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하숙’, 믿고 보는 유해진·차승원에 배정남까지 더해지니

유해진은 유쾌했고 차승원은 따뜻했으며 배정남은 엉뚱했다. 이렇게 저마다 개성이 다른 세 사람이지만 그 조합은 최강이었다. 유해진 특유의 아재개그로 탄생한 ‘차배진(차승원, 배정남, 유해진)’이라는 세 사람의 지칭이 입에 착착 달라붙듯이, 이들의 조합은 우스우면서도 따뜻하고 편안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재미를 주었다.

나영석 사단의 새 예능 프로그램 tvN <스페인하숙>은 유해진과 차승원 조합이 말해주듯 <삼시세끼-어촌편>의 연장선 위에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면들이 섞여 있었다. 색다를 수밖에 없는 건 그 공간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는 점 때문이고, 그 곳에서 그 길을 걷는 여행객들에게 따뜻한 한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하숙집을 운영한다는 미션 때문이다. 

이것은 섬마을에 들어가 자신들끼리 지내는 일상을 담아냈던 <삼시세끼-어촌편>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익숙함이 느껴지는 건 이미 <삼시세끼-어촌편>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차승원과 유해진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고스란히 이 프로그램에서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른바 ‘주방팀’과 ‘설비팀’으로 나뉘어 주방은 차승원이 맡고 설비는 유해진이 맡는 그 역할 분담이 그렇다. <삼시세끼>에서 그랬듯 뭐든 척척 맛난 요리로 만들어내는 차승원과 뭐든 필요한 건 맥가이버처럼 뚝딱 만드는 유해진의 익숙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면모들이 보여졌다. 

스페인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직접 구입한 재료들로 제육볶음을 만들고 된장찌개를 끓이는 차승원은 역시 시원시원하면서도 섬세한 특유의 요리 실력을 보여줬다. 그가 만든 요리를 처음 맛본 배정남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유해진은 아재개그를 입에 장착한 주방팀의 하청업체로서 ‘이케요(?)’를 설립했다. 식기건조기가 부족하다고 하자 나무를 자르고 이어 붙여 금세 만들어내는 유해진에게 차승원은 “역시 금손”이라고 치켜 올렸다.

배정남은 막내로서 차승원의 요리를 열정적으로 돕지만, 금세 체력이 방전되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무엇보다 솔직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낯선 이국마을사람들과도 금세 친해지는 친화력을 보였다. 스페인의 하숙집이기 때문에 그곳 현지인들과 교류해야 하고 또 찾는 손님들과 어우러져야 하는 그런 부분들을 배정남은 채워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우습고 따뜻한 조합이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하숙집과 너무나 잘 어울렸던 건 그 길과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부여하는 남다른 ‘엄숙함’과 ‘진지함’ 같은 것들과의 어우러짐 때문이다. 이들의 유쾌함과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어떻게든 손님들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챙기려는 그 마음은 굳이 그 멀고도 먼 길을 걷는 이들을 둥지처럼 넉넉하게 보듬어주는 느낌을 주었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도 나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내기 위해 고행을 자초하는 순례길. 사람들은 그 순례길을 걷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서로를 껴안아준다고 한다. 물어볼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길을 걷는다는 그 행위는 마치 저마다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똑같은 버거움으로 공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스페인하숙>에서 첫 손님의 등장에 호들갑을 떠는 ‘차배진’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의 마음도 흐뭇해진다. 그건 그 길 위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을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안아주고픈 그 마음과 같을 게다. 

실로 복잡하고 때론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게 만드는 세상이다. 그런 길을 반복적으로 오고가던 이들이라면 저 먼 나라로까지 날아가 고행하듯 걷는 길이 어째서 우리의 마음을 잡아 끄는가가 이해될 것이다. <스페인하숙>은 그런 마음들이 오고간다. 차승원의 따뜻함과 유해진의 유쾌함 그리고 배정남의 엉뚱하지만 금세 가까워지는 친화력이 낯선 곳을 힘겹게 걷는 이들을 꼭 껴안아주는 그런 순간들이 벌써부터 우리를 훈훈하게 만드는 이유다.(사진:tvN)

놀라운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각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알츠하이머 설정은 놀라운 반전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가진 의미도 새롭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라는 타임리프 설정이 혜자(김혜자)라는 한 어르신의 알츠하이머라는 반전은 이 판타지와 코미디가 어떻게 현실로 이어지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기억의 조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질환은 그렇게 어르신들이 가진 ‘시간을 되돌리고픈 욕망’을 투영시켜 혜자로 하여금 타임리프할 수 있는 시계를 갖게 만들었다.

