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윤균상, 사적 복수에서 공적 소명으로

“성님, 어리니를 봤소. 어리니가 임금님이 무섭다며 울고 있었소. 성님, 나 그동안 못된 짓 많이 하고 살았소. 충원군한테 복수도 하고 금주령 때 술 팔믄서 건달들 제끼느라 손에 피도 많이 묻혔소. 억울한 사람들 도와준답시고 미운 놈들 다리도 숱하게 분질러 줬소. 야, 나는 화 많이 내고 살았소. 그런디 성, 워째 지금은 화가 안 나고 맴이 슬프요. 집 뺐기고 가족 잃은 사람들 눈물이, 우리 어리니 눈물 같고, 가령이 눈물 같고, 소부리 아재 눈물 같소. 나는 툭하면 화가 나는 존재인데, 지금은 어째 화는 안 나고 눈물만 난답니까?”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드디어 길동(윤균상)이 세상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가족과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에 대한 사적인 복수와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억울한 백성들 괴롭히는 이들을 응징해왔다면, 연산(김지석)의 폭주로 망가져가는 세상 앞에 그는 조금씩 공적인 소명의식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기보다는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 핍박받는 이들이 세상과 싸우지 않고 울기만 한다는 것에 오히려 화를 내고 보기 싫다 했던 그가 아니던가. 그랬던 그가 이제 쓰러져 가는 백성들의 피를 보며 그 아픔이 타인의 것이 아니라 마치 가족의 아픔인 것으로 느끼게 됐다. 그의 그릇은 세상을 품을 만큼 커졌다. 처음에 그 그릇의 크기는 가족을 담는 정도였지만 그 후 익화리 사람들을 담는 정도로 커졌고 이제는 세상을 담을 정도로 커졌다. 

<역적>은 우리에게 고전의 인물로 남아있는 ‘홍길동’을 재해석한 작품. 연산군 시절 실존했던 도적 홍길동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런데 어째 그 옛 시절의 이야기가 그저 옛날이야기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연산군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권력자의 불통과 폭주로 그려지면서 그것이 어떻게 백성들의 고혈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길동이라는 애기장수라는 메시아의 등장이 마치 백성들 하나하나의 소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힘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폐비되어 사약을 받은 어머니를 가진 불행한 과거사는 연산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연산의 주변에는 그래서 비선실세들이 넘쳐난다. 그의 아픔을 건드리고 그 고통을 촉발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이들. 연산의 폭주를 막기 위해 대간에서 나서 왕의 잘못을 고하지만, 그들을 모두 처벌하는 풍경은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권력의 행태와 무엇이 다를까. 

위를 범했다는 이유로 노비들의 혀를 자르고 발목을 잘라내는 그 행태들을 낱낱이 기록한 행록과 그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송도환(안내상)을 위시해, 충원군(김정태), 참봉부인 박씨(서이숙) 같은 이들이 바로 비선실세다. 그들은 왕을 위한답시고 충언을 말하지만, 사실은 권력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양반의 백성 수탈을 정당화해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유지하려는 인물이다. 불통하고 폭주하는 왕, 그리고 주변을 에워싼 비선실세들. 이러니 <역적>의 홍길동 이야기가 옛 이야기로 보일 리가 없다. 

길동을 잡아 힘줄을 끊고 뼈를 부숴 애기장수의 힘을 없애버린 연산은 그를 갖고 사람사냥 놀이를 한다. 연산은 스스로를 사냥꾼으로 그리고 길동을 그가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짐승으로 다룬다. 연산은 왕이고 길동은 한갓 도적이다. 그런데 <역적>은 그 실상이 정반대라는 걸 보여준다. 과연 누가 진짜 왕이고 누가 도적이며,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짐승인가. 백성들의 고혈을 빼먹는 이가 도적이고, 사람을 향해 화살을 겨눈 자가 짐승이 아닌가.

“난 인간을 믿지 않는 인간이다. 폭력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정치인이다. 난 오래 전부터 인간은 폭력을 써야 다스려지는 존재라는 것을 깨우쳤을 뿐이다.” 연산이 길동에게 하는 이 말이 주는 울림은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다. 인간을 믿지 않는 존재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정치의 유일한 길을 폭력이라 여기는 이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결코 다스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역적>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의 대중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립-공조-공감, ‘귓속말’이 담는 특별한 멜로 방정식

신영주(이보영)와 이동준(이상윤)은 과연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찮다. 조폭들에게 추적당하며 죽을 위기에 처한 이동준과 그를 구하러 온 신영주. 자신을 놔두고 가라며 조폭에게 소리를 내려하는 이동준의 입을 막은 신영주의 입. 그것은 키스였을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에 불과했던 걸까. 

