두고 마치 조종하는 듯한 인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 아신은 시즌3의 서사가 이 인물에 의해 색다른 국면으로 들어갈 것임을 알린다. 하지만 시즌2까지 남쪽에서 궁을 거쳐 위로 달려오며 좀비떼들과 사투를 벌인 이야기에 이어서 곧바로 아신이 등장하게 되면 서사는 다소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창을 주인공으로 보며 달려온 시청자들에게 아신은 또 다른 적 정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덤: 아신전>은 한반도 북쪽의 서사로서 아신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좀비들을 창궐시키고 피의 복수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오롯이 아신을 주인공으로 그 탄생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다크 히어로’의 복수극에 공감하게 된다. 철저히 조선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몰살당한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 우뚝 선 안티 히어로. 그가 모두를 죽이고 자신도 그 끝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한 후, 남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그래서 향후 이창과의 대결을 단순한 권선징악의 차원을 넘어서게 만든다. 

 

아신이라는 인물을 여성으로 세우고, 그가 북방의 성저야인이라 불리며 조선을 위해 야인들의 침입을 막아주던 변방인 타합(김뢰하)의 딸이라는 사실은 이 안티 히어로가 ‘약자’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그려졌다는 걸 알게 해준다. 여성, 이민족, 변방인 같은 코드들이 아신이라는 인물에 투영되어 있어서다. 결국 철저히 권력자들에 의해 이용당하다 살해된 약자들을 생사초를 통해 되살려내고 피의 복수를 하는 아신은 그래서 저들과 맞서는 민초들의 왕이나 다름없다. 

킹덤 아신전

<킹덤>이 처음 시작했을 때 이 좀비 장르가 여타의 작품들과 비교해 좀비들에 대한 정서가 다르다고 느꼈던 건, 이들에게서 ‘배고픔’ 같은 한의 정서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권력에 굶주린 궁궐의 좀비들이 존재했지만, 민초들이 변한 춥고 배고픈 좀비에게서 연민이 느껴진 건 그래서였다. <킹덤: 아신전>은 그 연민과 한의 정서가 어떻게 좀비들에게 투영되었는가를 아신이라는 인물의 탄생을 통해 담아낸다. 

 

남남 이창을 중심으로 창궐하는 역병과 맞서는 이들이 한 세력을 구성한다면, <킹덤: 아신전>은 북녀 아신이 이끄는 역병(좀비)들이 조선을 집어 삼키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팽팽해지고 단순한 선악구도로 볼 수 없는 대결구도는 <킹덤>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공간적으로도 남에서 북까지 확장시키고, 단순한 이창의 서사에서 아신의 서사가 다른 한 축으로 세워진다. 단 한 편의 스페셜 에피소드이고, 어찌 보면 단순한 구도로 그려진 아신의 탄생기지만 이 이야기가 전체 <킹덤>이라는 시리즈에 만들어내는 힘은 이처럼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킹덤: 아신전> 이후, <킹덤>의 시즌들은 보다 탄력을 받게 됐다. 이창과 아신의 대결이 볼만해졌고, 권력자들(민초의 편이라지만 이창 역시 왕세자라는 권력자다)의 통치나 지배 같은 다소 보수적인 세계관과, 온전한 약자이자 민초의 혁명 같은 진보적인 세계관이 맞붙게 됐다. 또 이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남북 간 대결구도를 끄집어내고, 남남북녀로 대비되는 성 대결까지도 담아낸다. 

 

<킹덤: 아신전>이라는 스페셜 에피소드는 그래서 그 단 한 편으로만 보면 너무 단순하고 뭔가 하려다 끝나버린 듯한 아쉬움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 시즌들이 달려온 길을 따라온 시청자들에게는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재정비하면서 향후 이야기를 한껏 더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에피소드로 다가온다. <킹덤> 시즌1,2가 어딘가 ‘색다른 좀비 장르’ 정도의 이야기로 다가왔다면 <킹덤: 아신전>은 이미 글로벌한 관심을 갖게 된 이 작품에 대한 김은희 작가의 야심이 느껴진다. 작은 피스 한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이 들어감으로써 거대한 대서사로 확장될 전체 퍼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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