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예능의 특별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이제는 웹 예능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카카오TV 그리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점점 주력 미디어로 떠오르고 있고, 다양한 웹 예능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피식대학

나영석 PD의 도전, 이젠 OTT 전략이 됐다

2015년 첫 시즌을 방영한 나영석 PD와 신효정 PD가 공동 연출한 <신서유기>는 네이버TV를 통해 방영된 웹 예능이었다. 1인 미디어들이 등장하고, 플랫폼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같은 웹으로 옮겨가는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나영석 PD의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이 웹 예능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신서유기> 특유의 게임, 여행이 접목된 웃음은 웹의 성격에도 잘 어우러졌다. 지상파나 케이블 예능들이 어떤 공적인 요소들(재미만이 아닌 의미 같은)을 요구하던 것과 달리 웹에서는 그저 순전히 포복절도의 재미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걸 간파한 것이 <신서유기>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신서유기>는 시즌2에 웹에서 보여준 후 방송에 편성되었고 시즌3부터는 tvN에서 정규편성되어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잦은 편성 변경은 초창기 이 웹 예능의 시도가 화제는 됐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결과 때문이었다. 다행히 정규편성된 시즌3가 성공을 거뒀고 그 후 <강식당>, <아이슬란드 간 세끼> 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도 시도되었다. 나영석 사단은 네이버TV에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 채널 십오야를 세웠다. 처음에는 나영석 사단이 만드는 정규 방송들의 예고나 미방영분 혹은 편집판을 내보내는 플랫폼처럼 시작했지만 구독자수가 급증하면서 ‘달나라 공약’ 해프닝 같은 일들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 정해진 기간 안에 100만 구독자가 넘으면 이수근과 은지원을 달나라로 보내주겠다는 공약을 걸었다가 실제 100만 구독자가 넘자 나영석 PD가 구독자들에게 ‘구독 취소’를 애원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웹 예능이 점점 화제가 되면서 tvN 플랫폼을 오히려 웹 예능의 홍보창구처럼 활용하는 역전현상도 일어났다. 즉 <신서유기> 멤버들을 통해 런칭한 스핀오프 프로그램들인 <삼시네세끼>, <나홀로 이식당>, <라끼남>,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마포 멋쟁이>, <출장 십오야> 같은 웹 예능들은 tvN 정규방송에 짧게 편집되어 소개됐는데, 이건 일종의 웹 예능 홍보영상처럼 활용된 것이었다. 이렇게 단 몇 년 사이에 웹 예능의 위상은 정규 방송을 위협할 정도로 높아졌다. 게다가 최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새로운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등장하면서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OTT들의 오리지널 예능 경쟁도 치열해졌다. 티빙에서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신서유기 스프링캠프>는 그간 나영석 사단이 시도해온 일련 웹 예능들이 이제는 OTT의 전략적 프로그램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보여준다. 

 

지상파의 한계를 뛰어넘은 웹 예능의 저력

<신서유기>가 처음 네이버TV에서 방영됐을 때 웹 예능이 기성 플랫폼의 콘텐츠와 확연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걸 가장 잘 드러내준 건, 상품명을 나열하는 게임이었다. 기성 플랫폼에서는 할 수 없어 지워지거나 삐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품명들이 ‘속 시원하게’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게임은 웹이어서 가능한 표현이나 소재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유튜브로 채널 십오야를 열고나서는 시청률이 아닌 ‘구독’ 관점의 예능들은 팬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다. 그래서 간간히 소식도 알리고, 때론 ‘얼토당토한 공약’으로 해프닝도 만들어내면서 구독자가 늘어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라는 새로운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웹 예능은 웹의 특성상 짧은 분량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에서 그 특성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놀라운 건 ‘구독’ 개념으로 묶여진 구독자들의 막강한 팬심이다. 스스로 채널을 선택한 찐팬들은, 기성 플랫폼 시청자들보다 더 유대감이 높았다. 

