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선데이-솔약국집 아들들-개그콘서트', 최강의 편성라인

프로그램의 질만큼 중요한 것이 편성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편성이 만사"라고까지 말한다. 한 프로그램의 성공은 다음 시간대 프로그램의 성공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각각 하나로 떼어보는 것보다는 한 덩어리, 즉 라인으로 생각하면 거기서 편성의 묘가 보인다. 이것은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현재 최강의 편성라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요일 밤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KBS2의 프로그램 편성라인이다. 5시20분에 시작하는 '해피선데이'에 이어서 '솔약국집 아들들', '개그콘서트', 그리고 '천추태후'가 끝나는 11시30분까지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저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AGB닐슨의 지난 30일자 시청률표를 보면 1위의 '솔약국집 아들들'이 35.6%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2위가 '개그콘서트(20.1%)', 3위가 '해피선데이(19.1%), 그리고 '천추태후'는 4위인 '스타일(18.9%)'에 약간 뒤진 18%로 시청률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주간시청률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주간 시청률에서 '솔약국집 아들들', '개그콘서트', '해피선데이'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덕여왕' 다음으로 2,3,4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각각의 프로그램이 갖는 높은 대중적인 지지도를 말해주는 것이지만, 라인을 형성한 편성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주말 시청률에서 KBS2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SBS의 '스타일'과 '천만번 사랑해' 역시 하나의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치게 만든다. 한편 일요일 시청률에서 참담한 결과에 머물고 있는 MBC는 어떤 라인은커녕 중심을 잡아주는 프로그램조차 형성되지 않음으로써 점점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일요일 시청률표에서 20위 권에 들어간 MBC프로그램은 14위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9위의 '해피타임' 두 프로그램뿐이다. 즉 저녁 시간대의 라인이 무너져버린 형국이다. '일밤'을 중심으로 주말드라마까지 이어지는 황금의 편성라인은 이제 옛 얘기가 되어버렸다.

TV라는 매체는 집중적으로 보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저 틀어놓고 슬쩍슬쩍 보는 시청행태가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틀어져 있는 채널은 그만큼 유리한 면이 있다. 하나의 좋은 프로그램이 따라서 이어지는 다른 프로그램을 살리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요일 밤 KBS2로 고정되는 채널은 라인을 형성한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드라마, 예능 시청률의 격전지가 된 주말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던 시기, 주말은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랬다. 주말이면(금요일 저녁부터) 야외로 나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문화는 주말 시청률을 반 토막 내곤 했다. 특히 봄에 찾아오는 상춘객들의 급증이나 여름 바캉스 시즌에,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독한 불황의 여파일까. 아니면 점점 여가로 정착되어가는 영상문화의 영향일까. 이제 주말은 계절을 불문하고 시청률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먼저 드라마 시청률 경쟁의 불을 댕긴 것은 시청률 47%라는 괴력을 보인 ‘찬란한 유산’이다. 주말 드라마들이 주로 고정적인 시청층에 소구하는 가족드라마를 내세우며 평균적으로 20%대에 머물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찬란한 유산’이 남긴 유산은 실로 찬란하다고 할 수 있다. 47%라는 수치는 좋은 작품에 그만한 시청자층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찬란한 유산’은 가족드라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니시리즈적인 특징을 끌어안는 것으로 오히려 시청률 상승에 기폭제를 만들었다. 이것은 주말드라마하면 가족드라마라는 공식의 균열을 의미한다. ‘친구’나 ‘탐나는도다’ 같은 지금까지 주말에는 보기 어려웠던 드라마들이 주말에 포진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종영 후 전체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선덕여왕’으로 그 바톤을 월화로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주말은 드라마 시청률의 밭이라고 할 수 있다.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3회 만에 20% 시청률에 도달하고 있다. SBS 주말극장 ‘사랑은 아무나하나’ 역시 15% 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고,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는 떨어진 시청률에도 12%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20위 권에 들어있는 주말드라마가 총 네 편으로 전체 순위에 있는 아홉 편 중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주말 시청률 경쟁은 점점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격전지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전체 예능프로그램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KBS의 ‘해피선데이’가 따르고 있다.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그 다음이고,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는 한 때 이 경쟁의 대열에 있었지만 현재는 주춤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이 일요일에 집중되던 시청률 경쟁은 이제 토요일로 번져갈 조짐이다. 토요일 예능의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이 20%에 육박하는 시청률 상승을 맛보고 있으며, 토요일 저녁으로 자리를 옮긴 MBC의 ‘세바퀴’ 역시 16%대의 시청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KBS의 ‘천하무적 토요일’은 아직 9%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지만 잠재력이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때 ‘무한도전’의 시청률을 위협하던 ‘스타킹’은 조작과 표절 시비로 가라앉고 있지만 절치부심 재기의 발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MBC가 ‘무한도전’ 앞자리에 ‘스친소’를 폐지하고 대신 ‘우리 결혼했어요’를 포진시킨 점이다. 타 프로그램과의 경쟁 때문에 약화되긴 했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의 시간대 변경은 어쩌면 토요 예능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할 지도 모른다. 토요일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 경쟁은 이로써 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말해주는 주중시청률 표를 들여다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20위권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무려 9편에 이른다. 만일 주말의 의미를 금요일 저녁부터 계산한다면 ‘절친노트2’를 포함해 전체 주중시청률 20위 권에 든 프로그램의 반이 주말에 포진한 셈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과 함께 주말이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이라 예측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말은 오히려 시청률의 밭이 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그만큼 경쟁적이고 피곤해진 주중의 사회 풍경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말의 TV는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진 지친 현대인들의 여가로 자리하고 있다.

