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이 주는 청량감, ‘그라운드 제로’

드라마는 꼭 길어야 맛이 아니다. 2부작 드라마 ‘그라운드 제로’는 짧아도 압축되고 잘 짜여진 스토리와 굵직한 메시지, 그리고 연기자들의 호연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라운드 제로’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폭지점 혹은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를 뜻한다. 드라마가 이 용어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삶의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온 불행과 그 불행 속에서 절망하고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그라운드 제로’는 제각각 살아가던 세 남자가 부딪치게 되는 자동차 사고지점이다. 거기서 택시기사 유동선(박철민)은 갑자기 차로 달려든 김천수(김갑수)를 치게 된다. 그리고 그 택시에는 승객으로 이주현(김남진)이 있었다. 신문 사회면에서 봤다면 이 정도 기사는 단 몇 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드라마는 그들이 그라운드 제로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파고든다.

세 남자는 모두 아픔을 갖고 있다. 유동선은 1년 안에 수술을 해야 하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있고, 김천수는 뇌물수수라는 누명에 아내의 불륜사실까지 알게되면서 절망에 빠진다. 이주현은 911 테러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 사고가 터지면서 이 각자의 아픔들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드라마는 눈물의 릴레이라 할 만큼 연달아 벌어지는 슬픔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감동해서 울고, 분노해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후회가 돼서 울며, 고마워서 운다. 그리고 그 눈물이 끝날 즈음, 그들은 깊은 상처 위에 돋아난 새 살을 발견하게 된다. 김천수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자신의 몸을 기증함으로써 타인의 삶으로 생을 이어준다. 그를 통해 다시 아내가 살게된 유동선은 그를 천사라고 부르며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오른다. 이주현은 연인에 대한 아픈 기억을 털어 내고 돌아온 김소영(황보라)과 새로운 관계를 엮어간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눈물폭탄을 터뜨리고 있으면서도 신파가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 속의 눈물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혼자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즉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던 아픔과 일 대 일로 대면하면서 눈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그것은 치유의 눈물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눈물 연기를 해야하는 연기자들이다.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준 김갑수의 눈물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회한의 눈물연기를 보여준 김남진, 그리고 웃기다가 감동 주다가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박철민이란 연기자의 호연은 눈물연기의 거장들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였다.

조금 인기 있다 싶으면 연장을 해대고 인기가 없으면 조기 종영시켜 버리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환경 속에서 ‘그라운드 제로’는 그 시청률 잣대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단막극들의 필요성을 웅변해준다. 짧기에 더 짜임새 있고 짧기에 더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단막극이야말로, 느슨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 장편 드라마들 속에서 참신한 청량제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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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프린스 1호점’이란 커피의 중독성

커피.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정도는 되는 은은한 계피향이 섞인 커피, 아침이면 괜스레 한 잔 손에 들고 그 향을 음미하고 싶은. 와인. 깊은 맛의 보르도 클라렛이나 까다롭지만 우아한 부르고뉴 피노누아 정도 되는 와인, 시원스런 셔츠가 잘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뒷짐에 숨겨 가져온.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바로 그런 커피와 와인 같은 공간을 그려낸 드라마다. 그것은 모든 청춘들이, 아니 청춘을 꿈꾸는 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곳이다.

그 곳은 일터이면서 일터가 아닌 놀이공간이고, 호통을 치지만 연인 같은 사장이 있는 곳이며, 아옹다옹하면서도 오랜 지기 같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은 일을 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을 한다. 스트레스는 일에서 온다기보다는 연인 같고 친구 같은 관계들의 비틀어짐에서 온다. 카페는 파리를 날려도 그들은 멋진 폼으로 농구를 하고 시원스런 분수대로 뛰어든다. 일? 놀다보면 다 된다. 그러니 걱정말고 마음껏 꿈을 꾸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현실? 그런 건 머리 싸매고 쥐고 있기보다는 “몰라 몰라 어떻게 되겠지”하며 넘겨 버리라 한다. 왜? 청춘이 있으니까.

게다가 주인공 고은찬(윤은혜)은 남장여자다.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이 중성적 느낌의 주인공은 섹시함의 화신처럼 고혹적인 한유주(채정안)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섹시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 남자 같은 털털한 모습 속에 가녀린 여성의 눈물을 숨기며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저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을 연상케 한다. 거기에는 묘한 신비주의가 섞인다. 윤은혜의 연기 논란을 잠재울만한 이 캐릭터는 지금 막 저 순정만화에서 빠져나온 듯 생생하다.

