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를 부탁해’, ‘태양을 삼켜라’, ‘천만번 사랑해’

어딘지 2% 부족한 드라마들이 있다. 그저 보고는 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설정과 장면들이 나올 때면 왜 이걸 보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 드는 드라마들. 시청률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은 드라마들. 어째서 이런 어정쩡한 드라마들이 나오는 것일까.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 ‘아가씨를 부탁해’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아가씨를 부탁해’. 실제로 이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가 갖고 있는 소구점들을 거의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 먼저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초부유층의 환상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 똑같다. 하인들과 집사들, 거의 성을 연상시키는 집, 잘 빠진 스포츠카에 패션쇼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의상까지, 이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가 드라마라는 틀을 거대한 판타지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하나의 광고판 기능을 하게 했던 그 장치를 그대로 가져왔다.

캐릭터도 성별만 바뀌었지 성격까지 똑같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가 여자로 바뀌어 강혜나(윤은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하려는 이야기는? 변함없는 멜로다. 윤상현이라는 매력적인 배우가 서동찬 역으로 등장해 강혜나의 집사 역할을 하며 멜로의 감정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 역시 ‘꽃보다 남자’가 금잔디(구혜선)를 통해 못된 부잣집 자제 길들이기를 했던 그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모티브를 그대로 따고 있다.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까지 유사하니 그 달달한 맛은 있지만 이 드라마만의 엣지가 부족하다. 시청률이 안 오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제2의 ‘올인’, ‘태양을 삼켜라’
‘태양을 삼켜라’는 제2의 ‘올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남자들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늘 내세우는 야망과 복수의 코드는 ‘올인’이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고, 배경인 제주도와 카지노 도박의 세계 역시 판박이다. 인물들 역시 어디선가 봐왔던 캐릭터들이다. 늘 이런 드라마에 존재하기 마련인 재벌 장민호 회장(전광렬), 그 회장의 망나니 후계자 태혁(이완), 그 태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대신 감방에도 들어가는 정우(지성),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멜로를 연출하는 수현(성유리). 게다가 그 주인공인 정우가 사실은 장민호 회장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드라마가 여기저기서 무수히 봐왔던 익숙한 코드들을 조합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가진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새로운 스토리가 없는 볼거리는 맥락 없이 이어지고, 결국 스토리까지 잡아먹는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올인’에서 이야기를 더 절절하게 만들어준 이병헌과 송혜교 같은 배우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딱히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캐릭터가 가진 식상함이 배우들의 연기마저 삼켜버리는 형국이다. 이 정도의스케일과 이 정도의 제작비를 투여하고 20%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찬란한 유산’이여 다시 한 번(?), ‘천만번 사랑해’
한편 새로 시작한 SBS 주말드라마 ‘천만번 사랑해’는 여러 모로 ’찬란한 유산‘의 코드들을 가져왔다. ‘천만번 사랑해’는 대리모 문제를 내세워 우리네 사회가 가진 핏줄의식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려 하고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유산을 통해 문제제기 되었던 핏줄의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그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찬란한 유산’의 성공방정식을 거의 따라가고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가 만들어내는 가족의 파탄, 배다른 자식이 겪게 되는 고난과 역경, 그 역경을 일으켜줄 재벌집 아들의 존재 등등. 유사한 코드들이 곳곳에서 보여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찬란한 유산’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심지어 자식을 내쫓는 계모 같은) 드라마 분위기가 늘 밝은 톤을 유지했던 것에 비해, 이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자극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주말이라는 시간대에 ‘찬란한 유산’이 거둔 성공을 다시 거두려 한다면, 자극적인 소재와 보편적인 정서 사이에 균형 있는 이야기를 구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 본 듯한, 그러나 어딘지 2% 부족한 드라마들의 탄생은 이미 확고히 성공한 드라마들의 성공 코드들을 다시 활용하려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장르라는 것은 바로 그 성공 코드의 재배열이 주는 이미 기대된 결과를 확인하는 반복적인 즐거움에서 탄생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장르에도 변주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있다. 타 드라마와는 확실히 다른 한 가지는 분명 갖추고 있어야 그 드라마만의 존재이유는 그제야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 이 드라마들이 바로 그 존재이유를 찾아서 부족한 2%를 채우기를 기대한다.