부실 개그의 한민관, 분장 개그의 안영미

건드리면 툭 부러질 것 같은 개그맨 한민관의 부실해 보이는 몸은 그 자체가 개그의 강력한 소재다. ‘대포동 예술극단’은 남한 상황을 역으로 패러디 하는 북한인 역할로 한민관을 주목받게 해준 코너였다. 본격적인 불황의 실감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에 맞춰 나왔던 ‘로열 패밀리’에서 한민관은 거지 가장으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가난을 달고 살지만 그 와중에도 허세에 가까운 당당함으로 웃음을 주는 모습은 한민관의 가난한(?) 외모와 그럼에도 꼿꼿한(?) 태도를 그대로 캐릭터화 했다.

바로 이 점은 한민관이 부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한 동명의 코너에서 윤지후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된 이유다. 한민관이 패러디하는 ‘부실한 몸에도 도도함을 가진 윤지후’는 그 상반된 성격 때문에 그 자체로 웃음을 준다. 처음에는 앙상한 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웃음을 주더니 이제는 아예 이동침대에 누워 출연하고, 온풍기에 오징어가 오그라들 듯 몸이 배배 꼬이는 다양한 부실 개그로 점점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봉숭아 학당’에서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를 외치는 매니저 역할 역시 이 부실한 몸 개그의 연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매니저라면 어딘지 연예인 지망생을 보호해줄 만큼 듬직해야 하는데, 이건 거꾸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몸이라니. 게다가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개그맨인 그가 명함을 던지는 인물들은 이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연예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것 역시 그의 몸 개그가 가진 역발상의 확장판으로 읽을 수 있겠다.

한민관 같은 개그맨들과 마찬가지로 개그우먼들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몸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못생긴 얼굴과 뚱뚱한 몸을 가진 개그우먼들은 그래서 박지선이 하듯, “참 쉽죠 잉”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어찌 그게 그리 쉬운 일 일까마는). 그런 면에서 보면 안영미는 꽤 불리한 입장이다. 초창기에 강유미와 함께 나왔을 때 강유미의 포스(?)에 안영미가 밀려 보였던 것은 상대적으로 개그우먼답지 않은(?) 그 평범한 외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안영미는 분장을 선택함으로써 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은 코너명에서 알 수 있듯이 강유미를 중심으로 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안영미가 더 주목을 받는다. 물론 강유미도 여전히 큰 웃음을 주지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망가졌을 때 그 효과가 두 배라는 것을 안영미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그맨 분장실이라는 상황이다. 만일 이 상황이 설정되지 않고 그저 분장으로 망가진 몸을 보여주기만 했다면 안영미는 그만큼의 주목을 받기가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개그 코너지만 여자로서 골룸 분장을 한다는 것은 어떤 합당한 의미가 없다면 자칫 지나친 의욕으로만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그맨 분장실이 갖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과, 그 강박 속에 긴장감을 주는 선후배 관계 속에서 안영미의 골룸 분장은 맥락을 갖는다. 아프다는 후배에게 “너 허락 받고 아팠어?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하고 던지는 안영미의 멘트는 웃음을 주면서도, 그 맥락의 처절함을 공감하게 만든다.

