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K', 대중음악사를 재정립하는 게 왜 필요한가 하면

 

SBS <전설의 무대-아카이브K(이하 아카이브K)>는 그 제목에서부터 야심이 느껴진다. 기록을 보관한다는 의미의 '아카이브'는 이 프로그램이 소재로 다루는 대중음악의 지워져 가는 기록과 역사들을 찾아내 보관해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고, 거기에 붙여진 'K'는 한국대중음악사에 있어서 이 아카이브가 어떤 대표성을 띨 수 있을 만큼을 지향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제작진이 2년여에 걸쳐 만난 대중음악인 총 207명을 통한 증언과 인터뷰가 그 밑바탕이 되어 있다. 인터뷰 분량만 총 1만 5000분을 넘는다고 한다. 아마도 <아카이브K>라는 제목이 가진 무게감만으로도 이런 사전 준비는 당연했을 거라 여겨진다. MC를 맡은 성시경이 말하듯, 역사를 위한 박물관, 미술을 위한 미술관, 문학을 위한 도서관이 있지만 대중음악을 위해 갈 수 있는 곳이 딱히 없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의 존재 근거가 되어준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다시 끄집어내 기록하고 보관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무수히 많은 아카이브 박스들이 가득 채워진 스튜디오에서 첫 번째 끄집어내진 주제인 '발라드'는 그래서 1980년대 중반 팝 중심이던 우리네 시장을 가요로 바꾼 이문세를 기점으로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 등으로 이어지는 발라드 계보를 다뤘다. 다음 주에는 그 계보를 잇는 백지영, 이수영, 임창정, 김종국, 성시경 등의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첫 회에서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이문세와 고 이영훈의 음악에 담긴 가치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던 대목이었다. 이문세가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이영훈을 만나 작업한 <이문세 3집>에 들어 있던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그대와 영원히' 같은 주옥같은 곡들이 가진 아름다운 멜로디는 아마도 대부분의 대중들이 모두 공감하고 알고 있는 부분일 테지만, 이 날 주목한 건 이영훈이 쓴 시에 가까운 가사였다. 

 

이문세가 이영훈을 '시인'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다시금 들여다보니 그가 쓴 가사들은 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이영훈의 아들 이정환은 아버지가 특히 "가사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이셨고 가사를 가장 어려워하셨다고 술회했다. 그 말은 이날 게스트로 나온 임창정의 말처럼 놀라운 이야기였다. "가사에 공을 들였다는 얘기에 더 소름끼쳐. 멜로디가 나는 더 좋거든."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같은 '옛사랑'의 가사는 시의 한 구절 같은 울림이 있는 가사였다. 그 가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김이나 작사가는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같은 표현이 1인칭 시점으로 혼자만의 고독을 잘 표현해냈다는 걸 짚어냈다. 

 

사실 <아카이브K>는 그 기획의도가 너무 커서 이것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압축할 때 조사한 분량만큼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발라드'라는 주제로 시작한 프로그램에서도 우리는 거의 한 회분을 채워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문세와 이영훈의 이야기를 단 몇 곡과 이야기로 풀어낸 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전체적으로 관망하고(모든 걸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다시 음악을 듣는 일이 중요한 건, 이 일이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카이브K> 첫 방에서 특히 이영훈의 가사가 남다른 울림으로 남은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영훈의 가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건, 가사의 깊이와 울림이 점점 자극적인 비트와 박자 속에서 흐려져 가는 현 우리네 가요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 

 

<아카이브K>는 물론 그 어마어마한 제목의 크기만큼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네 대중음악에도 역사라 부를 수 있는 흐름들이 존재했고, 그 흐름 위에 현재의 우리네 가요가 서 있다는 걸 관통해보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건 또한 무심코 듣던 음악들을 다시금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사진:SBS)

'경이로운 소문', 정의 구현이 사적 복수가 되지 않으려면

 

"하늘의 힘을 가진 자가 살인충동을 느끼는 건 악귀나 다름없어." 소문(조병규)의 카운터 자격을 박탈하면서 그의 저승파트너인 위겐(문숙)은 그렇게 말한다. 악귀가 들어간 이들을 제압해 저승으로 보내는 역할을 위임받는 카운터들. 그들은 보통 인간들이 가질 수 없는 힘을 갖지만 거기에도 지켜야할 룰이 존재한다는 걸 위겐은 알려준다.

 

부모를 죽이고 그 영혼을 제 몸 속에 7년간이나 가둔 채 계속해서 살인을 이어가는 지청신(이홍내) 앞에서 그는 이성을 잃었고, 자신은 물론이고 절친들인 임주연(이지원)과 김웅민(김은수)을 괴롭히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가하는 신명휘(최광일) 시장의 아들이자 일진 신혁우(정원창)와 그 일당들 앞에서 그는 살의까지 품었다. 그것이 소문이 카운터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는 이유였다.