 병풍이거나, 민폐거나 어쩌다 아버지들은?

드라마 세상이 바로 현실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을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 언제부턴가 드라마 속에 아버지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현실에서 자꾸만 좁아져가는 아버지라는 위상을 가늠하게 한다.

아버지는 집 담보까지 집어넣었지만 결국 망한 회사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그 회사를 버리고 야반도주해버린 사장 앞에서 쓰러져버린다(SBS '천만번 사랑해). 이혼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어머니를, 수선집을 하는 아버지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보냈다며 그래도 여전히 생각이 난다고 쓸쓸하게 말한다(SBS '스타일').

이것은 전통적으로 남성 시청자들의 몫이었던 사극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과 천명(박예진)의 아버지인 진평왕(조민기)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무능력한 왕이자 아버지다. 그는 미실(고현정)의 권력 앞에 딸을 버리고, 심지어 명백히 살해된 천명의 죽음 앞에서도 그 죽음이 사고였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실종된 드라마 세상은 어느새 여자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 속에서 남자들은 여성들의 간택을 받는 인물로 등장하거나, 향수어린 과거의 가치에서 허우적대는 인물로 그려진다. '꽃보다 남자' 이후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내조의 여왕', '아가씨를 부탁해' 같은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하나 같이 부자에 꽃미남으로 등장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여성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한편 남자의 세상을 그리고 있는 '드림'이나 '태양을 삼켜라', 그리고 종영한 '친구' 같은 작품 속에서 거친 남자는 지금 시대와는 아무런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 향수로 그려진다. 그들은 여전히 성공에 목말라 하고 있고, 그 성공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미래의 성공보다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작금의 가치관에서 보면, 그들의 사투는 안쓰럽게만 보일 뿐이다. 도대체 왜 그들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지 잘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조차 여성의 대상이 되거나, 과거의 향수 속으로 숨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이제는 나이 들어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존재는 더더욱 자리할 곳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드라마 세상 속에서 병풍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젊은이들의 민폐로서 기능한다.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그 시대의 감정이입할 대상을 나이와 성별을 넘어 포진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버지의 실종과 그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무관심은, 현실의 아버지들이 서 있는 위치를 가늠하게 한다.

이제는 한발 물러나 가족들 틈에서도 늘 뒷전에 앉아계시는 아버지들은, 그나마 소일거리로 찾아보는 드라마 속에서조차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대는 달라졌고,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그 달라진 사회를 반영하는 드라마가 과거 억압되었던 여성들을 살려내고, 마초적이기만 하던 남성들을 여성성 가득한 남성들로 그려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세계에 던져놓거나, 현실의 패배자로서만 그려지는 아버지의 존재는 문제가 있다. 지금 시대에 맞는 아버지 상은 도대체 없는 것일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배우, 김명민

김명민의 연기투혼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불멸의 이순신'에서 신화 속의 이순신을 인간 이순신으로 살려놓고,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욕망을 들춰내고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변신해 오합지졸 갈 곳 몰라 하는 서민들에게 벼락같은 호통과 당당함을 가르친 우리 시대의 진짜 배우, 김명민. 그는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이제 온 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가는 루게릭병 환자 종우로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MBC스페셜'이 조명한 배우 김명민은, 이미 종우처럼 걷고 종우처럼 생각하고 종우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자동차 앞에서 넘어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김명민은 계속 "한번만 더"를 요구했다. 정작 그것을 요구해야 할 감독 스스로도 숙연해질 정도로 그는 종우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잘 먹지 못하는 종우가 되기 위해 감량에 감량을 거듭해온 김명민은 무려 20킬로그램을 빼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미이라 같다고 얘기하지만, 김명민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듯 했다.

