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근에 담겨진 사회적 의미

드라마 '추노'는 몸뚱이 하나로 시대의 억압과 맞서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몸에 대한 연출은 '추노'가 가진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한다. 멋진 남자들이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고 군살 하나 없는 복근을 보여주는 것이 단지 눈요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잘 단련된 복근이 드라마의 인기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최장군(한정수)이 숙소로 돌아와 지친 몸을 씻을 때 드러나는 복근 앞에서, 송태하(오지호)가 날이 엇나간 장도를 휘두를 때 언뜻 옷깃 사이로 보여지는 몸 앞에서 시청자들의 눈은 분명 호사를 누렸던 것이 사실이다.

'추노'야 그렇게 몸을 드러내는 것이 드라마의 연출의도와 적합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드라마에서도 남성의 복근을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처럼 되어 있다. '파스타'에서 까칠 쉐프 최현욱(이선균)은 이태리파 요리사들을 옥상으로 불러 모은다. 새로 온 오세영(이하늬) 셰프의 육수가 감칠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다짜고짜 옷을 벗으라고 하는 건 좀 생뚱맞다. 다분히 복근 노출을 통한 팬 서비스(?)의 의도가 강한 장면이다.

최근 송일국의 명품근육이 갑작스레 공개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런데 그 기사들에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의 주인공으로서의 송일국을 부각시켜 놓았다. '보석비빔밥' 후속으로 방영되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의 홍보를 위해 송일국의 몸이 먼저 공개된 것이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 남자들이 드라마에 출연해서 쓸데없이 상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작금의 복근 노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다.

TV의 복근 노출은 드라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다투어 복근을 노출한다. 아예 대놓고 "좀 보여주시죠"하는 MC의 요청과 거기에 대해 거리낌없이 옷을 들춰주는 토크쇼의 풍경은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이른바 '찢택연'으로 대변되는 짐승돌들은 옷을 찢어가며 복근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승승장구'에 출연한 2PM의 준호는 멋지게 춤을 추는 것보다 한번 옷을 찢는 퍼포먼스가 더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남성들의 복근 노출은 연예인의 몸에 대한 성 상품화가 여성에서부터 남성으로까지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복근이라는 특정 부위는 이러한 단순한 의미 이상의 것들을 담아낸다. 이것은 과거 불쑥 나온 남자들의 배를 '인격(?)'이라고 부르던 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당시 권위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남성들의 매력은 자기 자신보다는 배경으로 점수 매겨지곤 했다. 따라서 배가 나온 것은 '여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던 것.

하지만 배경 보다는 그 각자가 가진 고유한 매력으로 어필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격'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제 자기 몸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 시대다. 사회가 축적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소비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못 먹어서 죽던 시대는 가고, 이제 많이 먹어서 죽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돈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오히려 자기 몸을 관리하는 데서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즉 복근에는 이처럼 건강한 몸에서 연상되는 잘 관리된 삶의 태도(혹은 그렇게 관리할 수 있는 능력)가 투영된다.

이것은 작금의 대중들이 환호하는 남성과 여성들의 몸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태도다. 남성들의 복근처럼, 여성들의 이른바 '꿀벅지'는 이러한 건강한 몸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과거처럼 남성들의 시선에 포획되어 억압받아온 바짝 마른 허벅지가 아닌, 스스로 건강한 허벅지의 노출이 잘 관리된 삶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근 노출은 단지 성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남성들의 삶까지 투영하는 매력의 상징이 되었다. 게다가 몸은 정직하게도 노력하는 만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어떤 진정성까지도 갖고 있다. 드라마에 내용과 상관없이 남성들이 복근을 드러내고, 가수들이 앞다퉈 옷을 찢으려는 것은 그 매력을 통해 자신들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연기나 노래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이 가진 매력이 된 시대다.