'귓속말(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 변화는 이 드라마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거대 로펌 태백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 속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같은 편이 되었다가 또 다른 상황을 만나면 적으로 맞서게 되는 게 이 권력 시스템의 적자생존 구조다. 그것은 부모 자식 관계인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과 그 딸인 최수연(박세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그 태백의 권력 시스템 안에서 유일하게 다른 관계를 가진 이들은 강정일(권율)과 최수연이다. 그들은 단순한 이익관계나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의한 관계와는 다른 연인관계다. 어디서 어떤 배신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이 살벌한 시스템 안에서 이런 인간적 관계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단순한 이익을 위한 선택 그 이상의 선택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는 대립관계로부터 시작했다. 즉 판사시절 소신을 버린 이동준에 의해 신영주의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었고, 신영주 역시 형사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신영주는 술 취한 이동준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 그를 협박한다. 대립관계지만 이동준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사면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신영주는 그래서 그와 각을 세우면서도 공조하는 입장이 된다. 

이동준의 비서로 태백에 들어온 신영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돕게 되고 또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두 사람 관계는 조금씩 바뀐다. 이동준이 자신이 판사시절 소신을 버렸던 일을 차츰 후회하게 되고 그래서 단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공조하던 관계를 넘어서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속죄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폐암 3기를 판정받은 신영주 부친의 형 집행정지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사지에 들어가는 것. 이 선택은 이익이나 생존과는 상관없는 인간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자 신영주 역시 비슷한 인간적 선택을 하게 된다. 부친의 형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미 자신이 얻을 건 얻은 상황이지만 이동준을 구하기 위해 그 위험한 곳으로 뛰어든 것. 칼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동준과 그 상처부위를 손으로 누르며 그를 지지하는 신영주. 그리고 그 순간 신영주가 한 키스는 그래서 단순히 상대방의 입을 막기 위함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신영주와 이동준의 이런 인간적 관계의 바탕이 되는 건 ‘공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인정하며 참회하는 이동준은 그녀가 처한 입장을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이동준의 입장을 또한 신영주 역시 공감하고 그 위험에 같이 뛰어든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대립관계에서 시작해 공조관계 그리고 공감의 관계로까지 바뀌게 되면서 <귓속말>의 로펌 태백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은 더 팽팽한 상황으로 접어들게 됐다. 강정일과 최수연의 관계와 이제 제대로 맞서게 될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귓속말>은 굳이 주인공들 사이에 이런 관계의 변화를 그려 넣으려 했던 걸까. 그것은 물론 그저 치고 받는 권력의 시소게임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을 함께 잡아내려 하는 것이고, 또한 이 복마전 속에 그래도 인간적인 면을 만들어내는 멜로 관계 같은 걸 집어넣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보다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적 관계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기 위함은 아닐까.

‘자체발광 오피스’, 청춘 희비극이 제대로 먹히려면

웃프다. 아마도 MBC의 새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이것이 아닐까. 시작부터 한 회사 건물 창을 부순 채 돌진해 들어가 소화기를 쏘며 “왜 그랬어요!”를 외치는 취준생 은호원(고아성)의 모습은 그녀가 처한 절실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만 어딘지 과장된 절실함은 이 비극적인 청춘의 현실을 담은 드라마가 그 겉면으로는 코미디를 차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결국 한 바퀴 휘돌아 다시 그 건물 앞으로 돌아온 그녀는 창을 부수며 돌진하는 것이 그저 그녀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100번째 면접시험에서 면접관 서우진 팀장(하석진)에게 “백번이나 떨어지면 병신 아냐?”라는 말까지 들으며 굴욕을 참아냈던 은호원이 결국 그 시험에서도 떨어졌다는 걸 확인한 후 한강 다리 위에서 “삐뚤어질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슬프기 그지없다. 남들 스펙 준비할 때 생활고에 시달리며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그녀에게 돌아온 말이 고작 “졸업한 지 3년이나 됐는데 뭐하셨나 그래”라는 비아냥이다.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그녀에게는 그래서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 살아가는 일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취업현실은 누구에게나 취업 자체가 평범 그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런데 중심을 잃고 의지와 상관없이 한강물에 빠졌다 구조되어 한 응급실에서 깨어난 그녀의 귀에 들리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린다. 기껏 살아남았는데 시한부라는 것. 하지만 그 날 응급실에 자살시도를 하고 들어온 청춘이 자신만이 아니라 기택(이동휘)과 장강호(이호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시한부의 확률이 3분의 1이라는 상황은 이 비극 속에 희극적 요소를 심어놓는다. 병원비가 없어 기택과 함께 응급실에서 도망치고 바깥에서 만난 세 사람이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절망 속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웃음을 준다. 