물론 그건 환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신기루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를 가진 어르신에게 그 기억의 조작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시청자들이 본 것은 그래서 그 현실로서 다가오는 환상을 경험하는 어르신의 모험담일 수 있었다. 지금껏 그 어떤 드라마가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환상 경험을 하는 어르신의 속내를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그러고 보면 효도원이라는 공간도 또 더 나이 든 몸이 되어 아빠(안내상)와 엄마(이정은)를 대하던 혜자가 이해가 된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는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로 하여금 자식을 부모로 인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효도원은 그렇다면 요양원 같은 공간일 것이고 준하라는 인물은 그 곳에서 자신을 잘 대해준 의사였을 게다. 

이 드라마가 놀라운 건 알츠하이머를 가진 혜자가 겪는 환상체험을 코미디와 활극 같은 경쾌함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효도원에 감금된 준하(남주혁)를 구해내기 위해 혜자가 리더가 되어 모인 이른바 ‘할벤져스’는 이 드라마가 약자가 되어 소외된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유쾌한 시각을 잘 드러낸다. 

효도원에서 음식이든 뭐든 옷 속에 집어넣고 또 뭔가 필요할 때면 그 속에서 뭐든 꺼내줘 이른바 ‘도라에몽 할머니’라 불리는 어르신은 준하 구출작전에서 필요한 연장을 뭐든 꺼내주는 역할을 맡는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은 어둠 속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치기만 하면 어느 방에 누가 있는가를 찾아내는 능력자가 되고, 쌍둥이 어르신은 길을 거울로 착각하게 만들어 다른 어르신들이 그 길로 탈출하게 해준다. 할벤져스에서 가장 빵 터지는 대목은 몸이 불편해 보조기를 끌고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 어르신이 좁은 길을 막고 천천히 걷는 통에 뒤쫓아 오던 조폭들이 길을 뚫지 못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엑스맨>에 퀵실버가 등장할 때 흐르던 짐 크로스의 ‘Time in a Bottle’을 깔아놓은 대목에서 빵 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다소 과장된 할벤져스의 코믹한 구출작전에 깔려 있는 건 이 소외되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기던 어르신들이 사실은 저마다의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 바라보는 시각이다. 몸이 늙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오히려 능력으로 바꿔 보여주는 그 과장된 코미디의 웃음 끝에 어떤 감동이 담겨지게 되는 건 바로 이런 시각이 주는 따뜻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장된 활극이 한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르신의 상상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반전은 그 놀라움과 더불어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과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고픈 젊은 마인드의 공존은 어쩌면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켜서라도 그 힘겨운 삶을 버텨내게 하는 게 아닐까.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 혜자의 읊조림 속에서 이 코믹했던 한 바탕 소란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삶은 한 바탕 꿈같은 웃음과 눈물과 반전일 수 있다는 걸 알츠하이머를 앓는 한 어르신의 내면 깊숙이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본 이 드라마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사진:JTBC)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눈이 부시게’가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

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샤넬 할머니(정영숙)는 절망적이었을 그 때 기다리고 있는 준하(남주혁)를 보고는 애써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 손주가 많이 컸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얘기했다며 대견해했고, 집까지 팔아 미국에 갔던 아들이 사업 실패에 돌아와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걸 죄송해하고 있다고 했다. 늘 무표정이었던 샤넬 할머니가 그토록 웃으며 준하 앞에서 거짓말을 했던 건 왜였을까.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담아낸 샤넬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제목처럼 ‘눈이 부셨다’. 할머니는 끝까지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아들과 손자를 챙겼고, 무엇보다 그 빈자리를 채워줬던 준하를 아들처럼 아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는 준하를 굳이 공항까지 배웅해주겠다고 했던 것. 어쩌면 샤넬 할머니와 준하는 그렇게 아무도 지지할 데 없어 절망적으로 서로를 끌어안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에 있다고 여긴 아들에게 편지를 부쳐달라고 부탁했던 샤넬 할머니의 그 마음을 준하는 아들 대신 답장을 써주는 것으로 채워주려 했다. 아무도 없이 버려진다는 그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두 사람인데, 샤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말은 준하에게는 얼마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을까. 마지막 순간에 환하게 웃고 밝게 얘기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프게도 그의 눈을 찌르는 이유다. 