고은찬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두 남자 또한 갖고 싶은 꿈을(욕망이 아니라 꿈이다) 꾸게 하는 캐릭터다. 최한결(공유)은 어딘지 까칠하게 대하지만 순수한 느낌으로, 최한성(이선균)은 때론 날카로우면서 때론 편안한 어딘지 사는 맛을 알 것 같은 분위기로, 고은찬에 몰입된 시청자들을 꿈꾸게 한다. 최한결은 소년으로 최한성은 소녀로, 고은찬을 대한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중성적인 매력이 주는 재미를 잘 알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중성을 꿈꾸는 것은 우정 같은 안전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때론 그 선을 넘나들며 사랑을 하고픈 ‘질척거림 제로’의 로맨스를 꿈꾸기 때문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그래서 현실에선 좀체 불가능한 꿈 같은 공간을 그려낸다. 그 곳에는 트렌디 드라마에서 늘 다루는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환타지는 보이지 않는다. 최한결은 말 그대로 왕자(프린스)지만 그렇다고 드라마는 그 왕자에 대한 신분상승의 욕망을 그려내진 않는다. 환타지가 끈적끈적한 욕망을 추구하는 대신,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누구나 선망하고픈 꿈을 꾸게 만든다. 청춘들은 그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이 아닌 편안한 흐뭇함을 느끼게 된다. 본래 이름이 ‘왕자다방’이었고 그 주인이 홍사장(김창완)이란 점은 이 드라마가 꾸는 꿈이 젊은 세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적어도 김창완이라면 30,40대의 중년이라도 기꺼이 젊은 시절의 꿈을 떠올리게 해줄 테니까.

이 모든 것들이 청춘을 꿈꾸게 하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커피 같은 드라마다. 그 커피는 젊은 나날의 다방커피일 수도 있고, 뉴요커처럼 아침 출근 시간에 한 잔씩 사들고 들어가는 카푸치노일 수도 있다. 칼로리는 있지만 에너지를 위해 마시는 것도 아니고, 물론 맛에 취해 찾는 이들이 많지만 주로 어떤 정서나 분위기가 더 앞서는 이 기호식품을 앞에 두고 누구나 한번씩은 설렘을 가졌을 것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그 젊음이란 불가항력 속에서 때론 달콤하고 때론 씁쓸했던 커피 같은 청춘을 생각하며 미소짓게 만드는 드라마다. 그것이 마실수록 빠져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이란 커피의 중독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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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현대물, SBS 사회극, KBS 사극

TV 콘텐츠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져만 간다. 그러니 방송사들의 드라마에 거는 기대 또한 높아질 수밖에. 시쳇말로 잘 빠진 드라마 한 편은 방송사들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드는 상황이다. 작년 내내 MBC를 웃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주몽’이었다. 최고시청률을 연일 갱신하며 월화의 밤을 장악해버린 이 퓨전사극으로 인해 타 지상파의 월화 드라마들은 연일 최저시청률을 경신하는 눈물의 밤을 보내야 했다.

세련된 현대극으로 승부하는 MBC
하지만 그 부담이 너무 컸던 것일까. ‘주몽’이 종영한 이후, MBC의 드라마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케세라세라’, ‘히트’, ‘메리 대구 공방전’, ‘에어시티’ 등 기대작들은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주목할만한 드라마로 ‘하얀거탑’과 ‘고맙습니다’ 정도가 완성도와 시청률 양쪽을 어느 정도 가져간 드라마로 기억될 뿐이다. 여기에 애초에 방영되기로 했던 ‘태왕사신기’가 계속 늦춰지면서 그 여파를 고스란히 다른 드라마들이 겪게 되었다.

MBC가 주도했던 ‘포스트 주몽’으로서 ‘태왕사신기’의 방영이 연기되고, ‘포스트 하얀거탑’으로 만들어낸 ‘히트’나 ‘에어시티’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이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MBC가 갖고 있던 ‘드라마 왕국’의 이미지는 많이 희석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본래 MBC가 가졌던 강점인 현대물들로 그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기대작은 ‘커피 프린스 1호점’, ‘개와 늑대의 시간’ 같은 작품들이다.

MBC 드라마의 특징은 세련된 현대물이란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케세라세라’, ‘히트’, ‘에어시티’, ‘메리 대구 공방전’을 비롯해, 현재 좋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모두 세련된 현대물이란 특징이 있다. 또한 드라마의 영상연출에 있어서도 이들 드라마들은 탁월한 감각적 화면을 잡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영상시도는 젊은 층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지만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드라마를 통해 받길 원하는 40대 이상 시청자들에는 조금 낯선 것이 사실이다.