 

이런 특성들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전성기를 마련한 대표적인 사례가 ‘피식대학’이다. KBS <개그콘서트>와 SBS <웃찾사>의 개그맨 3인이 결성해 유튜브에 만든 이 채널은 ‘한사랑 산악회’, ‘B대면 데이트’, ‘05학번이즈백’ 같은 상황극 콘텐츠로 큰 인기를 끌었다. 기존 지상파에서 하던 무대개그처럼 캐릭터가 강조된 개그코드를 갖고 있지만, 이들 콘텐츠들은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여주는 즉석 상황극이라는 점이 달랐다. 특히 지상파가 아니라는 점에서 표현이나 소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식대학은 구독자들이라는 찐팬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특정 콘텐츠들의 상황극과 캐릭터는 그래서 무대 개그와는 달리 하나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가상의 캐릭터 놀이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관은 실제 현실로 걸어 나와 소비되는 확장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B대면 데이트’에서 이호창이라는 재벌3세가 ‘시가총액 500조원의 코스피 1위 기업’인 김갑생할머니김의 미래전략실본부장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성경식품과 협업해 내놓은 ‘김갑생할머니김’이 3시간만에 완판되는 일이 벌어진 것. 이른바 ‘믹스버스(Mixverse : Universe+Mix)’ 굿즈는 이제 웹 예능이 만들어내는 세계관들과 협업하며 구독자들의 또 다른 즐거운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웹 예능,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이유

<개그콘서트>의 폐지와 상반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승승장구는 지금 현재 웹 예능이 기성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더 이상 지상파에 설 무대가 없어진 개그맨들은 저마다 유튜브 채널을 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등장하고 있는 카메라 어플을 적용해 탄생한 월클돌 매드몬스터(탄, 제이호)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곽범, 이창호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탄생한 매드몬스터는 실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고 아이돌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네이버TV처럼 출시됐던 카카오TV는 작년 9월 자체 제작 드라마, 예능 등을 공격적으로 쏟아내며 종합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웹 예능들은 기성 플랫폼에서는 본 적 없는 색다른 시도들이 화제가 됐다. 마치 누군가의 일상을 모바일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한 <페이스 아이디>나 도시의 밤길 산책을 따라가는 <밤을 걷는 밤> 같은 시도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주식을 소재로 한 <개미는 오늘도 뚠뚠> 같은 웹 예능은 지상파가 하지 못하는 표현 수위로 실질적인 정보에 관심을 가진 구독자들을 끌어 모았다. 즉 실제 주식종목명을 거론하고 실제투자하며 그 결과를 보는 ‘진짜 정보들’이 담겨 있었던 것. 비슷한 주식 소재 예능을 시도했던 MBC <개미의 꿈> 파일럿이 정규가 되지 못했던 건, 실제 투자 종목을 거론할 때 묵음 처리되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예능은 보다 일상에 맞닿아 있는 장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훨씬 더 리얼한 일상의 풍경들이 담겨진 예능을 보고 싶어 한다. 기성 레거시 미디어들이 그 위상의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표현과 소재를 제한하고 있을 때, 웹 예능들은 저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 뛰어들고 있다. 그건 차별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달라진 시대에 대중들이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으로 계속 가게 된다면, 웹 예능이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게다. 만일 기성 플랫폼의 예능들이 위기에 맞는 대대적인 혁신을 일으키지 않는다면.(글:LH사보, 사진:샌드박스)

'유퀴즈' 유재석, '개콘' 폐지에 "여러분 잘못이 아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옆에는 <개그콘서트> 특집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tvN 예능 프로그램이 KBS 프로그램을 주제로 삼는다는 건 어딘지 이색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충분히 공감되는 이유가 있었다. <개그콘서트>가 21년 만에 폐지됐다는 소식이 주는 안타까움만큼 이 프로그램과 동고동락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꿈을 키웠던 개그맨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거기 담겼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개그맨'을 강조했다. 유재석이 등장해 1991년도에 데뷔했다며 한 말은 "29년 차 개그맨 유재석"이었다. 조세호는 "개그맨 20년 차 조세호"라고 했고, 이용진 역시 "공개코미디 16년 차 개그맨 이용진"이라고 했다. 이들을 포함해 이 날 출연했던 출연자들인 이진호, 김민경, 손민수, 임라라, 이재율, 전수희 모두 자신을 개그맨, 코미디언으로 소개했다.

 

이렇게 된 데는 이날 출연한 개그맨들이 이구동성으로 혹여나 개그맨이나 코미디언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였을 게다. 그만큼 지상파에서 끝까지 버텨내다 결국 종영을 선언한 <개그콘서트>는 개그맨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 대해서 원로 개그맨인 임하룡은 "선배로서 미안한 감정이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집이 무너졌단 생각이 들지만 새로운 집을 지을 터전이 생긴 거니까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해야죠." 이제 공채개그맨도 뽑지 않는 상황에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유재석의 우려 섞인 질문에 임하룡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놨다.