 

OCN 토일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이른바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등장하는 판타지지만, 그 판타지의 가면을 벗겨내고 나면 그 안에 부정한 짓들은 물론이고 살인까지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는 '사회악'과 정의의 민낯을 숨기고 있다. 그 악귀들이 빙의되었거나 그런 존재들을 이용하는 이들은 거짓 위선으로 대권까지 노리고 있는 신명휘 시장과 그를 도우며 치부해온 태신그룹 조태신(이도엽) 회장 그리고 이들의 손발이 된 조폭들이다. 그 악은 이제 장르물의 클리셰가 될 정도로 익숙한 시스템이다. 정치인과 재개발로 치부한 건설회사 대표 그리고 이들 대신 손에 피를 묻히는 조폭들이라는 시스템.

 

이들의 시스템이 얼마나 공고한가는 카운터들의 그런 노력에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욱 승승장구하는 저들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아저씨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그렇게까지 했는데 그 놈들은 상처 하나 없고요. 우리 엄마 아빠 죽인 지청신은 자유의 몸이 됐고, 조태신은 50대 기업 회장에, 신명휘 시장은 대통령 된데요. 되게 거짓말 같아요. 이 모든 게." 소문의 이런 항변은 그래서 뼈아프다. 마치 판타지를 빌어 우리 사회가 현재 처한 현실을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다. 공정한 사회와 정의를 기치로 내걸었던 우리네 사회는 과연 최근 몇 년 간 그걸 얼마나 이뤘을까.

 

소문의 분노는 정의의 구현과 더불어 사적 감정에 휘둘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카운터 자격 박탈을 당하게 됐던 것. 그것이 약자를 위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힘(권력)을 가진 자는 그걸 휘두르는데도 지켜야할 룰(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소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과거 어떻게 코마 상태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는 가모탁(유준상) 역시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그 일에서 분노와 사적 감정을 누르지 못한다. 그래서 소문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 나빠진 현실을 이야기할 때 가모탁은 말한다. "왜 달라진 게 없어. 네가 달라졌고 내가 달라졌는데."

 

결국 소문도 가모탁도 그 힘의 자격을 박탈당한 후에야 그걸 깨닫고 각성한다. 자신과 친구들을 괴롭히던 신혁우와 그 일당들이 힘을 잃은 채 다리를 절며 나타난 소문을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지만 그는 과거처럼 그들에게 사적 분노를 쏟아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분노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냐? 니 감정 그렇게 주체 못하는 거 너도 니 주변 사람들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야." 그는 카운터 자격 박탈을 통해 자신이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가를 알게 됐다.

 

어찌된 일인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기억도 힘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모든 힘을 잃은 것처럼 행동해온 소문은 과거와는 달라져 있었다. "여기서 니들 모두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니들이랑 똑같은 새끼 되는 거니까. 신혁우. 우린 아직 어리잖아. 넌 기회가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그는 이제야 왜 분노하되 그것이 사적 복수가 아닌 사회적 정의가 될 수 있게 힘을 써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경이로운 소문>은 이처럼 판타지 액션의 겉모습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 우리네 현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그 온당한 사회적 절차를 통한 실현 과정의 중요성 또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통쾌한 정의 구현의 사이다 속에 힘을 가진 자들이 자칫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는 것에 대한 경각심 또한 심어 놓는다. 그래서 이 판타지 액션은 그저 화려하고 속 시원한 볼거리에 머물지 않게 됐다. 바로 이런 성찰적 태도가 작품 속에 들어 있으니.(사진:OCN)

'놀면', 글로벌과 복고가 만들어내는 시공간의 확장

 

사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겨울노래 구출작전'은 이전에 했었던 싹쓰리나 환불원정대 같은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소박한(?) 편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가 강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잠시 쉬어가는 아이템에 가깝다. 

 

하지만 이 소박함 속에도 '특별함'은 존재했다. 물론 에일리와 김범수의 듣기만 해도 힐링되는 노래와 하모니가 주는 즐거움이나, 오랜만에 돌아온 윤종신의 감성 가득한 열창의 무대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있었지만, '겨울노래 구출작전'의 백미는 존 레전드 같은 월드 클래스 아티스트와 오랜만에 옛 감성에 푹 빠뜨린 우리의 레전드 이문세의 무대였다. 

 