새롭게 주목받는 그들의 까칠 훈훈 리더십

'하얀거탑'에서 장준혁 역할의 김명민은 성공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며 욕망을 불태우는 인물이었고, 최도영 역할의 이선균은 착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칼바람 나는 세상에서 버텨내기에는 연약한 인물이었다. 그 후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로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내는 까칠하지만 그 속에 훈훈함을 숨긴 인물로 돌아왔다. 이선균은 '커피 프린스 1호점'과 '트리플'에서 특유의 훈훈함을 강화하더니, '파스타'에서는 까칠함까지 더한 최현욱 셰프로 돌아왔다.

강마에와 최현욱은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강마에가 마이너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물들에게 "똥덩어리"라고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들을 지원하고 챙겨주는 것처럼, 최현욱도 주방에만 들어오면 요리사들을 잡아먹을 듯이 요리(?)하면서도 그들을 스스로 생존하게 해준다. 주방에서의 최현욱이 손님의 주문 폭풍 앞에서 요리사들에게 일사분란하게 주문을 하는 장면은 마치 강마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끌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연상시키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두 캐릭터가 비슷한 것은 그 리더십이다. 그들은 좀체 자신들의 팀원들을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욕을 해대고 모욕을 주면서 그들을 강하게 담금질한다. '파스타'의 최현욱은 부주방장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회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는 "부주방장에서 쉐프가 되는 그 시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레스토랑 사장과 쉐프라는 자리는 건설적인 긴장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그를 직접 도와주기 보다는 그 스스로 자신을 넘어서라고 말한다. 결국 부주방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그 줄다리기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주방 보조인 막내가 그만두겠다고 하자, 겉으로는 그러라고 하지만 그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주방 보조란 자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쓰는 자리라는 걸 그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셰프로 온 오세영(이하늬)이 개발해낸 육수가 훨씬 괜찮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 반대만 해온 이태리파 요리사들을 그는 옥상으로 데려다가 벌을 준다. 자신이 스카우트한 요리사들이지만, 요리 앞에서는 정직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들의 까칠 훈훈한 리더십은 멜로를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그 멜로의 양상 또한 두 드라마가 비슷하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단원으로서의 두루미(이지아)를 혹독하게 이끌지만, 멜로의 대상으로서 그녀를 알게 모르게 돕는다. '파스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주방에서는 쉐프와 요리사의 관계로 있다가 주방 밖으로 나오면 연인관계로 돌아간다. 최현욱은 일을 할 때는 아무리 연인이라도 모질게 대하고, 욕을 먹으면서도 그것을 서유경(공효진)은 웃으며 받아들인다. 일과 사랑에 있어서 이들은 그만큼 쿨하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들어 까칠 훈훈한 리더십이 드라마 속에 자리하면서 어떤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이범수)이 이른바 버럭 범수로 주목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무엇이 이처럼 까칠하면서도 훈훈한 캐릭터의 리더십에 주목하게 만드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그만큼 사회생활이 혹독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병원이나, '베토벤 바이러스'의 공연장, 그리고 '파스타'의 라스페라라는 공간은 모두 현실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그려진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려워진 그 현실에서 팀원들이 살아나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 팀원들이 더욱 강하게 만들어 자신이 없어도 스스로 버텨낼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일과 사랑을 동시에 그려내는 우리식의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의 새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일에 있어서는 까칠함을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훈훈함을 전하는 것이 드라마가 현실의 빈자리를 채워 넣는 방법인 이상, 그것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캐릭터로서 까칠 훈훈한 인물이 창조되고 있는 것.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파스타'의 최셰프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혹독해진 현실이 새롭게 요구하는 리더십의 한 단면일 수 있다.