보험수령인이 준하로 되어 있었다는 건 샤넬 할머니가 그를 진짜 아들처럼 여겼다는 걸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니 그 마지막 순간 아프지 말라며 공항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은 어머니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이들이 보험수령인이 된 준하를 오히려 용의자로 몰았지만 그것까지도 배려해 편지를 남긴 샤넬 할머니에 준하는 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또 만난다면 그때는 내가 꼭 이준하씨 엄마로 태어날게요.’

<눈이 부시게>는 어쩌면 뉴스의 한 대목으로 사라져버릴 어느 한 어르신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온전한 한 회로 채워 넣으며 거기 담겨진 삶의 쓸쓸함을 얘기했다. 샤넬 할머니를 통해 “칠십 해가 넘게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을 텐데 결국 사진으로만 남았어”고 말하는 혜자(김혜자)는 삶의 ‘애틋함’을 깨달았다. 

“난 말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 늙은 몸뚱아리 뭐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다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만은,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 혜자가 자신을 빗대 위로하는 그 말에 준하는 오열하며 무너져 내린다. 너무 힘겨운 현실에 부닥쳐 갑자기 100년은 늙어버린 듯 아무런 희망도 꿈도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준하에게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위로를 해준 것이니 말이다. 

혜자에 대해 준하는 “내 인생을 끌어안고 울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괴롭게 했던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는데, 그런 자신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었다는 것. 이것은 <눈이 부시게>가 이 애틋한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이다. 그 인생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것. 오랜만에 가슴 뜨거워지는 드라마를 만났다.(사진:JTBC)


‘선녀들’, 최희서 울린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 그 먹먹함의 실체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의 군대와 경찰, 유언비어를 믿은 민중들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살해당했다. 이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인권의 회복과 양민족의 화해를 염원하며 이 비를 건립한다.” 어느 조용한 주택가에서 찾은 추도비의 문구를 읽어나가던 최희서는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목소리가 떨리더니 결국은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을 터였다.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역할을 연기하며 당시 관동대지진 때 벌어졌던 조선인 학살과 이에 항거했던 청년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던 그였기에 이 자그마한 공간에 마련된 추도비의 의미는 남달랐을 거였다. 게다가 그건 우리가 아닌 ‘봉선화’라 불리는 뜻이 있는 일본 시민단체가 사유지를 사서 마련한 추도비였다.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 정부의 행보를 볼 때마다 느꼈던 분노와 답답함이, 모든 일본인들이 다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말해주는 추도비를 통해 발견되는 순간,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을 터다.

MBC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이 ‘한반도편’을 하면서 일본까지 날아간 이유는 결국 거기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우리네 역사 때문이었다. 결국 문근영을 뜨겁게 눈물 흘리게 만든 제주 4.3사건의 이야기에 이어 일본으로 간 <선을 넘는 녀석들>은 이른바 ‘의거로드’를 걸으며 일본의 심장부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던졌던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영친왕의 저택이었던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을 찾아가 그 안내판에 단 한 줄도 남아있지 않은 영친왕에 대한 이야기에 분노하고, 히비야 공원에서 벌어졌던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조선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 이야기에 먹먹해졌다. 설민석이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해주는 김원봉과 김지섭 의사, 이봉창 의사의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벗어나 실제 되살아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역사란 결국 현재 다시 들여다보고 기억해내는 것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재해지역이나 전쟁 철거지 등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을 대상으로 한 관광)’을 표방하며 우리네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 삶을 느껴보는 <선을 넘는 녀석들>이 토요일 저녁 <무한도전>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물론 <무한도전>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어찌 보면 <선을 넘는 녀석들>의 이러한 역사 소재 예능은 <무한도전>이 해왔던 그 계보를 잇는 느낌이다.
설민석이 출연해 우리네 역사를 되돌아봤던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특집이나 ‘배달의 무도’편에서 유재석과 하하가 찾아갔던 하시마섬 이야기의 감동이 <선을 넘는 녀석들>을 통해 다시금 이어지는 듯하다. <무한도전> 이후 토요일 저녁에 볼 예능 프로그램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그나마 그 계보를 잇는 듯한 <선을 넘는 녀석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
반드시 기억해야할 아픈 역사를 직접 찾아가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선을 넘는 녀석들>은 확실한 명분과 의미 그리고 여정이 갖는 재미까지 담아내며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성취는 그래서 그간 <무한도전>이 만들어냈던 수많은 아이템들과 기획들이 MBC 예능에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팬들은 여전히 <무한도전>이 돌아오길 바라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그 계보를 잇는 프로그램들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선을 넘는 녀석들>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사진:M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