유재석이 라이브 방송을 통해 존 레전드의 'Bring me love'가 요즘 최애곡으로 여기에 푹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계기가 됐다. 제작진에게 직접 연락을 해온 존 레전드는 유재석이 자신의 곡을 좋아한다고 말한 영상을 봤다며 그 곡을 유재석은 물론이고 한국의 팬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로써 한국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월드 클래스 존 레전드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유재석"이라 말하며 한국의 팬과 유재석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만들어졌다. 존 레전드는 "사랑해요"라고 말하고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Bring me love'를 불렀고, 노래 끝에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최근 들어 K콘텐츠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이제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에 존 레전드 같은 인물이 방송에 등장하는 풍경은 이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세상은 점점 지구촌화되어가고 있고, 또한 우리네 콘텐츠들에 대해 해외에서 느끼는 친밀함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놀면 뭐하니?>에 등장한 존 레전드는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존 레전드의 <놀면 뭐하니?> 출연이 공간적으로 확장되고 연결된 지금의 문화 환경을 보여준 것이라면, 이어진 이문세의 무대는 시간적으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의 문화 환경을 잘 드러내준다. 이문세가 이 무대에서 부른 1985년 발표된 이문세의 3집 앨범에 수록된 '그대와 영원히', '소녀' 같은 곡들은 벌써 35년이 지난 현재를 그 때의 시간대와 연결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단출한 기타 연주 하나에 이문세의 목소리만 얹어 부른 1991년 발표됐던 7집에 수록된 '옛 사랑'은 마치 그 시간대를 천천히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또 유재석과 함께 하모니를 맞춰 부른 '소녀'가 주는 아련한 감성이나, 공식 무대가 다 끝나고 스텝들을 위해 선물처럼 전한 '붉은 노을'이 주는 감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놀면 뭐하니?>의 겨울노래 구출작전은 그래서 다음으로 이어질 '카놀라유' 프로젝트로 가는 길 잠시 간의 휴식처럼 등장했지만, 그 안에 들어온 존 레전드와 이문세의 무대는 우리가 현재 들어와 있는 시간과 공간이 확장된 문화의 색다른 지대를 확인하게 해준 면이 있다. 공간적인 확장을 보여주는 글로벌과 시간적 확장을 보여주는 복고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일까. <놀면 뭐하니?>가 올해 걸어갈 새로운 길들은 더더욱 큰 기대를 만든다. 그것은 어쩌면 이미 이 프로그램이 열고 있는 이러한 확장된 시공간 속에서 펼쳐질 수도 있을 테니.(사진:MBC)

'며느라기', 제발 시대착오적인 드라마였으면 좋겠지만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에서 손녀딸 아이 백일잔치에서 며느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들 무구일(조완기)이 아이를 보는 모습을 본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은 입이 삐죽 나온다. 그래서 못마땅한 얼굴로 보다 못해 자신이 아이를 볼 테니 아들보고 식사를 하라고 한다. 며느리 정혜린(백은혜)이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빨리 먹고 아이를 보겠다고 하고 아들도 나서서 자신이 아이를 잘 본다고 말하자 박기동은 아예 대놓고 며느리 들으라는 듯 이렇게 말한다. "애는 엄마가 봐야지?"

 

<며느라기>가 보여주는 백일잔치 풍경은 아마도 아이가 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할 게다. 아이가 생기면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누구나 한 명은 아이를 돌보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은 아이 엄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저들끼리 떠들고 식사하기에 바쁘고, 심지어 아이 엄마도 그것을 당연하다 여기기도 한다. 박기동의 말에 들어 있듯이 '애는 엄마가 봐야한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다.

 

백일잔치에서는 또한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하나 더 낳으라는 말과,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이게는 언제 아이를 낳을 거냐는 말 그리고 엄마가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아이도 똑똑하고 엄마도 힘이 덜 부친다는 말 등등. 게다가 하나로 족하다는 말에는 "그래도 아들 하나는 있어야지" 같은 시대착오적인 말도 등장한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들과 그 속에서 당연시 되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나오는 성 차별적인 말들. 며느리들이 백일잔치, 생일, 명절 제사 등등.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하고 꺼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차별 없이 대화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면 그 훈훈한 분위기에서 혼자만 소외되고 있다는 상실감이 배로 느껴질 게다.

 

그래서 민사린(박하선)은 남편 무구영(권율)과 호캉스를 가기로 한 날 박기동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는 말에 회사 워크샵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박기동은 사실 민사린의 생일을 기억하고 한 끼를 같이 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그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늘 불편했던 시댁 가족모임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평소 시댁이 뭐든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편안함을 줬다면 민사린은 솔직히 이야기했을 게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알게 된 박기동은 왜 며느리가 거짓말을 했을까는 생각하지 않고 서운함에 화를 낸다.

 

이런 일들이 매번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반복된다. 누군가의 생일,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 잔치, 명절은 그래서 며느리에게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불편하고 불행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된다. <며느라기>는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어 당연한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이나, 어떤 관례화되어버린 행동들이 어떻게 며느리의 숨통을 조금씩 조여 오게 되는가를 디테일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혹자들은 요즘 세상에 이런 집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타인의 과는 잘 보면서도 자신의 과는 보지 못하는 게 사람의 편협한 시각이다. 그래서 드라마처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을 보며 저건 '나의 일'이 아니다 라고 부인할 일이 아니다. 혹여나 나도 저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해왔던 건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그건 어디나 있는 일이니까.

 

<며느라기>가 민사린이 무구영과 결혼해 시댁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상처들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건 그래서 가치가 있다. 문제의식 없이 지나치던 일들을 다시금 곱씹어보고 그것이 타인에게 줬을 상처들을 생각해볼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집이 어디 있느냐고 치부되는 시대착오적인 드라마였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현실이니 말이다.(사진: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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