물론 한민관과 안영미는 이런 몸 개그가 아닌 스토리 텔링 개그에도 분명 능수능란한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불황을 맞이해 그들이 주목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몸이 주는 처절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민관의 부실 개그, 안영미의 분장 개그에 대한 주목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콘’의 두 직업 기자와 PD, 그 의미

‘개그콘서트’의 두 직업으로 기자와 PD가 떴다. 황당한 현실을 전달하는 안상태 기자와 소비자를 우롱(?)하는 과장 과대 광고를 가차없이 고발하는 황현희 PD가 그들이다. 물론 이건 개그일 뿐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그저 개그에 머물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황현희가 실제 소비자들을 위해 잘못된 상흔을 고발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소비자 고발’에 고정출연하고, 안상태가 케이블 경제 전문 뉴스 채널 mbn에서 ‘안상태의 거꾸로 뉴스’ 진행을 맡게 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개그 코너에서 실제상황으로 까지 끌어오게 한 것일까.

일단 제일 먼저 주목해야할 것은 이들이 코너에서 갖고 있는 기자와 PD라는 직업이다. 현재처럼 다변화된 복잡한 사회 속에서 매체가 갖는 힘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선택한 직업군의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현 상황 속에서 이 직업군이 갖는 의미는 신뢰와 불신을 동반한다. 복잡한 상황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런 정보도 얻기가 어려워지는 직업군인 반면, 그 실망감, 즉 불신에 대한 배반감도 큰 직업군이다. 같은 경제상황을 가지고 서로 다른 입장차가 난무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어쩌면 기자와 PD는 믿음과 불신을 동반하는 가장 핫한 직업인지도 모른다.

‘개콘’의 코너들은 이 직업군이 갖는 상황을 뒤집으며 웃음을 주었다. 안상태 기자는 기자로서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감정 섞인 말투로 자신의 처지와 신세를 한탄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그 사건을 전달해줘야 할 기자가 오히려 그 세상의 황당함에 포로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웃음을 주는 식이다. 한편 황현희 PD는 믿지 못할 세상에 대한 조금은 병적인 집착을 드러낸다. 이것은 흔히들 예술작품에서 활용되는 ‘미친 자의 목소리’다. 조금은 엇나간 지적들을 하는 미친 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오히려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내는 식이다. 황현희 PD가 하는 지적은 병적이지만, 그 지적하게 되는 상황(믿지 못할 세상)은 현실이다.

하지만 안상태 기자와 황현희 PD라는 조금은 엇나간 캐릭터가 가진 의미는 단지 잘못된 세상에 대한 대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매체에 대한 불신 또한 들어가 있다. 기자와 PD가 전달하는 세상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 하는 의문 제기. 물론 모든 뉴스와 고발 프로그램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이제 TV가 전달하는 뉴스나 정보란 이제 하나의 진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해석으로 읽힌다. 진실 자체가 쉽게 왜곡되는 매체적 상황 속에서 기자와 PD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개그라는 테두리를 안전장치로 가진 안상태 기자와 황현희 PD는 오히려 더 쉽게 진실에 접근하는 힘을 보인다. 즉 내용(거기서 하는 말)보다는 형식(토로하는 형식과 다그치는 형식)이 오히려 진실에 쉽게 접근시킨다는 말이다.

안상태 기자와 황현희 PD가 개그 코너를 넘어서 실제 뉴스나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 나오는 이 상황은 물론 이 캐릭터들이 가진 재미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뉴스나 시사교양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가진 말에 대한 신뢰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말 그 자체보다는 그 말이 가진 형식이 때론 더 신뢰가 가고, 또 공감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개콘’의 이 두 직업을 캐릭터로 가진 개그맨들은 보여준다. 말이 아닌 온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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