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김태호 PD가 환불원정대에 환불해준 관객의 함성

 

이건 아마도 환불원정대다운 마지막 마무리 무대가 아니었을까. 텅 빈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어둠 속에 떨어지는 조명 한 가운데서 포즈를 취한 채 'Don't touch me'를 부르던 환불원정대는 중간부터 더 이상 노래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다 여겼던 그 곳을 가득 메운 관객의 떼창 때문이었다. 비어 있는 객석은 이내 그 떼창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만옥(엄정화)도 천옥(이효리)도 또 은비(제시)도 실비(화사)도 깊은 감동에 빠져들었다. 그 관객의 함성은 바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환불원정대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싹쓰리 프로젝트와는 또 다른 깊은 감동과 웃음을 줬던 환불원정대. 도대체 그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 할까는 시청자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갑상샘암 수술 후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보란 듯이 해내버린 만옥, 무심코 던진 마음속에 있던 말 한 마디로 이 프로젝트를 사실상 시동시킨 천옥,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함을 보여준 은비, 그리고 막내로서 언니들 옆에서 든든하게 자기의 역할을 해낸 실비. 이들을 떠나보내는 건 프로그램으로서도 환불원정대로서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못내 아쉬운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김태호 PD가 환불원정대의 마지막 일정으로 선물처럼 준비해 놓은 건 다름 아닌 관객이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열린 '명랑운동회'에 깜짝 등장해 환불원정대가 무대를 선보인 건 물론 코로나19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그들을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환불원정대에게도 커다란 응원으로 남았다. 코로나로 인해 마주할 수 없게 된 관객과 들을 수 없게 된 관객의 함성. 그것을 그 곳에서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찾아간 야구장에서의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로 인해 텅 비었던 야구장에 거리두기를 하며 응원하는 관객과 선수들을 위해 선 보인 무대도 그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헤어지며 그걸로 환불원정대의 일정을 끝내기에는 어딘지 아쉬움이 남았다. 지미 유(유재석)는 떠났지만 환불원정대는 제작진이 마련했다는 마지막 무대를 위해 올림픽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무대에서 1절까지 부르던 환불원정대는 갑자기 들려오는 관객들의 "환불!"이라는 떼창에 처음에는 놀랐다가, "만옥짱 보여줘버려!"라는 함성에 은비는 랩을 이어가지 못하고 눈물 흘렸다. 그래도 천옥이 침착하게 끝까지 노래를 부르라고 리드했지만 더 이상 이을 수 없는 노래를 채워주는 건 떼창이었다. "만옥짱, 천옥짱, 실비짱, 은비짱, 우리 사랑 환불불가 영원히 즐거워 환불원정대-"

 

김태호 PD가 환불원정대에게 환불해준 건 '관객의 함성'이었다. 어쩌면 지금껏 환불원정대가 환불하고팠던 건 바로 그 관객이 아니었을까. 그건 또한 시청자들이 환불원정대를 통해 환불받은 것이기도 했다. 환불원정대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진 무대. 진정 무대를 완성시키는 건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그 소통이 아니던가. 김태호 PD의 남다른 배려와 생각 그리고 센스가 돋보인 마지막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빼앗긴 시간들을 잠시나마 환불받는 느낌이랄까.(사진:MBC)

'날아라 개천용', 배성우의 기사와 권상우의 변론에 담긴 진정성의 힘

 

"엄마 냄새는 기억나요. 엄마랑 잔 마지막 날 엄마가 계속 토했나 봐요. 방에서 그 냄새가 많이 났어요. 농약 제초제 그게 엄마 냄새..."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옥살이까지 한 삼정시 3인조 살인사건의 강상현(하경)은 엄마 냄새를 농약 냄새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행에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그의 엄마는 마지막 순간에 아들을 안고 영원한 잠이 들었다. 강상현은 그 냄새가 좋아 그 곳에 산다고 했다. 여름에 논에 농약을 많이 뿌린다는 그 곳에.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본격적으로 재심을 준비하기 위해 박태용(권상우) 변호사와 박삼수(배성우) 기자는 몸으로 뛰고 또 뛰었다. 사라져버린 진범들을 찾기 위해 박태용 변호사는 달동네 집들을 수소문하고 다녔고, 박삼수 기자는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강상현이 진범의 얼굴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를 찾아가 그 사연을 듣게 됐다.