사회극으로 현실의 이슈화를 노리는 SBS
MBC가 내놓은 빈자리를 채운 것은 SBS. SBS 드라마는 그 시청자들에게 낯선 것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것을 보여주면서 사회적인 파장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SBS의 CP들은 최근 들어 오히려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것을 기획한 다음, 그것을 드라마로 제작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내 남자의 여자’가 불륜을 통해 이 시대의 달라진 남녀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호평을 받은 것에 이어,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어 현재 방영되고 있는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교육문제를 좀더 사회적 시각으로 접근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강남과 강북의 문제가 드라마를 통해 전면적으로 부딪치고 있는 것. 이 정도 되면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쩐의 전쟁’ 방영 후 그것이 실제 대부업체들의 이미지 전쟁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듯이, ‘강남엄마 따라잡기’ 역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드라마가 그려내는 모습들에 대한 뜨거운 찬반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SBS 드라마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자체의 힘에 외부적인 힘, 즉 현실의 힘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현실사회가 가진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이들 드라마들은 충분한 함의를 가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만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 속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KBS, 사극으로 부활을 노린다
MBC와 SBS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을 가졌던 것은 KBS. 공영방송이라는 무거운 옷을 입고 있어, 상대적으로 MBC가 했던 새로운 시도나 SBS가 했던 현실의 이슈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던 KBS는 결과적으로 이 두 방송사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은 격이 됐다. 전통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일일드라마와 사극을 빼고는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참패를 면치 못했다. ‘꽃 찾으러 왔단다’, ‘마왕’, ‘헬로 애기씨’ 같은 드라마들은 완성도를 떠나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사극은 KBS였다. 사극의 특성상 많은 노하우와 세트 등을 보유한 KBS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극에서는 계속 강세를 유지했다. ‘황진이’가 호평과 함께 성공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고 ‘대조영’ 역시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시작해 호평을 받고 있는 ‘경성스캔들’ 은 일제시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끌어들였고 월화극으로 새로이 시작한 ‘한성별곡’ 역시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극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법. 최근 KBS는 자체적으로 드라마 기획팀을 만드는 등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방송사별로 드라마들이 이렇게 제 각각의 색깔을 내는 데는 공영방송으로서의 KBS와 그걸 깨기 위해 새로운 시도로 맞서는 MBC,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약간의 논란까지 감수하며 기꺼이 경쟁에 끼어 든 SBS, 이 방송3사의 입장이 깔려 있다. 게다가 거의 극에 이른 드라마 시청률 경쟁은 이제 남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끈다. 어찌 됐건 골라보는 재미를 가지게된 시청자들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세 방송사가 천편일률적인 색깔을 보여준다면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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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헬기의 프로펠러가 팽팽 돌아가고, 군인들의 군화발이 절도 있게 움직인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폭약이 터지고 이건 마치 전쟁영화의 도입부분 같다. 그런데 이건 전쟁영화가 아니다. ‘그 평범한 날’ 벌어진 납득되지 않는 일일뿐이다. 택시를 몰며 사는 강민우(김상경)가 그가 사랑하는 박신애(이요원)와 함께 웃음을 터뜨리며 코미디 영화를 본다. 그 장면은 마치 멜로 영화의 시작 같다. 그런데 이건 멜로 영화가 아니다. 잠시 후 그들의 몸은 피로 적셔진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전원일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정겹기 그지없다. 그건 마치 휴먼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들의 어깨에는 총이 매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든 총알이 날아와 그들의 머리에 꽂힐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화려한 휴가’는 이 모든 일상의 장르적인 그림들을 뒤집어버린 ‘그 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날’이란 단어가 마치 보통명사처럼 특정한 날을 지칭하던 80년대, 군화발과 총검이 평화롭던 일상을 난자하는 장면을 통해 영화는 먼저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주인공인 강민우의 시선을 통해 보여짐으로써 이념적인 코드를 배제하고 대신 인물들에 집중한다. 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실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살아있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촌철살인의 대사들과 웃음을 절로 나게 만드는 상황들, 그러면서도 깊게 느껴지는 진심들이 어우러지면서 모든 장르를 뒤집어버린 영화는 여느 장르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따뜻하고 생생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앞에 관객들은 이들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마치 당시 광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가졌을 폭력에 저항하던 시민들을 지켜주고 싶은 심정처럼. 이렇게 시간여행을 통해 80년대 광주의 한 시민이 되어버린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놀라운 친밀감과 안타까움, 공포, 연민, 분노를 느끼게된다. 이 즈음 영화가 하는 말은 ‘보라’는 것이다. 당신이 한 짓을, 혹은 당신이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그것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뜨고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러니 이 시대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답게 저항하기 위해 죽어나간다. 차마 도청에 사람들을 남겨놓고 떠나지 못해서, 헛된 인생 한번이라도 사람을 느끼며 살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은 폭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하나하나 생의 선을 넘어갈 때, 지프차 위에서 박신애는 소리친다. “광주시민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영화 속 80년대 외쳐진 그 소리는 영화 스크린을 타고  27년이란 세월을 넘어 현재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귓속을 파고든다. 차마 보기 싫었던 차마 기억하기 싫었던 ‘그 날들’의 장면들은 이렇게 현재를 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그 날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갑작스레 군화발이 치고 들어오는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지금 당신이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가 어떻게 얻어진 거라는 걸 인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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