강호동이 강마에가 된 사연

‘강심장’이 처음 기획 될 때만 해도 관계자들은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고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 게스트만 스무 명이라면 섭외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들을 한 자리에 앉혀 놓고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게 만만찮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로도 드러났다. 초기 ‘강심장’은 이른바 ‘병풍 게스트’로 논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바쁘게 카메라가 움직이고 이야기를 이쪽저쪽으로 토스한다고 해도 그 많은 인원을 모두 비춰낸다는 건 실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강심장’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병렬적으로 저마다의 주제를 하나씩 피켓에 적어놓고 순서에 따라 얘기하는 방식으로는 ‘병풍 게스트’는 피할 수 없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강심장’은 ‘스타킹’식의 ‘조연 시스템’을 도입한다. 즉 한 명이 주연(?)으로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때, 주변에서 몇몇이 조연으로서 그것을 받쳐주는 형식이다.

이것은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이 출연할 때 그들을 중심에 세워두고 연예인들이 조연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스타킹’에서는 그 조연역할이 주로 몸개그에 가까운 것인 반면, ‘강심장’은 토크를 통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시스템’을 운용하는 MC, 강호동이다. ‘스타킹’에서 그는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우기 위해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해 보여준다.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드러눕는 것은 보통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강호동의 솔선수범(?)을 보는 게스트로 출연한 다른 연예인들도 적극적으로 리액션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 ‘스타킹’은 사실상 ‘리액션의 예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이러한 일반인을 주연으로 세워두고 강호동의 진두지휘에 따라 조연역할을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강심장’은 기본적으로 토크쇼이기 때문에 ‘스타킹’처럼 몸으로 보여주는 리액션보다 좀 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강호동은 마에스트로 같은 강력한 토크의 지휘자 역할을 자처한다. ‘강심장’에는 다양한 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즉 김영철 같은 개인기로 똘똘 뭉쳐 있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김효진처럼 이승기를 추종하는 뒷배(?)를 갖고 강호동에게 호통치는 목소리도 있다. 정주리처럼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조건 들이대는 목소리도 있고, 데니안처럼 옛 아이돌로서 지금의 아이돌과의 비교점을 세워주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강호동 옆에 자리한 이승기는 마치 오케스트라 협연에서 지휘자 옆에 서는 메인 악기 연주자 같은 듣기만 해도 기분좋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반고정된 출연자들인데, 새로 들어온 게스트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합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낸다. 강호동은 게스트의 이야기가 조금 재미없다 싶으면 확실하게 웃음을 보장하는 김영철 같은 개그맨에게 바톤을 넘기고 잠깐 한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게스트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면 이야기가 좀 더 매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게스트의 이야기가 좀 밋밋하다 싶으면 ‘야심만만’ 시절에 했던 것처럼 슬쩍 슬쩍 넘겨짚기로 게스트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기도 하는 데, 그것이 좀 부담스러운 아이템이라면 자신이 하지 않고 좀 더 편안한 질문자(?)를 내세운다. 과거에 붐은 바로 이 역할을 하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하면 수위가 좀 높은 질문도 질문자의 캐릭터로 인해 부드럽게 넘어가게 된다.

자신이 좀 오버했다 싶으면 김효진의 일침을 허용하고, 때로는 바른생활 청년 같은 이승기에게 자신을 내어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승기는 박상혁 PD의 말대로 “미소가 좋은 청년”이다. 그 기분 좋은 리액션 한 방이면 조금 썰렁해진 분위기도 금세 일소된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소리들의 조합은 어느 정도의 가이드 라인으로서의 대본이 역할을 하게 마련이지만, 순간순간 치고 빠지는 토크의 조화는 MC인 강호동이 만들어간다. 박상혁 PD는 “강호동의 진행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며 게스트의 토크 중간 중간에 카메라 밖에서 손짓 발짓으로 출연자들의 리액션을 요구하는 강호동의 진두지휘를 보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한다.