 

한글을 쓸 줄 모른다면서 글자를 읽는 모습과, 범인의 얼굴을 기억한다면서 엄마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강상현의 진술을 이상하게 여기던 박삼수는 그러나 그 엄마 냄새 이야기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목욕관리사로 일했던 엄마에게서 나던 꿉꿉한 목욕탕 냄새가 가장 좋았다고 박삼수는 이야기했다.

 

또 강상현이 엄마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가 자신을 보고 울어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라 그랬다는 이야기나,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는 물음에 마지막 엄마가 죽어가며 자신을 안아줬던 그 순간이라는 말에 박삼수는 깊이 공감했다. 취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애써 달려와 일부러 샀다며 캔커피를 건네준다. 박삼수가 그거 빼면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지 않냐고 묻자 강상현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저 원래 아무 것도 없어요." 그 말에 박삼수 기자는 무너져 내린다.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아마도 이런 깊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를 쓴 박삼수 기자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박태용 변호사를 울게 했고, 딸이 동거하는 걸 알고 화를 냈던 이진실(김혜화)의 아버지마저 울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 글은 진범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진범 김원복(어성욱)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철규(권동호)는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재심에 나와 자신의 죄를 밝혔다.

 

그 글에 공감한 박태용 변호사는 자신의 어렸을 때의 삶을 떠올렸다. 일찍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고 그래서 가장이 되어 여동생과 작은 엄마(?)의 아이까지 돌봤던 시절들을. 그런 공감대는 박태용 변호사가 이들의 재심 변론을 더 진정성 있게 하게 됐던 이유였을 게다. 박삼수는 그 기사에 후원금이 들어오는 걸 박태용에게 보여주며 농담처럼 "슬픔은 나눌수록 돈이 된다."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 돈보다 더 진한 진심에 대한 공감대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말했던 게 아니었을까.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작고 날카로운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글 한 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로 쓰인다. 박삼수 기자와 박태용 변호사가 보여준 게 바로 이 '촌철살인'이 아닐까. 기사의 글과 변론의 말에 담긴 공감과 진정성의 힘. 그게 때로는 현실을 바꾸기도 한다는 걸 <날아라 개천용>은 보여주고 있다.(사진:SBS)

진한 페이소스 담은 김광규의 '나 혼자 산다'

 

"될 수 있는 대로 멀쩡한 척 하고 살아야 돼... 그래야 섭외가 돼."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오랜만에 김광규를 만난 김태원은 무심한 듯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건 김태원 특유의 농담 섞인 말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섭외가 들어와도 앉아 있기 힘들고, 누워 있으면 몸이 아프고, 서면 어지럽다는 김태원. 웃음이 나오는데 어딘지 짠한 김태원 특유의 농담.

 

하지만 언제 힘이 나냐는 육중완의 물음에 김태원은 기타리스트다운 답변을 내놨다. "기타를 메면 힘이 나고 무대 올라가면 날아다니지."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무대가 그에게는 비타민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때문에 그런 무대가 없어졌다 말하는 김태원의 목소리에는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잠깐 만나 저녁을 같이 하면서 김광규는 김태원과 육중완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눌 때 홀로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 다 가정을 꾸렸지만 김광규는 아직 혼자. 혼자 사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지만 나이 들어서 그래도 남는 허전함은 자식이 아닐까. 멀쩡한 척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김광규에게서 그런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났다.

 

일찍 먼저 김태원이 귀가하고, 잠깐 김광규의 집에 들렀던 육중완도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준비해간 선물을 건네주고는 일어선다. 그들이 일찍 귀가하는 건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서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후, 혼자 남은 김광규의 텅 빈 집이 전보다 더 비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인터뷰에서 김광규가 "아 보람찬 하루였어요"라고 하는 말은 그 날의 쓸쓸한 풍경과 엇박자를 이뤄 웃음을 줬지만 역시 페이소스 가득한 여운을 남긴다.

 

그 말 한 마디에 그 날 김광규가 보낸 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가을의 색을 온전히 입기 시작한 계절을 느끼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선 길. 공원에서 예쁘게 색을 바꿔 마지막을 뽐내는 가을 나무들을 쳐다보며 걷고, 생각하다가 괜스레 운동기구로 운동을 해보고, 탁구레슨을 받으러 가서 동호회분들과 탁구를 치고... 아마도 평상시였다면 혼자 저녁을 먹고 귀가했을 테지만 그 날은 그래도 김태원과 육중완과 함께 저녁을 했다는 것에 김광규는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나 혼자 산다>의 시조새로 남은 김광규다. 한 때는 육중완도 또 기러기 아빠로 홀로 살았던 김태원도 이제 모두 가족의 품으로 떠나갔다. 물론 김광규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그의 웃음에는 어딘가 깊은 여운 같은 게 꼬리처럼 남는다. 게다가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그 모습에서는 절로 따뜻함이 느껴진다.