 

"코미디가 없어지는 건 아니고 각 분야로 녹아 들어갔다. 우리가 개그맨이지만 원래는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원래 뜻은 희극배우 아냐. 웃기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니까 없어졌다 생각지 말고 각 분야에 가서 또 그냥 일을 하고 언제 또 콩트 코미디가 부활할 수도 있잖아." 그는 과거 <유머일번지>나 <쇼 비디오자키>가 큰 인기를 끌다 사라진 후 <개그콘서트>가 생겼듯이 또 다른 스타일의 코미디가 등장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 날 출연자들과의 토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우먼 김민경은 한때 같이 했던 신봉선 같은 친구가 잘 될 때 너무나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운동뚱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면서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

 

신인 개그맨으로 <개그콘서트>에 들어왔지만 종영을 맞게 된 이재율과 전수희는 그간 개그맨이 되기 위해 갖가지 알바를 하는 등 고생을 했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던 '시간들이었다고 털어놨다. 프로그램 종영이라는 아쉬움이 그 무엇보다 클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밝은 얼굴이었다. 유재석은 이 신인개그맨들은 물론이고 그간 함께 고생해온 <개그콘서트> 개그맨들 그리고 제작진들에게 "수고했고 감사했다"며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꼭 드리고 싶었다고도 했다.

 

지금도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용진과 이진호 역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제 공개 코미디가 모두 사라진 마당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코미디 빅리그>가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까가 걱정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프로그램 말미에 나온 손민수, 임라라 커플 크리에이터는 임하룡이 말했던 것처럼 코미디가 여러 분야로 들어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본래 공개코미디 방송에서 개그맨 활동을 했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쳐 공황장애까지 겪었던 손민수는 임라라를 만나 '사랑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유튜버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했다. 그것 역시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생각하고 챙겨주는 커플의 모습은 힘겨워도 다독이며 버텨낸 것이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이 마련한 <개그콘서트> 특집은 그 프로그램만이 아닌 개그맨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웃음을 주려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헌사였다. 이제 개그맨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는 그들에게, 코미디는 그래도 영원하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들을 통해 보여줬다.(사진:tvN)

'개콘' 종영 아쉬움보다 '장르만 코미디' 신설이 반가운 이유

 

"나는 스물다섯 살에 들어와서 지금 서른넷이니까 거의 10년 있었네." JTBC <장르만 코미디>의 '장르만 연예인'이란 코너에서 서태훈은 KBS <개그콘서트>를 했던 시간들을 반추했다. 2,30대를 <개그콘서트>와 함께 해온 그에게 이 프로그램의 폐지가 주는 허전함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10년을 <개그콘서트>에 몸담았다면 어느 정도 유명해지거나 인기가 있을 법도 한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른에 <개그콘서트>를 시작해 이제 마흔이 된 임우일은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개그맨이다. KBS 앞 개그맨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편의점 사장님은 그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동안 먹여주고 한 고마움이 있어 KBS를 향해 절을 올리는 임우일에게 짠내 나는 웃음이 묻어난다.

 

임우일 집에 모여 앉은 실직 개그맨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현실감 100%다. 물론 천상 개그맨들이라 자신들의 짠한 현실조차 웃음으로 바꿔 놓지만 소소한 방송 스케줄 몇 개밖에 없는 이들은 스티커 사진기 부업을 하고, 대리운전, 배달알바를 하며 생계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 처한 개그맨들은 JTBC에서 전화가 왔다는 김기리의 얘기에 이목이 집중된다. 새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 실직 개그맨들의 의욕이 불타오른다. 이런 현실 앞에서 뭘 못할까. 웃음을 주기 위해 이들이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할지 더욱 기대되는 건, 그들의 현실에 대한 공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장르만 코미디>의 한 코너인 '장르만 연예인'은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리얼리티와 콩트를 섞어 전하려 했을 게다. 무려 21년이나 지속되어온 <개그콘서트>의 종영으로 가장 걱정되는 건 KBS도 아니고 프로그램 제작진도 아니다. 그보다는 박봉이어도 매주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고 연기를 했던 개그맨들이다. 그래서 <개그콘서트> 종영 소식이 들렸을 때 그 아쉬움보다 <장르만 코미디>라는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이 신설된다는 소식의 반가움이 더 컸다.