청춘들의 취업 현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미생>의 장그래(임시완)가 떠올려지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미생>의 진지함과는 달리 조금은 가벼운 코미디적 요소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나 인물들의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인 무게감을 주면서도 조금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그 웃픈 현실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게다. 특히 비극적 현실을 희극적 상황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너무 처질 수 있는 드라마를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자체발광 오피스>의 첫 방 시청률은 고작 3.8%(닐슨 코리아)에 머물렀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부족했던 걸까. 물론 가장 큰 건 경쟁작인 KBS <김과장>이 떡 하니 버티고 있고 SBS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중장년층 시청층을 넓히고 있는 상황일 게다. <자체발광 오피스>만 놓고 보면 공감 가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경쟁작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그 시청층을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아 끌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나 상황이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생>은 장그래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상식 과장(이성민)이라는 중년층이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다. 하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적어도 첫 회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김과장> 역시 김과장(남궁민)은 물론이고 추부장(김원해) 같은 중년들이 공감할 캐릭터가 세워져 있고, <사임당, 빛의 일기>는 초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을 최대한 줄이고 사극에 집중함으로써 중장년 시청층을 끌어들였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그래서 그 작품 자체로는 빛이 나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보편적인 시청층을 끌어들이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면들이 많이 드러난다. 웃픈 청춘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가지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세대의 이야기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캐릭터나 상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일 그대와’, 또 타임리프? 보편적인 공감에 주력해야

지하철을 타고 미래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여행자의 이야기. tvN 금토드라마 <내일 그대와>는 전형적인 타임리프 장르 드라마다. 과거의 지하철 사고를 겪은 후 시간여행을 하게 된 소준(이제훈)은 미래에 사고로 자신이 죽게 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그 때 같이 죽음을 맞게 될 마린(신민아)이 알고 보니 과거 지하철 사고 때 우연히 얽히게 되어 함께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미래가 그녀와도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소준은 그녀를 살리려 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겨난다. 

'내일 그대와(사진출처:tvN)'

그러니 설정은 타임리프지만 그 이야기의 또 다른 힘은 소준과 마린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 감정에 있다. 과거 어린 시절 엄마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출연했던 작품에서 ‘밥순이’라는 별명을 마치 주홍글씨처럼 갖게 된 마린은 잊혀질 만하면 나오는 ‘밥순이’ 기사로 고통스러워한다. 그녀는 연예인이 아니라 사진가로서의 길을 새롭게 가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여행자로서 막대한 부를 가진 소준은 그녀와 인연이 얽히게 되고 그녀의 처지를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즉 <내일 그대와>에는 마린이라는 여성이 타인들에 의해 규정되고 그것으로 고통받아온 삶을 벗어나 오롯이 자기 이름으로 서는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일종의 성장담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이야기 축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여행자인 소준이라는 판타지적 남성과 엮어지며 로맨틱 코미디 멜로의 색깔을 갖게 된다. 결국 여기서도 주목되는 건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 감정이고 그 화학작용이다. 그런데 <내일 그대와>가 가진 타임리프라는 장르적 장치는 자꾸만 그 장치가 가진 게임적인 재미로 드라마를 끌고 들어간다. 생각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은 건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타임리프 장치가 가진 재미란 논리 게임에 가깝다.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데는 그 장치만의 룰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래의 죽음을 목도한 주인공이 그걸 막기 위해 뛰어드는 건 이 논리 게임에서의 승리를 통해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함이다. 소준에게 또 다른 시간여행자인 두식(조한철)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준다. 그건 조금 황당해 보이지만 마린과 결혼해 아이를 갖는 것이다. 타임리프라는 게임적 장치 역시 그 귀결에 마린과 소준의 멜로를 두고 있다는 것. 

이 정도면 <내일 그대와>의 구성은 꽤 정교하다고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타임리프의 신기함에 눈이 끌리지만 그 복잡한 논리게임 속으로 깊게 들어가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 대신 타임리프의 신기함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어떻게 엮어져 가고 그것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에 주목할 뿐이다. 즉 거꾸로 말해 이야기가 지나치게 타임리프 설정의 논리게임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긴박감은 생길지 몰라도 애초 기대했던 멜로가 아닌 마치 SF물을 보는 듯한 느낌에 난감해질 수 있다. 

3회에서 소준은 미래의 사고 당일 그 장소로 가지만 사고를 막지 못한다. 그래서 미래의 마린은 물론이고 소준도 죽을 위기에 몰리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미래로 간 현재의 소준 또한 소멸시킬 위기를 만든다. 소준의 간절함은 느낄 수 있지만 이런 식의 타임리프 장르 본연의 논리게임 속으로 빠져 들어 가면 갈수록 시청자들은 그 낯선 이야기 전개에 복잡함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타임리프 장르가 흥미롭고, 그래서 최근 들어 시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모두 엄밀한 의미로 타임리프라 말하긴 어렵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걸들이 모두 타임리프로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가 많아지며 또 성공한 드라마도 있지만 그것이 온전히 이 장르의 묘미가 가진 힘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성공한 건 그 전생과 이생의 이야기를 왔다 갔다 하며 만들어내는 논리게임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깔린 운명적이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심지어 삶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안겨줬기 때문이다. 

<내일 그대와>는 그래서 지나치게 타임리프 속으로 들어가면 어딘지 낯설어진다. 그 재미 속으로 빠지면 타임리프 장르가 주는 마니아적 열광은 얻을 수 있어도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는 어려워진다. 물론 그렇다고 그저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멜로를 하는 것도 밋밋하고 식상해질 것이다. 그러니 중요해지는 건 타임리프라는 신선한 설정을 통해 보편적인 멜로의 장르를 유지하는 균형이다. 거기에 <내일 그대와>의 성패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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