버라이어티 쇼가 집단 체제화 되면서 그 많은 인원들의 행동이나 말을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역할은 이제 MC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스타킹’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강심장’에서는 연예인을 상대로 거기에 맞는 ‘리액션의 예능’을 선보이는 강호동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MC로 부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그는 그 범주를 넓혀, 예능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강마에가 되어가고 있다. 그가 메인MC로 자리한 버라이어티 쇼가 하나의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인터넷 놀이 문화, 세태를 반영하다

안경을 벗은 유재석의 그나마 멋지게 스타일이 살아있는 얼굴 사진과 쳐다보기 심히 민망한 얼굴 사진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밑에 포복절도 촌철살인의 캡션이 붙는다. '생얼의 그나마 봐줄만한 예'와 '얼굴에 못으로 안경을 고정하고 싶은 예'. 연예대상을 수상하는 진지한 얼굴의 유재석과 '패밀리가 떴다'에서 굴욕을 당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세워두고 '예능 신의 위엄이 넘치는 예'와 '예능신의 위엄 따위 개나 줘버린 예'라는 설명이 붙는다.

이것은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유재석의 좋은 예 나쁜 예'라는 네티즌이 만들어낸 콘텐츠다. 이른바 '좋은 예 나쁜 예'라고 불리는 이 콘텐츠는 이미 2PM, 2AM, 빅뱅,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등 아이돌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하나의 인터넷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놀이는 이제 아이돌을 넘어서 점차 그 분야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유재석의 좋은 예 나쁜 예'에 이어 나온 '무한도전의 좋은 예 나쁜 예'는 이 놀이가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 놀이의 콘셉트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비교되는 사진을 병치하고 캡션을 다는 것이다. 먼저 좋은 예, 즉 멋진 예가 보여지고 다음에 나쁜 예, 즉 망가진 예를 보여줌으로써 그 비교점이 가져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콘셉트는 단순하지만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놀이라는 점에서 팬덤 문화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다. 한 연예인의 지금껏 해온 활동을 담은 영상들을 캡처하고 분석(?)하는 작업은 그 연예인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흥미로운 건, 이 놀이를 통해 네티즌들의 성향이 읽혀진다는 점이다. 이 놀이는 과거 외부의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데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만들고 자기 것화 하려는 성향을 보여준 UCC의 성격을 그대로 가진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활동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기록되기 마련인데, 그 기록을 그저 바라보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나름의 단평을 다는 식이다.

그 단평이 과거의 기준이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현재의 기준이 되고 있는 '좋고 나쁨'으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호불호는 개인적인 취향을 담기 마련인데, 그렇게 개인화된 취향을 공통의 주제를 통해 공감하고 싶어하는 네티즌들의 성향이 그 속에는 숨겨져 있다. 물론 팬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지만, 연예인은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놀이의 재료 즉 영상물이 많은 데다, 그 호불호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이 놀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 놀이가 갖는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공감'이라는 측면은 이른바 '서열놀이'라고 불리는 놀이에서도 발견된다. 이 놀이는 주로 아이돌 그룹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멤버들 같은 서열이 가능한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데, 특정한 기준을 내세워 각각의 서열을 제시하는 것이다. 2PM을 예로 들면, 대중인지도에서는 닉쿤이 서열 1위지만 팬덤 내 인기에서는 우영이 1위이고, 언어능력에서는 4개 국어를 하는 닉쿤이 1위이지만, 한국어 구사능력에서는 택연이 1위인 식이다. 즉 기준을 뭘로 정하느냐에 따라 서열이 달라지는 이 놀이방식은 은연 중에 획일적으로 구획되곤 하는 기성세대의 등수문화를 뒤집는다. 즉 이런 면에서는 꼴찌라도 이런 면에서는 1등이라는 식이다.

물론 놀이는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놀이는 그 매체적 속성 때문에 일정한 공감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현 네티즌들이 갖고 있는 성향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가진 취향을 타인과 공감하려는 강한 욕망과 함께 다양한 취향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즐거운 놀이를 통한 공감에의 희구. 그 강력한 소통의 욕구가 이 놀이를 뜨겁게 만드는 이유다.
(사진출처 = 실타래(sealta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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