 

'쓸쓸해도 멀쩡한 척' 하는 삶은 그래서 마치 힘겨움이나 어려움을 비틀었을 때 나오는 웃음을 닮았다. 늘 즐거워야 웃음이 나는 건 아니다. 힘들어도 웃어야 하기 때문에 그걸 웃음으로 바꾸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그래서 <나 혼자 산다>가 보여주는 김광규의 나홀로 삶은 간만에 구수하고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의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다양한 취미를 하는 이유를 묻자 "오죽하면 찾아가겠냐"며 허허 웃는 김광규. 그는 체력적으로 40대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나이에 지지 않겠다며 운동을 할 때마다 그런 활력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나 혼자 산다>가 보여준 김광규의 이 하루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지만 그래서 많은 중년들의(혼자 산다면 더더욱)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사진:MBC)

배성우, 자신이 아닌 배역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

 

개천에서 용 났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용이었다. 배성우는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연기를 해온 배우다. 여러 단역을 거쳐 영화 <오피스>에서 김병국 과장 역할로 섬뜩한 카리스마로 드디어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 어디서 이런 배우가 나왔지 했을 정도였다. 그 후 <더킹>에서 권력 앞에 순종하는 검사 양동철로 주목받았고 <안시성>,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같은 작품에서 제 역할을 해냈다. 그만큼 배성우는 자신보다는 배역으로 더 기억되는 배우였다.

 

워낙 배역에 충실한 배우인데다 주인공보다는 주변 인물 역할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줬던지라,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라이브>에 오양촌 경위로 등장했을 때 그가 준 인상은 강렬했다. 드라마의 특성상 인물이 더 잘 보이고,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역시 그 결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배성우는 오양촌 경위의 불같은 성격과 그러면서도 동료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정도로 뜨거운 형사의 면면을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랬던 그가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으로 돌아왔다. 박삼수라는 기자 역할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박삼수 기자의 실제 인물인 박상규 기자가 대본을 쓴 작품이라 훨씬 더 리얼리티에 바탕을 둘 것이라 여겨졌지만 이 작품은 그런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SBS 금토드라마가 갖는 색깔인 다소 경쾌한 분위기에 맞게 <날아라 개천용>은 조금은 과장되고 극화된 작품으로 그려졌다.

 

박삼수 기자라는 인물은 그래서 치열한 현실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거기서 매몰되지 않고 낙천적으로 진실을 향해 나간다. 기자지만 펜을 굴리기보다는 발을 더 재게 놀리는 인물이고, 약자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가진 건 없지만 기자라는 자존심만큼은 확실해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지만, 동시에 당장의 생활비에 쪼들리며 현실적으로 잘 살기 위해 강철우(김응수) 시장의 수발을 들기도 하는 짠한 직장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배성우가 연기로 채워낸 박삼수 기자는 인물이 입체적이다. 자신을 천거해준 회사 대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강철우 시장과 결탁해 돈을 벌려고 진실을 가리는 행위에는 대놓고 반발한다. 박태용 변호사(권상우)를 슬쩍 끌어들여 돈 안 되는 변호를 시키지만, 그 과정을 보며 오히려 자신이 더 박 변호사에게 빠져드는 걸 인정한다. 동거하는 이진실(김혜화) 앞에서 사랑꾼의 모습이면서도 얹혀사는 삶의 찌질함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배성우라는 배우가 주목되는 건 역할에 200% 몰입한 모습을 늘 보여준다는 점이다. 등장부터 땀에 절은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으로 박태용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와 털썩 소파에 앉을 때 그는 영락없는 현장 체질 기자의 모습이다. 인터넷 등에서 이 캐릭터의 실제 인물인 박상규 기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어딘지 극중 인물과 어울리는 면이 있다는 걸 느낄게다.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박태용 변호사와 술 한 잔에 의기투합하고 "다 죽었어!"라고 외치는 자신만만한 박삼수 기자의 모습은 서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런데 이런 가진 건 없어도 직업정신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은 배성우라는 배우와도 잘 어우러진다. 그에게서도 자신을 지워내고 배역을 대신 끄집어내는 배우라는 직업의 자신감 같은 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개천용? 그는 본래 용이었다. 다만 개천에 가려져 있었을 뿐. 보이지 않지만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많은 직업인들이 그러하듯이.(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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