그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거기에 김명민은 없었다'였다는 건,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배우 김명민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에 정작 김명민은 없고 종우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작품을 했던 사람이 이 작품을 했다는 게 의심 갈 정도로 캐릭터의 차별화가 확실했으면…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못 알아봐도 제가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 루게릭’과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종우.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지수(하지원)의 감동 휴먼스토리. '내 사랑 내 곁에'를 설명하는 간략한 문구를 보나, 극단적인 신파라는 평까지 받았던 '너는 내 운명'을 연출한 박진표 감독의 면면을 보나 이 영화는 지독하게도 눈물샘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내 사랑 내 곁에'가 신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대중들을 감동시켰다. 그 감동의 실체는 김명민이 전하는 영화에 대한 진심이다.

억지 코드로 연출되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신파와는 달리, 우리는 완벽하게 종우가 된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통해서 종우의 진심을 이미 훔쳐보게 되었다. 루게릭병이 가진 종우의 고통을 이미 바짝 마른 몸으로 수척해진 김명민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안타까울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김명민의 연기투혼이 왜 의미 있는 일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종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종우로 살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감동을 주는 배우, 김명민. 그 스틸 한 컷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이미 연기의 차원을 넘어서 거기 있는 그 사람이 김명민이 아니라 진짜 루게릭병을 앓는 종우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가을 그 종우 때문에 우리들은 아마도 깊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 같다. 분명.

'해피선데이-솔약국집 아들들-개그콘서트', 최강의 편성라인

프로그램의 질만큼 중요한 것이 편성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편성이 만사"라고까지 말한다. 한 프로그램의 성공은 다음 시간대 프로그램의 성공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각각 하나로 떼어보는 것보다는 한 덩어리, 즉 라인으로 생각하면 거기서 편성의 묘가 보인다. 이것은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현재 최강의 편성라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요일 밤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KBS2의 프로그램 편성라인이다. 5시20분에 시작하는 '해피선데이'에 이어서 '솔약국집 아들들', '개그콘서트', 그리고 '천추태후'가 끝나는 11시30분까지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저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AGB닐슨의 지난 30일자 시청률표를 보면 1위의 '솔약국집 아들들'이 35.6%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2위가 '개그콘서트(20.1%)', 3위가 '해피선데이(19.1%), 그리고 '천추태후'는 4위인 '스타일(18.9%)'에 약간 뒤진 18%로 시청률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주간시청률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주간 시청률에서 '솔약국집 아들들', '개그콘서트', '해피선데이'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덕여왕' 다음으로 2,3,4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각각의 프로그램이 갖는 높은 대중적인 지지도를 말해주는 것이지만, 라인을 형성한 편성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주말 시청률에서 KBS2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SBS의 '스타일'과 '천만번 사랑해' 역시 하나의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치게 만든다. 한편 일요일 시청률에서 참담한 결과에 머물고 있는 MBC는 어떤 라인은커녕 중심을 잡아주는 프로그램조차 형성되지 않음으로써 점점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일요일 시청률표에서 20위 권에 들어간 MBC프로그램은 14위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9위의 '해피타임' 두 프로그램뿐이다. 즉 저녁 시간대의 라인이 무너져버린 형국이다. '일밤'을 중심으로 주말드라마까지 이어지는 황금의 편성라인은 이제 옛 얘기가 되어버렸다.

TV라는 매체는 집중적으로 보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저 틀어놓고 슬쩍슬쩍 보는 시청행태가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틀어져 있는 채널은 그만큼 유리한 면이 있다. 하나의 좋은 프로그램이 따라서 이어지는 다른 프로그램을 살리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요일 밤 KBS2로 고정되는 채널은 라인을 형성한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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