 

<장르만 코미디>는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개그맨들이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지만, 다양한 장르 이를테면 '끝보소(끝까지 보면 소름 돋는 이야기)' 같은 스릴러나 2312년에서 타임리프한 아이돌의 이야기를 다룬 '억G&조G'같은 SF(?), 일자리를 잃은 개그맨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르만 연예인' 같은 휴먼다큐(?), '찰리의 콘텐츠 거래소' 같은 다소 전형적인 콩트 코미디, 그리고 <부부의 세계>를 패러디한 '쀼의 세계'의 명작드라마 같은 다양한 장르들이 시도됐다.

 

지금껏 공개코미디 중심으로만 되어 있던 코미디와는 달리 코미디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 <장르만 코미디>가 가진 괜찮은 덕목이다. 물론 첫 방송이니 아직은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오만석이 코미디 연기에 도전하는 '끝보소'는 그 반전의 이야기가 주는 묘미가 느껴지고, 억G&조G'는 벌써부터 '뼈 is bone'의 '뼈뼈뼈뼈뼈-'가 중독성 있게 귓가에 맴돈다. '장르만 연예인'의 일자리 잃었던 개그맨들이 어떤 변화와 성장을 보여줄 지가 기대되고, '찰리의 콘텐츠 거래소'에서는 마술과 기예를 섞은 코미디를 보여주는 나일준과 '짤'을 부르는 이현정의 "나야"가 큰 웃음을 줬다. 또 본격 드라마 패러디를 가져온 '쀼의 세계'도 어떤 전개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장르만 코미디>는 이제 공개코미디가 아닌 다른 코미디를 실험한다는 것과 무엇보다 개그맨들이 그 실험에 동참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물론 어떻게 하면 공개코미디와는 다른 장르의 색깔이 묻어난 색다른 웃음의 질감을 전할 수 있을까가 숙제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첫 스타트는 잘 끊었다고 생각된다. 모쪼록 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열어 더 많은 개그맨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기를.(사진:JTBC)

'개그콘서트'의 한계 분명하다면 대안을 고민해야

 

갑작스레 터져 나온 폐지설이었지만 사실 놀라운 건 아니었다. 그간 KBS <개그콘서트>는 여러 차례 새롭게 단장하려 노력해왔지만 그 결과는 참담할 정도로 추락한 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편성 시간을 금요일로 옮기고 나서는 시청률이 2%(닐슨 코리아)대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금요일이 방송사들의 격전지가 되어 있는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개그콘서트>의 이런 편성은 사실상 '버리는 카드'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다.

 

폐지설이 나오고 KBS 측에서는 입장이 정리되고 있지 않은 형국이다. KBS측은 "개그콘서트 폐지와 관련해 논의된 바가 없다"고 공식입장을 밝혔지만 KBS 제작본부장은 "폐지에 대해 신중히 논의 중이며 다음 주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혼돈을 줬다. 아직까지 결정된 건 없지만, KBS 내부적으로는 <개그콘서트>의 존폐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개그맨 이용식씨는 페이스북에 폐지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글을 올리며 폐지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과거 <웃찾사> 폐지 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던 그였다. 하지만 결국 당시에도 <웃찾사>는 폐지되었다. 이용식씨가 걱정하는 건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지만 개그맨 후배들의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우려로 보인다.

 

<개그콘서트>를 폐지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유지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에 몸담고 있는 개그맨들을 수용할 대안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그콘서트>는 여러 내외적 요인들로 인해 그 한계가 드러났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즉 최근 달라진 대중들의 감수성에 <개그콘서트>는 대안적인 웃음을 제공하는데 실패한 면이 있다. 이것은 KBS라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더더욱 엄격해진 잣대 하에서 소재나 표현이 제한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모비하, 가학성, 혐오발언, 성인지 감수성 등등 <개그콘서트>는 많은 논란의 소지들을 피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웃음의 코드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무려 21년을 유지해온 프로그램에 대해 폐지설이 나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도 한계를 드러낸 프로그램을 무한정 끌어안고 손실을 감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그맨과 작가, 코디까지 200명에 가까운 인력이 순식간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가는 게 어렵다면 적어도 이 인력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고민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개그콘서트>는 현재 폐지든 변화든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MBC <개그야>, SBS <웃찾사>가 폐지되면서 이런 위기 상황은 예고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폐지나 유지보다 먼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되고 활동하는 개그맨들의 설 자리가 더 중요하다. 어째서 KBS는 지금도 이렇게 많은 가능성을 가진 개그맨들을 어째서 좋은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까.(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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